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48)
48.
며칠이 지난 뒤의 주말.
페리 로저스는 만년필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털퍼덕 엎어졌다.
“다, 다 끝났다아.”
귀중한 토요일을 꼬박 쓰고도 모자라 일요일의 반나절까지 사라져서야 22화까지 나온 두 개의 ‘Double spy’를 하나로 묶어 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를 마쳤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원고를 보며 탈력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많이 모자란 것 같지만.’
전문적으로 작문을 배워본 경험이 없는 그녀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럼 이제, 아들에게 평가를 받을 때였다.
“읏차아.”
어느덧 뉘엿뉘엿 석양이 저물기 시작한 시간.
자리에서 일어선 페리는 자신이 개작한 아동용 ‘더블 스파이’ 소설을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뒷마당에서 제 아버지와 함께 캐치볼을 하며 놀고 있던 아들을 발견하고는 큰 목소리로 불렀다.
“스티브!”
“응, 엄마!”
“이제 슬슬 손 씻고 밥 먹을 준비해야지!”
‘네에.’ 하고 다소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들, 스티브.
종일 뛰어다녀도 지칠 나이가 아닌 아들과 계속 캐치볼을 해주고 있었던 아버지, 타일러는 자신이 지쳐 쓰러지기 전에 구원 투수처럼 등장한 아내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한쪽 눈가를 찡긋하며 아들 몰래 부부의 바톤 터치가 이루어지는 극적 순간이 진행되었다.
페리는 아들을 데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손 씻고.”
“응.”
“캐치볼 재밌었어?”
“응, 아빠 잘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빨리 나도 아빠처럼 되고 싶다.”
쓱싹쓱싹.
“다 씻었어. 엄마. 배고파.”
“조금만 참아. 이제 저녁 만들 테니까.”
프라이팬을 꺼낸 페리는 버터밀크 치킨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놀아준 남편은 잠깐의 휴식을 갖고, 그사이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을 준비한다.
한 가정의 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평범한 일상에 어떠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페리 로저스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슈퍼 스파이 칼이 사업가로 위장했듯이 페리에게도 다른 신분이 존재했다. 레지앤베이 토이스라는 큰 회사의 디자인 팀 직원. 그리고 그녀에게는 현재 임무가 하나 하달된 상태였다. 그건 바로 열두 살 난 아들에게 ‘Double spy’를 읽게 하는 것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어.’
라드를 프라이팬에 녹이면서 페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캐치볼로 좀 체력이 소진되었는지 손을 씻고 얌전히 식탁 앞에 앉은 아들.
페리는 자신이 개작한 ‘Double spy’의 원고를 평소 아들이 앉는 자리에서 바로 시선이 닿도록 비치해 두었다. 교묘한 배치였다. 텔레비전 카툰이 방영될 시간도 아니라 아들은 다리를 휘적거리며 무료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종이 뭉치를 집어 들었다.
“엄마, 이거 뭐야?”
“아, 그거? 더블 스파이.”
“엄마 좋아한다는 그 소설?”
“응, 재미있어. 한번 읽어볼래?”
“싫어. 저번에 읽었는데 어려운 단어가 많았단 말이야.”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걸? 엄마가 약속할게.”
“흐음.”
스티브는 종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됐어.’
일단 첫 단계는 통과했다.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라드에 들어간 닭이 먹음직스러운 소리를 내며 튀겨지기 시작했다. 소리와 냄새가 주방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평소라면 아들이 언제 먹냐고 보챘을 법도 한데, 그러질 않았다.
페리는 곁눈질을 통해 종이에 거의 코를 처박고 있는 아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됐어-!’
그 감상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읽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안 그래도 담백한 더블 스파이의 묘사를 최대한 줄이고 상황과 대사만을 남기다 보니 원작과 페리의 개작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핵심 재미는 그대로였다. 두 스파이가 만나 충돌하고 협력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든다는 부분 말이다.
특히나 22화까지 나온 최근의 전개에서 많은 부분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으나, 그 대신 호기심을 빠르게 채워주는 속도감이 주어졌다.
칼과 한은 함께 힘을 합쳐 방첩 기관을 탈출해 한이 마련해 둔 본부로 귀환한다.
같은 CIA 요원 출신이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공조는 절묘하게 합이 맞았고, 그 장면을 읽을 때 절로 환호성을 끌어낼 정도였다.
