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44)
44.
학교가 끝난 뒤, 나는 평소와는 달리 반대편 도로에서 버스를 탔다.
‘침착하게 잘 계약하고 오자.’
‘헤븐즈 코믹스’의 본사가 있는 로스 펠리즈로 가는 길 위.
나는 가볍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줄리아의 소개로 미팅이 잡힌 헤븐즈 코믹스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 코믹스 회사였다. 디텍티브 램 시리즈의 코믹스판 발간으로 유명했으며, 미국 코믹스의 주류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물보다는 다른 장르의 만화를 많이 만드는 편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했다.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 같은 메이저 코믹스 회사는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저작권을 회사에서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서서히 문화의 골든 스테이트 빌딩을 쌓아 올렸다.
일반적인 창작물이 이야기를 판다면, 미국 만화는 그와 동시에 캐릭터를 팔았다. 그렇게 해서 각각의 개성을 쌓아 올린 캐릭터들을 크로스오버나 온갖 이벤트로 엮으며 독자들의 흥미를 끊임없이 부추겼다.
그 한 예시로, 스파이더맨 같은 인기 캐릭터는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러 해석을 거쳐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렇고, 먼 미래에도.’
오히려 대중적인 접근성이 더 용이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헤븐즈 코믹스 같은 인디 코믹스는 메이저 회사와 같은 방식을 쓸 수가 없었다.
당장에 그만한 인기 캐릭터를 보유하지 않았을뿐더러, 메이저 회사와 같은 방식을 썼다가는 작가들의 외면을 받기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돈을 메이저 코믹스 회사만큼 못 주는데 왜 저작권을 넘기겠는가.
그래서 헤븐즈 코믹스가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작가가 저작권을 가져가는 스토리 위주의 만화와 ‘미디어 프랜차이즈’ 작품이었다.
헤븐즈 코믹스는 내 소설처럼 다른 방식을 통해 검증된 작품과 계약해서 만화로 만드는 방식을 즐기는 편이었다.
‘물론, 내 소설이 아직 완전한 검증이 끝난 건 아니지만.’
이제야 칼과 한, 두 스파이가 막 만난 시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헤븐즈 코믹스로서는 내 작품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부터가 크로스오버의 개념이 깃든 작품이었으니까. 그들로서는 내 작품 연재가 잘만 이루어지면 앞으로 여러모로 수익성 좋은 여러 사업으로 전개를 해나갈 수 있겠다고 느끼는 거겠지.
줄리아와 나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회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헤븐즈 코믹스 앞의 노천카페.
“아, 작가님.”
여느 때와 같이 바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자리에 앉아 있던 줄리아 챈들러가 버스에서 내린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줄리아, 잘 지냈어요?”
“그럼요. 조금 일찍 나와서 햇볕 받으면서 커피 마시니 기분 너무 좋네요. 월급은 계속 누적되면서 남의 돈을 뜯으러 열심히 외근 다니는 이 맛이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반쯤 남은 커피를 스윽 밀어내는 줄리아.
계약을 한 이후, 우리는 전화 통화와 몇 번의 만남으로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줄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가방 들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학생 같네요. 작가님.”
“어······ 학생 맞는데요?”
“코리아타운에서 뵈었을 때는 그렇게 안 느껴져서요. 후후.”
가볍게 웃은 줄리아가 선글라스를 썼고,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가시죠.”
약속 시간은 오후 네 시.
우리는 도로를 건너 헤븐즈 코믹스가 있는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자, 자리에 있던 동양인 여성 담당자가 일어서서 우리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작품 계약 미팅 때문에 왔습니다.”
“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줄리아 챈들러입니다. 이쪽은 작품을 쓰신 작가님이시고요.”
“아, 이쪽으로 오시죠!”
미리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지 담당자는 우리를 직접 안쪽의 회의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쭈뼛거리는 동작을 취하며 그 뒤를 따라가자니, 안내를 마친 담당자가 내게 이렇게 귓속말을 전해왔다.
“······신 작가님, 진짜 팬이에요.”
그 말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뿌듯한 마음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를 힐끗 보다가 줄리아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줄리아는 미리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백인 남성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잘 지내셨죠?”
“줄리아! 오랜만이네요.”
