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7)
27.
내 눈앞의 알렉사 플레어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부류였다.
지금도 그랬고, 몇 년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미식축구부 쿼터백과 데이트하고, 치어리더부의 캡틴으로 활약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만끽하다가 졸업 파티인 ‘프롬’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퀸으로 선정이 되었던, 바로 그런 소녀였다.
당연히 전생의 나하고는 계급(?) 차이가 너무 심해서 말 한 번 섞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이 그랬다.
알렉사 플레어는 당당하고 살짝은 거만한 태도를 견지하는, 이른바 ‘밸리 걸’이었다. 다들 그런 그녀를 동경하고 그녀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지만, 차마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영광을 누리기 전까지는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하는 그런 여자애였다.
‘졸업한 이후로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뉴욕으로 건너가 모델 에이전시를 기웃거린다는 소식까지만 들었는데.’
그 녀석이 지금 내 앞에 다시 나타나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라.
블론드 헤어는 허리까지 길어 찰랑거렸고, 새하얀 피부와 단정한 이목구비는 조금의 구김살도 없어 보였다.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보지 않은 내게 다가와 ‘너도 Mother-lover냐?’라고 묻는 게 너무나도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라는 태도였다.
당연히 나는 거기에 어울려줄 마음이 없었고, 적당히 경계선을 설정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알렉사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시비라니? 내가?”
“나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해서.”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상대의 태도는 확실히 지적하면서 대화의 여지는 남겨둔다. 내 말을 듣고 길게 한숨을 내쉰 알렉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미안, 미안. 내가 그 소설을 안 좋아해서 좀 날카로웠나 봐.”
“이거?”
“응, ‘Mother’. 요즘 캘리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런데 신, 네가 그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아서 순간 궁금했어. 그게 그렇게 재미있나 싶었던 거지. 정말 그래?”
“글쎄.”
나는 슬쩍 대답을 피했다.
지금 내가 내 소설을 재밌다고 말해도, 재미없다고 말해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알렉사~ 별일이네?”
근처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한 무리가 다가왔다.
유행과 외모에 민감한 ‘밸리 걸’의 초창기 버전 같은 느낌의 여학생 셋.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글 쓰는 데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해 또래의 애들하고는 굳이 어울리고 싶지 않아 일부러 ‘Model student’를 자청해왔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되고 만 걸까.
“네가 소설을 다 읽으려고 할 줄이야.”
“메간. ······그리고 그 들러리들.”
“들러리라니! 나는 제시, 이쪽은 에이미.”
“알아. 알고서 한 말이야.”
“순간 기억이 안 났구나? 저런.”
“수학 문제를 좀 풀어보는 건 어때? 지능에 도움이 될 텐데.”
“너넨 왜 또 와서 시비야?”
“시비라니. 그냥 네가 ‘Mother’를 입에 담으니까 재밌어서 온 거지.”
“······너희도 읽었어?”
“그럼! 라디오 드라마로 정주행했지! 녹음본도 있어!”
“그건, 읽은 게 아니지 않나?”
“O.M.G.”
“Whatever.”
여러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생각하기를 그만둔 상태였다.
‘하이틴 드라마 같군.’
문제는 내가 그 등장인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뭐야. ‘Mother’ 이야기 중이었어?”
“Oh! 그렉! 아침 훈련은 다 끝났어?”
“응, 숙녀분들 요청에 따라 샤워도 깔끔하게 하고 왔지. 그래서, 오늘 마더 읽은 사람?”
“Me! Me!”
“나도 읽었어!”
“오늘 신문 줄 사람?”
“여, 여기!”
······귓등 너머로 들리는 이야기만으로 판단하건대, 점점 학생들이 모여드는 듯했다.
왜 갑자기 별거도 아닌 소설 하나에 인종 화합의 장이 열린 걸까.
나는 책상 바로 옆에 다가온 두꺼운 검은 손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그렉과 같이 미식축구부에서 라인맨 포지션을 맡은 말콤의 것 같았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지금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 대부분이 모여들었고, 오늘 ‘Mother’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 소설에서 앨리 아빠 나옴.”
“뭐, 진짜?! 저번에 그 방문자가 아빠였어?!”
“젠장, 스포일러 자제 좀요.”
