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8)
28.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기는 했다.
그렇게 많은 ‘또래’ 아이들이 아침마다 주변에서 내가 쓴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하다니. 팬레터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세대에게 내가 자신을 담아 쓴 글이 인정받는 경험이 흥미로워 어느 정도는 즐기기도 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10학년 사이에서 동경의 대상인 알렉사 플레어의 덕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싶었지만, 알렉사는 이틀에 한 번씩 꼬박꼬박 지치지도 않는지 아침마다 내 자리로 와서 오늘 마더 어땠냐고 물어봐서 사람들을 주변으로 모아(?) 주었다.
덕분에 생각도 못 한 독자 반응을 얻어 약간은 고마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내가, 왜, 굳이.’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언제나 그랬다.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가는 길.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어머니가 가게에 찾아온 한인들에게 빌고 있었다.
어찌나 싹싹 빌던지 손바닥이 다 닳겠다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때 그 기억을 사진처럼, 영상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몬드 냄새가 났었다. 손바닥을 싹싹 빌고 있는 어머니의 거친 손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표면이 닳아 거칠어진 아몬드의 느낌과 냄새가 났다.
학교를 마치고 가게 일을 돕기 위해 막 뛰어온 참이었던 나는 벽 뒤에 숨고 말았다.
지금보다 두 살 더 많은 열여덟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그때 나는 그저 공부 잘하는 착한 아들에 불과했으니까. 착한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집안에 빚이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깊은 무력함을 경험했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한인들도 나름대로 어머니를 최대한 봐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차디찬 현실이었다. 1980년대의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로 인해 크게 성장했을지 몰라도 거기에 나와 어머니 같은 가난한 한인을 위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앞으로 더더욱 가혹해질 테고, 나는 그에 대한 대비를 해둬야 했다.
‘Mother : Parallel’의 연재도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 가게로 향한 나는 괜찮다면서 한사코 거절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좀 쉬시라며 보낸 뒤, 자리에 앉아 사이먼의 전화를 기다렸다.
연재를 시작한 이후, 우리는 주기적으로 전화를 통해 소통하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단순하게는 독자 반응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들어온 비즈니스 문의나 앞으로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그리고 사소한 잡담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약속한 시각에 맞춰 전화가 걸려 왔고, 나는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 작가님. 사이먼입니다.]“사이먼, 잘 지내셨죠?”
[팬레터하고 선물까지 처리하느라 죽을 맛입니다.]“선물이요?”
[네, 몇몇 독자들이 작가님께 선물을 보내왔더라고요. 저희 쪽에서 안전한지 확인하고 보내드려도 되고, 아니면 작가님께서 직접 확인하시는 방법도 있는데 어느 쪽이 편하시겠어요?]“어, 확인한다면······ 어떤?”
[내용물이 소포에 적힌 내용대로인지 저희가 먼저 확인해보는 거죠. 일례로 예전에 어떤 작가님은 곰 인형이라고 적혀 있어서 직접 받아서 열어보셨더니 안에 곰 인형으로 된 케이크가 나왔다지 뭡니까!]“어, 뭔가 문제가 있었나요?”
[그때가 여름이라, 바깥에서 푹 절여져서 이게 케이크인지 독극물인지 구분이 안 되셨다는군요. 거기다가 온갖 날파리와 벌레가 그 안에 알을 까서······. 트라우마로 한동안 고생하셨습니다.]“······제가 확인하는 편이 낫겠네요.”
[어라,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네, 그럼요. 독자들이 보내주는 선물인데.”
사실 순수의 화신인 사이먼이 그런 선물을 까봤다가 트라우마가 남게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기도 했다.
나는 이런 쪽으로는 신경이 무뎌서인지 사실 별달리 신경 안 쓰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작가님 댁으로 보낼게요.]“감사합니다. 소설 반응은 또 뭐 없나요?”
[여전히 환상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응 자체는 1부보다 낫다고 봅니다. 물론, 2부의 반응은 1부의 성공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부가 정통 호러라면······ 2부는 조금 더 서스펜스에 가까운 맛이 있어 그런지 다양한 독자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네요.]“다행이군요. 사실, 조금 걱정했거든요. 아무래도 작품에서 취하고자 하는 공포의 방향이 1부 때와는 약간 달라져서 기존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지가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이 1부와 2부로 나뉜 것 아니겠습니까.]확실히 내 소설을 이해해주는 말이었다.
[저는 이 작품이 2부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장르적인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수지’라는 인물의 삶을 많은 이가 이해하고 기억하게 했다고 생각해요.]“독자들이 정말 그렇게 느껴준다면 다행이겠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Mother’의 주인공인 수지는 내가 기억하는 전생의 자신을 굉장히 과장하고 비튼 존재였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받던 그녀는 종국에는 거기에 물들고 말았다. 그게 편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내가 미국이라는 사회에 물들어 ‘데드맨즈 헤븐’을 쓴 것처럼.
‘무너진 추억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지.’
나는 거기에서 나 자신의 밑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다.
2부의 수지는 그러한 나 자신을 형상화한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밑바닥을 드러내버린 나.
하지만 거기에 수지는 나와는 다르게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바로 앨리라고 하는 존재였다. 하나뿐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을 위해서 수지는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한다. 고통스러운 삶과 계속해서 대적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결말을 맞이했다.
그 삶을 독자들이 기억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나는 거기에서, 마치 나 자신이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군.’
왜 처음에는 귀찮았어도 교실에 모이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즐거웠나 싶더라니.
나 자신이 이해를 받아서였구나.
“······.”
