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44)
244.
필사적으로 용기 내 말하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손은 파르르 떨렸고,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편한 원피스 차림이었지만, 머리는 연극 공연을 진행하면서 세팅 받은 스타일에서 딱히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을 보면서 알렉사가 나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생각해 왔을지가 느껴졌다.
남자란 족속은 그러한 여자의 마음을 알면 녹아내리는 법이다.
그리고 나 역시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알렉사가 건 손가락 끝을 타고 그 생각과 열기가 올곧게 전해져 오는 듯했다. 손가락이 찌르르 타오르면서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내 심장에 강렬한 펌핑이 이어졌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컨텍스트와 그 순수한 메시지를 읽어내자, 솔직히 말하면 참기가 힘들었다.
나라고 왜 생각이 없겠는가.
샷건 운운하면서 지금까지 그냥 넘겨온 것은 사실,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알렉사 쪽에서 아마도 인생 최고의 용기를 내서 먼저 이런 말을 꺼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처럼 샷건 핑계를 대면서 어물쩍 넘기거나 할 상황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미안했다. 먼저 이렇게 행동하도록 기다리게 했던 것이.
내가 말없이 있자 알렉사의 손가락 끝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힘을 줘서 손가락을 잡았다.
“······?!”
깜짝 놀랐는지 별안간 반쯤 숙였던 고개를 휙 들어버리는 그녀.
“뭐,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
“잠깐만 이대로.”
“으······.”
아, 젠장. 지금 정신 확실히 잡아야 한다.
지금 알렉사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바로 어디로든 데려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런 알렉사의 용기가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날이 아니다.
왜냐면, 너무도 좋아하니까.
정말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 사람보다 인생의 씁쓸한 면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오늘은 적절한 때가 아님을 알았다. ‘처음’은 항상 귀중하고 멋진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아는 나이기에 알렉사에게 할 말을 골라내고 입을 열었다.
“알렉사.”
“으, 응.”
“혹시 하루 일정 완전히 비는 날 있어?”
“이번 주, 목요일? 왜?”
“우리 그날 데이트할까? 다음 날까지.”
“으, 응······?”
“좋은 호텔을 예약해 둘게. 그날은,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거기서 저녁도 먹자.”
“······왜? 오늘은 아니야?”
“응. 아니야.”
“왜, 애?”
우리의 첫 기억으로 올드 패션드를 만들고 싶지는 않거든.
달콤한 설탕인 너와, 씁쓸한 비터스인 나, 그저 그 두 개면 충분하다. 그 사이에 알코올을 섞을 필요는 없다. 우리의 지난 시간처럼 말이다.
하지만 설명하는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이잖아. 소중하게 하고 싶어서.”
“······.”
“미안해. 먼저 용기 내 줬는데.”
“아, 아냐! 응, 으응. 이해했어······. 완전히.”
우리는 테이블 아래에서 천천히 손깍지를 꼈다.
······그나저나 이거, 내일 아침에 알렉사가 술이 깨면 굉장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드는군.
***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다음 날 아침, 러닝을 다녀오니 집에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헉.]“여보세요?”
[구, 국세청입니다.]알렉사였다.
[저기, 지우 장 있나요. 세금 관련 문제로다가······.]“······.”
나는 그녀의 명예(?)를 위해 모른 척하기로 했다.
“바꿔 드리죠.”
[······거짓말하지 마! 내가 알렉사라는 걸 다 알잖아! 으앙!]“······.”
알렉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무너졌고, 나는 말없이 지우에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뭔가 깜짝 놀라더니 이어서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한 햄스터가 전화를 끊고 내게 다가왔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알렉사가 뭐라고 했는데?”
“이따 공연 끝나고 밤에 잠깐 만날 수 있냐고 묻던데요?”
“그렇군. 잘 위로해 주고 오렴.”
“무슨 일 있었어요?”
“······본인에게 직접 들으렴.”
