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40)
40.
『저녁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들 신나게 럼을 마시며 악기를 연주하더니, 자정이 다가오자 거리는 개미 한 마리 없이 텅 비었다. 쿠바 사람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힘차게 일하고 저녁이 되면 럼을 마신 뒤 세상모른 듯이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때가 되어서야 슬슬 겉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밤늦게까지 하는 근처의 상점, 럼 한 병과 건빵, 육포, 아이스크림을 사서 거리로 나왔다. 스윽 고개를 들자 건너편에서 코흘리개 남동생의 손을 잡고 있던 여자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남자는 말없이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가게 앞에 두었다.
쿠바의 밤 열기에 벌써 녹기 시작하는 작은 아이스크림.
사내가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남동생의 손을 잡고 그가 있던 자리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보채는 남동생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까서 넣어주었다.
남자는 항상 밤에만 움직였다.
남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쿠바에서 자신과 같은 동아시아인은 정말 보기 드물었고 일의 특성상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이목을 끄는 일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가 매일 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두고 가는 이유는, 그 안에 남아있는 작은 인간성 때문이었다. 굳이 하나만 두는 이유는 그 이상은 상대가 부담을 느낄까 싶어서였다.
그 하나로 위안 아닌 위안을 얻고 집에 들어서는 사내.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베이스캠프에 가까웠다.
갖가지 전자 장비와 무기들로 가득 찬 방. 쉴 공간이라고는 바닥에 깔아 둔 낡은 매트가 전부였다. 남자는 이곳에서 벌써 꽤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편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사내는 이런 가시밭 같은 장소에서 도리어 안정을 느꼈다.
그 안에서 묵묵히 건빵과 육포를 씹는 사내의 이름은 한.
한때는 CIA에 소속되어 조국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라는 지옥을 겪은 뒤, 그는 변했다. 믿었던 신념은 붕괴했고, 그는 사랑했던 조국을 떠나 이곳 쿠바에서 지금껏 끝나지 않은, 자신만의 전쟁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었다.
조국을 위해, 그리고 그 조국에 사는 ‘사람’을 위해.
“······.”
배를 다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선 한은 천천히 책상 앞으로 향했다.
그 위에는 그가 얼마 전 입수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쿠바의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남자의 얼굴 사진.
하지만 들어온 첩보가 맞다면, 이자는 앞으로 미국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위험 분자였다.
-Double spy : Part Han 2화에서 계속』
1화를 읽은 줄리아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2화로 넘어가면서 ‘Part Han’은 한이 이 쿠바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은 하바나의 모든 카르텔과 일부 공산당 당사에 도청기를 설치했고, 그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며 계속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로부터 생화학 무기의 설계도를 들고 잠적한 과학자를 추적해 나갔다.
그러면서 쿠바에 잠입한 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두 사람이 얽히며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한은 칼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스파이로서 그의 방식이 한의 방식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CIA라고 하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한은 칼을 위협해 이 일에서 손을 떼게 할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한의 시험을 간단히 통과한 칼은 역으로 그의 뒤를 잡았다.
‘Part Han’ 6화, 두 사람이 마주했다.
“흐음······.”
거기까지 원고를 읽은 줄리아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밤. 집에 와서 씻고 네글리제 차림에 안경까지 썼다. 말인즉슨, 잠들기 직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줄리아는 후배인 사이먼이 깨어있으리라 믿고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연결음 이후, ‘딸칵’ 하는 소리가 났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사이먼? 나야. 줄리아.”
[아, 선배. 무슨 일이에요? 이 늦은 시각에.]“당연히 일 때문이지. 소설 읽어봤어?”
[네, 마침 읽고 있던 참이에요. 설마 선배도?]“그래, 어디까지 읽어봤어?”
[8화요.]“한하고 칼이 만났니?”
[어, 아뇨? 이제 곧 만날 것 같긴 한데.]“확인해 줘. 전화 끊지 말고.”
