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41)
241.
이제는 흔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Hard-boiled’라는 단어는 원래 ‘(계란이) 완숙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였다.
이후 하드보일드라 일컫는 작품들이 폭력이나 범죄, 잔혹한 비극 같은 사건을 사견을 절제한 채 묘사하는 건조한 문체를 가졌다는 특징으로 인해, 그 단어에 ‘비정’, ‘냉혹’ 같은 문학적인 의미가 추가된 것이었다.
추리 소설의 한 갈래로 시작된 하드보일드는, 사실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일종의 소설 스타일을 의미했다.
그 시작은 1920년 창간된 펄프 픽션 잡지 ‘블랙 마스크’에서였다고 하며, ‘레이스 윌리엄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작가 ‘캐럴 존 데일리’와, 블랙 마스크에 자주 연재하던 작가 ‘대실 해밋’이 선구자이자 스타일의 확립자로 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대실 해밋은 자신의 개인사로 인해 작가로서 크게 대성하지는 못했고, 그 후 그 유명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바통을 이어받아 하드보일드라는 스타일을 크게 유행시켰다.
특히나 레이먼드 챈들러는 할리우드에 일찌감치 진출해 특유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대공황 이후에 2차 세계 대전까지 겹치면서 안 그래도 살기 팍팍했던 시기에, 냉혹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이 소설을 찾고 하면서, 하드보일드는 점차 미국 내에서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하드보일드를 달리 보자면, 미국인이라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배드애스’한 풍미가 잔뜩 끼얹어진 스타일이라 할 수 있으니까.’
이 스타일은 이후로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며, 때로는 ‘이건 하드보일드가 아닌데?’ 싶은 부류의 소설도 많이 나왔다.
‘마이크 해머’ 시리즈라든가, 아니면 ‘론 다트 형사’ 시리즈라든가.
특히 ‘론 다트 형사’는 전자로 언급한 미친 캐릭터인 ‘마이크 해머’ 이상으로 잔혹해서, 국가에서 사이코패스가 권총을 쥐도록 허락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비난을 받았을 정도였다.
‘좀 심하긴 했지.’
마이크 해머는 그래도 여자는 안 때렸는데(대신 총으로 쏴서 죽이긴 한다), 론 다트 형사는 줘 패는 것을 넘어 사건 현장에 있는 모든 수상한 사람을 쏴 죽이는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멋진 개자식이라며 칭찬받았다. 작중 세계관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인사 대신 총을 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위대한 소설가이자 어마어마한 독설가였던 레이먼드 챈들러 선생님께서는 그 두 소설을 두고 ‘이건 하드보일드가 아니다.’라면서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의견에 동의한다.
하드보일드는 기본적으로 베이스에 ‘무미건조함’이라는 감정적, 행동적 코드를 깔고 가야 했다.
어떤 큰 사건이 벌어져도 무미건조.
누가 죽어도 무미건조(특히 주인공은 더더욱).
뭔가 기쁜 일이 있어도 무미건조.
마치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듯한 인간들의 향연.
예를 들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녀는 계속 출혈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멎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캐서린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었다. 그녀는 줄곧 의식이 없었고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아내가 사산으로 죽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묘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독자들은 지문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가 처한 상황과 비롯된 감정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과격하고 자극적이며 피와 광기에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 푹 완숙된 노른자처럼 건조하고 퍽퍽한 문체.
어쩌면 그 스타일 자체는 추리 소설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외적인 요소를 통해 진상을 맞추는, 추리와 증거를 통해 범행이라는 행동과 동기라는 감정을 유추하는 형태의 작품 말이다.
한편, 이 스타일에서는 공통적으로 진한 남성미를 풍기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남자들이란 게 그렇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 주기 좋아하니까.
하지만 행동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반대로 억압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남자라면 묵묵히 책임져야 한다.’, ‘쓸데없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같은 구시대에서부터 비롯된 사회적 통념들에게 말이다.
그와 비슷하게, 전생의 나는 계속해서 자신을 억누르고 대의적으로 올바른 길을 추구하며 살고자 노력했다.
바로, ‘어머니의 좋은 아들’로서.
내가 왜 일찍 철이 들었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혼자 남은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그것을 알고 어느 순간부터 내게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항상 말했으나, 나는 결국 당신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기에 초창기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고, 시간이 흘러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어른으로 성장했으니까.
사실, 어른이란 존재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에 섞여서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고, 체현하며 살아가는 존재.’
왜냐면, 대부분의 인간은 약자니까.
그렇기에 모든 문제에 무덤덤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에 모두가 열광하는 게 아닐까.
차가운 현실을 알고 거기에 걸쳐 있지만, 끝내 자신의 힘으로 그걸 극복하니까.
물론, 내가 그런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꿈같은 말랑말랑 시간을 살고 있지.’
차갑고 팍팍한 현실이 아닌, 따뜻하고 훈훈한 현재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데에 전생의 내가 쌓아 올린 ‘힘’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지금의 나는 이미 숱한 경험을 가진 어른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고, 많은 문제가 닥쳐와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했다. 또한 그로써 경제적 여유로움까지 마련하였다.