“아니, 그런데. 앨리 방에 있던 거 진짜 사람 팔이야?”
“그건 아직 모르지. 근데 진짜 나, 2부 본 이후로 지하실에 못 내려가겠어.”
“어, 너도?! 나도 그런데!”
“작가가 진짜, 와. 이걸 진짜 어쩜 이렇게 묘사했나 싶더라니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극찬의 폭풍우.
거기에 휩쓸린 채 묵묵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신문을 읽던 나는 누군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낌새를 깨닫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알렉사 플레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조’라는 신규 캐릭터는 ‘Mother : Parallel’을 색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했다.
초반에는 1부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뒤의 수지와 그녀의 딸 앨리의 갈등을 중점적으로 보여주었고, 최신화에는 제삼자이자 두 사람과 한때는 가족이었던 조가 등장하면서 외부 세계로 배경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한 ‘마더’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앨리.
그런 앨리를 지키고자 하는 수지.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타난 목적을 알 수 없는 조.
한동안 앨리의 시점에서 전개되며 독자로 하여금 ‘마더’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성을 취했다.
조는 몇 번이고 수지의 집을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쫓겨났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는 계속해서 앨리를 꾀어내 밖에서 따로 만났다.
‘마더’가 없는 외부 세계를 접하며 앨리는 천천히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그렇게 소설은 조가 보여주는 외부와 수지와 함께 하는 내부의 대비를 보여주며 독자들이 앨리가 조를 따라나서는 게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시점에서 유일한 공포의 대상은 바로 수지였다.
마치 1부의 ‘마더’가 수지에게 했던 것처럼 수지도 자신의 딸에게 똑같이 행동했다.
‘어디를 다녀왔니? 앨리.’
앨리는 성모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던 수지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또 다른 평행선처럼, 소설은 조에게도 어떤 음험한 구석이 있음을 조장했다.
조는 앨리의 행동에 조금씩 제약을 걸었다. 너무 짧은 치마는 입지 말라거나. 그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사실 아버지로서 못할 말까지는 아니었지만, 작품의 색깔이 워낙 어두워서일까. 독자들은 어딘가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그 모든 게 신의 의도대로였다.
그리고 15화째, 소설은 또다시 격변을 맞았다.
『“당장 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네가 그렇게 미친 짓을 해대니까 내가 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아니지. 그건 당신이야······!”
“그 입 닥쳐! 수지!”
“······아아아아악-!!”
“뭐, 뭐 하는 거야! 빌어먹을!”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앨리는 안색이 창백해진 채 방을 나오는 조를 발견했다. 그는 앨리와 눈이 마주치더니 도망치려던 걸 잠시 멈추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앨리.”
“네, 아빠.”
“나는 그녀를 감당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근처의 호텔에 묵고 있으니······ 어디 보자.”
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펜과 종이를 가져와 호텔의 주소를 써주었다.
“잘 생각해보고, 너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찾아오렴.”
“······.”
앨리는 말없이 아버지가 건네는 쪽지를 받아들었다.
조는 앨리의 뺨을 살짝 매만진 뒤 떠났고,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앨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지의 허벅지는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는 다시 진물이 솟아 나왔고, 그걸 본 앨리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피어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어머니다. 불쌍한 어머니다. 앨리는 그 마음에 수지의 곁으로 다가가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미안, 앨리. 미안······.”
“아냐. 엄마. 다 그런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미 자신에게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고.
Mother : Paralell 16화에서 계속』
앨리는 수지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다음 날, 잠에서 깬 그녀는 조로부터 받은 쪽지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린다.
집안 곳곳을 뒤지던 그녀는 부엌 쓰레기통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쪽지를 발견하고 수지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폭발시켰다.
『“내 쪽지를 왜 엄마가 마음대로 해?! 내가 아빠로부터 받은 거라고!!”
“앨리, 제발. 조는 아니야. 네 아빠는······.”
“닥쳐! 수지! 나는 아빠를 따라갈 거야! 찾지 마!”
