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37)
237.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까지 가는 동안, 거리는 굉장히 한산한 분위기였다.
할로윈이라는 것이 사실 그랬다. 휴일이 아니라서 다들 적당히 주변의 이웃과 정을 나누는 정도였지, 본격적으로 다운타운까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 쪽으로 가까이 갔을 때, 그 주변만 유독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 평소보다 더욱 눈에 띄었다.
슬슬 도착지에 가까워진 것을 간파한 조수석의 스타 ‘두피’ 체이서가 입을 열었다.
“다들, 준비는 됐나?”
“응응!”
“기대되네요!”
자동차 뒷좌석에서 흥분해 몸을 들썩거리는 알렉사와 지우······ 아니, 소다팝 앤 시푸.
평소보다 차가 바글바글한 코믹북 스토어 뒤쪽 주차장에 차를 대며, 나는 다른 세 사람과 마찬가지로 약간의 고양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할로윈 파티라.’
전생의 대학교 시절에 즐기기는 했다만, 아무래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때는 말로만 할로윈 파티였지, 실제로는 그냥 대충 이유를 대고 대충 웃긴 복장을 준비해서 벌인 술판에 불과했다. 다들 만취한 나머지 예정되었던 행사는 제대로 진행조차 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자 기숙사 방에서 숙취에 시달리면서 깼다. 그리고 그날 내가 입고 있던 디텍티브 램 복장은 완전히 넝마 조각이 되어 침대 위를 뒹굴고 있었다.
뭐, 싸구려 재질로 구색만 맞춘 거라, 술기운에 벗다가 찢어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당장 여기 모인 모두가 코스튬플레이에 진심일 테니까.’
차에서 내린 뒤, 우리 네 사람은 가볍게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준비됐어, 퓨리?”
“물론이지, 팝.”
와. 이거 되게 유치한데, 되게 재미있다.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스타 체이서의 옆에 서는 시푸. 그리고 내 옆에는 소다팝이.
우리는 하나로 뭉쳐서 주차장을 가로질러 코믹북 스토어 정문으로 나아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게 앞 인도까지 점거한 코스튬 차림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몇몇이 ‘Kung-fury’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분장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도 느끼는 것이겠지.
두피 킹스턴의 엄청난 재봉 솜씨가······!
“······머쓱하군.”
나는 괜히 뺨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너드들의 할로윈 파티에서 코스튬을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는, 다시 말해 권력이었다. 인종적으로도 완벽(?)하게 매칭되고, 코스튬 자체의 퀄리티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우리 네 사람은 삽시간에 주목받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를 당당히 헤치고 나아가, 코믹북 스토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당연히 그 남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는 또 한 명의 쿵-퓨리였다.
“미, 미쳤군!”
사회적으로는 ‘빌’이라 통용되는 남자가 우리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채 소리쳤다.
그에 옆에 있던 각양각색의 코스튬 차림을 한 사내들도 이쪽을 돌아보았고, 쿵-퓨리, 소다팝, 스타 체이서, 시푸라는 완벽한 조합에 반쯤 감격하며 삽시간에 가까이 다가왔다.
“와, 진짜 너무 멋지잖아!”
“코스튬, 어떻게 제작한 거야?!”
“이따가 같이 사진 한 방 찍자고!”
쿵-퓨리, 쿵-퓨리, 다시 쿵-퓨리.
캐릭터 네임으로 그들을 칭하려니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나는 머릿속에서 하나하나의 사회적 이름과 쿵-퓨리를 조합했다.
프레드-퓨리, 마이클-퓨리, 키튼-퓨리?
어라, 사장님도 코스튬을 입으실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근데, 보통 이런 행사 때는 자기들끼리 적당히 무슨 코스튬을 입고서 올지 대화 나누지 않나?
“왜 죄다 쿵-퓨리죠?”
“올해 가장 뜨거웠던 코믹스였으니까! 보라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친 빌-퓨리의 말에 다시금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인원들이 ‘Kung-fury’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쿵-퓨리만이 아니었다. 스타 체이서와 소다팝, 그리고 제로도 많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잠깐 어안이 벙벙해져 있자, 키튼이 입을 열었다.
“쿵-퓨리가 우리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의 효자 상품이었지.”
“이야~ 제로하고 쿵-퓨리 중에 뭘 할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역시 마지막까지 소설을 보고 나니까 쿵-퓨리가 좀 더 끌리더라고!!”
“그리고 솔직히, 만들기 쉽기도 하고?”
“······그, 정말 놀랍네요.”
너무 기뻐서일까. 오히려 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곳곳에서 코믹북 스토어의 너드 가이들이 제각각 작은 판을 벌리고 다양한 파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찌 같은 게임류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티 속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나는 가슴 벅찬 감격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는 그 누구보다 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들도 함께했다. 바로 두피와 알렉사, 지우라는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진짜 멋지네요.”