그렇게나 대립하던 두 사람이 협력한다는 상황 자체도 멋졌지만, 인물 내면의 심리 묘사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더블 스파이는 함께 행동하고 있는 두 사람의 전개 속도를 다르게 하면서 페리로 하여금 어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바로 ‘서스펜스’였다.
『칼 로버츠는 아직도 ‘한’이라는 남자를 신뢰하지 못했다.
블랙 스톰에 올라탄 그는 등 뒤에 매달린 한이 언제라도 자신의 목을 와이어로 조를 수 있음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반쯤 무의식적으로 턱을 당기고 상대가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더욱 속도를 높이며 하바나 시내를 빠져나갔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질주나 다름없었다.
아슬아슬한 리스크와 쿠바 방첩 기관에 존재를 들킨다는 위험 부담을 안아가면서까지 한을 구해낸 이유.
쿠바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그의 정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쿠바 카르텔 따위가 내 정체를 눈치챈 거지?’
어딘가 상황이 꼬여 있다. 즉, 뭔가 석연찮은 지점이 존재했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한이었다.
칼의 뒤에 앉은 한이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수신호를 줬다. 하바나 밖의 숲길을 빠른 속도로 내달린 블랙 스톰은 이내 산기슭에 서서히 멈춰 섰다.
“이곳인가?”
“······그래.”
한은 먼저 바이크에서 내렸다.』
한을 믿지 못하지만, 그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칼.
한편, 같은 날짜에 나온 ‘Part Han’은 작중 분위기에 보다 날이 서 있었다.
『칼의 뒤에 매달린 채 블랙 스톰을 타고 질주하면서 한은 생각했다.
‘빠르군.’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CIA의 최신식 기술이 적용된 기어다웠다.
CIA는 항상 최대한의 기술적 발전을 이뤄내려고 노력했다. 그 부분이 첩보 요원의 생환 확률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깨달음의 희생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한은 내심 마음이 복잡해졌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분명 좋은 장비였다.
‘이제 나도 늙은 모양이야.’
쿠바의 방첩 기관에 붙잡혔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잘했다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한은 견디기 힘든 감정에 휩싸였다. 이곳에서의 전쟁이 끝나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일은 끝낼 생각이었다.
자신 혼자서였다면 반나절은 꼬박 소모했을 거리에 위치한 장소에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이곳인가?”
“······그래.”
바이크에서 내린 한은 비틀거리며 본부로 나아갔다. 눈에 띄지 않도록 블랙 스톰 위에 위장막을 펼쳐둔 칼이 그 뒤를 따랐다. 산 중턱까지 올라가 숨겨둔 바닥 철문을 연 한은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뒤를 따라오면서 칼은 질문을 던졌다.
“이런 큰 공간을 잘도 들키지 않고 확보해 두었군.”
“과거에 이탈리안 마피아가 물자 수송을 위해 마련한 곳이다. 들킬 염려는 없지.”
“이탈리아라······.”
씁쓸한 기색을 내비치는 칼.
한은 그에게 말하지 않은 바를 면밀하게 생각했다.
이 쉘터는 이탈리안 마피아의 창고이며, 동시에 그들의 비즈니스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내부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정해진 위치에 있는 상대를 고문을 위해 만들어 둔 특수 감옥 안에 처박아 버리는 장치가 존재했다.
지금 몸 상태로 칼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버튼을 누르는 정도는 가능했다.』
이 부분을 읽은 페리는 한의 속내도 모르고 따라 들어가는 칼을 보며 긴장감을 느꼈다.
칼에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붙잡힐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한. 전쟁의 망령은 자신만의 편협한 세계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화에서는 칼의 전개가 조금 더 빨라졌다.
어느 한쪽이 늘어나면 어느 한쪽이 짧아지고, 그다음 화에서는 균형을 맞추는 전개.
마침내 대망의 ‘Part Karl’ 22화.
결국 한이 버튼을 눌렀으나 칼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서 함정을 피했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몸싸움이 벌어졌고, 또다시 온갖 장비를 사용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싸움은 길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몰려 있던 쪽의 패배였다.
상처 입은 맹수 같은 한을 어렵사리 제압한 칼은, 다른 사람과 협력할 줄도 모르는 머저리 같은 놈이라며 한을 비난했다.
‘어서 다음 화가 나와야 하는데.’
칼과 한은 어떻게 될까.
서로 마음을 풀고 협력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가운데, 버터밀크 치킨이 다 익었다. 이어서 전자레인지에 해동된 으깬 감자를 꺼내던 와중, 페리는 아들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엄마.”
