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53)
53.
남은 ‘Double spy : Part Han’은 마치 후일담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한은 쿠바의 방첩 요원들을 막아내면서 칼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한의 눈으로 보기에 어딘가 믿음직하지 못한 구석은 있어도, 칼은 스파이로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한은 그를 믿고 암호화 문서를 건네 뒷일을 부탁했다.
그렇게 카르텔 보스의 방으로 들어와 죽음을 기다리며 파이오니어에 대한 증오를 상기하던 중, 한은 그 방 안에서 숨겨진 탈출로를 찾아낸다.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카르텔 같은 겁 많은 악인들은 언제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지 않던가.
그 진리를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그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며 탈출한다.
그리고 대망의 ‘Part : Han’의 30화.
소련의 어딘가. 우중충한 뒷골목을 두 남자가 스쳐 지나간다.
바로 ‘슬러거’와 ‘세터’였다.
그래, 두 사람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으으으······!!”
‘Double spy’의 이야기를 다 읽은 두피는 참지 못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무나도 멋진 결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감상을 쓰라면 수십 페이지는 넘게 적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두피는 자신의 옆에 앉은 신을 보면서 소리쳤다.
“미쳤는데?!”
“고, 고마워.”
그 앞에서 미리 각오(?)를 해두었던 신은 이어지는 두피의 극찬에 그저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과거의 스파이와 현재의 스파이의 이야기를 각각의 소설에 연재하면서, 두 스파이가 대립을 거쳐 협력하는 부분까지의 이야기가 아주 훌륭해! 그리고 파이오니어라는 비밀 결사를 통해서 확실하게 궁금증을 남기면서 끝냈지! 이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평소의 신이라면 분명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그럴 수밖에. 소설의 완결 카피를 보고도 바로 다음 내용을 물어보니까.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신은 빙긋 웃으면서 두피가 들고 있는 신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페이지 하단을 확인해 봐. 두피.”
“응······?”
그 말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하단을 확인한 두피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Double spy : Comics’ 발매 예정!]두피의 반응을 본 신은 미소를 지었다.
헤븐즈 코믹스의 일원들이 갈아 넣은 결과로, 연재 중의 발간은 무산되었지만 어떻게든 작품의 완결 시점에 맞췄다.
두 스파이의 실루엣이 표현된 광고를 본 두피는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열었다.
“대, 대대, 대체 언제부터야?!”
“연재 중반쯤부터였어. 미안, 다른 회사와의 일이라서 미리 이야기해 주지 못했네.”
“이거라면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더 대박 나겠는데?! 애들이 엄청 좋아하겠다!”
“나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 그리고 코믹스로 두 스파이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거지.”
“그것까지 노린 거야?!”
“응. 소설을 통해서 쓰고 싶었던 ‘Double spy’는 이미 다 썼어.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친 두 스파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스토리 말이야. 이제 나머지는 소설보다 좀 더 적합한 매체에서 풀어가는 것도 좋겠지 싶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신. 코믹스가 나온다면 어린아이들도 더블 스파이에 환장할 거야!”
낄낄거리며 웃는 두피 킹스턴.
더블 스파이를 극한까지 즐겨준 친구의 반응에서, 신은 이 이야기가 원하던 반응을 얻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하며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레지앤베이 토이스로부터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그걸 혼자서 열어보기는 아깝다고 생각했고, 신은 두피를 집으로 초대했다. 2층의 방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건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했지만, 막상 자리를 잡고 여느 때와 같은 익숙한 대화를 나누자 괜찮아졌다.
언제부터인가 신의 방에 있는 벽장은 줄곧 닫힌 채였다.
“그럼, 슬슬 열어볼까.”
“나도 시제품은 직접 못 봐서 기대가 되네.”
더블 스파이의 첫 번째 장난감인 ‘Spy Karl’s Necktie-bat Balloon’이 도착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출시가 오늘이라고 했지.”
“지금쯤 시내의 가게들에 이 풍선이 전시되어 있을까?”
“상상만 해도 멋져! 아이들이 사달라고 부모님을 실컷 조를 거야!”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두피.
신은 잘 포장된 비닐을 뜯어 제품을 꺼내 들었다.
비닐 포장지 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넥타이 같지만 위험 상황에는 배트가 되죠!]넥타이처럼 생긴 납작한 풍선의 한쪽 면에는 ‘Spy Karl’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검은 바탕에 사선으로 하얀 선이 그어진 채였다. 포장을 뜯고 풍선을 불어보자 이내 야구 배트 모양으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걸 잡고서 휙휙 휘두르던 신은 생각보다 좋은 퀄리티에 감탄했다.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거 멋진데? 두피, 어때?”
“······아니, 전혀.”
“응······? 왜?”
“봐봐, 신.”
두피가 중지와 약지를 엮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그 앞에서 신은 왠지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전문가(?)의 시선은 역시 날카로웠다.