하지만 그것들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꿈처럼 여기던 삶을 살아갈 때였다.
가족과, 친구들과, 지인들과, 소중한 알렉사와 감정을 교류하고 때때로 실없는 이야기 나누면서 자신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신 한이, 결코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과거로 돌아와 다시 맞닥뜨린 이들과 함께하면서 치유 받을 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른인 나 자신이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지.’
어른인 나는 아이인 나를 지키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인 내가 존재하기에 어른인 내가 행복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면모를 확실히 인지하고 각각의 캐릭터로 분리한 채, 나는 ‘Nightmare of bitters’를 기획하고 써나갔다.
어른으로서의 나는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잭 비터스’를 만드는 데 사용했고, 아이로서의 나는 그 옆의 소녀 캐릭터를 통해서 억압된 순수로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전생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났을 때를 과장해서 표현한 기록이었다.
“흠.”
줄리아와의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팩스로 ‘Nightmare of bitters’의 기획서와 초반부 원고를 보내기 앞서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는 과정을 거쳤다.
‘어떻게 생각하려나.’
스스로는 마음에 들었지만, 과연 줄리아의 반응이 어떨지 기대가 됐다.
***
줄리아 챈들러는 병에 든 짐 빔 위스키를 얼음을 채운 머그컵에 대충 따랐다.
향을 음미할 생각은 없어 적당히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그녀는 신 작가로부터 전해 받은 ‘Nightmare of bitters’의 기획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음울한 재즈 음악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데이브 브루벡의 ‘Fujiyama’ 같은.
배경은 뉴욕.
화려함과 비루함이 공존하는 도시.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고, 없는 자는 더 곤궁해져 가는 시대, 1972년.
‘잭 비터스’는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고 은퇴한 전직 형사로, 슬럼가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해결사 일을 통해 하루하루 먹고 살았다.
행복도 불행도,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죽은 아내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다.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전소된 아파트에서 새까맣게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잭은 그 범인을 찾아 적법한 절차 없이 직접 총으로 쏴 죽였다. 다행히 범인도 총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사건은 그가 옷을 벗는 정도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잭은 한낱 마약중독자에 불과했던 범인의 뒤에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리라 여기고, 집착에 가까운 감정으로 혼자만의 수사를 이어 갔다.
그런 가운데, 한 소녀가 나타나 그에게 요청한다.
[살려주세요. 누군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잭 비터스는 담담히 말한다.
[경찰에게 가라.]그는 비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위험 속에서 무법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지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어느덧 몸에 익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죽이려고 한다면 경찰에 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곳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 된다.
하지만 잭의 무뚝뚝한 답변에 소녀는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흥미롭네. 장르의 특성을 확실히 살렸어.’
기획서의 내용을 계속 읽어나가는 줄리아.
결국 잭은 막무가내인 소녀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지내도록 허락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신만의 고독한 수사를 계속 이어 나갔다.
한때 동료 형사였던 제임스, 슬럼가에서 잭에게 의뢰를 맡기는 브로커 도미닉에게 도움을 받거나 반대로 추궁하거나 하면서.
마약으로 인해 붕괴해 가는 미국을 묘사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그런 가운데에서 잭은, 소녀의 존재로 조금씩 잃어 버렸던 순수를 되찾아 간다.
‘흐음······.’
기획서의 내용은 거기까지.
설명 받았던 것보다 조금 더 디테일이 추가되었다.
이어서 함께 첨부된 초반부의 원고를 읽어 나가면서 줄리아는 계속 위스키를 홀짝였다.
『이 도시에는 화려함과 비루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한쪽 면만을 보고 자신이 뉴욕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뉴욕은 모든 것이 뒤섞여서 공장 폐수처럼 오염된 도시였다. 대체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나는 매연 가득한 거리 너머로 하늘에 말뚝을 박듯 치솟은 공장 굴뚝을 보았다. 그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와 업무라는 족쇄에 묶인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
나는 태양 밑을 걷는 이들을 피해 음영이 깔린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치솟은 건물 사이에 생긴 협소한 샛길. 자신의 영역을 어떻게든 확장하려는 인간들이 걸쳐둔 빨랫줄의 빨래와 에어컨 실외기, 안테나 따위가 더 짙은 그림자를 흘렸다.
그곳에는 함부로 태양 밑을 걷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법이었다. 술과 마약에 취해 잡목더미에 불을 피우고 낄낄거리는 노숙자들이 벌레처럼 느글댔다. 불에 머리카락을 그슬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머저리들.
나는 고개를 뻣뻣이 든 채 그들 사이로 걸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터스에 설탕을 좀 섞어서 줄 수 있나.”
그것은 암호였다. 방금까지 내 존재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던 노숙자들은 그 말을 듣고 기계처럼 삐걱삐걱 돌아보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나는 더 이상 말 걸지 않았다.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수염 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올 만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얼굴도 멀끔하고, 코트까지 빼입은 양반이 이곳은 왜?”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빼 물고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흠, 그야 그렇지.”
