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5)
25.
“사이먼.”
이름이 불려 뒤돌아본 사이먼 카버는 누군가 종이를 들이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디자인 섹션의 덴젤 플레어였다.
이 회사의 몇 안 되는 흑인. 아프로 펌에 빗을 하나 꽂아둬, 신문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디 펑크 씬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막 일을 마치고 살짝 여유가 생긴 차였고, 사이먼은 환하게 웃으며 덴젤의 방문을 반겼다.
“아, 덴젤.”
“여기 부탁하셨던 ‘Mother’의 로고 시안이요.”
“감사합니다.”
사이먼은 종이를 받아 든 뒤 곧바로 시안을 살펴보았다.
신 작가의 의견에 따라, Mother 2부의 로고는 1부의 로고에서 로르사흐 테스트처럼 좌우 반전시킨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베일을 쓴 여성의 얼굴 두 개가 좌우 반전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도 네 개로 구성된 시안을 하나하나 확인한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덴젤, 아주 멋지네요. 작가님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혹시, 첨언 좀 해도 될까요.”
“······? 아, 네. 물론이죠.”
“이번 로고 디자인, 콘셉트는 정말 좋았는데 안 그래도 표현이 복잡했던 ‘Mother’ 로고를 두 배로 키웠단 말이죠. 이게 크기가 크면 몰라도 신문에 1부 로고를 그냥 좌우 반전시켜서 넣으면 이상하다 생각할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으로 이 난관을 타계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는 ‘과장’이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여기, 코가 확 크죠? 턱도 살짝 나왔고요.”
“어, 확실히 그러네요.”
“하지만 작게 보면 오히려 일반적인 그림보다 더 낫죠. 뇌에서 보정을 때려버리거든요.”
“오호라. 다른 하나는요?”
“다른 하나는, 그냥 Super-duper-hyper- 열심히 그리는 거였죠.”
“······? 네에. 그렇군요.”
“디자인 정말 잘 뽑히지 않았나요.”
“그, 그러네요.”
“그 점, 작가님께 꼭 전달 부탁드립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엄지를 치켜세운 덴젤이 뒤돌아섰다.
사이먼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노골적인 어필은 사이먼이 인지하고 있는 덴젤 플레어의 평소 모습과 굉장히 크나큰 괴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덴젤이었다면 다 했다면서 그냥 주고 뒤돌아섰을 텐데?’
덴젤은 회사 내에서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로 분류되는 인간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딱히 살갑게 지내지도 않았고,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규정 복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옷을 입었다. 주로 찢어진 바지와 몸에 딱 붙는 가죽 셔츠로 자신을 표현했고, 거기에 아프로 펌헤어가 더해져서 그가 지나다닐 때마다 마치 큰 나무가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덴젤은 그런 자유로운 성향임에도,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이 회사에서 누구도 건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휴고 어빙은 물론이고 레미 마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시일에 맞춰 완벽하게 해냈고, 결과물 역시 나무랄 바 없이 뛰어났으니까. 그런 신뢰를 모두에게 안겨 주었으니까.
얌전한 성향의 사이먼은 그런 덴젤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호감을 느꼈다. 그 라이프 스타일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방금 보여준 모습이 참 어색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이먼의 앞에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왔다.
사회 섹션 기자인 조지 키본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사이먼은 약간 경계했다. 요즘 들어 다른 기자들이 ‘Mother 2부’를 노리고 접근해오는 일이 많아졌으니까.
물론, 이전에는 먼저 읽어달라고 부탁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때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다. 글에 대한 판단에 확신을 얻기 위해서라거나,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서라거나.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랐다. 사이먼은 지면에 실리기도 전에 기자들 사이에서 이 ‘Mother’가 소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봤자 소설의 이미지만 낮아진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들 끈질겼다.
“사이먼.”
“키본.”
“뭐야. 덴젤하고 뭐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 어라, 로고 시안 나왔네?”
“그래. 작가님에게 어서 전해드려야지.”
“Cool-! 와, 진짜 죽이는데? 두 명의 마더! 공들인 티가 팍팍 나는걸? 크, 이거 덴젤도 ‘Mother’의 팬인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계속 우리를 지켜본 거야?”
“응, 그런데.”
“일은 안 해?”
“진작 마감 쳐서 편집부에 넘겼지롱.”
