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43)
243.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명작 영화, ‘The Godfather’ 시리즈는 3편까지 제작이 되었다.
‘아직은 다 안 나왔지만.’
1편이 1972년, 2편이 1974년에 나왔고, 3편은 1990년에 개봉하니까.
일반적인 3부작 시리즈 영화가 그렇듯 시작의 1편, 최고의 2편, 모호한 3편으로 끝을 맺은 영화 ‘대부’는,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가 신변에 닥쳐온 여러 위기를 이겨내고자 자신이 가장 잘하는 ‘마피아’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암살과 협박, 회유.
다시 말해 ‘비정’하기 짝이 없는 짓을 통해서.
위기는 잘 해결되는 듯했고, ‘The Godfather Part III’의 마지막 장면.
가족과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간 마이클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며 공연장을 나서고 천천히 극장 계단을 내려온다. 그가 개입해 망친 사랑 때문에 딸인 메리가 화를 낸다.
바로 그때였다.
마이클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미뤄 두었던, 혹은 무시했었던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 갑자기 히트맨이 나타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딸인 메리는 눈먼 총알에 맞아 사망한다.
그의 순수를 상징하는 딸, 메리의 죽음.
마이클은 ‘어린아이’처럼 절규한다.
지금껏 미뤄뒀던 순수가 터져 나왔다.
인간이 어찌 비정할 수만 있겠는가.
‘엄청난 장면이었지.’
······흠,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할 생각은 아니었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소설가였고, 여러 이야기에 내재된 디테일을 간파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쓰기 위해 기억해 두는 인간이었다.
기본적으로 통찰력이 깊어야 하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멋쟁이들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하드보일드하다고 볼 수 있지.’
담배가 피우고 싶은 밤이었다. 피워 본 적은 없었지만.
“신.”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형의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의 오랜 친우, 두푸스 재비어 킹스턴이었다.
“왔군. 두푸스.”
“Frrrr······. 멋진 정장 차림이로군.”
“그래, 폴 스튜어트 사의 정장이지. 마음에 들어.”
“후우, 하지만. 그 옷보다 네가 더 빛나는군. 가품을 걸쳤다 해도 명품이라 믿겠어.”
“후후, 그렇지 않아. 두푸스. 이 풜 스듀어르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나는 일부러 발음을 굴렸다. 사실 이거, 폴 스튜어트도 아니다. 아무튼 대충 장난치는 것뿐이고, 두피도 당연히 알고서 받아치는 것이었다.
자고로 소년이란 정장을 빼입으면 이렇게 서로 장난치면서 놀아줘야 하는 법.
“그렇군. 한 수 배웠다.”
“나야말로.”
우리는 마음으로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둘이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팝콘을 사러 갔던 지우가 때마침 돌아 왔다.
“왔군. 지우.”
“아, 안녕. 두피. 정장 멋지네요.”
“너의 니트 셔츠도 잘 어울리는군.”
“근데 둘이 연극 끝나고 교회라도 가요? 웬 정장을.”
““알렉사의 공연이니까.””
우리 둘이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하자 햄스터가 시무룩해졌다.
“그, 그렇게 되면 편하게 입고 온 제가 뭐가 돼요오.”
“어린아이는 그렇게 해도 돼. 그렇지, 신?”
“아아, 그대로 순수의 상징으로 남아 줘. 지우.”
“······두 사람, 술 마셨어요?”
지우는 이상한 것을 보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연극 공연이라는 ‘어른의 취미’를 즐기기에 앞서 복장도, 마음가짐도 보다 본격적으로 해 본 우리인 것을. 아무래도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드문드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저녁 시간대에 한가롭게 나온 사람들은 나나 두피와는 달리, 대부분 편한 차림이었다.
‘후, 멋모르는 사람들.’
······의식하니까 조금 어색해졌다.
잠시 후 우리는 좌석을 찾아가 앉았고,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창작 연극, ‘청소는 너무 어려워’.
부모님이 잠깐 집안을 비운 사이에 세 명의 남매가 온갖 사고를 치게 되고, 첫째이자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미셸의 주도 아래에 다 함께 엉망이 된 집을 치운다는 내용.
그러는 와중 집안 곳곳을 둘러본 그들이 망상(?)으로 부모님을 오해하며 온갖 코믹한 상황이 벌어진다.
알렉사의 역할은 첫째이자, 세 남매 중에서 그나마 상식적인 미셸이었다.
