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35)
35.
줄리아 챈들러가 사이먼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대략 일주일 전쯤이었다.
갑작스레 연락해 ‘알고 있는 좋은 잡지사가 없느냐.’고 당돌하게 물어보는 그에게, 줄리아는 당연히 사정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이먼이 신 작가를 잡지사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줄리아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게 담당 기자가 신경 쓸 일인가?’
오히려 작가가 먼저 잡지사로 넘어간다고 해도 붙잡아야 하지 않나. 특히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것이 기대되는 신인이라면 더더욱.
그 점을 지적해 보았지만, 그에 사이먼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 작가와 자신만이 아는 사정이 있으며, 거기에 대해서는 캐묻지 말아 달라고.
사이먼은 대답을 거부했지만, 줄리아는 그의 어조에서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평소 자신을 선배로서 믿고 따르던 사이먼이 비밀로 해달라는 것을 보면, 본인의 문제로 부탁한 건 아닌 듯했다.
그렇기에 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작가 사정을 고려해 잡지사로 옮기는 걸 돕겠다고? 얘, 제정신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리아는 이게 작가와 협의가 이뤄진 사항인가를 물었다. 자신이 만났던 신 작가라면 이런 일이 있을 때 본인이 직접 나서지, 굳이 사이먼을 거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선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좋은 담당자란 작가가 글을 쓰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저는 신 작가님이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에요.]언제 말했는지도 모를 일반론, 아니, 이상론을 꺼내는 사이먼.
그 앞에서 자기 자신을 ‘다 탄 양초’에 곧잘 비유하던 줄리아로서는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 수많은 일을 겪고 부서진 끝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는 적당히 제 할 일만 하고 지냈다.
하지만 사이먼의 말을 듣자 왠지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사이먼은 그때의 자신보다 몇 배나 작가를 생각해 주는 좋은 담당자였다.
‘사이먼 카버는 토런스에 남겨두고 온 나의 순수인 거네.’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 부탁을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외의 부분은 사이먼이 챙겨 줄 수 있을 테니까.
‘Mother’는 훌륭한 성공을 거둔 데뷔작이었고, 신 작가는 그 나이를 듣는다면 어느 잡지사라도 흥미를 보일 만한 인재였다.
줄리아는 자신이 아는 괜찮은 잡지사를 몇 곳 추려내 리스트로 작성했다. 그리고 선배로서 미뤄 두었던 교육을 이어가듯, 사이먼에게 각 잡지사의 특징을 가르쳐주며 신에게 추천해 줄 잡지사를 추려냈다.
그리고 오늘, 그 결론을 신 작가 앞에서 말을 꺼냈다.
“작가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예. 듣고 있습니다.”
신은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비슷한 경험이 다수 있는 그로서는, ‘일단은 들어보자.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하자.’고 곧바로 마음먹었으니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범위가 좀 넓은 말이군요.”
“전업인가요? 아니면 겸업인가요?”
“일단은 전업 작가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터프한 싸움을 생각 중이시군요.”
“그런가요?”
“네. ······일단 작가님. 앞으로 드리게 될 말씀은 그동안 수많은 작가를 옆에서 봐온 담당자로서의 의견임을 미리 밝혀두고 싶군요. 작가가 아닌 사람의 말이란 거예요. 알겠죠?”
“염두에 두고 경청하겠습니다.”
말을 망설이는 줄리아의 앞에서 신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한 번밖에 안 만나봤지만, 이런 느낌의 사람이었던가?’
줄리아 챈들러는 좀 더 당당하고 사무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돌연 공손해졌다.
몇 초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신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고, 줄리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업 작가, 분명 쉽지 않은 길이죠. 작가는 계속 자신을 깎아내 글을 쓰는 한편, 여러 방법을 통해 채워야 하거든요. 창작 행위란, 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내면을 깎아내서 만드는 거라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전업 작가로 사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죠.”
간단한 이유였다.
전업 작가는 연재를 진행하면서 정해진 분량의 ‘좋은 원고’를 정해진 시간에 넘겨야 했다. 그리고 작품 하나를 완결 내도, 벌어둔 돈이 많지 않은 이상에야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야 했다. 말인즉슨, 쓰면서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른 벌이가 있는 겸업 작가와는 달리, ‘채우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저는 작품 하나를 끝내고 무너지는 전업 작가를 정말 수도 없이 봐왔어요. 첫 번째 작품으로 성공하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물론, 작가님의 작품은 첫 작품임에도 라디오 드라마까지 나올 정도로 잘됐지만, 과연 후속작도 그럴까요?”