“막 꺼냈을 때 너무 쭈글쭈글하잖아. 이걸 어떻게 넥타이로 쓰겠어?”
“그 부분은 애초에 풍선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건 그런데, 그래도 뭔가 아쉽기는 하네. 포장 방식을 다르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 그러면 소비자가가 좀 올라가려나?”
얇은 고무풍선을 목에 대본 두피가 씁쓸하게 웃자, 정작 원작자인 신이 위로하듯 말했다.
“앞으로 더 좋은 제품이 많이 나오겠지. 사운드 이터라던가.”
“······! 그것도 맞는 말이야! 이제 코믹스도 나오니까! 분명 잘 팔릴 거야! 이 풍선!”
“그래. 그리고 네 꿈도 이루어질 거야.”
“저, 정말 고마워. 신. 다 네가 좋은 작품을 써 준 덕이야.”
“아냐. 오히려 나는 네가 사운드 이터를 만들어 준 게 고마운데. 그 덕에 레지앤베이 토이스에서 내 작품을 장난감으로 만들 생각을 했잖아.”
“마치 칼과 한 같은 느낌이네.”
“서로 이득을 봤으니까?”
“그래! 같은 길을 추구하는 특별한 전우가 되었지!”
신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두피와의 관계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같은 흥밋거리를 공유하며 별 이유 없이 노닥거릴 수 있는 우정.
전생의 같은 시기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이 감정에 신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신. 나 생각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어, 뭔데?”
“옛날에 디텍티브 램 이름을 달고 나온 ‘램 카’ 기억나?”
“그 장난감? 나긴 하지. 그게 왜?”
“그냥 어제 별생각 없이 그거 가지고 놀다가 ‘블랙 스톰’도 이런 식으로 상품화가 이루어지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사실, 완구사 입장에서 보면 사운드 이터보다 이쪽이 먼저라고 생각하거든.”
“그래? 사운드 이터도 충분히 좋지 않아?”
“아냐. 신. 아이들은 ‘탈것’을 좋아한다고.”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두피를 보면서 신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장난감 쪽은 문제없겠는데?’
두푸스 킹스턴이라는 열정적인 완구 디자이너가 함께했으니까.
***
‘Part Han’까지 무사히 완결되고 며칠 뒤, ‘Spy Karl’s Necktie-bat Balloon’의 뒤를 이어 기다리던 더블 스파이의 코믹스 버전이 발매되었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Double spy’는 기존부터 좋은 평가를 받던 작품이었고, 신문 연재라는 특성상 일반 독자층이 꽤나 많았다. ‘Double spy : Comics’는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잘 팔려나갔다. 상황을 살피러 코믹스북 스토어를 들렀을 때, 평소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고 나 자신부터가 그 인기가 심상치 않음을 실감할 정도였다.
‘Double spy : Comics’ 이슈 1화가 발매되고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하고 복도를 걸어 교실로 이동하는 동안, 더블 스파이의 만화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을 몇몇인가 발견했다. 귀가 쫑긋 섰다. 심지어 개중에서는 규칙으로 반입이 금지된 학교에서 코믹북 밀거래(?)를 시도하는 악의 무리(?)도 있었다.
‘반응 괜찮은데?’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교실에 도착한 나는 조금 더 놀라운 광경을 눈으로 보았다.
······남자애들이 교실 앞쪽에 모여 넥타이 배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세상에나.’
열일곱이라고 하는 나이에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풍선 장난감을 학교에 가져와서 놀다니.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아니, 자기 욕망에 솔직할 수 있는 저 모습이 어딘가 조금 부럽기도 하고.
미식축구부에 속한 남학생 무리가 배트를 들고 한창 칼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연구(?) 중이었다.
“어어, 내가 이렇게 치고 들어가면.”
“옆으로 피하면서.”
팡팡-!
풍선으로 만든 배트가 남학생의 머리와 옆구리를 순간 가격했다.
“아니지. 그렇게 때리면 팔을 잡고······.”
“나는 다시 그 잡은 팔을 꺾고······.”
“그럼 잡은 팔을 다시 잡아서 꺾고······.”
어디까지 가는 거야.
황당해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나는 소란스러운 옆을 돌아보았다.
몇몇 여학생이 모여 코믹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칼, 진짜 잘생겼더라!”
“하지만 한은 아직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어. 한이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했는데.”
“야야, 기대하지 마. 수염 달린 아저씨일 텐데.”
“나의 한 님을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이쪽은 이쪽대로 수상한 분위기였다.
‘······만화가 잘 팔리는 거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미국의 틴에이저는 이대로 괜찮은 건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로 향했다.