작품의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으나, 약간 불량한 둘째 바이올렛과 너드인 셋째 다니엘에 비하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며, 상식인 포지션으로써 정신이 살짝 나간 듯한 두 동생 사이에서 고통 받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다니엘! 지금 뭐하는 거야?!”
“아, 누나. 지금 모드 장군과 우훌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
“모드고 우훌라고 나발이고! 빨리 이거 안 치워?!”
알렉사는 자신이 맡은 역할의 연기를 곧잘 해냈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몰입이 될 정도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코믹북 스토어의 여왕님답군.’
발성도 깔끔하고 연기력도 좋았다. 무대 위에서 떨지도 않았다. 그녀가 학교를 졸업하고 배우라는 직업을 택해 그동안 얼마나 큰 노력을 해왔는지가 느껴지는 광경이라고 해야 할까.
한동안 이어지는 공연을 지켜보면서 왠지 모르게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어디를 가도 빛이 나는 그녀의 모습에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
연극 공연이 끝나자 밤이었다.
나와 두피, 지우는 대기실 앞까지 찾아가 알렉사를 축하해 주었다.
첫 공연이라 그런지 온갖 지인들이 그녀를 찾아온 상태였고, 개중에는 할리우드에서 만났던 정장 차림의 대표도 있었다.
‘K.H. 에이전시였지.’
그 옆에서 꽃다발을 들고 알렉사에게 달려드는 화려한 여성들은, 알렉사에게 건너건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같은 소속사의 모델들인 것 같았다. 다들 잔뜩 신이 난 채 알렉사에게 귀엽다, 최고였다, 하면서 학생들처럼 꺅꺅 소란을 피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뒤늦게 찾아온 우리들을 발견한 알렉사가 먼저 웃으며 다가왔고, 우리는 잠깐 동안 앞선 이들과 비슷하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후, 지우와 두피는 각자 일이 있다면서 먼저 돌아갔다.
‘배려해 준 거겠지.’
처음으로 연극 공연의 주연을 맡은 만큼,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지고 보다 의미 있는 축하를 해 주고 싶었다.
나는 알렉사에게 미리 들은 대로 따로 챙겨 온 꽃다발을 가지고 공연장 뒤편에서 기다렸다.
배우들이 하나둘씩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거리가 슬슬 어둠에 잠기는 와중에 알렉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신!”
“알렉사, 고생 많았어.”
“아까 왜 아는 척 안 했어?!”
와락 안겨 드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나? 애들하고 같이 축하해 줬잖아.”
“평소하고 뭔가 달랐어!”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남았잖아.”
“아······! 그건 그러네!”
배시시 웃는 그녀.
화장을 지우고 나왔으나 여전히 남은 분내의 잔향이 무척 좋았다. 연극하느라 약간 땀이 났는지 그녀의 살 냄새가 섞여서 훨씬 더. 왠지 모르게 나를 안정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한동안 말없이 껴안고 있자니, 알렉사가 뭔가를 느끼고는 슬그머니 나를 밀어냈다.
“여, 여기까지.”
“왜?”
“······뭔가, 이상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피식 웃은 뒤, 계속 한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약간 당황해하고 있던 알렉사는 그것을 받으며 환하게 웃었고, 우리는 연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에 올라탔다.
커다란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알렉사는 첫 공연이 걱정했던 것보다 잘 되어서 다행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꽃이 피어나듯 그녀에게서 도란도란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대기실에서 내가 굳이 거리를 두었던 이유는 물론, 알렉사의 커리어를 생각해서였다.
그것은 연애 초반에 미리 협의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굳이 ‘남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숨기는 편이었고, 우리가 남성과 여성으로서 남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거나 하는 점은 사실 그쪽에 가까웠다.
사생활의 영역인 만큼, 나는 굳이 사람들에게 티를 내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뷸러상 시상식 때 알렉사를 파트너로서 초대했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굳이 나서서 밝히지 않기도 했다. 어차피 작가들의 커뮤니티에서 그런 일로 그리 시끄러워질 일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대기실에서 나를 확실히 ‘친구’로서 대해 주었다.
‘이런 자리에서도 신경을 써 줄 줄이야.’
그래 놓고서는 조금 전에는 장난치듯 나를 추궁했지만, 그 모습조차 참으로 귀여웠다.
한동안 차를 몰면서 로스앤젤레스 도심을 질주하던 와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일은 잘돼?”
알렉사의 질문.