줄리아는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작가로서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작품 하나가 잘된 작가라고 해도 바로 다음 작품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계속 작품을 성공시키는 작가는 정말 드물었으며, 있다고 해도 항상 정신적으로 쫓기면서 살았다.
“그러니 가장 좋은 타이밍에, 자신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잡지사를 제안하신 건가요.”
“네. 작가님. 전업을 꿈꾸고 계신다면 신문사에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죠.”
줄리아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넘겨 가방에서 잡지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선벨트 지역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펄프 픽션 잡지사에요. 제가 작가님과 연결시켜 드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건즈 앤 소드(Gun’s and sword) 매거진’.
‘맨 인 어드벤처(Adventure)’.
‘위어드 앤 디텍티브(Weird and detective) 테일즈’.
각각의 이름이 쓰인 세 개의 표지를 본 신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자신 역시 계속 읽고 있는 잡지였던 이유도 있고, 줄리아가 이 잡지들과 정말 연이 있다면 생각보다 더 유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시대에 기자가 잡지사나 출판사와 연계해 부업을 뛰는 경우가 흔하기는 했지만, 보통 이 정도로 연줄이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 사람.’
어떤 소설을 쓴다 해도 다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잡지를 가져왔다.
보통 이 시대에 난립하던 펄프 픽션 매거진은 저마다 집중하는 콘셉트가 존재했다. 무조건 하나만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어도 그 장르의 작품을 밀어주는 편이었다.
그에 따라 독자들은 각자 원하는 장르가 제목에 들어간 잡지를 사 읽었으며, 작가들도 되도록 거기에 맞춰서 들어가려고 했다. 인기를 끌기에 좋으니까.
“셋 모두 작가님께 격주 연재에 1,000달러 이상 줄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잡지들이죠. 신인 기준이고요. 아, 물론 분량도 그만큼 많아지고 연재 기간도 훨씬 더 길게 가져 가지만요.”
“······확실히 좋은 잡지들이네요. 저도 팬입니다.”
“전업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잡지사에 연재하면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과, 완전히 성공해서 출판사를 끼고 책으로만 내는 것. 하지만 신문이라면 몰라도 작가님은 장르 쪽에서 아직 신인이나 다름없어서, 일단 잡지사로 가셔야죠.”
맞는 말이었다.
신 본인이 기억하기로, 이 시기는 장르 소설 쪽으로 이제 막 제대로 된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때였다. 가판대에서 싸구려로 팔아대던 펄프 픽션에 확실한 팬층이 생기면서 구독 서비스도 이루어지고 지면 광고도 싣기 시작했다.
그러니 세간에서 악마의 책이다 뭐다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그 정도 파급력이 없으면 애초에 비난할 필요가 없으니까.’
곰곰이 현 상황을 생각해 보던 신은 이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가 느와르 퍼블리싱 산하의 잡지로 갈 수도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두 기자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느와르 퍼블리싱’.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미국 최대의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
무려 여덟 개에 달하는 산하 잡지를 가졌으며,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유럽까지도 장르 소설을 출판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다.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미국 장르 소설 업계의 최정점과 같은 소설 출판사.
그 이름을 입에 담자 줄곧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사이먼이 초조한 듯 입을 열었다.
“무, 물론!”
“불가능해요.”
그리고 줄리아가 꿈을 이야기하려는 그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느와르는 증명이 필요한 잡지사예요. 실력만으로는 어렵죠.”
“서, 선배! 장르에 재미 이외의 뭔가가 필요하다뇨?!”
“그건······. 아니, 일단 지금은 작가님 이야기가 먼저니까.”
한숨을 내쉰 줄리아가 대화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 태도에서 신은 미래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업계의 어떤 ‘소문’ 하나를 상기했다.
이 당시, 느와르 퍼블리싱은 작품을 철저한 공산품으로써 하나하나 키워냈다.
‘확실히 그런 모양이군.’
줄리아가 그쪽 이야기를 꺼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
대충 상황이 정리되었다.
줄리아 챈들러는 생각보다 더, 아니, 내 시각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특이한 기자였다.
단순한 기자를 넘어, 출판사는 물론이고 여러 잡지사와도 컨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다란 경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과 일할 이유는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사이먼 카버.
‘이 사람은 정말.’
