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39)
239.
줄리아 챈들러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불을 켜지 않은 집 안은 고요한 분위기였다.
“후우.”
오늘은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입안이 바싹 마른 것 같았다. 분명 물을 많이 마셨는데도.
그럴 때면 딱히 입맛도 없었다. 기사 초안 작성이다 뭐다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건만, 딱히 식사를 차리고 싶지도 않아 일단은 샤워부터 했다. 뜨거운 물을 맞으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욕실 바깥에서 머리를 말리고 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비척비척 움직였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작은 아파트.
줄리아가 이곳에 사는 이유는, 감정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미련이다 싶을 정도로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충분한 돈을 벌었음에도 굳이 넓은 곳으로 이사 가지 않고 회사와 가까운 이 아파트에서 계속 월세를 내면서 지내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자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음.”
마시다 남은 싸구려 와인을 꺼냈다. 쥐조차 안 먹을 것 같은 마른 치즈도 같이.
거실로 나온 그녀는 소파 옆 협탁에 와인과 치즈를 두고 앉았다. 잔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일어서서 다시 부엌으로 직행. 싱크대에 놓인 와인글라스를 대충 씻은 뒤 물기를 털며 소파로 돌아오다가, 식탁에 둔 가방 안에서 잡지를 한 권 꺼내 들었다.
오늘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에서 챙겨 온 펄프 픽션 잡지, ‘레전더리 스토리즈’였다.
‘네바다 주에서 발매되는 잡지라고 했던가?’
여기에 신 작가의 문제적 단편 소설이 실렸다는 모양이었다.
잔에 와인을 적당히 따라 한 모금 마신 다음, 줄리아는 마법사 옷을 입은 구울 같은 모습의 사내가 스켈레톤과 싸우는 표지를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에 실린 신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의식한 표지였다. 들은 내용보다 과장되고 화려한 색채로 그렸지만 말이다.
표지에 삽입된 ‘휴고상, 네뷸러상 동시 수상 작가 SEEN의 단편 수록!’이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레전더리 스토리즈’라는 이름을 그동안 들어본 기억이 딱히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무래도 그다지 큰 잡지사는 아닌 듯했다.
하지만 편견일 수도 있는 법.
그리고 그런 잡지라 하더라도 좋은 작품이 실리기도 하는 법.
줄리아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레전더리 스토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와인을 마시고, 치즈를 주섬주섬 먹어가면서.
모두 연재가 한창 진행 중인 소설이라 스토리 중간부터 읽게 되었으나, 딱히 상관은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설명문이나 한 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이 소설이 잘 쓴 소설인지 아닌지는 대충 분간이 됐으니까.
그렇게 소드 앤 소서리나 하이 판타지 계통의 장르 소설이 주로 실린 잡지를 읽어 나가면서 줄리아는 와인을 홀짝홀짝 마셨고, 이내 페이지를 촤르륵 넘겨 마지막에 도달했다.
이번 호의 객원으로서, 잡지 마지막 순서로 작품을 실은 작가, 신.
솔직히 이번의 행보는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딱히 이름난 잡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딱히 흥미로운 소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신 작가 바로 앞에 연재된, 아마도 이 잡지사에서 가장 밀어주고 있을 소설을 보다 자세히 읽어 보았지만, 별다른 특출 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왜 신 작가는 이러한 잡지에 단편 소설을 실은 것일까.
‘SEEN’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 줄리아였으나, 이내 이 세상에서 몇 알지 못하는 그녀만의 진실에 도달했다.
신 앤 사이먼은 굳이 그런 부분을 신경 쓸 이들이 결코 아니었다.
‘내 의견은, 조금 다르지만.’
이렇게 아무 잡지사에나 소설을 실어 주면 작가의 격이 떨어진다. 그 과정이 쌓이고 쌓인다면, 온갖 곳에서 원고 의뢰를 해 오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이유나 의도를 물어보자고 생각하면서, 줄리아는 신의 단편 소설, ‘Magician’s end’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노인의 삶이란 지루한 법이다. 아직 그 인생의 숙원을 채 이루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아침이 되면 나는 명상부터 시작했다. 내면에 떠도는 혼돈을 갈무리하고 마음을 정갈히 하면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문제가 부디 잘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은 나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수십 년간 이어온 연구를 계속해서 정리했다.
이곳은 용의 둥지 너머에 있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인간은 저마다의 욕심으로 인해 전쟁과 정복을 반복하고 타락해 갔으나,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일절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神)께서 내리는 사랑과도 같았다.
