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67)
67.
알렉사 플레어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학교를 마치고 시내에 들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학교와 집, 치어리더 클럽을 오가는 주중의 루틴을 가끔 환기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주말에는 TRPG를 통해 이래저래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하루를 대충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때면 싸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근처 서점에 들러서 이런저런 잡지를 탐독하다가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도넛 가게에 자주 오는 경찰인 마크라든가, 아니면 새로이 간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웨이트리스인 에이미라든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알렉사에게 있어 딱히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쉬운 일인 동시에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과는 다른 상대방의 사고방식에 대해 의식하게 될 때면, 알렉사는 자신의 자아가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이상하고도 신기한 감각이며, 동시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생겼다.
바로 코믹북 스토어의 너드 가이들이었다.
신과 TRPG를 시작하고 몇 번인가 시내를 오면서, 알렉사는 이전까지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코믹북 스토어’가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걸 느꼈다.
친구들과 함께 TRPG를 즐겁게 플레이한 경험을 가지게 된 그녀였기에, 이곳 사람들과도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곳에 들어가기는 왠지 모르게 좀 겁이 났다.
‘대체 왜?’
알렉사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 자신의 마음이 좀처럼 잘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그냥 같은 사람일 뿐인데.
사실은 이곳에 처음으로 들렸을 때의 기억 때문이었지만.
‘난 그들과 똑같은 손님이잖아. 겁먹을 필요 없다고. 그냥 물건 사러 온 거니까.’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알렉사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었다.
그러자 코믹북 스토어 안의 공기가 확연히 뒤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조용히 책만 읽고 있던 안경을 쓴 사내들이, 마치 둥지 안에 포식자가 들어온 참새처럼 얼어붙어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행동은 알렉사가 보기에 그것대로 무섭게 느껴졌다. 도대체 저들이 왜 저런 식으로 자신에게 반응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으앙, 신. 도와줘.’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 고등학생, 금발, 치어리더.
이 네 가지 특성이 갖는 파괴력은 엄청났다. 알렉사를 본 것만으로도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재생될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미식축구부 라인맨에게 처맞고, 동경하던 치어리더에게 기분 나쁘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들.
알렉사가 어떻게 행동하기도 전에, 코믹북 너드 가이들이 구석으로 숨었다.
“아, 아······?!”
허공에 손을 내뻗은 채 알렉사는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내 머릿속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최근 들어서 꽤 친해진 지우하고도 처음에는 이런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만 하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을 트게 됐는데,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알렉사는 이내 언제 그랬는지를 기억해 내고 손을 번쩍 들면서 소리쳤다.
“저, 저 TRPG 주사위 사러 왔어요!!”
지우와도 TRPG를 플레이하면서 공통 분모를 만들고 친해졌다. TRPG에 쓰이는 형형색색의 주사위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개인적으로 말을 트기 시작한 것이었다, 알렉사가 이 코믹북 스토어에 찾아온 것도, 사실은 개인용 주사위를 사기 위함이었다. 조금쯤 으스대면서 지우하고 조금 더 친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처럼 알렉사는 지금 눈앞의 너드 가이들과 자신이 같은 사람(?)임을 어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가게 안의 사내들은 전부 비슷한 감정을 떠올렸다.
‘거짓말······!’
‘너희는 TRPG를 기분 나쁘다고 하는 쪽이잖아!’
‘나를 인간 주사위로 만들어 굴리던 놈들과 다를 바 없어!’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편견의 힘은 엄청났다.
현재 알렉사는 밸리 걸과 톰보이를 적당히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단정한 미모, 적당히 차려입은 원피스에서 캘리포니아 같은 느긋한 대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듯한 아가씨 같았고, 금발을 하나로 질끈 묶고 가죽 재킷을 걸쳐 입었다는 점에서 톰보이를 연상케 했다.
이질적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알렉사 플레어라고 하는 인물이 완성되었으며, 그것은 코믹북 스토어의 참새들이 보기에 ‘팔콘’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끝없이 대치 상황이 이어지려나 싶던 찰나였다.
코믹북 스토어 안쪽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을 알아본 알렉사가 환하게 웃었다.
“아······!”
“오랜만이군. 아가씨. 주사위를 사러 왔다고?”
바로 코믹북 마스터인 빌과 그의 사이드킥인 프레드였다.