나는 뻘쭘하게 서 있다가, 이어지는 줄리아의 소개에 남성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분이 신 작가님이세요.”
“······역시 그랬군요.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헤븐즈 코믹스의 제임스 로건입니다.”
“안녕하세요. 신입니다.”
이어서 옆의 편집자와도 악수를 나누자니 제임스가 말을 덧붙였다.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이란 건 알지만, 이만한 작품을 쓰신 작가분이 이렇게 젊은 분이실 줄은 몰라서 놀랐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들 그러시는데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이후 시작된 미팅의 분위기는, 첫 만남이 으레 그렇듯이 화기애애했다.
이미 협력하는 것은 확정적인 상태였고, 오늘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 작품을 어떤 식으로 코미컬라이즈를 할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
편집장인 제임스는 먼저 이걸 물어왔다.
“연재는 몇 화까지 예정 중이신가요?”
“30화예요.”
대부분의 대답은 줄리아가 했고, 나는 그 옆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이밍에 맞춰 나설 준비를 했다.
나와 줄리아는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미리 한 가지 협의를 해둔 상태였다.
‘무엇보다 작품이 빠르게 나올 것을 요구한다.’
보통의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작품의 선정 기간이 있기에 원작이 다 끝난 이후에 나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 작품은 달랐다. 원작이 한창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에서 코미컬라이즈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으며, 그렇기에 그 파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편집장, 제임스 역시 그 점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대충 잡아서 40일 정도인가. 빠듯하겠군요.”
“보통 연재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가요?”
“적어도 두 달은 필요하죠. 주어진 조건이 ‘40일 이내’만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겠습니다만, 이 작품에 어울리는 그림 작가를 뽑고 그 사람을 도울 다른 작가를 뽑고······ 그 과정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이 작품은 두 개의 만화를 만들어서 동시에 연재해야 하니 배치할 인력이 두 배로 소요되고요.”
다들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순진한 소년(?)의 얼굴을 가장한 채 입을 열었다.
“그, 만화가 보통 그런 식인가요?”
“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만화에서 아이언맨이 등장해서 함께 활약하면 그에 대해서 다룬 사이드 스토리가 나중에 또 따로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이슈이긴 합니다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또 설명해 줘야 하니까 추가로 이슈를 제작하기도 하죠.”
“아하~.”
나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게 미국 만화의 시스템이었다.
미국 만화는 ‘이슈’라는 잡지의 형태로 만화를 발간해 그걸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팔았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이슈에 다른 캐릭터가 출연하는 ‘크로스오버’가 일어나면 그 캐릭터가 해당 이슈의 다른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활약했는가를 다룬 사이드 스토리를 연재했다.
이를 ‘타이 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저희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어떻게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제임스.
코믹스의 전문가들 앞에서 의견을 꺼내는 상황.
나는 말을 잘 골라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더블 스파이의 코믹스 버전을 원작과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죠.”
“그 말은······.”
“각자 시점에서 다른 만화를 연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메인 스토리를 만들고 두 사람의 시점이 나뉜 부분을 서로 다른 이슈로 발간하는 건 어떨까요?”
“흐음.”
“허어.”
편집장과 그 옆에 있던 편집자, 두 사람 모두 큰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그렇게 되면 두 개로 나뉠 코믹스 제작 인력을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앞서 의견을 나눈바, 나와 ‘줄리아’의 생각은 그랬다.
“작가님.”
바로 그때, 줄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메인 스토리는 누가 짜는 건가요?”
헤븐즈 코믹스의 편집장이 할 말을 대신 꺼내는 그녀.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미리 준비해 온 바였다.
‘재미있단 말이야.’
줄리아 챈들러.
함께 일하면서 확실히 체감한 사실인데, 그녀는 멘탈리티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어주는 사이먼과 반대로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서로가 죽이 잘 맞는 상대였다.
헤븐즈 코믹스와의 협업을 먼저 나서서 성사시키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수월하게 협의가 가능했다.
어떤 면에서는 그녀 같은 스타일의 담당자가 더욱 편하다고 느꼈다. 나도 그런 쪽의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생각해 둔 사람이 있기는 한데요.”
“누구죠. 그게?”
