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5)
5.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40대 대통령.
1980년 11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하며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을 밀어내고 백악관에 공화당의 깃발을 꽂은 남자.
이전까지 미국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힘에 근거한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고, 그 철저한 반공주의에 많은 미국인이 열광했다.
그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이끌었으며 냉전의 종식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내가 알고 있던 미래에도 많은 미국인이 그를 당시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던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위대한 1980년대의 대통령으로 기억할 정도였다.
나는 레이건을 이렇게 평가하고 싶었다.
‘과오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인기 하나는 쩔어줬던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더불어 역대 미국 대통령 인기 순위 1, 2위를 다투는 양반이니까.
현직 대통령인 지미 카터 행정부의 여러 외교적, 경제적 실패로 인해 다들 레이건의 당선을 예상했다. 하지만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공식적으로 카터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지는 않았으나 누가 봐도 명백히 편파적인 기사를 써냈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영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이 말만큼은 공감했다. 선거란 자고로 열성적인 지지자를 진정시키고 중도의 표를 모아오는 행위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행위는 사실상 카터 행정부에 대한 지지를 잃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실드를 쳐도 너무 쳤다는 것이다.
‘그 반대급부로 떠오른 게 토런스 뉴 미디어였지.’
이들 역시 레이건 측을 지지하는 모습을 계속 보였지만, 문제는 현재 레이건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크다는 사실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카터 행정부와 야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구독을 취소했고, 토런스 뉴 미디어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러니 내가 데뷔할 곳으로 토런스 뉴 미디어를 택한 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신문 연재는 결국 ‘곁다리’이기 때문이지.’
장르 소설 잡지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그 잡지를 읽을 의향이 있는 독자에 의해 구매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신문은 그렇지 않았다. 신문을 구독하는 이들은 나머지 기사를 다 읽고 시간이 남으면 잠깐 본다는 개념으로 소설을 대했다.
그렇기에 신문사의 크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의 구독자가 늘수록 문화 섹션에 실린 소설을 읽는 사람 역시 많아질 터였다. 말인즉슨, 내가 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에 의해 입소문을 탈 가능성도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기왕 과거로 돌아왔으니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 다 써야지.’
일단 연재를 도전할 곳이 정해졌으니 남은 건, 소설을 쓰는 일뿐이었다.
나는 데뷔작을 내가 속한 문화권인 동양권의 색채를 보여줄 수 있는 소설로 쓰겠다고 결정했다. 그것은 전생에 내가 현실과 타협해서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속죄이자 도전이었다.
1980년대로 돌아와 평범한 열여섯의 생활을 지속하던 와중, 나는 자연스럽게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고 그걸 토대로 차근차근 발상을 이어 나가며 하나의 공포 소설을 구상해냈다.
장르를 굳이 공포로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래야 동양이라고 하는 색채를 살리면서 이 시대에 사는 여러 인종의 독자들을 포섭할 여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다.
일평생 다른 인종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미지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는 자신이 느끼는 편집증적인 공포를 풀어내 크툴루 신화라고 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창조하면서 코즈믹 호러라고 하는 장르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동양이라고 하는 문화권에 대해 일반적인 미국인이 가진 감정이 딱 그에 걸맞았다.
현재 시점에서 그들의 동양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외모적 이미지.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작은 눈이나 노란 얼굴 등.
다른 하나는 브루스 리나 아키라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적 이미지였다.
그들이 보기에 동양은 오래된 전통을 현재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세계였다. 실제로 한인들부터 시작해 동양인들은 미국에 이민 온 뒤로도 고국의 전통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하나는 세탁소나 마트 운영 같은 일을 통해 만들어진 현대적 이미지였다.
그 모든 게 합쳐져서,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을 눈이 째지고 자기들끼리 모여 다니며 세탁소를 열심히 운영하는 사람으로 보았다.
‘······물론, 이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문화적 이미지를 따올 생각이었다.
음과 양, 신비로운 주술적 의식과 Cho-sang(조상)이 자신을 돌본다는 사상.
그 모든 게 현대의 일반적인 미국인이 보기에는 ‘미지의 것’이었다.