“그러면 크로스 워드 퍼즐이라도 풀던가.”
“다 했어. 그리고 크로스 워드는 시시해. 지금 내게 시시하지 않은 건 하나밖에 없지.”
“······.”
“6화 좀 보여주라.”
“안 돼. 너도 알잖아? 내가 왜 못 보여주는지.”
“왜 못 보여주는데?”
평소와는 달리, 좀 더 질척거리는 키본.
다른 기자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사이먼이 못내 못 이겨 6화 원고를 보여준다면 다들 달려와서 ‘나도! 나도!’를 외칠 기세였다. 아이스크림 트럭 앞의 꼬마들처럼 말이다.
사이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2부 시작하기 전에 사장님 지시로 1면 광고 넣기로 했잖아.”
“······그, 그렇지?”
“그 정도의 소설을 같은 신문 기자랍시고 마음대로 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기세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정론을 늘어놓는 사이먼 앞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키본은 옛날의 순둥순둥했던 사이먼은 어디 갔냐느니 하는 말을 구시렁거리며 돌아섰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옆자리의 미스 브라운이 입을 열었다.
“사이먼, 참 맞는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미스 브라운.”
“그런데, 5화까지는 공개해놓고 그 이후를 숨기는 건 참 악마적임.”
“······.”
이번에는 반대로 사이먼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불온한 공기에 슬쩍 주변을 돌아본 그는 자신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힐끗거리는, 마감을 다 끝낸 기자 무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이먼은 이내 깨달았다. 지금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31단짜리 아이스크림을 받아 맛있게 해치운 건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다른 아이들(?)은 테이스팅 스푼으로 맛만 겨우 봤는데 말이다.
그들은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Mother 읽을 줄 아는데.’
사이먼은 무너지려는 멘탈을 겨우 붙잡았다.
자신이라고 해서 악당 역할을 맡고 싶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그래야 했다.
***
1981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미국은 그다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지는 않았다. 레이건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를 펼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순간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미래에 비하면 무엇이든 더 느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런 때였기에 ‘Mother’의 성공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토런스 뉴 미디어의 약진과 작가 SEEN의 필력, 무엇보다 시운이 더해진 결과였다.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끊임없이 ‘Mother’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엄청난 양의 팬레터가 쏟아졌으며, 끝내는 성공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었다.
신인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아무리 글을 오래, 그리고 길게 쓰더라도 이런 결과를 내지 못하는 작가가 허다했다. 그렇기에 작가는 괴로운 직업이었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마니까.
‘성공한 이는 마약보다 더한 쾌감을 얻고 실패한 이는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저주하겠지.’
줄리아 챈들러는 씁쓸하게 웃으며 ‘Mother’를 다시 읽어나갔다.
정말 훌륭하게 잘 쓴 ‘장르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걸 넘어섰다.
신문 구독자는 대부분 장르 소설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신 작가의 작품은 빛이 났다. 진입 장벽이 낮은 공포 장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줄리아는 신의 작품에서 잘 단련된 근육과 같은 힘을 느꼈다.
기초가 정말 탄탄한 글이었다. 장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힘을 줬다 풀었다를 반복하면서 건조하게 수지가 겪는 일을 적어나갔다.
괜히 잘난척하듯 꾸미는 문장조차 없었다. 신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문장에 취할 법한데도.
‘만났을 때도 놀라기는 했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 안에는 심연이 똬리를 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 그리고 미지.
그것이 글에서도 드러났다.
신은 세상을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보았다. 다들 그 결말에 상처받았지만, 납득했다. 그리고 그 감상은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윗선에서는 토런스 뉴 미디어 측에서 꼭꼭 숨기는 ‘SEEN’이라는 작가에 대해 파헤쳐보라고 난리를 피워댔다.
하지만 줄리아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밝힐 생각이 없었다.
독자이자 기자로서 신의 행보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충격적인 데뷔작을 썼다고는 하나, 고작 열여섯 소년.
‘과연 어떤 후속작을 낼까.’
그리고 그것도 지금 같은 파장을 불러올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만났을 때, 그가 원고용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줄리아는 급하게 마음먹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981년 3월 14일.
토런스 뉴 미디어의 1면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Mother : Parallel]그 큼직한 글자 아래로 로르샤흐 테스트처럼 양쪽으로 나뉜 베일을 쓴 여성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3/16이라는 숫자가 적힌 상태였다.
