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36)
236.
할로윈.
호박에 눈코입 구멍을 뚫어서 잭 오 랜턴을 만든 뒤 집 앞에 두고, 유령 분장을 한 아이들이 저마다 이웃집을 돌아다니면서 ‘Trick or Treat!’을 외치고 사탕을 받는 날.
현대의 할로윈은 가톨릭의 축일인 ‘모든 성인(聖人)의 대축일 전야제’로 명시되어 있지만, 사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일랜드의 켈트 다신교와 연관이 있었다. 과거에 켈트인이 살던 땅이 정복당하고 그들의 문화가 로마 카톨릭에 흡수되면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 전야제’라는 칭호가 붙게 된 것이었다.
즉, 할로윈은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미국으로 건너온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퍼뜨린 문화였고, 켈트 다신교에서 일컫는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는 겨울 직전의 날, 다시 말해 10월 31일에 사람들이 유령 분장을 하고 그들을 쫓던 문화로부터 비롯되었다.
아이들이 이웃집을 방문해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는 것은 저승에서 온 유령의 모습을 흉내 내는 행위였고,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 사탕을 나눠주는 일 또한 유령을 쫓는 주술의 현대적 재현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할로윈은 딱히 법정 공휴일이 아니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면무도회와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되었다.
직장에 지친 어른이나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적당히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어린아이들은 장난감 가게에서 파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코스튬 같은 것을 사서 입고 신이 나서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청년들은 저마다 모여서 파티를 벌였다.
의외로 할로윈 파티라는 행사를 더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이들은 소위 말하는 ‘너드’들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변 눈치 따위는 안 보고 원하는 코스튬을 입고 놀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니까.
우리 네 사람의 심리적 아지트나 다름없는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를 비롯해, 수많은 관련 업장에서는 너드 특수(?)를 노리고 매해 파티를 개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딱히 그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할로윈 때마다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냈던 우리였지만, 올해 그 파티에 참가하기로 했다.
바로 한 남자가 다 함께 ‘Kung-fury’ 코스튬을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두피 킹스턴이었다.
그리고 참된 카우보이였다.
그 제안에 알렉사가 흥분해 자신도 소다팝 코스튬이 입고 싶다고 동참하고, 그녀와 붙어 있던 지우가 재미있겠다고 동의해서, 내 의견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할로윈 파티 참여 안건은 통과가 되었다.
내가 쿵-퓨리, 알렉사가 소다팝, 두피는 스타 체이서.
그리고 지우는 ‘Kung-fury’의 어떤 캐릭터가 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작품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중 한 명이었던 ‘리버티 퀸’ 이야기가 나왔지만, 본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시푸의 코스튬을 입기로 했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수염을 달아 보겠어요?’
‘아, 그건 맞지.’
알렉사의 공감에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돌아봤던 것이 문득 기억났다.
······대체 뭐가 맞다는 거지.
어쨌거나, 두피가 ‘할 줄 안다.’라고 해서 도맡았던 코스튬 제작은, 한동안 조용하더니만 뜻밖의 결과를 가지고 왔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서 제작한 각 코스튬은, 마치 ‘오파츠’처럼 시대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퀄리티를 가진 멋진 결과물로 나오고 말았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옷 치수를 잴 때 진작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눈앞의 두피, 아니, 스타 체이서는 그야말로 만화 속에서 그대로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코스튬을 너무 잘 만들어서, 나중에 관련 행사가 있을 때 이대로 모델이 입어도 되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아니면, 두피가 직접 그 역할을 맡던지.
성조기에서 본뜬 색 배열과, 마스크에 있는 커다란 별 모양.
거기다 두피도 살이 아주 많이 빠진 상태여서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얼마나 뺀 거야?”
“25킬로그램 정도?”
“미쳤군.”
이제 고작 다이어트 시작 후 넉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 아닌가?
두피는 예전이 모습이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변해 있었다.
다이어트 전까지는 어딘가 위태위태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덩치였으나, 이제는 적당히 살이 빠지고 몸의 형태가 잡혀 있는 것이 한눈에 체감되었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배가 완전히 홀쭉해졌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도 덩치는 그대로라, 역삼각형의 체형을 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 네 덕이다. 신.”
“그치? 건강하게 먹으면서 조급해하지 않으면 알아서 빠진다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러면?”
“바로 ‘Kung-fury’다. 네 멋진 작품이 그곳의 캐릭터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스타 체이서.”
“······쿵-퓨리.”
“스타 체이서.”
“쿵-퓨리.”