[잠깐만요. ······원고 가져와야겠네.]사이먼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돌아왔다.
[가져왔어요. 지금 읽어볼게요.]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줄리아는 생각에 잠겼다.
더블 스파이는 여러모로 특이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었다. 두 개의 신문사에서 6일의 간격을 두고 3화 차이로 동시 연재가 이루어질 예정으로, 같은 세계관에 같은 사건을 해결하려는 두 명의 주인공이 서로의 작품에도 등장하며 큰 영향을 주고받았다.
‘크로스오버와 비슷한 느낌이네.’
하지만 크로스오버는 보통 다른 작품의 두 주인공을 한 작품에 등장시키는 경우를 뜻했으니, 더블 스파이의 구성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줄리아는 이 작품은 생각보다 더 섬세하게 기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서로 얽히는 과정에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어떤 사건에서 큰 위기에 봉착했는데, 그게 칼의 시점에서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든가. 두 작품이 3화 차이로 연재가 이루어지는 만큼, 그 부분을 잘 구성해야 맞을 것 같았다.
[아, 9화네요. 9화에서 칼과 한이 만나요.]“그래?”
그리고 사이먼의 대답을 들은 줄리아는 약간 안심이 되는 걸 느꼈다.
신 작가가 함께 준 기획서에는 ‘Part Han’의 기획만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원고도 그것뿐이었다. 동시 연재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두 회사가 완전히 협업하는 관계는 아니었으므로 서로의 원고를 보는 건 비즈니스적으로 맞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쪽의 담당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딱히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사이먼, 우리 쪽에서는 7화에 두 사람이 만난단다.”
[그래요? 그럼 같은 날짜의 연재본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셈이네요.]“맞아. 확실히 이 부분까지 고려하셨구나.”
[네, ······흠, 선배. 다음 화도 한 번 읽어볼까요?]“너는 10화, 나는 8화.”
사이먼도 대충 전화를 건 이유를 알았는지 먼저 제안해 왔다.
그 어리숙하던 후배가 자기와 생각이 일치했다. 가볍게 눈썹을 치켜뜬 채 줄리아는 천천히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8화를 다 읽은 뒤, 줄리아는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
“칼이 잘못했네.”
[저는 한이 잘못했다고 보는데요.]“적대 국가인 쿠바에 들어와서 조용히 활동하기는커녕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냈지. 과학자가 그 사실을 알고 숨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한의 행동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건 없다고 보는데요. 이미 쿠바 카르텔 쪽에서도 한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있다고요. 그게 한이라는 건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그쯤은 한도 고려하고 있어. 정확히 어느 선까지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부분을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모르죠.]“그럼, 칼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거야?”
[뭐가요?]“과학자는 쿠바 어디론가 숨어버렸다고. 그걸 찾는데 왜 사업가나 마피아로 위장해? 그리고 카르텔의 여자는 대체 왜 건드린 거야?”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 방심한 틈을 노려야 하는 법이죠. 칼은 미인계를 사용해서 카르텔의 여자에게 정보를 뜯어낼 생각이었어요. ······그러는 김에 재미도 좀 볼 생각이었던 것 같고요. 마찬가지로 이 부분도 한에게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흐음.”
토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던 줄리아는 어느새 자신이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먼 역시 그랬다.
[······선배.]“응, 사이먼.”
[분명 독자들이 지금 우리처럼 반응하겠죠?]“그래, 확실히. 서로가 가진 정보의 차이와 심리의 차이로부터 오는 재미가 있네. 주인공 본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이해하지 못할 상대의 행동이 두 소설을 모두 읽은 독자들의 경우에는 이해가 간다는 부분도 꽤나 재미있고 말이야.”
“가능성은 크다고 봐. 이 작품은 ‘버디물’이기도 하니까.”
[하긴, 그러네요. 버디물은 이런 맛이 있죠. 대립하거나 대립하게 된 두 주인공이 결국에는 합의점에 이르는 부분.]“그 말을 듣고 생각난 김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Part Karl’ 있잖아. 이전 버전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아?”
