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46)
246.
다행히 오두막은 잠겨 있지 않았다.
신(神)의 도움일까. 아니면 그날따라 공원관리인이 열쇠를 잊어 먹었을까.
“푸하······!”
비에 푹 젖은 새앙쥐 꼴로 오두막 안에 들어섰고, 두 사람은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 이제 괜찮아. 내려갈게.”
제아무리 가벼운 알렉사라 하더라도 품에 안고서 이 폭우 속을 걸었기 때문일까.
신은 지쳐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알렉사는 킬 힐 위에서 내려와 맨발인 채로 신이 일어나도록 끌어서 안쪽의 침대까지 데리고 갔다.
물 먹은 솜처럼 잔뜩 무겁게 달라붙는 옷이 무척 거추장스러웠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미, 미안. 괜히 나 때문에.”
“괜찮다니까.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
침대에 대충 엉덩이를 걸친 채 신은 손을 뻗어 불안해하는 알렉사의 뺨을 매만졌다. 평소에는 골든 리트리버, 때때로는 블랙 맘바, 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곧이곧대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이 애착증 고양이는 그 손길에 뺨을 슬그머니 맡기고 체온을 느꼈다.
신은 그 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시간은 심장의 고동처럼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알렉사는 이런 상황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다. 빼어난 미모와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수많은 소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지만, 정말로 그랬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어렸을 때 겪었던 여러 일화들이,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뭇 소년들에게 그리도 인기가 많았지만, 모든 사람들과 웃고 떠들 수는 있었지만, 그녀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마음속 말랑말랑한 구석까지는 내어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또 성격은 밝아 주변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미숙했던 시절 알렉사는 그들이 만들어 온 이미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예쁘니까, 귀여우니까, 성격이 좋으니까, 치어리더니까, 쟤는 아무 문제없이 살겠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 미래까지도 이어질 ‘이미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외면을 볼 뿐 그것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여 왔던 외로움이, 눈앞의 남자를 만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보기엔 조금 무뚝뚝하지만 생각도, 마음도 깊은 그와 함께하며 알렉사는 깨달았다.
신은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었다. 그러니 자신 역시 신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건 가능할 터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지도 몰랐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도 바로 눈앞까지 찾아온 미지의 영역이 조금 두려웠다.
그녀에게 있어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렇기에 이 순간이 될 때까지도 회피해 온 감정이었다.
지금도 결국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
“······.”
“······푸헷취!”
“아, 좀 따뜻하게 할 만한 거 없나 찾아볼게.”
“으, 응. 그럼 나도 찾을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떤 감정의 전류를 피하듯 재채기를 한 알렉사와, 그것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 신.
각각 반대쪽으로 갈라서며 공원관리인용 오두막 안에 몸을 따뜻하게 할 만한 뭔가가 없는지 살폈다. 그리피스 공원 정상은 밤이 되면 삽시간에 기온이 떨어져서 이대로 있다가는 진심으로 얼어 죽을 수도 있는 마당이었다.
다행히 간이 난로가 존재했고, 땔감 역시 그 옆에 놓여 있었다.
장작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자 그리 크지 않은 오두막 내부는 삽시간에 따뜻해졌다.
한기가 가시고 온기가 찾아오자 신은 그제야 느긋한 마음으로 주변을 좀 돌아볼 수 있었다.
쏴아아아아-.
거센 빗줄기 소리가 이어졌다. 창문 바깥은 바다에 잠긴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빗줄기 너머로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불빛이 새어 들었다. 이리저리 번져서 마치 팔레트에 튄 물방울이 그림을 흐트러뜨려 놓는 듯했다.
신은 드문드문 몸을 떠는 알렉사를 일단 난롯불 앞으로 앉혀 놓은 뒤, 안쪽 창고를 뒤졌다.
“으······.”
몸에 달라붙은 옷이 살갗을 베어내는 듯했다.
견디다 못해 재킷을 벗고 셔츠 단추까지 풀어 버리고 나서, 신은 대신해서 걸칠 만한 것이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도 사용하지 않은 듯 곱게 갠 모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예 상의를 완전히 벗고 모포로 감싼 채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신은 모닥불 앞에 쪼그려 앉아 몸을 녹이고 있는 알렉사의 뒤로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모포를 벌리자 알렉사는 신의 품에 쏙 안겼고, 두 사람은 난로의 열기에 자신들의 체온까지 더해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아, 엄청 따뜻해졌다. 고마워.”
“이제 좀 괜찮아질 거야.”
타닥, 타닥.
불길이 서서히 강해졌다.
쏴아아아-.
바깥에서는 계속 비가 쏟아졌다.
침묵과 함께 서서히 몸이 녹아가고, 노곤노곤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알렉사 플레어는 어마어마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미용실에 다녀왔고, 종일 킬 힐을 신고 돌아다녔으니까. 거기다 급격한 체온의 변화까지.
그나마 신이 틈틈이 쉬게 해 주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뻗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푸핫!”
별안간 알렉사 플레어는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래?”