여기까지만 하면 훌륭한 인종차별적 뉘앙스를 담은 ‘푸 만추’가 탄생한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여기에서 그칠 마음은 없었다. 내가 알고 접해온 동양의 색채를 담아 독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나’라고 하는 인물을 더할 생각이었다.
이민자 2세대.
고국의 땅은 가본 적도 없으며 동양의 문화를 접하고 자랐지만, 생각은 거의 일반적인 미국인과 비슷한 존재.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이상의 모든 생각은 글을 본격적으로 구상하며 잠시 내려놓았다.
장르 소설에 이런 주제 의식은, 마찬가지로 곁가지에 불과했다.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해.’
나는 내가 보고 접한 ‘미지’를 떠올렸다.
서로를 경계하던 학생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약자로서 혼자가 되어버렸을 때의 감정.
어머니와 함께 한인 교회에 가면서 들었던 가사를 알 수 없는 찬송가.
귀는 아팠고 혼란스러웠다. 아주 약간의 감정이었지만, 나는 그걸 증폭시켰다.
그리고 한인 교회에 도착해 만난 사람들.
‘예배를 드렸던 때까지.’
나는 한인 교회를 철저하게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았다.
······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덕분일지도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꽤 먼 미래에서 돌아온 나는 이때의 한인 교회가 어색했다. 어울릴 수 없다고 느꼈다.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그들은, 그래 마치 우스꽝스러운 인형극의 등장인물 같았다.
‘내가 만약 나 자신의 의지로 그곳에 간 게 아니라면?’
그걸 강요한 인물은 누가 될까.
“······.”
당연히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의 어머니, 진순복 여사.
물론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었다. 내가 한인 교회에 간 이유도 어머니를 위해서였으니까. 한인 사회에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티고자 하는 분의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 있는 어떤 작은 감정을 크게 증폭시켰다.
‘만약 어머니가 내게 교회에 가자고 강요했다면.’
그리고 그 교회가 상당히 비틀려 있다면?
아니, 사실은 어머니만 비틀려 있다면?
여러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리고 개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재료를 고른 나는 마치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철을 두드리듯이 소설을 써나갔다. 작디작은 상태에서 때로는 축소되고 때로는 거대해진 감정은 벼려져 하나의 ‘검’이 되었다.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화당 1,000자 분량의 소설을 5화.
기획을 마치고 소설을 쓰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작가에게 있어서 소설은 검이었다. 세상과 싸우기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잘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검은 자신을 찌르게 될 뿐이었다. 자아는 부정당하고 작가는 상처를 입게 된다.
‘나도 그랬었지.’
전생에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였던 소설은 현실과의 타협에 이용당하고 말았다.
그런 자신에게 실망했지만, 운이 좋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다.
부와 명예, 그리고 자아.
나는 차근차근 그 모든 걸 얻을 검을 만들었다.
***
로스앤젤레스의 바로 옆에 자리한 토런스는 마치 달과도 같은 도시다.
신문 기자인 사이먼 카버는 주로 그렇게 설명하는 편이었다.
딱히 낭만을 담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도시의 인구수는 12만으로, 300만에 달하는 로스앤젤레스에 비하자면 대략 지구와 달 정도의 크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지역에서 발행되는 ‘토런스 뉴 미디어’는 정치적으로 우파 쪽 신문이었고, 중도 좌파에 초대형 신문사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다 훨씬 더 영세한 규모였다. 그나마 정치적으로 반대 포지션을 잡았기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나 해야 할까.
문화 섹션은 그런 신문에서 일종의 팝콘과도 같은 포지션이었다.
영화관의 팝콘은 아니었고 코스 요리의 팝콘이었다. 누군가는 먹겠지. 배가 안 부르다면.
특히나 최근에는 더 그랬다. 11월의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기자들 개개인의 정치적인 색깔과는 별개로, 토런스 뉴 미디어는 신문의 판매 부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민주당인 지미 카터 행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후보로 나온 로널드 레이건의 승리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한 티를 내고자 노력했다.
사이먼은 그래봤자 ‘토런스 뉴 미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사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마다 세 번씩 있는 정기회의, 그중 아침 회의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레이건이 한때 캘리포니아 주지사였으니 대통령이 되면 자기를 도운 토런스 뉴 미디어를 봐줄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적용해 파이팅을 요구했다.
