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9)
29.
부탁을 거절한 이후로 알렉사 플레어의 방문은 뚝 끊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당연히 다른 학생들이 내가 있는 교실에 몰려오는 일도 없어졌다. 그다음 연재에도 몇 명인가 왔지만, 알렉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들 왔다가 돌아갔고 그 이후로는 뚝 끊어진 것이다. 더 이상 생생한 반응을 듣지 못해 약간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지내려고 했다.
하지만 일전에 사이먼과 통화한 이후로 나는 왠지 모르게 알렉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별안간 내 앞에 앉아 그 소설 재밌냐고 툭 내뱉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체 녀석은 왜 나에게 말을 건 것일까? 학교 안에서 공부만 하고 다른 학생과는 대충 스몰토크 몇 마디 하다 돌아가는 게 전부인 나를.
그냥 우연히 그랬다기에는 그날 이후로도 계속해서 찾아온 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 나는 약간의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느꼈다.
그걸 꾹꾹 눌러 담았지만, 사이먼과의 통화 이후로 살짝 뚜껑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Mother : Parallel’의 24화가 연재된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가려던 나는 우연히 교정 뒤편으로 들어가는 알렉사 플레어를 발견했다. 긴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당당하게 어디론가 걷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사이먼이 했던 말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학교 뒤편의 농구장에서 거대한 덩치의 흑인 소년과 접선(?)하는 알렉사.
뭔가 거대한 종이뭉치를 받아 들더니 서로 ‘Thumb up’을 하고 돌아섰다. 희한한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한 찰나, 문득 깨달았다.
‘저거 설마.’
‘Mother’인가?
크기도 딱 신문처럼 느껴졌다.
‘읽으려나 보군.’
별생각 없이 돌아서려던 그때, 머릿속에 그 일 이후로 떠오르곤 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좀 설명해주면 안 돼?’
알렉사는 저렇게 소설을 읽을 수 있으면서도 굳이 내게 설명을 부탁해왔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끄응.’
늘 어머니 혼자 가게를 보는 것이 신경이 쓰여 아무리 만류해도 가게로 갔지만, 오늘은 호기심이 이겼다.
게다가 이제 내일이면 ‘Mother’ 2부도 완전히 끝나기에 이런 광경을 볼 일도 없을 테고.
나는 먼저 학교 안으로 들어간 알렉사의 뒤를 따라갔다.
‘소설을 읽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을 테지.’
그런 생각으로 도서관으로 가자 예상한 대로 알렉사는 자리에 앉아 소설을 읽고 있었다.
공부를 하거나 적당히 책을 읽고 있는 학생 사이에서 열심히 탐독 중인 알렉사 플레어.
그 모습을 잠깐 멀리서 앉아 관찰했다. 그러면서 손은 자연스럽게 아직 읽지 못한 팬레터로 갔지만······ 오늘만큼은 참기로 했다.
그리고 알렉사 플레어는 평소 이미지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참으로 가관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합······?!”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도서관의 사서가 다가와 주의를 주었다. 알렉사 플레어는 쫓겨났다.
“············.”
뭐지. 저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신문 뭉치를 들고 집을 잃은 햄스터처럼 도서관을 나가는 알렉사의 뒤를 따라갔다.
“알렉사.”
“갸훕?!”
“비명소리 한번 특이하네.”
“시, 신? 뭐야! 너!”
“······아니, 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 때의 알렉사가 지은 표정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있어?”
“······됐어. 가서 평소처럼 공부나 해.”
“어, 그럴 생각이 아니니까 너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겠지?”
“고맙네요. 하지만 됐으니, 이만.”
쌀쌀맞게 말하며 돌아서는 알렉사.
바로 그 순간, 복도 모퉁이에서 학교 경비원인 루셸이 튀어나왔다.
“Mother-?!”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는 알렉사.
신문 뭉치가 흩날렸고, 루셸은 그녀의 말을 오해하고 주의를 주었다.
“Language, Lady.”
욕을 조심하라는 말.
······때때로 내가 눈치가 없다 해도,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이래서였군.’
알렉사 플레어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아무리 80년대 사람들이 순수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소설을 깊게 몰입해서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알렉사.”
나는 바닥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알렉사의 곁으로 다가가 흩어진 신문을 주워주었다. 그것을 건네자니, 알렉사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그, 손 좀 잡아줄래? 못 일어서겠어······.”
