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56)
56.
빌은 버거 하우스의 정규직으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이었다.
패티를 7장까지 연속으로 뒤집을 수 있고 치즈버거를 7.2초 만에 조립하는 그를 동료들은 경외감을 담아 ‘Seven’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하지만 그의 진가가 더더욱 발휘되는 장소가 존재했으니, 바로 버거 하우스 근처에 있는 코믹북 스토어였다.
이곳에서의 빌은 ‘Master’였다.
코믹북 마스터. 그는 온갖 종류의 코믹북을 빠짐없이 수집하고 섭렵하며, 한정판이나 값비싼 굿즈는 굶어서라도 어떻게든 구매했다. 집 지하실에는 박물관을 만들어도 될 정도의 ‘환상’이 계속 쌓여갔으며 어머니의 주름은 늘어만 갔다.
그는 주말마다 코믹북 스토어에 상주하며 가게를 찾는 단골이나 초보 손님을 상대했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워낙 빌이 물건을 많이 사줘서 어쩔 수 없이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가끔 눈치를 주기도 했지만, 당연히 빌은 알아듣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짝사랑했던 옆자리의 여학생, 제니의 ‘기분 나빠.’라는 말 한마디에 코믹북 마스터가 되어버리고만 슬픈 과거를 가진 남자, 빌.
직장에서는 ‘세븐’, 코믹북 스토어에서는 ‘마스터’인 그의 유일한 크립토-나이트(업계 용어로 약점을 뜻한다)는 바로 ‘여자’였다.
“······이봐, 마스터.”
그의 옆에서 조그마한 체구의 프레드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빌의 로빈(업계 용어로 옆에서 깔짝대는 사람을 뜻한다)이었다.
“어, 어쩌지?”
“뭘 어쩌긴 어째.”
빌은 두툼한 뱃살 위에 손을 얹고는 애써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그냥 손님이잖아.”
“그렇긴 한데······! 모, 모르겠어! 왜 좋은 냄새가 나지?!”
“아아, 저건 ‘향수’라는 거다. 뿌리면 좋은 냄새가 나지.”
“역시, 마스터······. 모르는 게 없군.”
“후후, 이 자리는 폼으로 꿰찬 게 아니라고.”
서로를 바라보며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는 빌과 프레드.
그런 두 사람을 슬쩍 돌아본 알렉사 플레어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두피는 이미 신이 나서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제 어디 있는 줄도 모르겠다. 안경을 쓰고 있는 사내들은 덩치가 크거나 빼빼 말랐는데, 중간쯤 체격의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던 알렉사는 사내들이 조금씩 자신으로부터 물러서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뭔가 잘못한 게 있을까 싶어 뒤를 돌아보자, 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왜, 왜왜, 왜 다들 나한테서 멀어지는 거야?”
“······무서우니까.”
“내가 왜? 뭘 했다고? 오히려 내가 무서운데?”
“알렉사. 네 생각보다 섬세한 사람들이야.”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신을 믿고 그 말대로 코믹북 가이들을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하며 알렉사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죄다 코믹북뿐이네.”
“그렇지. 안쪽에는 D&D나 보드게임 같은 것도 있기는 한데.”
“오, 나 이 사람들은 알아. 슈퍼맨하고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맨이지? ‘슈퍼 프렌즈’, 오빠랑 가끔 같이 보거든. 그런데 왜 거기에 스파이더맨은 안 나오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코믹북 스토어의 모든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드라마 ‘소머즈’에 나오는 초-청각 능력에 각성한 것처럼, 그들은 알렉사 플레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신이 아이를 돌보는 심경으로 왜 ‘슈퍼 프렌즈’에 스파이더맨이 나올 수 없는가를 설명하려던 찰나,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배트맨과 로빈, 아니, 빌 앤 프레드였다.
배트맨, 아니, 빌이 말을 걸었다.
“아가씨.”
“······아가씨?”
알렉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빌은 자기가 알아서 –9999의 대미지를 입었다.
‘Lady라고 부르지 말 걸 그랬나? 너무 고풍스러운 단어였나? 오른쪽 눈썹을 미묘하게 30도 정도 꺾었어. 불쾌감의 표시로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침착해라. 빌. 코믹북 마스터는 절대 당황하지 않는다. 이건 또 다른 수어사이드 미션일 뿐이야.’
