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73)
73.
아치발트 파이퍼.
내가 기억하는 그는, ‘포인트나인 퍼블리싱’이라는 출판사의 대표였다.
포인트나인은 전생의 내가 데뷔작부터 세 번째 작품까지를 함께 작업했던 회사로, 장르 소설뿐만이 아니라 부서를 여러 개 둬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내던, 나름 규모가 큰 출판사였다.
나는 그곳의 편집자와 3년 정도 함께 일하는 동안 기본기를 가다듬고, 업계의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듣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치발트 파이퍼는 과거에 어떤 한 회사를 느와르 퍼블리싱에 통째로 매각한 경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업계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 판 회사가 바로 이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이었던 모양이군.’
전생의 대학교 4학년쯤이었나.
뭐라 잘은 설명하지 못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방향성이나 전반적인 디자인 기조가 좀 바뀐 느낌을 받았다. 대충 그즈음에 회사가 넘어간 게 아닐까.
나 같은 일반적인 독자는 몰랐겠지만, 아마 판권지나 잡지 어딘가에 조그맣게 느와르 퍼블리싱의 이름이 들어가기 시작했겠지.
나는 다른 출판사로 넘어간 이후로도 담당 편집자와 만나며 가끔씩 아치발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냉철한 워커홀릭으로, 살면서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고, 퇴근조차 잘 하지 않았다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출판사로 들어오는 모든 소설은 본인이 직접 확인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고 했다.
‘아니, 그럴 거면 편집자는 대체 왜 있는 거죠?!’
보드카를 마시며 절규하던 편집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머릿속의 퍼즐 조각이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맞물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 이 계약에 도움이 되어줄 듯했다.
아치발트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작품을 뽑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무엇이냐.
‘상업성.’
무척이나 간단한 귀결이었다.
나는 내가 느와르 퍼블리싱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기억한다.
편집자는 ‘윗선의 지시’라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내게 철저한 대중성을 강요했다. 그렇다. 아치발트 파이퍼는 절대로 위험한 모험을 즐기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당대의 시장성에 맞는 글만을 뽑았지, 그 외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왜 그런 모순이 생겼는가.’
퍼즐 하나가 더 머릿속에서 맞춰졌고,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Princess quest’는 딱히 대중성을 의식하고 쓴 소설은 아니었다. 장르 소설과 TRPG의 코어 팬이 읽고 웃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엮은 좌충우돌 모험기에 가깝지, 절대로 아치발트가 뽑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작품이 아닌 다른 것을 봤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속을 들여다보듯 자명했다.
‘작품이 아닌, 내 작가로서의 네임 벨류에 무게추를 두었다.’
그러면 또다시 모순이 생긴다.
편집장은 방금까지 마치 작품이 좋아서 뽑힌 것이고, 내가 가진 신문사 경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치발트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소드 앤 건즈에서 작품을 뽑는 의사결정에 있어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테고, 절대 그가 말한 이유로 뽑혔을 리가 없었다.
‘정확한 답은, 이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생각을 마치고 슬쩍 고개를 돌리자, 문 쪽으로 다가간 편집장이 아직 문밖에 서 있는 아치발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이번에 계약하게 된 신 작가님입니다.”
“······그렇군요. 저분이.”
이쪽을 들여다보던 아치발트가 한 걸음 성큼 들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앞으로도 좋은 작품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적인 어조. 차가운 시선.
그러거나 말거나 아치발트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던 나는,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졌다.
“제 작품, 읽어보셨나요?”
“······.”
“자, 작가님?”
순간 당황하는 편집장.
그럴 터였다. 지금 계약을 진행 중인 작가가 갑자기 부사장에게 당돌한 물음을 던졌으니까.
아무리 장르 쪽 업계인들이 ‘너드’적인 면 때문에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동적이기보다는 아직 정적인 기조가 강한 시대. 아직 계약조차 하지 않은 작가가 갑자기 나서기에는 약간 무례한 행동이라고 느낄 터였다.
‘뭐, 그건 그렇지만.’
난 아직 열일곱 살이었다.
사회적으로 실수할 수도 있는 나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사실 나는 일과 관련해서 뭔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이 뒤로 숨어서 비겁하게 회피했다.
내 내면이 어떤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직 그럴 수도 있는 나이 아닌가.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듯한 냉정한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네. 읽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셨을까요.”
“저는 딱히 재밌게 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이 쓴 작품들을 재미있게 보았죠.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전작을 좋게 봐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재미없게 보셨다고 해서 순간 걱정했네요.”