“······.”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학교 앞의 카페테리아.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알렉사는 입을 열었다.
마치 드라마 ‘Law&Order’에 나오는 증언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 인정할게. 무서워서 못 보고 있었어.”
“······그, 그래.”
“뭐 또 얼굴이 빨개졌어?”
“아냐, 계속해.”
“이 소설, 아빠, 엄마, 오빠까지, 가족 다 팬이거든. 그래서 나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 수지수지수지수지, 하는 부분부터가 문제였어. 그때부터 악몽을 꾸고 있단 말이야.”
“······그 정도인가?”
“뭐야, 너! 네가 직접 읽어보고 말하던가! 아, 읽었지.”
읽었을 뿐만 아니라 쓰기까지 했지.
“그래서 도움이 필요했단 말이야!”
“그런데 왜 하필 나야? 너 인기도 많고 주변에 친구도 많잖아.”
“친구들한테 어떻게 소설이 무섭다고 얘기를 해?!”
“나한테는?”
“너는 학교에서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잖아.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아, 그 생각은 애들이 아침마다 ‘Mother’ 이야기할 때마다 네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걸 보고 확신했어. 얘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
뭔가, 굉장히 많은 오해를 하시는군.
하지만 굳이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곤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상황에 대해 계속 추궁했다.
“그래서 내가 거절하니까, 다른 친구한테 소설을 빌리셨다?”
“그래. 두피라는 친구야. ‘Mother’의 광팬이더라고. 문제는······.”
슬쩍 신문을 내미는 알렉사.
“뭔가, 첨삭을 많이 해놔서.”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두피라고 하는 친구는, 작가로서 굉장히 복잡한 측면에서의 광팬이었다.
전문가인 양 이런저런 첨삭은 물론, 삐뚤빼뚤한 낙서에 수필 분석글로 난잡한 신문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상태로 읽는데 어떻게 몰입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나는 알렉사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뭐, 뭐라도 묻었어?”
“아니, 그냥. 이 소설이 그렇게 무서워할 만한 내용인가 싶어서.”
“네가 글에 몰입을 못 해서 아니야?”
“아니, 하는데.”
그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처음 ‘Mother’를 쓸 때 최대한 사람들을 무섭게 하고자 고심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장르부터 공포 소설이고, 또한 그래야 신인의 작품으로도 뜰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에 자극적인 요소를 결합하고자 노력했고······ 지금 눈앞에 몰입 하나만큼은 최고인 독자가 그걸 증명해주었다.
“어쨌든, 그래. 이런 소설이 대체 왜 인기가 있나 모르겠어. 무섭고. 수지는 불쌍하고. 마더는 무섭고.”
“그래도 읽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그건······ 그래. 하아. 주변 사람들은 다 ‘Mother’ 읽고 재밌다고 하는데, 나는 거기 제대로 끼지도 못하고 무서운데 귀도 못 막고. 이제 다음 화면 소설 완결 나는데 어쩌면 좋을지.”
“학교에서 애들이 이야기할 때 끼어들고 싶었던 거구나.”
“그래, 나도 ‘Mother’ 읽었다, 별거 아니더라,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싶었지.”
“알렉사.”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문득, 내가 며칠만 더 일찍 사이먼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약간 재수 없다 싶은 이미지였던 알렉사 플레어였건만, 이 순간 내게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야 알렉사를 이해했다. ······아주 약간은 말이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하면 미안했다.
‘조금 더 일찍, 그녀가 소설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
남들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1부, 어디까지 봤어?”
“눈 나오는 부분까지. 아, 그 내용 기억났다. 잠시만.”
알렉사는 어깨를 움츠리고 뭔가를 떨치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도대체 얼마나 몰입하는 거야.
“그래, 됐어. 이다음에 어떻게 되는데?”
“설명해주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 그럼 나 그냥 갈게.”
“대신에, 도와줄 수는 있어.”
“응?”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렉사.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미소를 지었다.
***
코리아타운 초입.
“뭐야. 여기 대체 뭐야?”
알렉사는 내게 찰싹 달라붙은 채였다.
우리의 모습을 오해한 한인 상인들이 내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야~! 신이! 여자친구 생겼냐!”
“아니에요.”
“뭐야!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한국어로 저주의 주문을 걸었어.”
“제발, 그만!”