“그러게. 다들 쿵-퓨리 옷을 입고 있어.”
“내 계산에 의하면 이곳에서 닌-제로는 절대 쿵-퓨리를 이길 수 없겠군.”
가까이 다가온 세 사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로.”
이게 할로윈 파티인지 쿵-퓨리 파티인지 모를 정도였다.
***
시간은 흘러 오후 7시.
마침내 본격적인 파티 행사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첫 번째 게임은······.]코믹북 쿵푸 마스터, 빌-퓨리가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게임을 진행했다.
[퀴즈 게임!!] [Waaaaaaaaaaaaaaaaagggghhhh-!!]코믹북 스토어 안팎으로 모인 사람들의 환호가 빗발치는 가운데, 우리 네 사람은 음료를 손에 든 채로 뒤쪽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는 힌트를 듣고 어떤 캐릭터인지 맞추면 되는 게임.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오늘 이 코믹북 스토어에서 가장 많은 코스튬이 있는 캐릭터는?!] [쿵-퓨리!!]다들 깔깔 웃으며 한목소리로 연습 문제를 맞췄다.
우와, 이거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는군.
[뭐, 이런 식입니다! 그럼 진행하겠습니다!!]그러자 프레드-퓨리가 옆에서 그림을 하나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어떤 캐릭터의 실루엣을 드러낸 그림.
알렉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걸로 뭘 맞추라는······.”
안경이 스윽- 스윽- 올라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이내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네! 거기 헐크 호건 분장하신 분!]“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슈 #67에 나오는, 메이 숙모를 구하는 피터.”
“······잉?”
알렉사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리고 빌-퓨리가 대답했다.
[정답입니다!!]환호성과 함께 분함의 혓소리가 빗발쳤다.
“······아니, 저 정도면 스파이더맨이 스토킹으로 고소해도 별 수 없는 수준 아님?”
“호오.”
“오호.”
하지만 당황하는 그녀와 다르게 두피와 나는 제각각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방금 헐크 호건은 우리의 안에 있는 너드-부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문제.
프레드-퓨리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한순간 재생시켰다.
빠밤-!
그리고 바로 껐다!
[자, 이 테마 음악은!]“뭐, 뭘 들은 거야? 지우, 들었어?”
“어어,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
스윽-.
“1966년 배트맨 텔레비전 드라마, 4초에서 5초 사이.”
[Uooooooooooooooooohhhh!!]이 몸 등장.
“제기랄, 왜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지!”
“나는 배트맨 팬 자격이 없어!!”
“······아니, 고작 그런 걸로?”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리는 너드 가이들을 바라보며 알렉사가 당황해했다.
그리고 그 말에 핏발 선 눈으로 돌아본 몇몇 너드 가이들은, 뭐라 한소리 하려는 듯하다가 소다팝 코스튬을 한 그녀를 보고 삽시간에 굳어지고 말았다.
“소다팝이다······!”
“어, 엄청난 미인······!”
“······뭐야?”
하지만 그녀가 아주 약간, 블랙 맘바의 기운을 뿜어내자 금세 움츠러들었다.
······미스터 플레어의 엽총이 없이도 코믹북 스토어의 순수한 너드 가이들은 알렉사의 블랙 맘바 포스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반면, 오히려 인기가 있는 건 시푸 캐릭터로 분장한 우리 파티의 마스코트, 지우였다.
급히 시선을 돌렸던 너드 가이들이 흐뭇하고도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퀴즈 대회.
[엔딩까지 디피스트 던전에서 사망한 캐릭터는 총 몇 명일까요!]다들 숫자를 세어 나갔다.
하지만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희대의 카우보이, 두피 킹스턴이었다!
“187명.”
[저, 정답!]“Frrrrrrrrrrrr······.”
두피 킹스턴 너무 강하다아앗-!
[‘About T’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About T : Final’에서, 주인공 토니와 앨리스가 마지막에 나눈 대화를 재현해 주세요!]“······?”
“어······.”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심지어는 작가인 나까지도.
하지만 다들 뭐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용기 있게 손을 든 이가 존재했다.
바로 알렉사 ‘Actress’ 플레어였다.
[거기, 소다팝!]“고마워. 너와 만날 수 있어서!”
[땡!!]“으아, 아깝다! 조금만 더 했으면 됐는데!!”
아니, 그건 대화가 아닌데요······.
‘About T’ 시리즈의 최종작 ‘About T : Final’에서는, 토니와 앨리스가 각자의 고난을 겪은 끝에 다시 만나 서로의 소중함은 결핍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조차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아주 중요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것을 쓴 당사자인 나도, 쓴 지 꽤나 오래돼서 드문드문 기억날 뿐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내가 끼어들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누구 없으신가요?!]웅성거리는 코믹북 스토어 안에서 안경을 들썩이기만 할 뿐 그 누구도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소란의 틈새로 입을 열었다.