노숙자들이 피워 둔 불 위에 재와 물을 덮어 끄고는 옆으로 밀어냈다. 그 아래에서 맨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숙자들, 아니, 그런 모습으로 위장한 가드들은 친절하게도 맨홀 뚜껑을 손수 들어서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가시지.”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맨홀 밑으로 내려갔다. 도시의 찌꺼기에서 풍겨 오는 악취는 담배 냄새로도 지워낼 수가 없었다. 어둑한 하수도 밑바닥에 착지한 후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따라 가까이 다가갔다.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남자가 날 보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왔지?”
“파이트 클럽 참가.”
“암호를 틀렸군.”
“두 번째 암호가 있다라.”
“그래. 두 번째 암호를 대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해.”
“그렇군.”
나는 남자의 코를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통쾌한 소리가 뼈를 타고 전신을 울렸다. 코를 제대로 부러뜨렸다. 순간 허리를 굽히며 물러선 사내가 얼굴을 움켜쥐었고, 두툼한 손가락 사이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게 내 암호였다.
“이제 지나가도 되겠나?”
사내는 말없이 옆으로 비켜섰다.
두 번째 암호는 달러 지폐를 건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답도 존재했다.』
“휘유.”
줄리아는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어둠. 그보다 더 깊은 심연 같은 곳으로 내려가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상황을 처리하는 주인공.
순도 100%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장르 소설로서 여타 장르적 요소를 넣은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담백하고 간결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파이트 클럽에 입장해 돈을 걸고 싸우던 주인공은, 이윽고 그곳에서 발견한 마약 운반책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초반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긴 미완의 원고를 읽고서, 줄리아는 참으로 훌륭한 하드보일드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갈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기획서에서 확인한, ‘순수’를 상징하는 소녀의 존재.
그 소설적 장치는 과연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부합하는가?
***
‘Nightmare of bitters’의 기획서와 초반부 원고를 보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줄리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저희 한잔하면서 이야기할까요?]하드보일드 소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만큼, 사무실이나 카페보다는 바가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약속한 저녁 시간에 맞춰 그녀가 지정한 바로 향했다.
로스앤젤레스 시청 근처에 있는 작은 바.
바 테이블이 길게 늘어서 있고 온갖 술병이 조명에 반사되어서 빛났다. 194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온갖 올드한 소품 가운데에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 흑인 바텐더가 가만히 서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나는 바의 유일한 손님인 줄리아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오셨어요?”
칵테일을 한 모금 느낀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인사했다.
“올드 패션드네요.”
“아, 네. 갑자기 마시고 싶어져서.”
그녀는 온더락 글라스에 얼음과 함께 담긴 석양빛의 액체를 가볍게 흔들었다. 가니쉬로 들어간 체리와 오렌지가 마치 바다 위를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찰랑였다.
올드 패션드.
‘옛날 방식’이라는 칵테일의 기원은 설명하기 복잡하니 넘어가고, 그녀가 왜 그 술을 마시고 싶어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올드 패션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로 일종의 칵테일 농축액인 앙고스투라 ‘비터스’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술에 씁쓸한 향미를 내는데 사용되는 앙고스투라 비터스.
나 역시 같은 것으로 주문했고, 이윽고 줄리아가 입을 열었다.
“의도된 거죠?”
“그렇죠.”
‘Jack Bitters’의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기획서하고 소설, 둘 모두 잘 봤어요. 일단 초반부까지는 나무랄 점이 없다고 느꼈는데,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
“아무래도 소녀의 존재가 영 이해가 안 되서 말이죠.”
“어떤 의미에서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남자와 소녀라. 나름대로 잘 먹히는 소재라고 생각은 하는데, 하드보일드 스타일에는 조금 불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올드 패션드가 내어져 오고 그걸 받아서 한 모금 마시자 정취가 느껴졌다.
‘줄리아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는 이 소설을 기획할 때, 어떤 한 작품을 의식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0년쯤 뒤에 나올 뤽 베송 감독의 명작 영화, ‘레옹’이었다.
하지만 소재는 비슷해도, 내 소설과 레옹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레옹이 자신 안에 있던 자각하지 못한 순수를 마틸다라고 하는 존재를 통해서 깨달으며 행복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번 신작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줄리아에게 설명했다.
‘레옹’에 대한 것은 당연히 말할 수 없었기에, 나는 마치 소녀가 남자의 안에 순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야기처럼 이 ‘Nightmare of Bitters’를 소개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Nightmare’라는 제목을 썼겠는가.
“확실히 소녀의 순수라는 건 하드보일드 스타일에는 잘 어울리지 않죠.”
“역시, 뭔가 의도한 바가 있군요.”
지금 줄리아가 느끼는 의문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감정이 될 터였다.
처음에는 하드보일드하던 소설은 잭이 소녀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면서 그 색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물론, 의도된 바였다. 나는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가 조금이나마 잭에게 몰입했으면 했다. 그의 삶에 찾아온 작은 행복을 같이 기뻐해 줬으면 했다.
“그렇게 해야, 이후에 나올 비정함이 더 돋보일 것 같거든요.”
내 설명을 들은 줄리아가 말없이 올드 패션드를 한 모금 마셨다.
확실히 이 술이 갖는 특유의 씁쓸한 풍미는 그 어디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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