“진짜 네 말대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하루겠다 싶어서.”
무슨 영화 같은 날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는 두 사람을 이곳에 고립시켰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동안은 아무도 오지 않을 두 사람만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상대는 어느 때나 기댈 수 있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알렉사 플레어는 이제야 마음을 놓은 듯 천천히 몸의 힘을 빼며 등에 무게를 실었고, 신은 그녀의 뺨에 붙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 정리해 주며 입을 열었다.
“오히려 좋지?”
“응. 오히려 좋아. ‘About T’ 같잖아.”
“그거 모델도 우리잖아.”
“내가 토니고, 신이 앨리스였지.”
“······뭐어, 정확히 말하면 모티베이션 삼아 우리를 이래저래 섞은 거긴 한데.”
신은 난로 안의 불길에 눈을 둔 채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
알렉사의 몸에서 어마어마하게 좋은 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독하기 그지없었던 향수가 빗물에 젖은 채 흘러내려 가면서 적당히 희석된 듯했다. 물의 요정처럼, 새하얗게 창백한 알렉사의 목덜미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아찔해졌다.
어느덧 말소리가 잦아들고, 다시금 시작되는 침묵.
그리고 설렘.
신은 저도 모르게 알렉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알렉사는 신의 심장 고동 소리와 함께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지금 옷을 벗고 있었다.
‘······헉······.’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 몸의 모든 감각이 그와 닿은 열기에 집중되었다. 그렇기에 알렉사는 둘 사이를 장벽처럼 가로막은 젖은 옷의 차가운 감촉을 더 생생하게 느꼈다.
‘왜 말이 없어.’처럼,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아무 말이나 꺼내거나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마침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은 것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알렉사는 목덜미를 포함,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천천히 옷을 벗었다.
스르륵.
재킷을 벗고 안에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자연스럽게 풀었다.
툭, 툭, 툭.
그 안의 이너도 팔을 슬쩍 들어 자연스럽게 벗었다. 신이 머리카락이 걸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잡아 주었고, 뒤이어 알렉사의 스커트 쪽으로 손을 넣어 지퍼를 내려 주었다. 알렉사는 손길이 스쳐간 피부에서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상에 입은 듯한 감각을 느꼈다.
속옷만을 남긴 채 두 사람은 밀착했다.
“······.”
쏴아아아아-.
“······.”
타닥, 타닥······.
바깥에서는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안에서는 장작이 타는 소리가 이어졌다.
신은 생각했다.
‘그냥 이대로만 있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예전의 ‘비터스’이기만 했으면 느껴보지 못했을 감각이었다.
나이를 먹어 가며 흐름에 몸을 맡긴 채로 살다 보면, 자연히 서툶이나 위험과는 떨어진 삶을 살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서 삶은 안정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렵고 미지에 가까웠던 삶의 많은 부분이 익숙한 무언가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세상의 많은 일은, 사실 별거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괜한 두려움의 실체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 깨달음으로 인한 즐거움도 잠시, 많은 이들은 남은 삶을 무료함에 잠긴 채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익숙해진’ 인간의 삶에 또 다른 도전인 동시에, 자신에게 순수를 일깨워주는 무언가가 되어 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신에게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억지로 ‘비터스’로 살았던 그는 마지막까지 도전하지 않았다.
딱히 자기 자신이 설탕이 되어 보려 한 적이 없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조금씩 엇나간 끝에 외로운 길목에 서 있었다. 술에 빠져서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억지로 감정을 쥐어 짜내야 했고,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 채로 묵묵히 과거를 증오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지금 품에 안긴 이 가녀린 존재가, 올바른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최악의 첫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갑자기 ‘야.’ 부르더니, ‘너도 ‘Mother-lover’냐?’라고 물었던 것이 문득 기억났다. 그때는 서로를 대할 때 자꾸만 날카로워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있을 때가 더 편해졌다.
전생의 신으로서는 그런 알렉사를 알았지만, 현생의 신으로서는 그런 알렉사를 몰랐다.
지금 이 순간 그 두 가지가 완전히 합쳐졌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붙어 있듯이.
“······그, 저기.”
“응.”
“근력 운동 딱히 안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근데, 뭔가, 딱딱해서······.”
“······.”
신은 대답하는 대신 알렉사를 힘껏 끌어안았다.
눈을 휘둥그레 뜬 알렉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신을 남자로서 의식한 순간, 갑자기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 속에서 알렉사가 턱을 들어 신을 바라보았다.
파란 눈동자에는 숨기지 않은 감정이 담겼다.
술이 없어도 괜찮았다. 술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강렬하게 느껴질 터였다.
두 사람만의 첫 경험이.
“······.”
신은 천천히 알렉사의 턱 끝을 잡고 입을 맞췄다.
녹아내린 설탕과 비터스가 사랑이라는 미약 아래 하나로 섞여들기 시작했다.
***
비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멎었다.
잠든 알렉사가 춥지 않도록 모포를 더 깊이 말아 주고 나는 침대 위를 빠져 나왔다.