“······농담이고. 그냥 일상 대화야. 소설과 현실은 구분하자.”
“그럴 수가 없다고!”
한낮인데도 이러다니. 어쩌면 알렉사에게는 몰입의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공황장애나 편집증 같은 문제를 앓고 있다거나.
이런 사람도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나는 알렉사를 데리고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어머니가 나와 알렉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아?”
“아, 어머니. 친구예요.”
“그렇다기에는 너무 가깝구나.”
“음, 가까운 사이라서요. 죄송한데 오늘은 가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놈이 다 컸어. 네 아빠도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묵묵히 마트에 놔둔 신문을 챙겼다.
페이지를 잘라 스크랩해둔 ‘Mother’의 25화 분량, 그리고 ‘Mother : Parallel’의 23화.
24화는 오늘 작업할 생각으로 따로 가방에 챙겨둔 상태였다.
코리아타운의 장식물을 보고 내내 경악하는 알렉사를 데리고 사이먼과 자주 들르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은 뒤 나는 탁자 위에 1부의 스크랩북을 올렸다.
“자.”
“으, 응?”
“1화부터 25화까지 정리해둔 거야. 읽어.”
“싫어······!”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다고 했잖아.”
“내용만 설명해줘!”
“알렉사.”
나는 우는 소리를 내는 알렉사를 차분하게 타이르고자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신나서 떠드는지 이해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런데.”
“그러니까 읽어.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공포는 네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아. 그냥 몰라서 그러는 거지.”
마치 내가 알렉사를 보듯이 말이다.
······이거 왠지 자아 성찰 비슷한 걸 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주변에서 떠드는 말 하고 반응 때문에 네 안에서 ‘Mother’가 더 큰 공포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뿐이지. 그걸 부수는 방법은, 네가 용기를 내서 소설을 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으, 음.”
“별거 아니야. 알렉사. 그냥 소설일 뿐이야. ······자, 잘 쓴.”
“응? 왜 마지막에 말을 더듬어?”
“아냐.”
“얼굴은 왜 빨개졌고?”
“이제 읽지 그러냐.”
나는 이야기를 돌리려는 알렉사를 향해 스크랩북을 밀쳤다.
왜 아무리 소설을 써도 내 소설을 스스로 잘 썼다고 말하는 건 이렇게 어려울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알렉사가 주변을 둘러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 굳이 여기여야 해?”
“왜?”
“카페잖아. 다른 손님도 많은데 비명 지르면, 뭐랄까. 민폐잖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야! 신이! 여자친구?!”
때마침 카페 사장님이 커피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왔다.
다른 한인들와 비슷한 말을 하시는 사장님, 최씨 아주머니.
“여기 사람들은 마음씨가 넓거든.”
‘Mother’를 읽는다고 하면 대충 이해해주리라.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눈썹을 찡그리고 망설이던 알렉사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그런 걸까.
아까처럼 큰 비명을 지르는 경우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종종 몸을 부르르 말며 떨었고, 케빈이 죽었을 때는 ‘허업.’ 하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가서는 비명도 조금 잔잔해졌고, 그러는 대신에 안타깝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느 때보다 강한······ 어떤 ‘감정’를 느꼈다.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이 정도로 깊은 감정의 울림을 주고 있구나. 전생에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였던 알렉사 플레어와 내가 쓴 소설을 통해 이토록 이어질 수 있구나.
이 감상이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퍼져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다 함께 둘러앉아 Split second game를 즐기는 것처럼.
1980년, 아니, 이제는 81년이 된 이때로, 나는 드디어 돌아왔다.
비유처럼 말하자면, 그동안 내 방은 엉망인 상태였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다. 그걸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니, 작은 보물이 방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돈은 최고고, 비즈니스도 최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시대에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내부에서만이지만.’
앞으로 더더욱 이 시대를 이해하면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읽었어.”
저녁이 다 되어서야 소설을 완독한 알렉사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감상을 물었다.
“어땠어?”
“재밌, 었어. 마지막 화가 궁금하네.”
“이제 내일이면 나올 테고, 너는 친구들 앞에서 소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테지. 코리아타운에 온 이야기도 섞어서 해주면 다들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응.”
“이제 됐지?”
“신.”
“왜.”
“고, 고, 마워.”
“별말씀을.”
다소 어색하게 고마워하는 알렉사.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로 돌아와 처음으로 순수하게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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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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