그는 계산(?)을 끝마치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슈퍼 프렌즈는 DC 코믹스 작품이야.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지.”
“······네?”
빌은 또다시 –9999의 대미지를 입었다.
그 뒤에서 신이 설명했다.
“애인절스와 양키스 같은 거야.”
“아~.”
알렉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빌에게 웃으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무척 친절하시네요.”
살갑게 말을 건네는 알렉사의 모습을 본 코믹북 가이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진 적은 처음이야······!’
‘바네사······! 아아······! 바네사!! 내가 미안했어!’
‘저런 치어리더 걸이 친절하다니! 천사인가!!’
그리고 그 뒤에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신은 씁쓸하게 웃었다.
‘방금 그 한마디로 다들 알렉사에게 반한 모양이군.’
예나 지금이나 너드들은 한결같았다. 신 자신도 나이를 먹기 전까지는 사람을, 개중에서도 특히 여자를 상대하는 일이 어려웠었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사내들은 대부분 30대처럼 보였지만, 그건 관리의 부재에 따른 디버프로 원래는 20대 초중반 정도일 터였다.
‘그래도 다들 순수한 사람들이지.’
신은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빌과 프레드는 의기양양해진 채 돌아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용기를 내서 보낸 호의였고, 그로 인해 알렉사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져 과감하게 가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 시대의 코믹북 스토어는 단순히 만화책만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너드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물건이 가득한 장소에 가까웠다. 가게 앞에는 코믹북이 주를 이루었지만, 안쪽의 다른 방에는 작은 오락기나 핀볼 머신, D&D, 보드게임도 함께 판매 중이었다.
거기다 더 멋진 점은, 구매한 보드게임을 곧바로 이곳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호······.”
약간 어두운 조명, 핀볼머신의 사운드 가운데에서 너드들이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알렉사가 안으로 들어서자 다들 공포에 질린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앞선 일로 자신감이 붙었던 알렉사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Hi~.”
그러자 보드게임을 접고 황급히 철수하는 그들.
“······왜?”
상처받은 얼굴을 한 알렉사의 뒤에서 신이 위로를 건넸다.
“걱정 마. 네 잘못이 아니니까.”
“하, 하지만 저 사람들 내가 오니까 다 나갔는데?!”
“다른 일정이 생겼나 봐.”
너드들의 복잡한 심경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신은 그렇게 일축하며 넘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는 D&D 코너 쪽에 서 있는 두피를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두피, 뭐 보고 있어?”
“아, 신. 이거 봐.”
두피가 눈앞에 놓여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신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눈앞에는 웅장한 벽돌로 이루어진 외관과 곧게 뻗은 붉은색 지붕이 인상적인 성이 놓여 있었다. 오래되어 풍화된 흔적이 곳곳에 보였고 나무줄기가 벽을 파고들었다. 심지어는 거미줄도 재현되었을 정도였다.
신은 떨리는 눈으로 가격을 확인했다.
[-비매품-]“······다행이야.”
“그렇지?”
“아아, 정말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가격이 적혀 있다면 나도 모르게 샀을 테니까.”
신의 떨리는 목소리에 알렉사는 또다시 ‘그 표정’을 지었다.
지금 얘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이 제작하신 건가?”
“아마도 그래 보여. 굉장히 정교한 미니어처야. 거기다가 여기 접합선 보이지?”
“접합선······?! 이런 멋진 성에 접합선이 있다고?!”
“신, 진정하고 생각해 봐. 왜 있겠어?”
“서, 설마!”
“그래, 바로 그 설마야.”
두피가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놀랍게도 이 성은 뚜껑이 ‘열리는’ 구조였다.
“내부에 미니어처 피규어를 두고 D&D를 플레이하는 거야. 죽여줄 것 같지 않아?”
“미쳤군.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데미우르고스와도 싸울 수 있겠어.”
“후후, 그 장엄한 전투에 이 ‘세인트 두피’도 빼놓지 말아 달라고. ‘워리어 신’.”
“······.”