여기서 내가 미리 말하면 분위기만 이상해지리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알렉사에게 알아서 맡겨 두는 편이 좋을 듯했고, 나는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고 돌아섰다.
······가서 글이나 쓰자.
근데, 그 녀석. 혹시 일어나서 굉장히 자기가 여자로서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 어제 조금 더 확실히 말해둘 걸 그랬나?
아니, 거기서 더 이것저것 신경 쓰기에는 나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느라고 많이 힘들었단 말이다.
“······끄응.”
계단 중간쯤에서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나는 이마를 짚고 괜한 속앓이를 했다.
비터스니 뭐니,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다만. 나 역시 설탕이다. 아니, 인간은 모두 마음속에 설탕을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뭔가 굉장히 큰 일이 벌어질 거 같다는 예감이 드네요오.”
내 옆을 쪼르르 스쳐 지나가면서 지우가 싱글싱글 웃었다.
***
알렉사는 꿈(?)을 꾸었다.
K.H. 에이전시에서 다른 모델들과 함께 지냈을 때의 기억이었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에 걸쳐 있는, 한창 이성에게 관심 많은 나이 대의 여성들.
알렉사는 특유의 슈퍼 파워를 통해 단순한 직장 동료 이상으로 친해진 그들과 서로 데이트하는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상대가 ‘신(SEEN)’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 넌지시 데이트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은 해 두었던 알렉사.
안 그래도 선배 모델들이 보기에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고, 능력도 있는 대단한 어린 친구의 연애에 관심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떻게 만났는지부터 시작해서(고등학교 때 친구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명을 지르면서 좋아하다가, ‘아, 그래도 그거 끝까지 안 간다.’라고 현실적인 조언도 건네주었다.), 데이트는 어떻게 했느니, 어떤 선물을 받았느니, 갖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들.
그 앞에서 알렉사는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데이트? 코믹북 스토어 가고, 같이 백화점에 아이쇼핑 가고.] [뭐? 코믹북 스토어가 뭐야?] [아, 그, 그런 데가 있어요. 코믹북 파는 곳······.] [남자가 거기를 데려간다고?!] [죽여! 죽여야 돼!]······신은 알렉사가 갑자기 관계의 진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최근 들어 알렉사에게 미묘한 심경의 변화가 생긴 이유의 99% 정도는 이들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았다.
‘같이 코믹북도 보고, 두피나 그곳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다 즐거우니까.’
거기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자주 해?] [네? 뭘요?] [섹● 말이야. ●스는 얼마나 해?] [······잉?] [크으, 섹●. 엄청 중요하지. 걘 ●스 잘해?] [이잉?!]알렉사는 돌처럼 굳어져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모델들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설마, 아직이야?] [데이트한 지 꽤 됐다고 하지 않았어?]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설마, 남자 쪽에 무슨 문제가······.] [잠깐만. 혹시 둘 다 처음이야?] [아, 저는, 그, 그렇긴 한데, 그쪽은 어떤지 잘······.] [너무 귀엽······ 아니, 근데 보통 혈기왕성한 남자애들이 그걸 그렇게 잘 참나? 나만 하더라도 첫 경험 때, 마이클이 체육관 뒤뜰에서 3일 정도 굶은 곰처럼······.]도대체 뭘까.
도대체 뭐기에 3일 굶은 곰처럼 마이클은 뭔가를 한 걸까.
3일 굶은 곰 같은 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알렉사.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조졌다.”
몸도 못 가누던 주제에, 기억만은 생생했다. 비참할 정도로.
‘꺄아아아악-!’ 하고 힘껏 비명을 내질러서 부모님과 덴젤이 후다닥 찾아오고. 가족들의 품에 안겨서 절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은 못 했지만 대충 큰 문제가 생겼다고 얼버무리고. 그 말을 듣고 오해한 아버지가 어제 딸이 술에 만취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엽총을 챙기려던 것을 막아서고.
어떻게든 간신히 혼란스러운 정신과 상황을 수습한 다음, 알렉사는 지우에게 전화하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물론, 중간에 다른 누군가와 통화한 적은 없었다. 절대로.