[작가님?]“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 중이었어요.”
사이먼과 통화 중이라는 사실을 순간 깜빡할 정도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세요?]“아, 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어쨌거나, 이 작품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드리자면······.]사이먼 카버.
한 번의 삶을 돌아온 뒤, 내 첫 담당.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걸렸던 부분은 간간이 느껴지는 차별적인 면모였다. 한국계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미국인인 나에게 굳이 허리를 깊게 숙여서 인사한다거나.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가 그러는 행동이 악의가 있어서가 아님을. 그는 단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러면 나 역시 그런 그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 길게 이어지는 사이먼의 이야기.
그 결론은 간단했다.
[어서 독자들이 이 소설의 결말을 봤으면 좋겠습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 수지가 도달한 결말.
잔혹하고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어서 그에 대한 반응이 보고 싶었다.
***
『경찰이 찾아왔다.
사이렌의 불빛이 창문 커튼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번갈아 반복되는 그 강렬한 색에 정신을 차린 앨리는 자신이 묶여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의 방. 팔, 다리와 의자가 연결되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앨리는 간신히 창문 앞으로 다가가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찾아온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앨리는 도와달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틀어막은 테이프는 말을 입안에서만 맴돌게 만들었다. 그걸 삼키고 몸을 부딪쳤다. 쿠웅-쿵-. 큰 소리를 들은 경찰이 집 안을 수색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 앨리는 미소를 지었다.
내부를 수색한 경찰이 안을 살펴봐 자신을 발견하면 분명 풀려날 수 있으리라. 앨리는 그 희망에 모든 걸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얼마 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이어졌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그 뒤의 경찰이 자신을 바라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됐다!’
앨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였다.
촤악-!
그 목에서 선혈이 일었다.
뒤로 다가온 수지가 경찰의 목을 그어버렸다. 앨리의 비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금 입안을 맴돌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수지는 쓰러진 경찰을 확인사살 하려는 듯이 가슴을 수 차례 찔렀다. 그 앞에서 앨리는 당혹감과 분노, 충격에 빠져 눈물을 흘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 서서히 다가오는 ‘마더’.
“앨리, 앨리, 앨리, 앨, El, eee.”
그것은 더이상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
그 손에 들린 칼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Mother : Parallel’이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독자들은 더 강한 갈증을 느껴야만 했다.
작품은 혼란을 부추기며 계속해서 독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수지는 결국, 앨리를 죽이고 말 것인가. 다들 그걸 원하지 않았다. 공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수지라는 인물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 독자들은 그 구원을 갈망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수지는 정신을 차리고 앨리를 풀어주었다.
‘도망쳐. 여기서 나가.’
자기 안의 어떤 환각과 싸우고 있는 수지.
앨리가 방을 나갔을 때, 수지의 환각이 다시 시작되었다. 수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밖은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앨리를 쫓아갔다. 출입구가 막힌 상황. 그대로 도망쳐 어쩔 수 없이 지하로 숨은 앨리는 그곳에 있던 피투성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였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앨리.
그리고 작품은 수지가 겪어온 삶을 보여주었다.
『‘조’라고 하는 사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부랑자’였다.
어느 날,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시설에 들어온 그는 당시 ‘어머니’를 대신해 신도들을 이끌고 있던 수지를 억지로 범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아이는 어딘가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언제는 잘 웃다가도 언제는 나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서 짓이기고 가지고 놀았다.
후자의 성격이 더 심해진 것은, 그걸 고치겠다고 조가 손찌검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수지는 조의 훈육을 이해하지 못했다. 앨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더욱 잔혹해지는 길을 택했고, 수지는 조와 다투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던지고 주먹질을 해댔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조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수지 역시 ‘그곳’에서 나와야 했다.
망가져 버린 딸, 망가져 버린 가족, 망가져 버린 자신. 더 이상 수지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어린 앨리를 데리고 다 스러져가는 ‘마더’의 집으로 돌아온 수지는 하나뿐인 딸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 탄생이 어떻든, 자신의 아이였으니까.
자신의 ‘마더’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 ‘마더’가 그랬던 것처럼.
딸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호텔 방을 먼저 찾아간 건 앨리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뒤늦게 쫓아간 수지가 발견한 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조와 그 옆에서 멍하니 앉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앨리였다.
조가 무엇을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앨리를 데려가려고 했는가. 그조차도 의문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수지가 조의 시체를 처리하고 가지고 나올 때 방 안에는 분명히 수천 달러의 빚을 진 차용증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많은 암시가 담긴 그 장면 앞에서 수지는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불쌍한 딸을 보호해야 한다.
정신을 차린 앨리는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걸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 외의 많은 사람은 기억하고 있었다. 조가 ‘실종’되기 전날 밤, 10대 소녀가 그를 찾아왔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경찰이 그 뒤를 쫓았다. 그렇기에 수지는 어서 앨리를 찾아야 했다.
그런 반전을 드러낸 소설의 마지막은, 수지가 앨리의 손에 죽으며 끝이 날 예정이었다.
수지와 앨리가 마주하고, 수지가 ‘마더’의 환각을 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난 24화.
심야의 라디오 방송, ‘골든 게이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충격이군.] [맞아. 사실 조가 죽었고 앨리가 그 범인이었다니. 예상했어?] [앨리에게 뭔가 있으리라는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조가 죽었고 그 범인이 그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이틀 뒤가 기대되어서 잠 다 잤군. 도대체 어떤 결말이 나올까?]벽장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은 미소를 지었다.
‘수지가 앨리의 손에 죽으며 끝날 예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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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 second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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