“작가님께서 염려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저 개인이 즐겁게 보지 않았다고 해도 작가님은 이미 검증이 된 분이십니다. 데뷔작이 라디오 드라마로 나가고, 후속작은 코믹스화에 완구화까지. 설령 우연이라 할지라도 연타석 히트를 친 작가라면 저희 건즈 앤 소드 매거진에서 모실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작의 경력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한 일이죠.”
사무적인 어투로 이야기를 마친 아치발트는 이내 시계를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부사장님.”
“별말씀을요. 계약 잘하시길.”
짧게 인사를 마치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아치발트.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한숨을 내쉬는 편집장에게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편집장님. 실례되는 행동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궁금한 게 풀리셨다면 다행이고요.”
“네, 처음에는 제 소설이 별로라고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인정해 주셔서 기쁘네요.”
나는 순진한 척 웃으며 아름다운 나의 정착 기사가 알맞게 치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당연히 눈치 빠른 줄리아는 내가 던진 토스를 놓치지 않았다.
“편집장님,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아요?”
“음······.”
“거기다 부사장님은 우리 경력을 인상 깊게 보신 모양인데요.”
그의 급소를 찌르는 논제였다.
그 말을 듣고 곤란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는 편집장.
이 이상 내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예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화당 1,500달러.
건즈 앤 소드 매거진과 최종적으로 계약한 금액이었다.
나는 ‘Mother’나 ‘Double spy’ 때처럼 외부의 변수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계약을 끝마치고 회사를 나온 뒤, 줄리아와 나는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근처의 카페에 다시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줄리아 역시 이 액수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1,500 정도면 중견 작가는 되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죠. 좋게 계약했네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신인이 1,000에, 아무리 잘나가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연재’ 원고료만으로는 2,000 정도가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그 대신 그들은 이후 종이책 출간이나 미디어 프랜차이즈화에 들어갈 때 수익 비율에서 파이를 더 크게 먹는다는 모양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나는 친절한 설명에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모두 줄리아가 저 대신 싸워준 덕이죠. 감사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작가님이 밑밥을 다 깔아주셨는데, 거기에서 밀리면 바보겠죠.”
시나몬 가루를 뿌린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는 줄리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와의 사회적 관계를 생각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입안에 남은 향을 즐기던 줄리아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튼, 축하드려요. 첫 작품부터 굉장히 좋은 잡지사에 들어가셨네요.”
“건즈 앤 소드 정도면 아쉬울 게 없죠.”
“네, 작품 관리도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이고 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보다, 괜찮으시겠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잡지 연재 쪽은 고려하지 않으신다더니.”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리플레이 소설이라 저 혼자서 쓰는 게 아니다 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더라고요. 기초적인 아이디어는 TRPG 세션을 플레이하면서 다 나오고, 저는 거기에다 적당히 각색하는 느낌이라서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저번에 세션하면서 느낀 건데, 작가님이 그 ‘각색’을 상당히 잘하는 느낌이에요. 일반적으로 친구분들이 ‘현대인적 사고’를 통해 플레이하는 부분에 저마다 개성 있는 색깔을 넣으셨잖아요. 클레어나 제이나, 둘 모두에게 말이죠.”
“그것도 사실 친구들이 도움을 줬죠.”
“그래요?”
“제가 그런 식으로 각색한 부분도 다 친구들의 평소 성격에서 따왔거든요.”
“재미있는데요. 아, 그건 어떻게 되는 거죠? 저번에 말한 거.”
“코즈믹 호러?”
“네. 갑자기 코미디 소설에서 코즈믹 호러라고 하니까 좀 놀랐어요. 지금까지의 흐름을 봤을 때 납득이 아예 안 가는 전개는 아니면서도, 이걸 대체 어떻게 녹여낼까 싶었거든요.”
“밑밥은 계속 깔았잖아요.”
“그렇죠. 임프라든가, 아니면 사이먼이 죽을 때······.”
“미노스, 미노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정정했다. 사이먼이 죽다니. 이 무슨 흉흉한 말이란 말인가.
“아, 그래요. 미노스. 그 친구가 끔찍하게 아공간 사이에 찢겨 죽을 때, 그 안에서 나와 로드 두푸스까지 먹을 뻔한 그건······ 작가님의 창작 설정이라고 봐도 되겠죠?”
“네, KOG의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설정을 추가해 봤습니다.”
“그쪽이 유저 설정을 적극 권장하는 편이라서 다행이네요.”
