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7)
7.
사이먼 카버는 올해로 스물네 살인 젊은 기자였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근처 책방에서 일하면서 준비한 끝에 얼마 지나지 않아 토런스 뉴 미디어의 문화 섹션 기자로 취업했고, 사수였던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너 참 운도 좋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취업은 그저 ‘운이 좋아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딱히 크게 준비하지 않았고 그냥 예상되는 기자 시험의 내용을 달달 외웠을 뿐이었다. 그런 쪽으로 재주가 없지는 않아서 곧잘 머릿속에 욱여넣었고, 그 당시 주어진 환경 덕에 그 나머지 시간에는 끊임없이 소설을 읽었다. 문학부터 시작해서 장르 소설까지 흥미로워 보이는 소설은 빠짐없이 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로 호기롭게 소설을 써보기도 했으나, 자신에게는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만한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자연히 사이먼은 소설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고, 기자가 되어 문화 섹션에 배정되었음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성향을 안 선배 기자는 이런 조언을 건네왔다.
‘작가를 이해하려고 들지 마. 우리는 기자고, 기자는 기자의 일을 하면 그만이니까.’
사이먼이 믿고 따랐던 선배의 조언 중에서 유일하게 지키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는 작가와 최대한 깊게 소통하려 노력하는 기자였고,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기준과 철학까지 생겼다.
사이먼 카버는 글을 읽고 지금까지 이 작가의 삶이 어땠을지 유추하려 했다. 그러면 상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지 대충 감이 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기준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대체 뭐지?’
신과 마주 보고 앉은 사이먼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들었다.
상대가 동양인이라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다. 소포에 적힌 이름부터가 그랬고 소설도 그쪽 문화의 연구를 심도 있게 하지 않은 이상 나오기가 어려운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니까.
문제는 상대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어리다는 사실이었다.
나이? 그게 중요한가?
아니 애초에, 나이란 살아온 햇수의 총합일 뿐 아닌가?
사이먼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지만, 소설을 쓸 때만큼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고 믿었다.
그는 인간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경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상’이었다. 이 두 가지의 흥미로운 점은, 양립할 수 있는 동시에, 그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부분이었다. 상상은 경험에 의해 배제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경험과 상상을 묶는 데 능숙하지.’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어떤가?
절대적인 경험의 양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세상에, 이제 막 고등학교 입학했다니.
하지만 그가 쓴 글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처음 ‘Mother’를 읽은 순간, 사이먼은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경험을 겪은 인물을 상상했다.
나름대로 작가를 상대할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이 판별법이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순간적으로 뇌 정지가 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긴, 놀랄 법도 하지.’
그렇기에 기이한 낯빛을 드러내는 기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은 상대의 반응을 납득하고 있었다. 내면의 인간은 그대로라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으나, 새삼스럽게 어려진 자신의 상황을 자각했다.
고등학생이 이런 글을 쓰면 상대방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 싶었다.
그 사실이 앞으로의 작업에 도움이 될까. 상대의 생각은 어떨까. 신은 대화를 통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어, 보내주신 계약서는 아주 잘 읽었습니다······?”
끝을 살짝 올려서 억지로 말을 꺼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순진한 고등학생을 연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신의 말에 화들짝 놀란 사이먼이 대답했다.
“아, 넵! 작가님. 저도 정말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양 문화권에 대한 묘사를 비롯해, 저희가 사는 현재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비틀린 그 감성이 정말 좋더라고요. 주인공인 수지에게 자연히 몰입하게 되는 구성도 무척 좋았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정말로요. 혹시 글은 언제부터 쓰셨을까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써왔습니다.”
신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했다.
굳이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어차피 이해받을 수 없는 진실은 숨기는 편이 나았다.
“역시 그러셨군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으셨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제가 처한 현실에서 따왔습니다. 물론 굉장히 비틀고 과장했죠.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당연한 듯이 다니고 있는 한인 교회와 한인의 풍습에 대해 외부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제가 속하지 않은 문화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요.”
“역시 그러셨군요. 그래도 좀 놀랐습니다. 사춘기를 겪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나 주변인과의 관계가 너무 섬세하게 잘 묘사가 되어서요. 어머니의 광신도적인 모습이나 주인공이 보는 환각이 아니었다면 성장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거의 열변에 가까울 정도로 감상을 늘어놓는 사이먼.
그 앞에서 신은 자신의 소설에 대해 고평가를 받는 작가들이 보통 그러듯 환하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상대에 대해 평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지금 웃으며 서로 노는 자리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나왔으니까.
그리고 신은 동업자로서 사이먼의 첫인상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나쁘지 않군.’
자신의 소설을 꼼꼼히, 그리고 재밌게 읽어온 것이 분명히 느껴져서 좋았다.
작가마다 성향이 달랐지만, 신은 단순히 비즈니스로서가 아니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가려 하는 편집자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들이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건네는 피드백은 때때로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이먼의 적극적인 태도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을 방증했다.
‘내가 동양인 꼬마라고 해서 무시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그 부분 역시 안심해도 좋을 듯했다.
물론 이때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차별적인 생각에서 아예 벗어나지는 못했다.
“수지는 한국 사람인가요?”
“미국인입니다.”
“아, 한국계 미국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이름을 들었을 때 뭔가 ‘Susie’가 떠올라서 순간 헷갈렸네요.”
“······사이먼 씨.”
“네?”
“어, 일단.”
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몇 가지를 정정했다.
“수지라는 이름은 한국 이름입니다.”