차고 앞에서 서로 감격에 찬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뜨거운 우정의 열기를 간직한 채 천천히 2층까지 올라갔다.
내 일도 아닌데 두피를 보고 놀랄 알렉사와 지우의 표정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노크하고 문을 열자, 예상했던 대로 두 사람의 눈이 두피를 보고 휘둥그레 뜨였다.
“두, 두피? 두피 맞아?”
“······.”
“아니, 저건 두피가 아니에요. 알렉사.”
“그러면 대체 누구지?”
“Star-Chaser.”
두피가 광배를 활짝 열어젖히며 코믹스 속 포즈를 잡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신났구나, 너네들.
“와, 와, 와! 스타 체이서! 팬이에요!”
“나 또한, 당신의 팬이오. 소다팝.”
“요호호-. 두 영웅을 보니 내 기분도 다 좋군.”
“지우, 그건 산타클로스잖아.”
“쳇! 돈만 있으면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간다고!”
“시푸.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당신은 불변하지 않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
어라, 언제 내가 ‘Kung-fury’ 월드로 들어왔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웃음이 헤실헤실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참고 있자니, 이윽고 스타 체이서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스윽 내게 내밀었다.
“쿵-퓨리, 뭘 하고 있지?”
“으, 응?”
“Suit up.”
“······.”
젠장.
이번 파티가 진심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
쿵-퓨리의 검은 도복은 일반적으로 ‘차이나 스타일’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형태의 옷이었다.
차이나 칼라에 가로로 긴 형태의 단추를 몸의 중심부에서 채우는 형식. 내 몸에 딱 맞는 옷의 등 부분에는 금색으로 용이 새겨져 있다.
이 현란한 자수를 도대체 어떻게 새긴 거냐고 물으니 두피는 이렇게 대답했다. ‘열심히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가슴 속 깊이 감격했다.
‘이거 완전 일상복으로 입고 다녀도 되겠는데.’
평소에 입던 옷보다 재질도 훨씬 좋고, 입었을 때 불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단지 조금 스키니하고 화려한 도복 형태의 옷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그린 호넷의 ‘케이토’ 같은 느낌의 마스크와 붉은 두건을 착용했다.
나는 쿵-퓨리가 되었다.
당장에 쿵푸로 여럿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찾아온 할로윈 당일.
저녁에 시작될 파티에 가기 전, 우리 집으로 모일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누군가 싶어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세 명의 남자애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으헉?!”
“쿠, 쿵-퓨리다!!”
한인 위주로 모여 사는 이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는 히스패닉 아이들.
특히 그중 하나가 입고 있는 옷이 쿵-퓨리를 따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검정 티셔츠에 얼굴을 까만 펜으로 칠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른 정도였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음, 안녕?”
원래대로라면 ‘트릭 오어 트릿’을 외쳐야 하는 타이밍인데, 다들 눈이 휘둥그레 뜨여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귀여웠다.
그리고 잠시 후, 무리의 중심에 서 있던 WWF의 프로레슬러, 브렛 하트로 분장한 히스패닉 꼬마가 입을 열었다.
“진짜 쿵-퓨리예요?!”
“그럴 리가 있겠냐!”
옆에서 검을 든 소년이 받아쳤다. 쟤는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겠군.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잠깐 세 소년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대충 봐도 멀리서 왔겠구나 싶었다.
땀에 흠뻑 젖었고, 얼굴에는 검댕이 묻었다. 들고 있는 바구니에는 이미 사탕이 한가득했지만, 그런데도 아직 모자란다는 표정. 오늘 아침부터 날 잡았다 생각하고 멀리서부터 열심히 돌았을 테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어?”
“사우스 LA요!”
······넉넉잡아도 이곳에서 두 시간은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잠깐 들어올래?”
“네? 왜요?”
“······아, 너희에게 쿵푸를 보여 주려고.”
“하하! 장난하지 마세요!”
“농담이야. 오렌지 주스 한 잔씩 줄게.”
경계심을 보이던 아이들이었지만, 내가 쿵-퓨리 옷을 입고 있어서일까. 결국 내 손짓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집의 규칙대로 신발을 벗으라고 말하자, 조금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적당한 수건으로 아이들의 얼굴에 묻은 검댕을 닦아준 뒤, 식탁 앞으로 데려가 시원한 주스와 아이스크림을 먹이며 대화를 나눴다.
“사우스 LA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오늘 할로윈이잖아요! 마음껏 사탕을 받을 수 있는 날! 오늘 많이 받아 둬야 내년까지 캔티와 스낵 걱정이 없죠! 그래서 학교도 빠졌어요!”