[전개는 비슷해요. 문장은 싹 다 고쳤지만 말이에요. ‘한’의 존재를 좀 덜어낸 덕에 뭔가 온전히 칼에게 집중한 첩보물이 되었다는 느낌도 있네요. 기획서를 보면 앞으로 여기에 조금씩 버디물의 느낌이 추가되면서 전개되는 거겠죠?]“그렇겠지. ······내가 그럼 첫 번째 버전의 ‘Part Karl’과 ‘Part Han’을 동시에 읽어본 입장에서 이야기하는데, 이 작품. 생각보다 더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서요?]“‘Part Han’은 상당히 하드보일드 해. 약간은 잔인하기도 하고.”
‘Part Karl’은 반대로 호쾌한 모험물로서의 느낌이 조금 더 강한 편이었다. 물론, 두 작품 다 첩보물은 기본 베이스로 깐 상태였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사이먼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거 신기한데요? 하나만 읽었는지, 두 개를 모두 읽었는지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한 재미를 줘요. 한 작품만을 쭈욱 읽을 때와 한 화 한 화를 번갈아 가며 읽을 때의 재미가 완전히 다르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소름이 돋는군요.]“나중에 이거 제대로 인기 끌면 각각 다른 형태의 판본으로 책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요.]일단 부정했던 사이먼은 이내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신 작가님이라면 설마?’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Double spy’라고 하는 작품을 두 개로 나누면서 내가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은 단 하나였다.
‘각 작품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너지가 나도록 한다.’
칼의 소설을 읽으면 한의 소설을 보고 싶게 하고, 그 반대로도 작용하게 하는 것.
두 주인공은 각자 반대편의 입장에서 볼 때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독자들이 호기심 정도는 느끼도록 너무 부정적이지 않게 그린다. 그리고 이후 작품이 진행되면서 두 사람이 조금씩 긍정적인 영향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구성한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다.
‘모든 첩보물, 모험물, 버디물이 그렇듯이 말이야.’
위의 세 장르는 대부분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Mother’ 다음으로 내는 이 ‘Double spy’를 여러 사안을 고려해 더 낮은 연령층까지 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설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독자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올바른 신념을 가지도록 설정했다.
‘국가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은 다르지만, 둘 다 애국자에 가깝지.’
어린이 독자라면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할 테고, 어른 독자라면 둘의 생각 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감상하면서 보다 깊이 있게 이 소설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줄리아와 사이먼에게 넘긴 10화 분량의 원고부터 시작해, 두 사람은 앞으로 계속해서 얽힐 예정이었다.
‘자기 자신의 싸움을 거듭해 나가면서 말이야.’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신념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또한 그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고인물은 썩어버리듯이 바뀌어야 했고 말이다.
칼과 한은 각자의 시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추적한다. 한은 칼을 만나며, 칼은 한을 만나며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을 해결한다.
기획을 짜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이먼을 만나면서 변한 것을 담아낸 것 같군.’
처음에는 여러모로 경계했던 담당 기자. 하지만 그 속내에 선량함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계심도 어느새 사라졌다.
누군가를 경계하는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정정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Double spy’는 나 자신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어느덧 ‘Double spy’의 1화를 담은 신문이 발행되기 하루 전.
나는 덴젤과의 미팅을 겸해 토런스 뉴 미디어를 찾아갔고, 이야기가 끝난 뒤에 사이먼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작품은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작가님. 저야 항상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돈’ 말고도 나름의 이유가 생긴 것 같아서요.”
“이게 작가님을 드러낸 작품이기 때문인가요?”
“그것도 물론 있지만.”
나는 약간은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이게 우리 이야기 같거든요.”
“작가님은 칼이고 저는 한인가요?”
“······아뇨. 정반대인데요.”
굉장히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한 사이먼의 말에 나는 살짝 맥이 빠졌다.
무엇보다, 나는 80년대가 원하는 전형적인 미국 마초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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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연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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