오늘은 저녁에 연극 공연이 있어서 느지막한 오후에는 극장 쪽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먼저 향한 곳은 바로 K.H. 에이전시의 사무실.
알렉사 플레어가 참지 못하고 신에게 두 사람만의 하룻밤을 권하게 만든 원흉(?)들이 모인 장소였다.
““““뭐어어-?!””””
이야기를 들은 네 명의 모델들이 기가 막힌다는 듯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쳤다.
그 앞에서 알렉사는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때 대표인 칼 홉스는 은근히 눈치 빠르게 자리를 피해 주는 터라, 모델들은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서 칼이 몰래 숨겨둔 스낵을 꺼내며 마음 편히 걸즈 토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여자 쪽에서 먼저 그렇게 들이댔는데?!”
“와······ 걔 너하고 같은 나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 그렇죠.”
“선수네, 선수.”
“선수요?”
“응, 어른스러운 걸 넘어서 원숙미가 느껴질 정도의 대처야. 사람 안달 나게 할 줄 아네.”
“보통 그런 상황에서 참고 넘어가는 남자는 없으니까.”
“아, 근데 좀 등신 같지 않음?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나 잡수쇼 하고 술까지 취해서 신호를 보냈는데, 섹●를 참는다고? 너무 어리바리한 거 아님?”
“처음이니까 소중하게 하고 싶다잖아. 그거, 난 납득 가능.”
“그러엄, 처음은 로맨틱해야 하지. 젠틀한 거 좋아.”
“보통 어린 남자들은 아무리 완강하게 부정하더라도 여자 쪽이 그러면 온몸에 꿀 바른 사람을 만난 3일 굶은 곰처럼 달려들기 마련인데 말이야.”
“완전 인정.”
“그 남자애, 스탠퍼드 다니고, 정장이 잘 어울린다고 했었나?”
“크으, 인텔리에, 정장이 잘 어울리는 차가운 도시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이제 침대 위에서 화끈하면 완벽하고!”
‘꺄아아악!’ 하고 실컷 괴성을 내지르는 모델들.
그 앞에서 알렉사는 더더욱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특히나 그 외모 때문에 남성 경험이 더 많을 확률이 높은 에이전시 소속 모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중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간신히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기에는 아직 좀 이른 시기였다.
모두 개인적으로 접했던 ‘ex-boyfriend’에 대한 지식 외에는 그저 ‘멋진 남성’에 대한 막연한 시각을 가졌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필터링해 내뱉는 경험이 사실 다 그 나이 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의 행동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인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신사인 것인지.
결국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한 20대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알렉사, 이따 공연 있다고 했던가?”
“네? 아, 네.”
“내일은?”
“수요일도 공연이 있는데······.”
더블 캐스팅이라 월화수만 공연에 참석하고, 목요일에는 휴식한 뒤, 금토일은 영화 촬영 일정에 매진하고 있는 알렉사였다.
“그럼 내일 점심때 와. 같이 옷 사러 가자. 화장품도.”
“네? 갑자기요?”
“그래! 그게 좋겠어! 너는 전부 다 좋은데, 너무 수수하단 말이지!”
“남자를 후리려면 향이란다. 꼬마야.”
“아주 남자들이 껌뻑 넘어가는 페로몬 향수를 촥촥 뿌리고! 10cm가 넘는 킬 힐에 어깨 뽕을 한계까지 넣은 섹시한 옷을 입자! 그리고 목요일에는 아침에 미용실에 가서 어마어마한 펌을 하는 거야! 남자라면 완전 정신 못 차릴걸?”
“남자들은 펌과 뽕에 죽어나지. 후후, 화장도 아주 화려한 이미지로다가······!”
“······오호라.”
알렉사는 K.H. 에이전시 모델들에게 설득되기 시작했다.