거기에 기자들은 저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레이건 인기 개쩌는데요. 그동안 카터 삽질한 거 보셨잖음.’
‘차라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힘을 합치지 않겠음?’
‘로탐 걔네 조만간 신문 컬러로 뽑을 생각이라던데.’
‘와, 진짜? 나도 로탐 구독해야지.’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의 중간쯤에 위치한 말들.
그걸 들은 사장은 좌우로 나뉜 콧수염을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
‘당장 나가서 민주당 조질 기삿거리라도 하나 뽑아 와!! 섹스 스캔들! 마약 스캔들 같은 거! 지미 카터가 기르는 개새끼가 옆집 개를 끝내 임신시키고 말았다고 해도 좋으니까!’
그렇게 기나긴 회의가 끝났다.
회의실 가장 구석에서 얌전히 앉아 있던 사이먼 카버는 느긋하게 회삿돈으로 산 머신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 경리인 미스 브라운에게 한 잔 주고 수다를 떤 뒤, 자리로 돌아왔다.
“푸후우.”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도시인 토런스, 그중에서도 작은 신문사. 그 안에서도 정치적으로 밀려서 하는 일 없이 작가님들 원고나 확인하고 교정한 뒤 매일 시간에 맞춰 식자에게 넘겨는 자신.
이걸 과연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저널리즘에 대한 포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루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치 싸움을 할 정도로 배포가 큰 인물도 아니고 말이야.’
사이먼은 자기 주제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부수입’으로 근처 출판사에 조금 괜찮은 원고를 양도해주는 게 아니었다면 기자의 박봉과 더불어 진작에 미쳐버렸으리라.
뭔가 대박 작품을 하나 내서 판도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현실적인 기자, 그게 사이먼 카버였다.
그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토런스 뉴 미디어는 이 작은 도시에서 가장 큰 건물에 자리했다. 그게 그나마 위안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좁은 우물 안에서 바다의 넓음은 알지 못해도 아름다운 별을 보며 살 수 있었으니까.
커피를 홀짝거리며 오전 시간을 다 보낸 사이먼은 팩시밀리로 도착한 원고를 확인했다.
“Shit.”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
아직 ‘골든 퀘스트’의 원고가 도착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비축분이 1화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걱정이었는데, 기어코 사고가 터졌다. 사이먼은 곧장 자리로 돌아가 토런스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 ‘앤드류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여보세요?]“아, 작가님. 사이먼 카버입니다. 통화 괜찮으실까요?”
[······지금 스미스 씨가 자리에 안 계시는데요.]“작가님 맞잖아요.”
[아닌데요. 저는 그 아들입니다.]“아들 두 살이잖아요.”
[Damn it.]“원고 언제 주십니까?”
[거의 다 됐습니다.]“정확히 언제요. 비축분 다 썼다고요. 지금 10일째 원고를 안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골든 퀘스트’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모험가였던 할아버지의 안경에 지도가 그려져 있음을 알아차리고 황금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25화 완결 예정으로 슬슬 클라이맥스였지만, 앤드류는 영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먼은 차분하게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문화 섹션의 유일한 담당 기자인 사이먼은 이렇게 작가들을 관리하는 역할도 겸했다.
그중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건 이런 경우였다. 원고 진도를 영 빼지 못하는 상황.
[······주인공이 슬슬 인디언들하고의 전투 끝에 황금을 발견하지 않습니까.]“그쵸.”
[여기에서 인디언 여자하고 사랑에도 빠지고.]“멋진 이야기죠.”
[그런데, 퀘스트의 마지막 보상으로 황금이 나오는 게 좋은 결말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주인공이 겪어온 사건과 그동안의 행적을 생각하면 마지막에 단순히 물질보다도 더 큰 ‘교훈’을 얻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가 좀 고민이라서.]“······.”
사이먼은 ‘Here we go.’라고 작게 이야기했다.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좋은 작가가 없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이먼은 책상 위에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서류 봉투를 발견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Shin Han’으로부터 온 편지.
그 안의 내용물이 앞으로 자신의 기자 생활을 크게 바꿀 것임을, 지금의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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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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