“엇, 그런가요?!”
“그리고 소설에도 쓰여 있다시피 수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사실, 흔한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수잔나’라는 이름을 써도 별 무리는 없겠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신.
그 앞에서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사이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조차 차별이었다.
동양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줄 아나.
“작가님! 제가 무지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Susie’를 노리고 ‘수지’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걸요.”
신은 딱히 더 뭐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느꼈다.
본인도 잘 몰라서 한 말이고 이렇게 빨리 사과도 하는데.
‘앞으로 천천히 이야기하면 되겠지.’
새삼 지금 시대에 동양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느꼈을 뿐이었다.
“‘저희’가 그렇기도 하고요.”
“저희라 하시면······.”
“2세대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저희는 완전히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사실 윗세대들의 문화와 자주 충돌하거든요. ‘Mother’는 그런 갈등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죠. 수지에게 기자님이 깊이 몰입하셨다면 아마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성공한 게 아닐까요.”
그 말을 들은 사이먼은 순간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과 소설의 내용이 무자비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Susie라고 착각되기 위해 지어진 이름, 수지.
어머니와의 관계, 환각을 본다는 성질을 제외하면 순수하고 평범한 소녀.
‘독자들의 몰입까지 고려했다고?’
실제로 사이먼도 그랬다. 머릿속으로는 이 소녀가 한국인임을 인식했지만, 마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한국계 미국인 소녀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공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포의 대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형된 ‘무력한’ 주동 인물이니까요.”
“그렇, 군요.”
신의 설명에 사이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서 이 작가에 대해 잡혀가던 이미지가 다시금 변화하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변화가 아니라 진화했다.
“작가님.”
“예, 사이먼 씨.”
“혹시 신문이 아닌 곳에서 이 ‘Mother’를 연재해볼 마음은 없으십니까?”
“예?”
“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 신문사에서 담아내기에 이 작품은 너무나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니 더더욱이요.”
사이먼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문 연재는 신문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하지만 잡지는 분명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사서 읽죠. 거기다 회당 고료도 훨씬 더 높고 출간 이후에 토런스 뉴 미디어를 끼지 않고도 책으로 내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라면 분명 그렇겠죠.”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지금이 아니면 드릴 수 없는 말입니다. 작가님. 괜찮으시면 제가 아는 잡지사가 하나 있으니 그쪽과 계약해서 연재를 진행해보심이 어떠실까요?”
사이먼은 괴로운 심경을 애써 감추며 이야기했다.
이 작가와 일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사이먼은 좋은 소설과 좋은 작가를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자 이 작품이 담아내기에 토런스 뉴 미디어는 결코 좋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받게 해주고 싶었다.
“신문은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습니까?”
“저희 신문사는 영세한 편이라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거기다가 신문에 실릴 작품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읽게 만들면 되죠.”
“예?”
“사이먼 씨.”
신은 지금까지의 소년 같던 얼굴이 다 뭐였냐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속지 않겠다.
더 이상은 당해주지 않겠다.
바꿔내고 말겠다.
그런 의지를 담아낸 신의 눈빛은 순간 사이먼을 얼어붙게 할 정도였다.
“저는 제 작품을 믿습니다. 그리고 제 작품을 믿는 분과 일하고 싶습니다.”
“어, 넵.”
“작품만 재미있다면 분명히 읽는 사람은 나올 테고 입소문이 돌겠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는 아주 적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신문이라는 매체가 보다 대중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같은 신문사의 경우지, 절대로 토런스 뉴 미디어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걸 제대로 설명해야 하나.
내심 비참한 심경 속에서 사이먼은 신의 눈을 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를 세상에 시험해 보고 싶은 소년의 눈을.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물론, 실상은 순진한 기자 양반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
‘아, 거 말 많네. 레이건 당선되면 너네 신문 떡상하니까 그냥 닥치고 연재시켜 줘!’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Mother’.
자신 있는 작품이었다.
당연히 잘 안될 수도 있다. 장르 소설 업계는 물론이오, 세상만사는 운이란 것을 두고 마지막 코인 토스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뭐든지 따서 갚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나는 여기에 걸기로 결정했다.
토런스 뉴 미디어에 내 데뷔작을.
“그, 그럼. 계약서는 읽어보셨을까요.”
“예,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저기, 그, 정말로 한 화당 10달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작품 소유권을 저희가 함께 갖게 되는데요.”
“괜찮습니다.”
“작가님 작품이 대박이 나서 나중에 TV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희와 수익을 쉐어 하셔야 합니다. 아시죠?”
“사이먼 씨. 다 알고 있으니 그냥 사인하시죠.”
이 양반이 동양인 소년 작가를 생각해주는 상냥한 인종차별자라는 사실은 알겠는데,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나로서도 시간을 생각해 조금은 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 진짜 아까운 작품인데······.”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양반과 일하면 기분 더러울 일은 없겠군.’
작품을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이먼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했고, 반대로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사인했다.
확실히 계약 내용은 그쪽에 유리했다······기보다는, 재차 말하지만 평범한 신인의 계약서였다. 사이먼은 이 작품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여기지는 않을 테니까.’
계약서를 서로 나눠 가지고, 글씨를 쓴 펜을 손에 쥔 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토런스 뉴 미디어의 높으신 분들은 내 작품이 아무리 멋진 결과를 내더라도 그걸 인정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나는 보험을 하나 들어두었다.
사이먼은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Mother’는 사실 2부작, 총 50화로 연재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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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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