***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가, 목요일.
최근 들어 일러스트 외주를 몇 가지 더 맡은 덴젤 플레어는, 늑장 부리다 마감이 촉박해진 일 하나 때문에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이쪽의 벌이가 꽤나 짭짤해져서 슬슬 토런스 뉴 미디어를 나와도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최근 들어 왠지 모르게 사장인 레미 마틴이 과하게 유해진 느낌을 받아서 조금만 더 있어 볼까 갈팡질팡하는 와중이었다.
아무튼 이번 주말까지 마감이 예정된 작품을 그리던 중, 그는 괴상한 소리를 들었다.
빠각! 빠가각!!
어마어마한, 나무 바닥이 파괴되는 듯한 소리.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익숙한 동선을 따라 후다닥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갔고, 그로서는 드물게도 입을 떡 벌린 채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
‘록키 호러 픽쳐 쇼’에 등장할 법한 분장(?)을 한 하나뿐인 여동생이 그를 돌아보았다.
“······저기, 알렉사?”
“아, 덴젤. 나 다녀올게.”
“어디······를?”
“신하고 데이트. 아, 부모님한테는 비밀이야. 나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했으니까. 덴젤은 이해해 줄 거지? 그나저나 나 오늘 어때?”
“······.”
“조, 조금 어른 같아?”
인간이 아닌 거 같아.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덴젤은 대신 목울대를 꿀렁이며 말없이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Mother’에 등장하는 수지의 공포가 형상화된 듯한 알렉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잘못 대답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반응을 멋대로 오해한 알렉사는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고, 비틀거리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화려한 금박이 들어간 킬 힐.
무릎 위로 올라오는 과감한 타이트스커트.
어깨 뽕이 과도하게 들어가서, 스치면 베일 것 같은 핫-핑크 색의 재킷.
이른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서, 무려 세 명의 디자이너가 들러붙어 롤 빗과 헤어드라이어로 금발 머리를 부풀린 결과 킬 힐을 더해 20센티미터는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심지어 화장은 어떠한가.
아이섀도를 덕지덕지 바르고, 입술은 정열의 레드. 거기에 더해 안면 전체에 파데를 마구 조져대고, 쉐딩은 무슨 하드보일드 필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깊게 파고.
지금 알렉사의 얼굴은 지금 당장 ‘태양의 서커스’에 출연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의 모양새가 되었다.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람이란 불안할 때는 다른 사람의 말에 더더욱 혹하는 법.
너무 예뻐졌다고, 이대로 잡지 표지에 나와도 되겠다고 부산떠는 미용실 쌤의 말을 알렉사는 신의 계시처럼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이거면 뻑이 간다며 동료들이 추천해 준 페로몬 향수를 작은 가방에서 꺼내 췩췩췩췩췩, 십여 번 넘게 뿌려대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알렉사는 온몸을 긴장시키며, 가볍게 심호흡했다.
그것은 마치 전장에 나서기 위해 워 페인팅을 끝마친 전사의 기개와 같았다.
“좋아. 완벽해.”
약속시간이 되어 칼같이 나타난 신의 차가 집 앞에 멈춰 섰다. 알렉사는 커튼 틈새로 신이 운전석에서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모델들의 조언대로 정확히 5분을 기다린 다음에야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옆에 설치된 통유리로 인해 집 안에서 ‘뭔가’가 불안한 듯 서성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신이었지만, 설마 알렉사인 줄은 모른 채 ‘덴젤이 취미삼아 키우는 새스콰치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드디어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셔츠에 재킷 정도만 입고 있던 신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비틀비틀 신에게 다가온 알렉사가 부끄러운 듯 인사했다.
“아, 안녕? 오늘 날씨 좋네.”
“······어, 응. 오늘······ 예쁘, 다.”
제아무리 스스로를 ‘비터스’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이 ‘설탕’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법.
어떻게든 표정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린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됐어!’라고 속으로 외친 알렉사가 의기양양하게 차에 탔다.
잠시 후, 플레어 하우스를 떠나는 차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덴젤은 생각했다.
‘이따 비 온다던데.’
괜찮으려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