제임스가 떡밥을 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 저겠죠?”
“아, 그러고 보니 작가님.”
줄리아가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우리는 완전히 짜고 치기 시작했다.
“원래 ‘Double spy’가 하나의 작품이었죠?”
“네. 그때의 원고와 기획서도 있으니까요. 제가 만화 콘티를 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만, 콘티 작가님께 도움이 될 만한 메인 스토리는 작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호오······.”
그 말을 들은 편집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럼 혹시, 작가님께서 원래 짜신 원작의 기획서나, 플롯 같은 걸 볼 수 있을까요?”
“아, 그거라면 가지고 있습니다.”
“네?”
편집장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렇겠지.
보통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서 원하는 바가 척척 나오면 누구라도 이게 잘 짜인 연극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말했듯이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벌어질 모든 상황을 대비해 둔 상태였다.
줄리아가 방긋거리며 말했다.
“어머나, 작가님. 학교에서도 작업하시는 거예요?”
“······아, 네. 필요할 때 참고하려고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거든요.”
사실 그녀의 연기력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어서 좀 당황했지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치며 미리 준비해 둔 ‘Double spy’의 원작 기획서와 플롯을 꺼내 편집장에게 내밀었다.
“으음.”
제임스와 그 옆의 편집자가 머리를 맞대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시선을 내린 두 사람 앞에서, 나와 줄리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미팅은 우리가 원하던 대로 끝이 났다.
제임스 로건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면서 플롯과 기획서를 복사해 가져갔고, 내부 회의를 거친 뒤 우리에게 소식을 돌려주기로 이야기했다.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와 줄리아는 함께 거리를 걸었다.
그녀가 차로 코리아타운까지 데려다준다고 해서 나는 그 호의를 얌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작가님.”
“뭘요. 줄리아가 더 고생했죠. 연기하느라.”
“작가님 연기력이 보통이 아니던데요?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 연기를 잘해요?”
“······저 어린아이 맞지 않나요?”
“평소에는 그렇게 안 느껴져서요. 가방을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저 이제 곧 열일곱 되는 학생입니다.”
“알아요. 알아.”
매력적인 미소를 지은 줄리아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래도 깜빡 잊는단 말이야. 보면 너무 어른스러워서.”
“그래요?”
“적어도 제가 아는 열여섯, 열일곱 중에서는 가장 어른스럽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줄리아는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검은 세단, ‘크라이슬러 코르도바’였다. 그것도 컨버터블 탑이 적용된 모델.
코르도바는 이때 당시 유행하고 있던 중형 퍼스널 럭셔리 카 시장에서 큰 족적을 남긴 차종이었다. 이후로 모델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지만, 젊은 도시 전문직인 YUPPIE족이 주로 탈 법한 차량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적당히 크고, 비싸고, 예쁘고, 빨랐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양반, 돈을 대체 얼마나 버는 거야?’
이 시대에 30대 초반인 듯한 젊은 여성, 그것도 전문직조차 아닌 사람이 크라이슬러라니.
“차가, 멋지네요.”
“그렇죠? 좀 무리해서 샀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요.”
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 어느덧 뉘엿뉘엿 노을이 지기 시작한 도로를 내달렸다.
곳곳에 퇴근하려는 사람들과 도시 매연으로 넘쳐나는 도시.
나는 줄리아의 말을 곱씹다 이내 입을 열었다.
“어른이요?”
“네. 작가님 같은 어른.”
“열여섯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요.”
“······어, 그런가?”
“그리고 줄리아도 충분히 어른 같은데.”
“노력하고 있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데서, 이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아아.”
나는 그 마음을 약간은 이해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남성이 바깥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시대에 막 사회인이 된 줄리아로서는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을 테지.
‘그러다 보니 얕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크라이슬러를?’
아무리 그래도 일반 직장인의 연봉으로는 좀 힘든 결정이 아니었을까. 아니, 오히려 그래서 이런저런 외주(?)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왠지 옆자리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의 정적을 뚫고 줄리아가 말을 건넸다.
“작가님.”
“네, 줄리아.”
“오늘은 정말 멋졌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멋진 날을 보내죠.”
“······그럼요.”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후에도 분명,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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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comic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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