“너와 만날 수 있어서 기뻤어.”
스토어 바깥에서부터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오는 누군가는 바로······.
“케이트 무어?!”
대학생 시절 앨리스 분장을 한 케이트가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앨리스-케이트는 ‘About T : TV series’의 배우들보다 더 명확한 목소리로, 무척 빠르게 대사를 쳐 나갔다.
“나도그래우리의만남은정말로특별했지우리가그걸특별하게만들었어토니앨리스너는나의가장소중한부분이되었고어느새잃어버리면아픈부분이되었지하지만인제와서야똑바로말할수있게되었어나는그결핍마저도사랑한다는사실을말이야너를사랑한다는건너와함께하는슬픈기억까지도사랑할수있어야한다는거야누군가가그랬어사랑은느린이별이래그리고그런처연함을천천히받아들이는거라고도했지맞아토니앨리스너와함께계속해서아픔을느끼고싶어이세상에서오직너만이나를아프게할수있었으면좋겠어나도그래나를더아프게해줘토니내가살아있다는걸느낄수있도록.”
“······.”
“······.”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도 이야기해야 할까요?”
······어쩌면 ‘About T’ 시리즈의 작가는 내가 아니라 쟤가 아닐까?
[저, 정답.]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손에 쥐고 있던 소설과 케이트 무어가 친 대사 하나하나를 비교해 가며 경악하던 빌이 뒤늦게 정답을 선언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케, 케이트 무어 너무 무섭다아아앗······!
***
그렇게 첫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다음 이벤트가 시작되기까지 쉬는 시간 동안 삼삼오오 모여서 음료와 다과를 즐기며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알렉사와 함께 혼자 구석에 서 있던 케이트 무어에게 다가갔다.
“안녕~! 케이트!”
“안녕, 소다팝.”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한 그녀가 커피를 홀짝였다.
“오랜만이네. 저기 쿵-퓨리는 종종 만나지만.”
“대학 생활은 좀 어때?”
“나쁘지 않아. 너는 배우 일 하는 거 좀 어때?”
“열심히 하는 중이야! 얼굴 봐서 정말 반갑다~!”
“그러게. 갑자기 두피한테서 파티 초대를 받았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응응! 옷도 정말 잘 어울려!!”
“······그래?”
가볍게 한 바퀴 도는 앨리스.
소다팝의 눈이 빛났다.
“진짜! 완전 예뻐!”
“고마워. 어때, 쿵-퓨리. 네가 보기에도 그래?”
“뭐, 잘 어울리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견원지간에 가까웠던 케이트 무어가 좌중을 휩쓸면서 나타나, 내가 썼지만 나도 가물가물했던 ‘About T : Final’의 대사를 완벽하게 읊다니.
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두피가 초대했다고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어머, 난 이런 곳에 오면 안 된다는 듯이 말하네?”
“그건 아니고. 보기 좋아서 그렇지.”
“뭐, 누구 소설 때문이지. ‘About T’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작가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이군.”
내 소설이 누군가를 변화시켰다.
누군가의 세계 속에 색다른 흐름을 가져왔다.
그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이 자리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우리 사진 한번 찍자.”
“갑자기?”
“그래. 나중에 한 20년쯤 뒤에 보면 정말 재밌을 거야. 두피! 지우!”
나는 멀리서 매대 위의 코믹스를 가리키며 토론하던 두피와 지우를 향해 손짓했다.
“같이 찍자!”
사진사는 빌-퓨리에게 부탁했고, 신-퓨리, 두피 체이서, 알렉팝, 지푸, 앨리트가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다.
찰칵!
일반적으로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촬영하는 사진.
그렇게 한 장에 한 장, 또 다른 한 장을 남기면서 나는 오늘 이 멋진 할로윈 파티를 최대한 남기고자 했다.
‘환상적이군.’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의 나도 이런 식으로 추억을 남기고자 사진을 여럿 찍었다. 그리고 그때 남기고자 했던 ‘과거’의 일은, 새롭게 삶이 되풀이되면서 다른 기억으로 덧씌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마치 심리 치료를 받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남는 이 기억은 절대로 가짜가 아니었다.
그 후 몇 개의 행사가 더 진행된 다음, 마지막으로 오늘 최고의 코스튬을 투표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지금껏 몸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고, 또 우리가 입을 복장을 위해 헌신했던 두피의 스타 체이서에 한 표를 던지고 물러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렉사가 더 많은 시선을 받지 않기를 바랐던 터라.
“오빠, 여기요!”
“신, 투표 잘 했어?”
“후후, 당연히 이 몸에게 투표했겠지.”
조금 색다른 하루. 그럼에도 똑같은 일상.
다들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는 가운데, 오늘의 일들을 돌이키면서 나는 작디작은, 하지만 다음으로 나아가게 할 아이디어 하나를 붙잡았다.
“······하하.”
다음에 쓸 신작의 실마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