나조차도 그의 순수함과 행동력에 아무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그때 척아이롤 스테이크를 썰 때 했던 말을 담아뒀다가 이런 제안을 구상해 가져오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의 생과 지금의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자기가 맡은 작가의 미래를 위해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기하게 할 정도라니.
그 나름의 이유는 있을 테지만, 정말 많이 놀랐다.
나는 사이먼에게 물었다.
“사이먼.”
“네, 작가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저번에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했던 말 때문에 이번 제안을 가져오신 건가요?”
“그, 네. 그렇습니다.”
“······도대체 왜죠? 제가 잡지사로 떠나면 사이먼에게 무슨 이득이 남나요.”
나는 아주 약간은 인간적인 이유를 상상하며 물었다.
예를 들자면, 소개비를 요구한다거나.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잠깐 고민하던 사이먼은 씨익 웃더니 내게 이런 말을 해왔다.
“작가님의 소설이 남죠.”
“드라마 하나 찍네.”
“완전 드라마네요.”
줄리아와 내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예, 예?”
“아니,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입장에서는 너무 부끄럽네요.”
“왜요! 작가님 소설 진짜 재미있다고요!”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 줄래요.”
“재미있어요. ‘Mother’. 진짜로.”
“줄리아 그만, 부탁드려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이전의 삶에서 작가가 되고 난 뒤, 언젠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어째서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내 소설을 칭찬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가.
물론, 그 답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이유였다. 그 피드백을 통해 ‘내’가 인정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전생에 작품을 내던 초창기에 그랬고, 후반기로 가면서 익숙해짐과 함께 덜해졌다. 그리고 작품의 성공과는 별개로 인종이라는 벽에 막힌 느낌이 들어 더 이상 그 기분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병이 도졌다.
‘Mother’는 전생의 내가 품었던 고집을 풀어낸 글이었다. 뒤틀리고 과장된, 장르 소설이라고 하는 탈을 썼을지언정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설이 이 시대에서 인정받으면서 오랫동안 마음을 억누르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금 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돈 때문도 있기는 한데.’
세상일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Mother’의 연재를 계기로 앞으로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정해놓은 상태였다.
“사이먼, 줄리아. 제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 글쎄요. 작가?”
“작가시죠. 아무래도.”
“그 전에, 저는 학생이죠.”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머나먼 미래를 살다 돌아왔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열여섯’이었다.
무너진 추억을 가지고 돌아와 그걸 다시 쌓고자 하는, 진짜 나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나는 소설을 쓰는 한편, ‘나’를 다시 쓸 생각이었다.
“연재 기간이 짧은 신문이라면 몰라도, 아직 잡지사는 생각 없습니다. 제게는 작가라고 하는 삶 이외에도 다른 게 존재하거든요.”
“뭐죠?”
“두피라는 친구가 같이 로난 더 바바리안 보드 게임을 하자고 하더군요. 어머니의 일도 도와드려야 하고요.”
“······.”
“······.”
두 사람은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을 보면 이 결정이 어울리지 않겠지.
하지만 별수 있나. 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사이먼이라면 몰라도 줄리아에게까지는 말하기 힘든 이유가 존재했다.
어머니는 항상 나를 걱정했다.
1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내가 이 미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해 살아갈까를 항상 걱정했다.
한인이라고 하는 울타리가 있어도, 우리가 그 안에서 더욱 인정받기 위해서는 ‘Regular american’으로서의 삶 역시 중요했으니까.
‘대학교까지는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 시기는 진학률이 딱히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래도 고등학교는 최고의 성적으로, 최고의 학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야 어머니께서 ‘글 쪽은 잘 모르지만, 아들놈이 학교에서 잘하는 걸 보면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하실 테니까.
아무튼 적어도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다시 맞이한 이 시기를 작가로서도, 나 자신으로서도 충실히 채워가고 싶었다.
“신문 쪽에서 꾸준히 연재한 경력도 도움이 아예 안 되지는 않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확실히 쌩 신인보다야 신문 연재만 하시다가 일을 그만두고 넘어가신 작가님이 더 높은 대우를 받으시는 편이니까요.”
“그러면 이걸 봐주시죠. 사이먼.”
나는 가방 안에 미리 챙겨두었던 원고용지를 꺼내 들었다.
현직 CIA 요원 ‘칼 로버츠’와 전직 CIA 요원 ‘한’을 주인공으로 한 첩보물.
내 두 번째 작품, ‘Double spy’의 초고였다.
────────────────────────────────────
────────────────────────────────────
『Double spy』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