알렉사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누군가와 몸이 살짝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
평균보다 작은 편인 자신보다 더 조그마한 체구의 사람.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검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이나 인종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알렉사 옆에서 D&D에 쓰이는 주사위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던 그 사람은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이윽고 뒤로 돌아섰다. 알렉사는 왠지 흥미가 생겨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자?’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서점에 코믹북 스토어, 아이스크림과 영화관을 거치며 저녁까지 이어진 하루가 끝났다.
너무 늦지 않게 친구들과 헤어져 버스에 탔다. 나는 알찬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귀갓길에 올랐다.
이래저래 즐거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개봉되고 4개월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 상영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였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그런지 다들 이미 다 봤지만, 알렉사가 한 번 더 보고 싶다 이야기해서 재관람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람에서 나는 영화 외적인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레이더스’를 비롯한 ‘인디아나 존스’ 3부작은 확실히 80년대를 관통한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우주 명작이라고 해도 4개월 가까이 극장에 걸려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이더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좀 흥미롭게 느껴졌다.
‘확실히 좋은 작품은 계속해서 돈이 되는군.’
전생에 내가 알고 지냈던 편집자도 한 말이었다.
작품이 시장에 나와 있고 거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는 이상, 어쨌든 간에 돈이 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비록 종이책이 아니라 인터넷 연재 시장을 기준으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게 지금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는 통용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시내 곳곳에서 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다.
사람들은 일러스트가 추가된 ‘Mother’를 샀고, 만화로 발매된 ‘Double spy : Comics’를 읽었다. 공항과 기차역에서는 일러스트가 빠진, 읽고 버리기 딱 좋은 버전의 ‘Mother’가 팔리고 있을 테고, 기차에 탄 아이들은 더블 스파이 배트 풍선을 가지고 놀겠지.
고작 두 개의 신문 연재작으로 이만한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게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현재 열일곱의 소년이 벌었다기에는 상당히 많았다. ‘Mother’와 ‘Double spy’의 신문 연재 원고료를 시작으로, 두 작품 모두 제각각의 미디어 프랜차이즈화가 이루어지면서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 내가 신문 연재로만 벌어들인 돈은 대략 26,000달러 정도. 거의 평균적인 직장인 연봉의 2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Mother’는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종이책으로도 발간되었다. 사이먼이 전한 바에 따르면 판매 속도가 심상치 않아 벌써 출판사에서 증쇄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Double spy’도 마찬가지로, 코믹스와 완구 쪽으로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호응을 얻었다. 게다가 그건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더블 스파이 코믹스는 계속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레지앤베이 토이스도 후속 상품을 준비한다는 모양이었다.
‘코믹스 작가들도 좋은 사람들로 뽑은 거 같고.’
‘Double spy’의 원작은 끝났지만, 작품에서 이런저런 떡밥을 남겨둔 만큼 앞으로 코믹스가 좋은 반응을 얻어 장기 연재로 끌고 나갔으면 했다. 내가 쓴 칼과 한의 이야기는 일단락되었지만, 작품 자체가 그런 식으로 계속되는 경우는 사실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나도 헤븐즈 코믹스 측에서 요청해 오면, 스토리의 검수나 시나리오로 짤 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생각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 작품에 생명력을 계속해서 불어 넣으면 앞으로 나오게 될 ‘Double spy’의 종이책의 판매에도 분명히 큰 도움이 되겠지.
그래, 그쪽도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Mother’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출판사가 ‘Double spy’의 종이책 출간에 큰 관심을 보였고, 나에게는 이제 가장 합리적인 제안을 해오는 이들 중에서 선택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내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벌어들인 돈은 약 45,000달러 정도.
그 대부분은 어머니께 드렸고, 덕분에 우리 집의 사정은 많이 나아졌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해진다고 했던가.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던 전생처럼 힘든데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가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래저래 갈 길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꾸준히 나다운 글을 쓰면서 나아갈 생각이었다.
못다 한 추억을 쌓기도 하고, 전생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알기도 하면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집에 도착하니, 손님이 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년의 여성과 조그마한 여자애와 둘러앉아 커피를 즐기던 어머니가 내게 그들을 소개해 왔다.
“아, 신아. 인사하렴. 이번에 근처에 새로 이사 오신 분들이야.”
“안녕······하세요?”
“네가 신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여기는 우리 딸, 지우.”
살갑게 인사하는 중년 여성과 달리,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검은 후드를 입은 소녀.
그 모습을 본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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