나는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가고자 차를 외곽으로 몰면서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 줄리아가 도와주고 있거든.”
“아, 요즘은 사이먼이 아니라 줄리아하고 일하는 거야?”
“차기작으로 하드보일드물을 생각 중이라서 줄리아가 잘 맞을 것 같거든.”
“힘들지는 않아? 나는 네가 이렇게 꾸준히 작품 활동하는 거 보면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좋아하는 일이니까 힘들어도 즐겁지. 알렉사, 너는 요즘 어때?”
“연기도 그렇고, 촬영도 그렇고, 하나 같이 너무너무 힘들지만, 재미있어! 아, 저번에 영화 첫 촬영 들어갈 때 감독님께서 카메라에 담기는 마스크가 너무 순수하고 예쁘고 좋다면서 칭찬해 주시지 뭐야!”
“오~ 대단한데.”
“나하하, 거기서는 약간 겸손한 척했는데, 사실은 정말 기분이 좋았어!”
“알렉사, 오늘도 무대 위에서 너무 예쁘던데.”
“······으, 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데.”
“어어······.”
“왜 부끄러워해?”
“아이 참, 놀리는 거야?”
“당연히 진심이지.”
“······.”
예쁘다는 말 한마디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얼굴이 빨개진 채 시선을 피하는 알렉사를 힐끗 보면서 흐뭇하게 웃은 뒤, 나는 계속 차를 몰았다.
주홍빛 가로등이 차창 위로 잉크처럼 번졌다 줄어 들었다를 반복했다. 살짝 켜둔 라디오에서는 80년대를 상징하는 레트로한 뮤직이 흘러 나왔고, 나는 드문드문 떠오를 때마다 오늘 연극의 어떤 부분이 좋았는가를 속삭이듯 칭찬했다.
참다못한(?) 알렉사가 다시 질문해 왔다.
“주, 줄리아하고는 어떻게 일해?”
“뭐, 똑같지. 가끔 만나서 회의하고, 끝나고 밥 먹고, 같이 바도 가고.”
“바?”
“응. 이번에 회의할 때 시청 앞에 있는 곳으로 갔는데, 분위기가 괜찮았어.”
“······헤에. 바를 다녀왔구나.”
“응?”
묘한 반응에 슬쩍 눈길을 보낸 나는 이내 내 실수(?)를 깨달았다.
알렉사의 동공에서 빛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제 최후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터입니다. 펄프 픽션 소설가 살인 사건의 개막이 되리라고는······.
아, 이건 일본 스타일이군.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하자면, ‘미리 구급차를 부르지 그래! 뒈진 너를 실어가야 하니까!’라고 외치면서 품 안에 숨겨둔 권총을 뽑아 들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 들게 만드는, 묘하게 불편한 기색이 땀구멍을 파고들었다.
약간 당황한 채 이런저런 생각으로 현실을 도피(?)하던 내게, 알렉사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도 거기 가 보고 싶은데.”
“······응?”
“지금 가자.”
“네? 저, 차 가져 왔는데요.”
게다가 벌써 밤 10시를 넘겼는데요.
“지금 가자.”
“······.”
나는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차를 돌렸다.
알렉사가 혹시 날붙이라도 가져다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
결국, 오고 말았다.
시청 앞의 작은 바.
내가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알렉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 바텐더가 말없이 미소 지으며 반겨 주었다. 그는 바텐더의 미덕인 ‘필요에 의한 침묵’을 실천하면서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물었고, 이따가 운전해야 했으니 논알콜을 주문하려던 그때였다.
“술 마셔.”
“······자기야. 우리 집에는 가야지.”
타이르듯 이야기했지만 알렉사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묵묵히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떴다 크게 떴다가,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뗐다가.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진짜 개귀엽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말이 안 나올 정도의 귀여움이었다.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가 대충 예상되었기 때문에 더 귀여웠다.
그래, 내 여자친구는 미칠 정도로 귀엽다.
‘와, 질투라고?’
알렉사로서는 진지한 감정이겠지만, 그래서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마냥 귀여웠다.
기분이 풀릴 때까지 이대로 최대한 어울려 줘야지.
한동안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알렉사가 이내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에 말없이 서 있던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했다.
“여기, 보드카 주세요······!”
