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68)
68.
사이먼 카버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담당 기자의 입장을 넘어 독자로서도 즐겁게 읽은 마당에, 자신이 취미로 즐기던 TRPG의 마스터링을 그 작가가 직접 진행한다고 하니 진심으로 참가하고 싶었다.
TRPG 플레이에서 마스터가 기여하는 바를 생각해 볼 때, 그가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보내준 리플레이 소설을 읽을수록 그 바람은 훨씬 더 강해졌다.
그리고 끝내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신은 7레벨 하프 오크 파이터를 키우던 사이먼을 이 파티에 ‘적대적 플레이어’로서 초대했다. 여기서 말하는 ‘적대적’이란, 메인 파티의 상대를 맡는 다른 파티를 의미했다.
일반적인 규칙은 아니었지만, KOG에는 이와 관련된 특별 규칙이 하나 존재했다.
[‘적대적 플레이어’는 게임 마스터와 협력해 기존 플레이어를 가로막는 역할로 참가할 수 있다.]이때 단순히 NPC의 역할을 넘어서서, 스스로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이 가능했다. 부여받은 목표 외에도 개인의 목표가 더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신은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사이먼에게 시나리오 하나를 전해주었다.
그걸 본 사이먼은 잠깐 눈을 껌뻑거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 작가님. 이건 좀 아닌데요.’
TRPG 너드인 사이먼조차 질겁할 정도의 악마적인 시나리오.
그건 바로······ ‘로드 두푸스의 죽음’이었다.
이런 격언이 있다.
딸이 소설가와 사귄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뜯어말리라고.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이야기를 쥐어 짜내는 소설가라는 족속은, 이따금 일반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악마적인 발상을 내놓고는 했다.
그리고 그게, ‘로드 두푸스의 죽음’이라는 시나리오로 발현되었다.
로드 두푸스.
두푸스 킹스턴이라고 하는 플레이어가 3년에 걸쳐 키워놓은 캐릭터.
물론, 종이로 진행하는 TRPG의 특성상 그 기록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하지만 두푸스는 시내의 코믹북 스토어에서 세션을 진행하면서 사장으로부터 인증서까지 받아두었다. 말인즉슨, 주말마다, 혹은 학교가 끝난 뒤에 꼬박꼬박 코믹북 스토어에서 열리는 세션에 참가해 키운 캐릭터라는 의미였다.
두피의 3년이 정성스럽게 들어간 캐릭터, 로드 두푸스. 그리고 신은 이 시나리오에서 그가 죽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이 이야기가 흐름대로 흘러가니까.’
이 거대한 세션 속에서 로드 두푸스라고 하는 ‘안전장치’가 사라져야 클레어와 제이나가 이 세계의 현실을 깨닫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세션에서 사망한 캐릭터는 이후로도 영구히 사용 금지가 되었다. 이를 무시하는 플레이어들도 있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TRPG 플레이에서 권장되는 규칙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하여 7레벨의 하프 오크 파이터는 대마법사 베르그의 명령을 받고 그들을 기다렸다.
마스터의 선언에 따라 세션이 시작되었다.
베르그의 흔적을 쫓아 여행한 끝에 대륙 서부에 위치한 셸딤 왕국에 도착한 일행.
클레어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우리, 그동안 고생했으니 오늘은 좀 좋은 여관에서 묵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로드 두푸스가 대답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로군.’ 제이나도 묵묵히 동의했다.
그리고 알렉사가 손을 들었다.
“근데, 사이먼 씨는 언제 등장함?”
“세션과 관련되지 않은 말은 금지합니다.”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잖아!”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클레어를 보고 옆을 지나던 한 오크가 소리칩니다. ‘거 별 미친 여자 다 보겠군!’”
“······로드 두푸스가 말한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니 신경 끄시지!”
“그럼 나는 그 오크한테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래.”
“아쉽지만, 네 턴이 아니야. 제이나?”
“음, 저는 헬-베로스를 소환할래요.”
뺨이 조금 붉어진 지우가 주사위를 굴렸다.
또르르르르르······.
7.
“아슬아슬하게 성공입니다.”
“워후!”
“예쓰!!”
두피와 알렉사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지우가 한 번에 헬-베로스를 뽑은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은 갑자기 마을에서 흑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경비병들이 찾아와서 세 사람을 추궁한다며 냉정하게 선언했다. 거기에서 두푸스가 렝커스터 왕국의 공작으로서 아무 문제도 없으니 물러가라 말했고, 간신히 판정에 성공했다.
알렉사와 두피, 그리고 지우까지.