비명에 가까운 히스테릭한 소리를 내지르며 집을 뛰쳐나왔고, 그렇게 앨리는 마더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거리 곳곳을 돌면서 호텔 방을 찾았다. 아빠를 찾으려고 했다. 아빠만이 유일한 구원이다. 이 지긋지긋한 마더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길이다.』
당연히 수지는 앨리를 찾아 밖으로 나와 거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사람들 사이로 수소문을 하면서 그녀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럴수록 환각과 환청은 점차 더 심해졌다. 수지는 거리 곳곳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눈을 보았고······ 놀랍게도 그건 앨리도 마찬가지였다.
『수지가 자신을 쫓고 있다.
앨리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거리 저편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한 남자를 보면서였다. 마지막 호텔에서도 ‘조’라는 이름을 가진 투숙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진이 빠졌을 때, 그녀는 수지가 보낸 듯한 사람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함께 기도를 드리는 수많은 사람들. 분명 그들 중 하나일 터였다.
앨리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거리 곳곳의 감시자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따라왔다. 붙잡힐 수는 없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 지옥 같은 곳에 붙잡혀서 살 수는 없다.』
수지와 앨리의 추격전은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었다. 수지는 환각에게서, 앨리는 현실에게서 계속 도망치려 발버둥 쳤고, 끝내 수지는 어둠에 휩싸인 거리에서 앨리를 붙잡았다.
21화였다.
『“집으로 가자······!”
“안 가! 안 간다고!!”
“앨리!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수지는 저항하는 앨리를 억지로 끌고 갔다. 거기에서는 다소 강압적인 방법도 쓰였다. 수지는 앨리의 팔에 테이프를 감았고 입을 막았다. 앨리도 저항하고자 했지만, 체격이 훨씬 큰 수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집으로 간 수지는 앨리를 방에 가두고 기도를 드렸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제발······ 성모시여······!’
끼이익, 끼이익.
무언가 매달리는 소리가 났다.
아아, 또 그것이다. 수지는 천장에 목을 매달고 있을 ‘마더’를 상상하며 눈을 떴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였다.
“수지 다 너 때문이잖니.”
마더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뒤집힌 얼굴로 코앞에서 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를 앞에 둔 채 수지는 깊은 구역감을 느꼈다. 그녀는 제대로 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그리고 마더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계속해서 피하고만 있으니 이런 거잖니. 수지.”
“죄, 죄죄죄송······.”
“고통을 받아들여. 네 삶의 고통을 피하지 말고, 견뎌.”
“······하, 하하.”
맞는 말이었다.
수지는 자신이 그동안 줄곧 언급을 피해 오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편은 어린 딸에게 학대를 자행하던 인간이었다.
Mother : Paralell 22화에서 계속』
***
“바로 이거라니까!!”
Mother의 21화가 연재된 날, 아침.
미식축구부의 라인맨인 말콤이 버럭 외친 감탄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제기랄, 조가 이상한 인간이었다고!”
“복선 되게 꾸준히 깔리지 않았음?”
“맞아! 맞아! 수지가 계속 조가 앨리를 데려가는 걸 거절한 이유가 있었다니까!”
“아니, 그런데 수지도 이상해!”
“왜 사람들이 앨리를 따라가게 만들어?!”
나는 그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날마다 다른 수업을 듣는 애들까지 다 찾아와서 이제 교실은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가 신이 나서 ‘Mother’의 내용을 실컷 떠들어대다 돌아갔다. 이곳이 교실인지 하우스 클럽 파티 현장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Mother : Paralell’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리고 나는 그걸 실시간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아마 1부의 인기가 뒷받침된 덕이겠지만, 두 주인공을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니 확실히 대중들에게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만든 듯했다
1부에 비해 조금 공포도는 떨어져도 드라마가 좀 더 알찬 형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거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는가였다.
나는 원래 학교에서 말도 잘 안 하고 내 할 일만 하던 부류였다. 하지만 2부가 시작되고 학생들이 전부 내가 있는 교실에 모여 아침 감평회(?)를 펼쳐대는 탓에 신문과 팬레터를 읽는다는 원래 루틴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
줄곧 나에게 찾아오는 이 쬐깐한 밸리 걸 때문이었다.
첫날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그 여자애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처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야.”
“왜.”
“나한테 나중에 1부 내용 좀 설명해줄 수 있어?”
“······내가 왜?”
나로서는 정말 당연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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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 second (5)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