나는 인류를 연민했다.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과도 같은 그들을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가엾게 느꼈다.
인간은 어찌하여 헛된 욕망에 휩쓸리고 마는가.
나는 오랜 세월 고민했고, 그것은 그들이 필멸자이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드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내뿜는 드래곤이 가지지 못할 것에 집착하는 꼴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영원하기에 도리어 필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가진다. 그리하여 세계의 순환에 심대한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을 극한까지 익히면서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약간은 벗어나, 드래곤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였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약간의 물과 소금, 그리고 가끔 입과 정신을 달래기 위한 달달한 나무 열매 한 줌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런 나 자신과 드래곤의 상태에서 착안해, 불사의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나 홀로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 왔다. 그리고 말했듯, 나는 드래곤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지만, 그들처럼 영원마저 쟁취하지는 못했다. 과업이 완수되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주문을 완성할 즈음, 나는 검붉은 피를 토했다.
나는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완성된 주문을 실행할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할 수는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마력을 다 사용해 죽을 터였다.
죽은 이에게 불사의 주문을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그라지는 정신으로는 거기까지 알 길이 없었고, 나는 최후의 실험을 감행하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불사의 주문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불사에 관한 정의와 마법사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인간에 대해서 느끼는 비틀린 연민을 함께 서술하면서, 지금까지 마법사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를 표현했다.
그 부분을 읽어 나가던 줄리아는 반쯤 남았던 와인을 다 마셨음을 알아차리고는 다시 냉장고로 가서 캔 맥주를 가져왔다.
‘흥미롭네.’
뭐라고 해야 할까.
전반적으로 작품 내에 깔린 주인공의 ‘광기’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 일인칭 소설은 주인공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몰입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신의 이번 단편은 그렇지 않았다. 반대로 주인공에게 약간의 감정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줄리아는 캔 맥주를 마시면서 그 부분을 곰곰이 생각했다.
‘왜 이렇게 느끼고 있지?’
답은 금방 나왔다.
주인공의 논리 어딘가가 굉장히 허술했다.
평소 신이 쓴 글의 스타일을 생각해 보자면 다분히 의도된 바일 터였다. 마치 치매에 걸린 노인, 혹은 너무 혼자 오래 지내 정신이 나가버린 캐릭터를 묘사하기에 그러는 것일까? 아니, 그 이상의 뭔가가 분명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소설에는 시선을 붙잡고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존재했다.
사실 주인공 마법사가 읽는 입장에서 딱히 몰입할 수 없는 존재가 된 이유는, 그가 너무나도 오만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인류를 위하느니 뭐니 말은 좋았지만, 그것이 딱히 옳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에고를 채우려는 행동일 뿐이었다.
정말로 인간이 불사의 존재가 되면 모든 분쟁이 사라지는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단편을 그저 불쾌한 무언가로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읽게 되는 이유는, 소설 속에서 오랜 세월 마법사가 기울였던 노력이 모두 진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금욕하며 지내면서 불사의 마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운명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독백하며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법사가 그 주문을 정리해서 자신의 몸에 새겨 넣고 불사의 주문을 낭송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 장면에서 마법사의 광기가 담긴 독백은 정점을 찍었고, 그는 자신이 신이 되리라고 예언하면서 사망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 그는 의식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문장도 거리감을 두어 3인칭으로 전환되었다.
육체는 불사했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르륵, 그으윽······.
그저 본능과 몸에 남은 기억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불사자.
그는 비틀비틀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산과 강을 건너,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었다.
한숨도 쉬지 않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나아갈 뿐이었다.
그로 인해 육체는 서서히 풍화되었으나, 의식 없는 불사자는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자신의 주문을 후대에 전하려 하는 숭고한 의식일까.
그 이유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밝혀졌다.
마법사의 육체는 정신의 남겨진 유지를 받들어 인간이 사는 마을에 도달했다.
마법에 관한 조예를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그 몸에 새겨진 주문을 본다면, 분명히 불사의 주문을 인류에 전달하고 후대로 이끌 터였다. 그가 완성시킨 주문에 담긴 가치는 불사라는 결과물 이상으로, 인류가 향유하는 마법의 수준을 아득히 끌어 올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사의 육체가 도달한 곳이 ‘마을’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듯이, 마법사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을 경비병들이 나와 정신은 죽고 육체만 살아 움직이는 ‘구울’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더럽고 불길해 전염병의 소지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에 태워 버리고 말았다.
“······.”
정말 깔끔하다 싶을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다.