그렇게 세 사람의 턴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사이먼의 차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돌연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종이에 뭔가를 끄적끄적 적어서 신에게 주었다.
“응?”
“어······.”
알렉사와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신이 말했다.
“네, 판정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사이먼의 턴이 진행 중이야.”
“왜 말로 안 하고······?”
“······그런 거군.”
옆에 있던 두피가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신, 아니, 마스터. 우리에게 시련을 내리려 하는군.”
역시 TRPG에 정통한 플레이어답게 그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두피는 지우와 알렉사에게 ‘적대적 플레이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이 남자는 우리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듯하군.”
“······.”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포커페이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를 보고 알렉사가 소리쳤다.
“너, 너무하잖아! 왜 우리가 감시를 당해야 하는 건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 예를 들자면, 저 남자가 베르그의 명령을 받고 우리를 감시하기 위해서 온 인물이라든가. ······이건 너무 사담이었군. 마스터, 혹시 로드 두푸스의 능력을 이용해서 감시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까?”
“주사위 판정을 해보죠. 어디······ ‘쉬움’으로.”
18레벨에 달하는 캐릭터라면 7레벨의 캐릭터가 하는 감시쯤은 쉽게 눈치챌 터였다.
그러한 판단 아래에 마스터가 선언하자, 두피가 주사위를 굴려 판정을 성공시켰다.
세션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사실을 파악한 로드 두푸스가 제이나와 클레어에게 필담을 써서 상황을 전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이먼은 빙긋 웃었다. 확실히,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할 만한 행동이었다.
“일단은 숙소에 가서 좀 쉴까.”
“좋아요. 그동안 계속 걸어서 지쳤어~.”
숙소로 이동해 음식을 먹어 허기짐을 채우고 체력을 회복한 일행.
마스터는 늦은 밤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잘 것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제각각 돌아가며 물어보았고, 그런 가운데에서 각 플레이어들은 종이를 써서 마스터에게 행동을 제시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린 상황에서 긴밀하게 오가는 필담.
마스터도 플레이어의 선언에 맞춰 필담으로 판정을 알려줬고, 한동안 서로 별다른 대화 없이 세션이 진행되었다.
감시자의 존재를 알아차린 로드 두푸스는 밤이 되자 이불과 베개로 잠을 자는 듯한 형상을 만들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제이나와 클레어가 함께 묶고 있는 방으로 가서 까마귀를 통해 감시자를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여기에서 주사위 판정.
제이나는 실패했고, 또 임프가 나왔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라 클레어가 몬스터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자신의 배틀 부츠로 찍소리도 내지 못하게 한 방에 죽여버렸다.
한편, 베르그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7레벨 하프 오크 파이터 미노스(‘사이먼’의 애너그램이다)는 여관을 들여다보며 세 사람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이번 일을 맡긴 남자, 베르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했듯, 셸딤 왕국은 상당히 작은 나라였다. 그 수도는 렝커스터와 같은 거대 국가의 것과 비교할 때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였으며, 사람의 숫자도 그만큼 적었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경비병이 열심히 보초를 서고 몬스터와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베르그는 그들의 노력을 모조리 물거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고작해야 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흑마법사는 왜 그러는 것일까? 클레어와 두푸스, 그리고 제이나, 이 세 사람은 변방의 소국에서 우연히 모여 모험하게 된 이들일 뿐인데.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의문은 뒤로한 채, 이야기는 계속해서 다음으로 나아갔다.
다음 턴에 까마귀 소환이 가까스로 성공했고, 제이나는 탐색 명령을 내렸다. 까마귀는 경비병 이외에 수도를 돌아다니는 하프 오크를 발견해 알려주었다. 로드 두푸스는 이 밤중에 몰래 근처의 지하 공동 묘지로 향하고 있는 그를 수상하게 여기고 추적을 개시했다.
‘오호라.’
신은 이야기가 자신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미소를 지었다.
원래 계획은 베르그가 준 주문을 이용해 미노스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그것을 주인공 일행이 발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푸스가 먼저 미행을 눈치채게 되면서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다시 흘러가고, 삼십 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신이 선언했다.
“부활 의식을 치르고 있던 하프 오크를 일행이 발견합니다.”
“좋았어!”
“어서 붙잡아서 다 털어놓게 만들자!”
흉흉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알렉사.
사이먼이 순간 어색하게 웃는가 싶더니, 이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뭐냐, 너희들은?! 어떻게 여기를 찾아왔지?!”
“Frrrrrr······.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나 싶군.”