“무슨 일이니. 스티브.”
“이거 이제 어떻게 돼?”
“글쎄, 거기까지 나온 게 전부라서. 어땠는데?”
“진짜 멋지다. 스파이. 나도 이런 거 가지고 싶어.”
“어떤 거? 넥타이 배트? 사운드 이터?”
“아니, 오토바이! 나도 저런 오토바이 타고 싶어!”
“아, 그것도 멋지지.”
어린 아들은 역시 칼과 한, 두 사람의 감정 변화에 중점을 두기보다도 특수한 스파이 기어에 더 열광하고 있었다. 자신과는 달랐지만, 그 역시 작품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페리는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는 한의 감시 장비가 마음에 들던데.”
“그래? 그게 뭐가 멋있어?”
“우리 아들이 집 밖에서 놀다가 다쳐도 금방 알고 달려갈 수 있으니까?”
환하게 웃으며 식탁에 완성된 요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페리.
내일 사장에게 보고할 순간이 기대되었다.
***
30화로 예정된 두 더블 스파이의 연재가 클라이막스를 향한 9부 능선을 올라가고 있던 시점에, 코믹스와는 다른 상품화 제안이 들어왔다.
캘리포니아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완구 회사 ‘레지앤베이 토이스’에서 더블 스파이의 상표로 장난감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솔직히 말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타이밍에서?’
‘Double spy’의 인기가 ‘Mother’ 못지않게, 오히려 대중적으로는 더 높아진 편이라고 생각은 한다만, 그와 별개로 아직 완구화는 이르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당시에 완구화가 이루어지던 작품을 생각하면, 대부분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아이들이 그 완구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했다. 로난 더 바바리안 시리즈의 검이나 디텍티브 램 시리즈의 총이 완구로 나온 시기도 미디어 프랜차이즈를 통해 아이들이 읽기 쉬운 코믹스판이 나온 이후였다.
하지만 ‘Double spy’의 코믹스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즉, 현재로서는 완구를 원하는 나이의 아이들에게 그리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시점에서 완구화 제안이라······.’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아해하는 나에게 사이먼은 이렇게 말했다.
“좋게 생각하죠. 작가님.”
학교가 끝난 뒤, 오후.
우리 두 사람은 ‘레지앤베이 토이스’와의 미팅을 위해 그 사옥 앞에서 만났다. 지난번 코믹스 미팅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담당 기자는 달라졌다.
그것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냈다.
“네?”
“완구 회사 측에서 ‘더블 스파이’라면 충분히 코믹스화가 되고 아이들의 인기를 끌 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 미리 선수를 치려는 게 아닐까요? 굳이 그쪽 생각도 아직 들어보지 않은 시점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음.”
나는 평상시에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려고 하는 편이었다. 비즈니스라면 더더욱 그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이먼의 말도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담당 기자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에 따라 호흡을 맞추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일단은 부딪혀 보자. 애초에 완구에서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레지앤베이 토이스로 향했다.
그사이에도 사이먼은 내 염려를 덜어주려는지 나름대로 의견을 전해 왔다.
“딱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는 이런 식으로 이뤄져야죠. 코믹스가 나온 시점부터 ‘Double spy’의 인기는 더더욱 치솟을 겁니다. 그때가 되어서 움직이려면 늦겠죠.”
“확실히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뒤, 우리는 지난번 코믹스 미팅 때와 비슷하게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레지앤베이 토이스는 헤븐즈 코믹스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사이먼의 말에 의하면, 이 건물은 개발과 사업 용도로 쓰는 사무실이고 자사 공장을 두 채나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여기와 계약할 수 있다면 좋기는 하겠군.’
1980년대 초반인 지금은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같은 콘솔이나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주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편이었고, 게임은 보드게임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 상황에서 완구 출시는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격적으로 장르 시장에 진출하기 전까지 최대한 명성을 쌓아둬야 하니까.’
그래, 내가 확실하게 모르는 분야라서 긴가민가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좋은 상황이었다.
회의실 앞에 이르러, 나는 괜한 걱정은 잠깐 접어두고 일단은 닥쳐오는 상황에 맞서는 일만 생각하자고 결심했다. 이제는 나아갈 일밖에 없다.
겉은 아이지만 속은 어른인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 레지앤베이 토이스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어?”
“어······.”
그대로 굳어진 두 사람.
나는 등을 타고 맹렬하게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두피야. 네가 여기서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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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oy’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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