***
3학년 가을 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내가 얼마 전에 네바다 주의 ‘레전더리 스토리즈’에 연재한 ‘Magician’s end’를 읽은 펄프 픽션 클럽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각 나뉘었다.
“이게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데?”
케이트 무어는 혹평했다.
“환상적이야! 이건 정말 환상적인 소설이야! 신!”
반대로 존 스미스는 호평했다.
두 사람의 반응이 극명히 나뉘리라는 예상 정도는 당연히 했다.
하지만 평가에 대해 내가 내심 신경이 쓰였던 사람은, 이제는 ‘장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깊이 이해하게 된 레베카 웡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범한 잡지사에서 연재할 만한 글은 아니지 않아?”
“그렇긴 하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원고를 보내면서 만약 별로라면 튕기셔도 된다고 말했는데, 레전더리 스토리 측에서는 뭐든 좋다면서 굽신굽신 받아 갔다. 그리고 아마도 펄프 픽션을 읽는 마니아라면, 이런 소설도 즐겁게 보고서 나름대로 작품 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생각할 터였다.
레베카의 의견도 나와 일치했다.
“대중은 몰라도 마니아들은 굉장히 좋아하겠네. 기존 소드 앤 소서리의 클리셰를 완전히 비틀었잖아.”
“그런가?”
“어머, 그렇게 하려고 쓴 거 아니었어?”
“그냥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니 이렇게 된 건데.”
나는 이 ‘Magician’s end’를 쓸 때의 감각을 떠올렸다.
내가 아무리 깊은 고민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나름의 답을 내리더라도,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차피 괜한 고민이겠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소설을 집필할 때 전반부를 후반부의 허무한 감정을 돋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내가 아무리 깊은 고민을 해도 타인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마법사의 사연을 알게 된 독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
그러니 레베카의 추측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클리셰 비틀기가 맞기는 하지.”
보통 이런 작품에 등장하는 ‘마법사’, 그것도 ‘대현자’ 급의 캐릭터는 무척이나 온화하고 진중하며, 평범한 인간이 알 수 없는 답을 내리는 존재로 묘사되니까.
물론, 간달프가 존재하면 사루만 역시 존재하듯이, 악의 마법사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단편의 주인공이 딱히 악의 마법사까지는 아닌 거 같고. 그냥······ 좀 오만한 노친네? 아, 궁금한 게 있었는데. 주인공 이름은 뭐야?”
“안 정했는데.”
“정해야지.”
“뭐, 단편 소설에서 굳이. 정 그러면 헐크 호건이라고 부르던가.”
“헐크 호건은 굉장히 장르의 규격에서 벗어난 형태의 마법사로 묘사되잖아.”
진짜 헐크 호건이라고 부르기냐.
미안합니다. 호건 씨. 잠깐 실례 좀 할게요.
“그렇지?”
“그게 마음에 들었어. 역시 나는 단편이 좋아.”
“고맙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장르의 재미 범주를 완전히 뒤틀었잖아. 이게 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장르로서는 인정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후후, 장르 소설의 팬들이라면 다른 생각을 품을걸?”
중간에 끼어든 케이트에게 자동으로 반박해 주는 존.
“그 사람들은 워낙 많은 소설을 읽으니까 이런 종류의 작품에 더 재미를 느끼기도 하거든. 나도 그렇고.”
“굳이 따지자면, 이 정도는 영원불멸에 가까운 삶을 산 마법사가 좀 미치는 클리셰에 가깝다고나 해야 할까.”
“으엑, 나는 그냥 평범한 소설에 만족할래······.”
그런 식으로 세 사람 사이에서 도란도란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클리셰 비틀기라.’
레전더리 스토리즈에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소설에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클리셰 비틀기가 나쁘다는 생각도, 각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부정할 생각도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쓰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필터링 없이 감정을 배설한 느낌이란 말이지.’
장편을 쓸 때는 사용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었다.
‘Magician’s end’의 허무한 결말은 작품의 주제 의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의도된 바였으나, 나는 장르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독자가 기대하는 바를 차근차근 쌓아올려 터뜨리는’ 형태의 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을 읽었는데, 이런 허망한 결말이 나온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업계의 전설로 남겠지.’
그렇기에 내가 쓸 다음 작품은, 절대 이런 결말로 갈 생각은 없었다.
단편 ‘Magician’s end’는 신작에 앞선 하나의 실험작. 그러니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이제 대충 가닥을 잡았으니, 한번 본격적으로 구상해 볼까.’
그 장르는 바로 하드보일드 범죄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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