참새들은 알렉사에게 편하게 말을 건네는 빌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역시 이 가게를 드나드는 모든 너드 가이들의 존경을 받는 자다운 모습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래, 그쪽은?”
“요새 TRPG 시작했어요. 재미있던데요?”
“어떤 시스템으로 플레이하고 있지?”
“음······ KOG였나?”
“KOG. 멋진 룰이지.”
빌은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던 너드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TRPG를 했다고?’
‘저 사람, 혹시 천사?’
‘엄마. 나,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생긴 것 같아요.’
알렉사는 코믹북 너드들의 생각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사람이 반가워 신이 난 채 재잘거렸다.
“이번에 레벨 올라서 3이 됐어요.”
“그 정도면 길 가다 나오는 산적쯤은 수월하게 처리하겠군. 정규 세션이 있나?”
“세션? 아, 주말마다 같이 플레이하는 친구들 있어요. 네 명! 히히!”
“마스터까지 다섯인가? 좋은 동료들을 만났군.”
“마스터? 아, 신을 말하는 거구나. 신이 마스터고, 걔 포함해서 넷이에요!”
“파티원은 셋이로군. 초보 파티면 모험하면서 이래저래 어려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음, 저랑 다른 한 명은 처음 하는데, 나머지 한 명이 엄청 잘해요. 레벨이 18이었던가?”
“뭣······?!”
“응? 뭐 문제 있어요?”
“KOG에서 18레벨이면 드래곤을 죽여본 경험이 있다는 말이다. 굉장한 동료를 두었군.”
“맞아요. 두피가 아는 것도 많고 도움도 많이 줘요. 그래도 싸움은 주로 저나 지우가 하죠.”
“아, 로드 두푸스를 말하는군. 대단한 친구지.”
“어라? 두피를 아세요?”
“그래. 그는 나와도 함께 모험을 완수한 적이 있는 남자다. 초보자 파티에 멘토를 하나 둔 방식으로 진행 중인가. 흥미롭군.”
정리를 마친 빌은 턱을 매만졌다.
대화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알렉사는 딱히 ‘소드 앤 소서리’의 팬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TRPG 세션과 캐릭터에 애정을 품고 있었다. 말인즉슨, 마스터가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잘 마스터링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생각에 다다른 빌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봐, 아가씨. 혹시 그쪽 모험이 끝이 난다면······ 다음에는 이쪽에도 오라고.”
“응?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당연하지! 아가씨는 어엿한 KOG 플레이어라고. 언제든지 와도 돼.”
“오! 좋아요. 우리 이야기 끝나면 참여하러 올게요.”
“그래. 여기에도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신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보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며 돌아본 빌은 눈빛이 닿자마자 삽시간에 샤샤샥 모습을 감추는 너드 가이들을 보며 쓰게 웃었다.
“다들 부끄러워서 저럴 뿐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빌의 말처럼 알렉사는 매대에서 거의 눈만 빼꼼 내밀고 있는 너드 가이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빌이 한 이야기 중 하나가 순간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친구들.
그것은 알렉사 플레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제 중 하나였다.
알렉사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주사위, 다음에 사러 와도 될까요?”
“마음이 바뀌었나?”
“요즘 들어서 함께 주사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하고 같이 오려고요.”
“언제든 같이 오라고. ······이 코믹북 스토어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싱긋 웃으며 안경을 밀어 올리는 빌.
하지만 이 순간 모두가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은, 그가 이 코믹북 스토어의 주인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알렉사 플레어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자신과 다른 인종인 어머니, 오빠와 한 가족으로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상황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알렉사는 평범한 미국인보다 훨씬 빠르게 ‘다름’에 대해 인지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타고난 성격 자체가 민감한 측면이 있기에, 그녀는 딱히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고, 자신만의 아집에 사로잡힌 채 살아갔다. 항상 ‘옳음’을 결정하려고 들었으며 ‘정답’을 찾으려고 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사연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피부색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행동과 모습, 좋아하는 일까지 분류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과 결이 맞는 이만 만났고, 그 선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배척했다.
‘왜 그걸 가지고 사람의 가치까지 판단하냐고.’