“벌써 각자 바구니 하나씩은 모아 뒀죠!”
“······야,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이러다 우리 안 줄라!”
“줄 테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검을 든 소년이 핀잔을 주자 나는 차분하게 타일렀다.
“그럼 바구니는 다 어디에 뒀는데?”
“오는 길에 적당한 곳에 숨겨 뒀죠! 히히!”
브렛 하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Kung-fury’는 다들 좋아하니?”
“그럼요! 짱 재밌잖아요!”
“······어디가?”
애들 보기에는 조금 무거운 내용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미니 쿵-퓨리가 소리쳤다.
“짱 잘 싸우잖아요!”
“소다팝도 예쁘고! 엉덩이 개 큼!”
“······.”
“엄마가 엉덩이 큰 여자를 만나라고 했는데!”
······요즘 애들은, 조숙하구나.
오렌지 주스와 아이스크림을 사양하지도 않고 먹으면서 쿵-퓨리가 얼마나 재밌는지, 자기네 학교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 실컷 떠들어대는 아이들.
그 애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다가, 나는 부엌에 있던 온갖 캔디와 스낵을 한아름 싸서 건네주었다.
“우와, 진짜 많다!”
“이렇게 많이 줘도 돼요?!”
“그럼. 난 쿵-퓨리니까.”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해준 쿵-퓨리의 팬들을 위한 작은 서비스였다.
그렇게 히스패닉 아이들을 돌려보내자, 시푸 복장을 입은 지우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1층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엄숙히 말을 걸어 왔다.
“방금, 누구였지?”
“아, 사탕 받으러 온 애들이었어. 멀리서 왔다고 해서 주스랑 아이스크림 좀 먹였지.”
그런 내 말에 휘둥그레 눈을 뜬 지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것은 시푸였다.
“무르군. 쿵-퓨리.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다니.”
“······아니,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건 당연하지 않수?”
“갈! 돈도 안 되는 일을 뭐 하러! 가서 쿵푸 도장 전단지나 돌리고 와!”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군. 시푸.”
“뭣······! 내게 반항하겠다는 거냐!”
어째 막간 콩트가 되어버린 우리의 대화.
지우가 한쪽 발을 척 앞으로 내밀더니만, ‘Kung-fury : Comics’에서 묘사된 시푸의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힘으로 가르침을 주는 수밖에!”
“당신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얍! 얍! 얍!”
지우의 냥냥 펀치가 후두둑 날아왔다. 귀엽다.
서로 손을 툭툭 쳐내면서 한동안 신이 나서 대련을 벌이는 우리.
그렇기에 알지 못했다.
“······.”
알렉사가 잠가 두지 않았던 현관문 앞에서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다는 사실을.
“······.”
“어, 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알렉사는 안색을 완전 창백하게 물들인 채 지우와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쿵-퓨리가 쿵푸 도장의 끄나풀이었다고?”
“아.”
······난, 또.
미안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연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요즘에 안 그래도 연기 실력이 많이 늘어서 그런가, 그녀가 진짜로 당황한 줄 알았으니까.
“······들켰군.”
반면, 초등학생 학예회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연기와 함께 앞으로 나서는 지우.
“가라. 쿵-퓨리. 저 여자를 해치워.”
“아, 아니 해치우면 안 되지. 나는 히어로인데.”
어째 지우의 시푸는 빌런 버전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의 어설픈 연기를 보고 빵 터진 알렉사가 쪼르르 달려오더니만, 지우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둘 다 진짜 잘 어울려! 우리는 오늘 최고로 멋질 거야!”
흥분해 방방 뛰는 골든 리트리버의 앞에서 우리도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지막으로 두피까지 도착했다.
녀석은 집에서부터 코스튬을 입고 와서 준비할 것이 딱히 없었다. 알렉사만 따로 화장하고 코스튬으로 갈아입은 뒤, 우리 네 사람은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로 출발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슬슬 집을 나서려던 찰나.
“아, 우리 사진 한 장 찍고 가요!”
지우의 제안으로 우리는 뒤쪽 정원으로 나갔고, 삼각대를 펼쳐둔 소니 카메라를 써서 사진을 촬영했다.
찰칵-!
석양이 지고 있는 시간.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지는 알 수 없었다. 스물네 컷을 모두 다 촬영하고 필름을 인화하기 전까지는, 이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으니까.
하지만 알렉사, 지우, 두피와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었다.
‘확실히 이것 나름의 맛이 있지.’
기다림의, 느림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된 프롬 파티 때가 왠지 모르게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할로윈 파티도 분명 그때처럼 환상적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