가장 먼저 난로 앞에 둔 옷을 확인했다.
‘잘 마르고 있군.’
이대로 한두 시간 뒤면 마른 옷을 입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펼쳐 반대로 걸어 두었다. 다행히 빨래를 널 때 쓰이는 긴 줄이 있어서 옷이 망가지거나 할 염려는 없을 듯했다. 내 옷은 대충 손으로 짜서 말렸지만, 알렉사가 입고 온 옷은 내부의 택을 확인하고서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말렸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후우.”
찬 공기를 맡으며 가볍게 심호흡했다.
혹시나 주변을 지나는 사람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폈다. 비가 엄청나게 내렸기 때문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원관리인 오두막을 찾는 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와 알렉사는 마치 깊은 산속에서 단둘이 사는 연인들처럼 별의 강 아래에 남을 수 있었다.
나는 심장에 손을 올렸다.
쿵-쿵-쿵-쿵-.
아까의 진동이 아직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방금 일을 통해서 확실히 느꼈다.
‘알렉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대로였겠지.’
두피나 지우,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분명히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하지만 알렉사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더더욱 분명히 인정한 사실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에 남아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지탱해 주리라.
“······.”
한동안 말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중, 인기척을 느꼈다.
모포로 몸을 감싼 알렉사가 문을 열고 비몽사몽한 눈으로 밖으로 나왔다.
“괜찮아?”
“아, 응. 좀 진정이 됐······ 까흑?!”
나는 고통에 입술을 질끈 깨무는 알렉사를 부축했다. 쪽잠을 자고 나서 걷기 시작하자 퉁퉁 부어오른 발목과 ‘처음’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충격이 한 번에 몰려온 듯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히잉,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가 말했다.
“너, 너무너무 아파아······.”
“바로 호텔로 갈까.”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옷이 덜 말랐지만, 그러는 편이 좋을 듯했다. 아무래도 일인용 침대 하나 있는 이곳보다는 훨씬 더 낫겠지.
내 말에 알렉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고, 나는 그녀를 조심스레 부축하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적당히 마른 옷을 알렉사에게 건네고 나도 옷을 입은 뒤, 그대로 그녀를 둘러업었다. 알렉사는 내 행동에 순간 당황해 소리쳤다.
“거, 걸을 수 있어!”
“내 말 들어.”
다시 가볍게 제압했다.
아까는 주차장도 못 찾았건만, 비가 그치니 주변 풍경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알렉사를 업고 킬 힐을 손에 든 채 한밤중의 습습한 공원을 걷는 경험은 무척이나 각별했다.
나와 알렉사는 차에 도착해 탔고 호텔을 향해서 출발했다.
“······.”
“······.”
다시 찾아드는 침묵.
환상 속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자니, 알렉사가 입을 열었다.
“저기, 신.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왜 그렇게 능숙해?”
핸들이 크게 휘청였다. 하마터면 가드레일을 뚫고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찍을 뻔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고자 노력하면서 알렉사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런 걸 보고 능숙하다고 하는 거 맞지?”
“······.”
“왜, 그랬잖아. 나 아파할 때마다 뭔가 느릿하고 이상하게 움직여서 아프지 않게 해 준 거라든가. 아니면 도중에 릴렉스 하라고 말한 거라든가. 그, 자세 바꿨을 때 허리 누른 것도 그렇고. 음, 뭔가 되게 능숙한 느낌이었는데. 정신이 없었는데도 그게 느껴졌어.”
“··················.”
“내 생각이 틀렸나?”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는 알렉사는 그야말로 호기심의 결정체 그 자체였다.
“혹시 전에 다른 여자친구 사귀어 봤어?”
“그런 거 아니거든!”
“어차피, 이제 내 껀데 아무려면 어때. 솔직하게 말하시지?”
“아, 아니라니까!”
우리 사이의 로맨틱 무드가 요상하게 뒤엉키고 있었다.
치열한 삶 속에서 로맨스의 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무리 적다 해도, 그 진한 당도 때문에 한 방울이라도 섞이는 순간 완전히 그 맛과 향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알렉사의 추궁에 나는 한참이나 어이가 없어 반박하다가, 이내 시선을 돌린 채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 처음이 아닌 것도 맞지만, 이 몸으로는 처음이 맞기도 하거든! 어차피 아무도 증명 못 해!’
내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비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듯했다.
“그러면 혹시 야한 동영상 같은 걸로 공부한 거야? 아니지, 신은 뭔가 야한 소설 읽으면서 연구했을 거 같애.”
“······아니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욕망을 꾹꾹 눌러 담고 있자니, 알렉사가 이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 저기.”
“또 뭐······?”
“아직 밤은 길잖아?”
“응?”
“거기 도착해서도, 어, 그러니까.”
“······.”
“능숙한 게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게 해 주면 좋겠, 는데.”
“··················.”
나는 무성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말없이 액셀을 밟아 호텔을 향해 질주했다.
이런 말을 듣고 참으면 남자도 아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