사실 알렉사는 자신이 그들의 사회에서 최상위 포식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름다운, 백인, 소녀. 가정환경도 나쁘지 않고 성격 자체가 예민한 구석이 있어도 스스로 그런 면을 컨트롤 하면서 지냈기에 언제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었다. 알렉사는 절대 자신의 가정환경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굳이 나서서 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알아서 알렉사가 백인 가정의 딸일 거라 생각하고는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남들과 항상 마음의 거리를 두고 지냈다.
남들 역시 알렉사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았지, 내면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사정을 알게 되면 깨어있는 사람인 척 말하지를 않나, 더 어색하게 굴었다.
‘그게 싫어서 그런 애들하고는 거리를 뒀지.’
그리고 자신 역시 비슷하게 행동했다.
이런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고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타인의 다름을 알고자 들었을 뿐, 진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따라서 코믹북 스토어에서 들은 말이 마음을 울릴 수밖에 없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가던 이들이 한곳에 모인다.
그들이 사랑하는 환상의 세계로.
그 속에서 알렉사는 자유로웠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가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면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이런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준 신과 함께.
그런 생각이 들자, 주말이 평소보다 더 기다려졌다.
어서 그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토요일 아침.
“후우.”
왠지 전과는 달리 심장이 떨렸다.
알렉사는 어머니가 선물로 가져가라며 챙겨준 수제 올리브오일을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일전에 코리아타운에서 한 번 본 적 있던 중년의 동양인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오, 알렉사?”
“아, 안녕하세요?”
“■ ■■■ ■■■■!”
“······?”
“컴 인! 컴 인!”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신의 어머니는 알렉사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현관으로 들어선 알렉사는 종이호일과 천으로 새지 않도록 꼼꼼하게 감싼 올리브오일을 내밀었다.
“이거, 어머니께서 드리라고 하셔서요.”
“오, 땡큐! 땡큐! 신! ■■■ ■■■■!!”
“???”
알 수 없는 언어의 홍수 속에서 알렉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신.
알렉사는 약간 얼굴이 붉어진 채 손을 들어 인사했다.
“헤, 헬로!”
“왔어? 잠깐만. ■■■, ■■■■.”
“오케이, 오케이. 해브 어 굿 타임!”
“가자. ······미안, 어머니가 영어를 잘 못하셔서.”
“그, 그래?”
“응, 별 이야기는 아니었어. 그냥 친구 왔고, 지하실에서 놀겠다고 말씀드렸지.”
알렉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눠 생기는 괜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신은 일부러 어머니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소상히 설명했다.
그러자니 알렉사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
“또 지하실이야?”
“지하실, 최고잖아.”
“어째서······?”
“비밀 기지 같아서.”
“비밀 기지가 뭔데?”
“비밀로 만든 기지.”
“······그게 왜 멋있어?”
“그런 게 있어.”
도저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극을 적당히 넘기는 두 사람.
그렇게 지하로 내려간 알렉사는 먼저 와 있던 ‘세 사람’과 마주했다.
두피 킹스턴, 지우 장, 그리고······.
“아! 안녕하세요~!”
사이먼 카버였다.
신이 주중에 미리 파티원들의 동의를 구해 토런스 뉴 미디어의 문화 섹션 담당 기자가 이 TRPG에 잠깐 합류했다.
싱글싱글 웃는 그에게 알렉사도 똑같이 활짝 마주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알렉사 플레어라고 해요!”
“사이먼 카버입니다! 하하! 오늘은 잘 부탁드려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같이 재미있게 모험해 봐요!”
“······.”
그 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은, 알렉사의 존재 자체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녀가 존재함으로 인해 어떻게든 분위기가 풀릴 듯했다.
‘다들, 지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까.’
신은 하염없이 주사위만 굴리고 있는 두피와 자신의 캐릭터 시트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지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렉사가 오기 이전, 사이먼의 활기찬 인사에 두 사람은 정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극도로 외향적인 성격에 가까운 사이먼과는 정반대로 내향성의 끝판왕인 두 사람은, 그와 상성이 안 맞다 못해 안색마저 거의 극악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에 사이먼과 같은 외향형 인간인 알렉사가 합류하면서······ 어떻게든 세션을 진행할 수 있을 듯했다.
“인사 마쳤으면, 바로 시작하죠.”
마스터의 선언에 네 명의 TRPG 플레이어는 펜과 종이라는 무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