보드카 옆에 ‘Bottle’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아, 참고로 여기 바는 가격이 안 쓰여 있다.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바텐더의 눈치를 살피자, 대충 알아먹은(?)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면 손님, 제가 직접 어울리는 칵테일을 만들어 드려도 괜찮을까요? 평소 좋아하시던 음료나 취향의 맛을 말씀해 주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평소에 술은 잘 드시는 편이신지?”
“네, 네! 잘 마셔요! 한 병씩 마시는걸요!”
“호오, 그렇군요.”
바텐더는 전혀 못 마신다고 이해한 눈초리였다.
“그러면 달달한 초콜릿과 과일 느낌 중에 어떤 게 좋으신가요?”
“음, 오늘은 과일이 조금 더 끌리네요.”
“아, 그런 날이 있지요.”
어느덧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좋은 바텐더였다.
바텐더란 직업은 모름지기 술을 제조하는 능력 이상으로 손님을 ‘상대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최대한 침묵을 지키나, 필요할 때는 나서서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손님을 상대해야 했다. 또한, 바 안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절대 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철칙이었다.
옛날에 알고 지내던 바텐더가 해 줬던 말인데, 나는 그로써 바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알렉사가 이곳에 오면서 내 세계 안으로 조금 더 들어온 느낌이었다.
하이스쿨 시절 주말마다 모였던 추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한 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옆에 계신 남자 분께서는?”
“아, 저는 술은······.”
“평소에 드시던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알렉사에게는 보이지 않게 살짝 윙크하는 바텐더.
딱히 그런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평소에 혼자 이곳에 와 술을 마셔본 적도 없던 나였지만, 그 말을 ‘적당히 논알콜로 만들어 줄게.’로 이해했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히 물러가는 그에게, 나는 속으로 감사를 전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와야지.
그렇게 주문을 모두 마쳤고, 나는 신기한 듯 주변을 돌아보고 있던 알렉사에게 말을 걸었다.
“분위기 괜찮아?”
“아, 신기하네······.”
바텐더와 대화하면서 조금이나마 이곳의 분위기에 녹아든 걸까.
조금 상기된 얼굴로 잔잔히 깔린 음악와 특유의 정취를 즐기는 알렉사.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오늘 좀 이상한데?’
나는 탐정이 되어 생각했다. ‘뭔가 다른 알렉사 사건’의 개막이었다.
연인이라는 관계에서, 알렉사는 질투 같은 것이 거의 없던 사람이었다. 내가 누구랑 논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고, 때때로 서로 연락이 좀 소원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 사이에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유대감이 있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아무와도 어울리고 싶지 않아 했던 모델 스튜던트와 인간 골든 리트리버이자 치어리더 캡틴 사이에서 피어난 그 특별한 유대 말이다.
그런 관계건만, 갑자기 줄리아를 질투한다라?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아까 알렉사가 뭐라고 말했더라? 어느 부분에서 동공의 빛을 잃었더라?
나로서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운전에 집중하며 가볍게 넘기듯이 했던 말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안건으로 생각을 넘겼다.
알렉사는 왜 바에 오고 싶어 했을까?
그녀의 주변 관계로부터 받은 정보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터였다. 분명히 뭔가가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갑자기? 설마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서로 말없이 눈을 마주치거나 바를 두리번거리는 사이, 준비된 칵테일이 나왔다.
“오, 오오.”
알렉사는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 영롱한 빛깔에 감탄하고 말았다.
복숭아향을 베이스로 과일 가니쉬를 섞은 뒤, 각종 술과 설탕을 섞어 탄산감이 느껴지는 맛으로 탄생시킨 칵테일.
함께 나온 내 술은, 내 취향에 맞게 씁쓸한 풍미가 나도록 제조한 논알콜 칵테일이었다.
‘역시 좋은 바텐더야.’
알렉사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이 휘둥그레 떴고, 입맛에 잘 맞는지 같은 칵테일로 한 잔, 두 잔,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러고 보니, 얘하고 술 마시는 거 처음 같은데.’
애초에, 알렉사가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나?
슬쩍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차라리 나와 처음으로 마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그 불안감을 칵테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다.
어느덧 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리 곁에 있던 바텐더가 바에 들어온 다른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겼고, 알렉사의 숨결에는 시린 알콜의 향과 달콤한 냄새가 섞였다.
한동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깐의 침묵이 찾아온 와중, 나는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린 새끼손가락을 알렉사가 슬그머니 쥐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사건(?)을 더 미궁 속으로 빠뜨리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나, 어, 나.”
“······?”
“오늘, 안 들어가도 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