2학년이 되었다고 하지만, 딱히 학교생활에 큰 차이는 없었다. 똑같이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공부하기를 반복. 앞선 1년 동안 제법 친해진 두피하고 같은 수업을 여러 개 신청해서 같이 듣고 있다는 사실 정도가 그나마 생긴 변화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항상 앉는 자리를 차지한 나는 옆자리의 두피에게 말을 건넸다.
“좋은 아침, 두피.”
“······어, 신.”
멍한 눈으로 교실을 둘러보고 있는 두피.
그 시선을 확인하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건 아니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개발과 출시 과정에 관여한 상품을 사람들이 직접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참으로 많은 기분이 들겠지.
그 여운을 즐기게 놔두자고 생각하면서 나는 각자 무리를 지어 놀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니 문득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녀석, 오늘도 안 오나? 만화책 나왔다면서 올 줄 알았는데.’
알렉사 플레어였다.
최근 들어 치어리딩 클럽 활동 때문에 서로 조금 소원해진 그녀.
그래도 두피네 집에 함께 놀러 간 기억 덕분인지 만나면 서로 살갑게 인사 정도는 나눴지만, 그마저도 자주 마주치지 않으니 거의 줄어들었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 클럽 활동이 더 바빠졌는지 같은 수업을 들을 때 교실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정도였다.
‘수업 끝나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1교시 수업을 맡은 교사가 들어왔고, 미식축구부 남자애들은 가지고 놀던 넥타이 배트를 빼앗기고 말았다.
“아······.”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소리 내는 두피.
아니,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나 더 팔리겠군.’
비싸지 않은 풍선이야 하나 더 사면 그만이니까.
***
늦은 오후, 학교를 마치고 가게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이런 말을 전해왔다.
“신아. 너한테 누가 전화 달라더라.”
“아, 누가요?”
“글쎄, 이름이 ‘위험한’이었는데.”
“······네?”
“데인절, 데인거? 그런 이름이었어.”
“아, 누군지 이해했어요.”
“휴, 엄마가 제대로 전달한 거 맞지? 갑자기 영어로 솰라솰라해서 깜짝 놀랐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생각해 보면 내 하교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전화할 사람이 몇 없기는 했다.
‘덴젤이었군.’
전화한 이유야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Mother’의 종이책 출간과 관련해서겠지.
때마침 타이밍이 겹쳐서, ‘Mother’의 종이책 출간을 위한 일러스트 작업 및 편집 작업이 모두 끝나 다음 주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동안 덴젤과 나는 작업을 함께해 오면서 비즈니스 파트너를 넘어 어느 정도 살가운 관계가 되었다. 오늘 전화는 출간 전에 서로 고생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겠지.
어머니와 일을 교대한 나는 카운터 자리에 앉아 곧바로 덴젤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정겨운 이 당시의 통화연결음이 귓가를 간지럽혔고, 곧이어 덴젤이 전화를 받았다.
[네, 토런스 뉴 미디어입니다.]“덴젤, 신이에요.”
[아,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저야 잘 지냈죠. 덴젤은 좀 어땠어요? 일러스트 막바지 작업 때문에 이래저래 고생하셨을 것 같은데. 그래서 요즘 연락도 뜸하셨고.”
[하하, 조금 시간에 쫓기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작품이라 힘든 것 이상으로 즐겁게 했습니다. 아, 더블 스파이 완결과 코믹스 출간도 축하드립니다. 이래저래 좋은 일이 겹치고 있네요.]“그러게요. 덴젤하고 작업한 책도 이제 곧 나올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작가님. 책 발간되면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에이, 식사는 오히려 제가 사야죠. 멋진 일러스트로 ‘Mother’를 빛내주셨는데.”
[그게 아니라, 책 발간된 주 주말에 집에서 조촐하게 친지들끼리 파티를 열까 했거든요. 어머니가 바비큐를 한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와주신다면 저희 가족 모두가 좋아할 거예요.]“아, 전에 말씀하셨던 홈 파티로군요. 제가 정말 그 자리에 가도 되는 걸까요?”
[오히려 영광이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가족 모두가 작가님의 팬이거든요.]“그러시다면야.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게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홈 파티. 주말마다 한 번씩 열리고는 하는 보편적인 미국인의 이벤트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대를 받는다는 것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었다.
덴젤과 계속해서 관계를 쌓아나가야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매너 있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그 제안에 흥미가 생겼다.
더욱이 앞으로 그가 그려나갈 그림 역시 무척 좋아했으니까.
***
그로부터 며칠 뒤 주말.
‘Mother’의 발간을 기념한 홈 파티에 초대된 나는 덴젤이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멀끔한 느낌의 개인 주택.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으로 사람이 나왔고, 그 순간 나는 돌처럼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야말로 뇌가 ‘정지’했다.
“······어라? 신, 네가 여기 왜 있어?”
긴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채, 흰색 크롭 티와 청팬츠를 입고 있는 소녀.
두피 킹스턴 때처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의 시즌 2가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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