거동 수상자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답하는 로드 두푸스.
“미노스, 행동할 수 있습니다.”
“부활 의식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일으켜 세워보겠습니다.”
판정.
또르르.
14.
“미노스의 의식이 불안정하게나마 성공합니다. 여덟 구의 스켈레톤이 일어납니다.”
“하하! 역시 베르그 님의 주문이야!”
“생각했던 대로, 베르그의 수하였군.”
“아차······!”
사이먼이 입을 순간 틀어막았다.
신은 그게 좋은 롤-플레이라고 생각했다. 하프 오크 파이터인 미노스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편이었으며, 그렇기에 순간의 통쾌함에 취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만 것이었다.
“에이이, 너희를 죽여버리면 다 끝나는 일이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실, 스켈레톤 여덟 구는 ‘일반적’으로 봤을 때 클레어와 제이나가 지금 시점에서 상대하기에 버거운 몬스터였다. 사이먼은 신이 이러한 구성으로 몬스터를 준비한 이유가 로드 두푸스의 존재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18레벨 성기사라면 스켈레톤쯤이야 수백 마리가 덤벼들어도 백마법 주문 한 번 내지르면 쓰러졌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미노스는 베르그로부터 다른 수단을 강구해 왔다.
‘로드 두푸스’에게만 듣는 수단을.
사이먼은 필담으로 자신의 행동을 적어서 건넸다.
이곳은 지하 묘지 안이었다. 마스터도 강력한 백마법을 썼다가는 묘지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고해 큰 주문은 봉인될 수밖에 없었다. 말인즉슨, 제아무리 로드 두푸스라고 하더라도 스켈레톤을 하나하나 쓰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이 파티에 대한 사이먼의 오해는, 리플레이 소설로 그동안의 진행을 봤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했다. 즉, 몇 턴을 써서 누가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클레어와 제이나가 두푸스의 도움을 받았겠거니 생각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알렉사 플레어가 주사위를 두 번 굴렸다.
또르르.
18, 20.
크리티컬 히트.
“어?”
“······프린세스 클레어가 스켈레톤 한 마리를 쓰러뜨립니다. 어떻게 했죠?”
“배틀 부츠로 머리를 차겠습니다!”
“부츠에 차인 해골의 머리통이 열심히 주문을 외고 있던 미노스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갑니다.”
“네?”
사이먼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번에는 제이나가 주사위를 굴렸다.
2, 1.
“어, 헬베로스가 갑자기 날뛰기 시작합니다. ······헬베로스의 불이 옮겨붙어서 묘지 안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아, 어, 어어, 어쩌죠?”
“그래도 덕분에 해골들이 입고 있는 옷에 불이 붙었습니다. 턴마다 대미지를 입습니다.”
“······저기, 작가님?”
“로드 두푸스는 제이나를 보호하고 턴을 종료하겠습니다.”
“네. 주사위 굴려주세요.”
“아니, 잠깐만요? 공주님은 안 보호하세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선언을 마치고 두피로 돌아온 소년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클레어는 신나게 해골의 머리통을 걷어찼고, 묘지는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 앞에서 미노스의 플레이어 사이먼 카버는 황당한 기분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크리티컬 주사위가 3연속으로 나오다니.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사이먼의 표정을 보면서 신은 생각했다.
‘미안합니다. 사이먼.’
분명히 신은 대마법사 베르그의 입장에서 악마적인 시나리오를 짜기는 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플레이어를 속여넘기면서까지 그들이 절대 넘어서지 못할 시련을 주지는 않았다. 그건 ‘공정’하지 않으니까. 로드 두푸스의 죽음이 이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경쟁은 어디까지나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그리고 사이먼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존재했으니, 그건 바로 사이먼 카버의 미노스 역시도 이 운명의 주사위에 농락당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크리티컬 히트!
크리티컬 히트!
클레어 펀치! 클레어 킥! 클레어 수플렉스!
클레어는 미쳐 날뛰며 스켈레톤을 박살 냈고, 천천히 혼자 남은 미노스를 향해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어, 마스터. 저 주문 캐스팅을 멈추고 베르그가 준 스크롤을 쓸게요.”
“네, 주사위 굴려주세요.”
신의 선언에 미노스가 마지막 희망(?)을 담아 20면체 주사위를 굴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이 나왔다.
1.
“············아.”
그 결과에는 세심하게 시나리오를 준비한 마스터조차 당황하고 말았다.
베르그가 그에게 준 스크롤은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위험해, 역 크리가 떠버리면 셸림 왕국의 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위험성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게 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