작년 11월 6일, ‘WIN’이라는 짧은 단어로 엄청난 결과를 낸 토런스 뉴 미디어가 낸 또 한 번의 승부수.
그걸 본 줄리아 챈들러는 큰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와, 얘네 진짜 미친 거야?”
“뭐야. 왜. 무슨 일이에요?”
옆자리에 있던 문화 섹션의 동료 기자가 물었다. 줄리아는 슬쩍 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얘네 진짜 ‘진보적’이네요.”
“예? 그게 무슨······.”
“신문 성향 말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 방식이. 봐 봐요. 이거.”
“마더 패러렐? 어?! 마더 후속작 나와요?!”
“쉿, 다들 듣겠어.”
“아, 죄송. 그런데 맞아요?”
“당연히 맞겠죠. 얘네 진짜 미친 거 같아요. 신문사가 연재작의 후속편이 나온다는 걸 1면에 싣는다고? 레미 마틴이 안 그래도 미쳤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상상 이상이네요.”
고개를 휘휘 내저은 줄리아는 자신의 기사가 실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다 더 큰 기대가 되는 걸 느끼며 이틀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Mother : Parallel’의 1화가 신문에 실렸다.
그걸 다 읽은 줄리아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쳤네.’
사람들이 이 1화를 보고 느낄 감정이 고스란히 상상됐다.
1부의 첫 문장을 그대로 써넣으며 비슷한 구조로 가는 듯하다가 중간부터 확 틀어버렸다.
2부의 주인공은 1부의 수지처럼 그저 ‘마더’에게 묶여 지내는 가련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반항하며 이겨 나가려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2부에서 그 ‘마더’가 수지라는 사실이었다.
***
집으로 들어온 덴젤 플레어는 일단 손에 들린 신문부터 어머니에게 전했다.
“어서 와라! 신문!”
“······여기요.”
“고맙구나!”
“어째 저보다 더 신문을 반기는 것 같으시네요.”
“아냐! 먼저 어서 오라고 했잖니.”
“그게 신문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어요?”
“내가 왜 신문한테 그러겠니. 사람도 아닌데.”
말과는 달리, 싱글벙글 웃으며 신문을 갖고 자리에 앉는 어머니.
오늘은 3월 23일. 그리고 방금 그가 건넨 신문은 3월 24일자 신문.
‘Mother : Parallel’의 5화가 연재되는 날이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잡담을 나누곤 하는 식자 영감에게 부탁해 인쇄에 들어가기 전의 신문을 슬쩍 복사해온 것이었다.
덴젤은 길게 하품하며 소파에 앉았다. 텔레비전을 켜고 재미없는 방송을 보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덴젤은 자리에서 일어서 약간 어색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아버지.”
“그래, 신문은?”
“······어머니한테요.”
“고맙다.”
적당히 손을 흔들고 지나치는 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Mother’의 엄청난 팬이었다.
물론, 덴젤 역시 그랬다. 하지만 5화까지는 미리 회사에서 본 터라 이렇게 기뻐하는 둘의 감정에 지금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이 집안에서 자신의 가치는 토런스 뉴 미디어를 하루 일찍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인가. 그런 자괴감만 느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난 뒤,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부엌으로 가서 잘 차려진 캘리포니아 가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2층의 자기 방에 틀어박힌 여동생을 부르러 계단 앞으로 가 외쳤다.
“알렉사! 저녁 안 먹니?!”
[안 먹어!]“Honey! 안 먹는다고 하면 내버려 둬! 알아서 먹겠지!”
“그래도 애가 굶는다는데······!”
“5화 이야기나 하자고! 빨리!”
“아!”
여동생은 소설에 져버리고 말았다.
특제 소스로 버무려진 포크찹을 먹으며 덴젤은 금실 좋은 부부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수지가 본 시체가 환각이 아니었단 거잖아요? 진짜 사람 손이었고?”
“그래······! 모르는 척 앨리를 맞이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저도 덴젤 방에 사람 손이 있으면, 아아······!”
자신은 이미 5화를 열 번도 넘게 읽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내일부터는 나도 이야기에 낄 수 있겠지.’
시무룩한 채 덴젤은 포크찹을 포크로 찍어 입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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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 second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