“그래서 KOG로 택한 점도 없잖아 있죠. 저작권 문제도 있으니까요.”
“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
“네, 줄리아.”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 예정인가요.”
“그건······.”
잠깐 대답을 망설이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혼자서 정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이 소설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
계약을 끝마친 나는 곧바로 친구들에게 연락해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앞으로 남은 세션마다 저녁은 내가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정해둬.”
선물은 물론 따로 챙겨 줄 생각이지만, 그래 봤자 내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하면 적은 액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두피와 클레어, 두 사람 모두 내게 축하 인사를 전하고는 단단히 뜯길 각오 해두라고 짓궂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우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녀에게는 다음 세션 전에 미리 전해둘 전언이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시나리오상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얼굴을 보고 이 소식까지 합쳐 이야기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흐음.’
현재 시간은 오후 여덟 시.
선약 없이 찾아가기에는 에티켓적으로 아슬아슬한 시간이었지만, 더 생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일단 움직이고 수습하자는 생각으로 나는 곧장 옆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깐 기다리니, 문틈으로 잠옷 차림의 지우가 몸을 반쯤 빼꼼 내밀었다.
“아.”
“안녕?”
“아아.”
돌처럼 굳어진 지우.
스르륵 문이 다시 닫혔다.
“······.”
무슨 상황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자리에 선 채 다시 초인종을 누를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을 몰아내듯 닫혔던 문이 재차 열렸다.
지우는 잠옷 위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였다. 거기다 검정 마스크까지 썼다.
“······어, 안녕?”
“아, 안녕하세요.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미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런데. 잠깐 괜찮을까?”
“어, 음. 어.”
슬쩍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지우.
이내 입을 열었다.
“부,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셔서요.”
“그럼 밖에서 잠깐?”
“춥지 않으세요?”
아무리 캘리포니아라고 하더라도 겨울이면 밤에는 쌀쌀한 편이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냥 전화로 상황을 전달하는 편이 나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별거 아닌데.
“세션 관련해서야. 잠깐이면 돼.”
“그, 그럼 안에서······.”
“응, 실례할게.”
나는 지우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집하고 굉장히 비슷한 구조였다. 거기에 계단 배치도 비슷한지, 지우는 앞장서서 최단 거리로 나를 2층으로 안내했다. 슬리퍼 뒤로 빠져나온 뽀얀 발꿈치와 강아지가 그려진 잠옷 바지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섰고, 나는 이내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내가 전혀 모르던 지우의 일상이 그곳에 있었다.
‘뭐야, 이건.’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찬 방 안.
십자가가 곳곳에 걸려 있는데, 동시에 온갖 메탈 밴드의 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러 권으로 나뉜 성경책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인 것조차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아니, 그럼 왜 그렇게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는 건데?’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훅 들어온 파격적인 인테리어.
지우가 밖에서는 전혀 이런 쪽에 흥미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기에 이 광경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저기, 신 오빠?”
“······미, 미안.”
그렇게 한참이나 방 안을 둘러보고 나서야 내가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내리 깔았다.
옆에 있던 지우 역시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탈을 좋아했어?”
“그,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어요.”
무슨 법정물이냐?
······아니, 그래. 그럴 수 있다. 흑마술에 심취하다가 메탈로 빠지는 경우야 워낙 흔하니까. 거기다 미래와 달리 이 시대에 메탈은 그래도 메이저 축에 드는 장르였고.
나는 지우의 취향을 존중하자고 다짐하면서, 전하려던 내용만을 간략하게 말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일단 내가 오늘 소설 계약을 무사히 마쳤거든. 그래서 세션 때마다 내가 저녁 식사를 살 예정인데, 다른 애들하고 메뉴를 골라줬으면 좋겠어.”
“와, 축하드려요! 그럼 저희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이번엔 신문 연재가 아니어서 구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증정본 받으면 한 부 줄게.”
“좋아요!”
지우는 앞선 두 사람보다는 저녁을 산다는 것에 별 흥미가 없어 보였고, 그 대신 내가 그동안 꽁꽁 감추고 보여주지 않은 소설에 더욱 흥미를 드러냈다.
갑작스레 전한 소식에 들떴는지, 지우는 얼굴이 상기된 채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세션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맞아. 다음 세션에 앞서 ‘제이나’가 자는 동안 꿈속에서 들은 바가 있어 미리 전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뭔가요?”
“이건 ‘신’이 아니라 ‘베르그’로서 하는 말이야. 제이나는 그것을 바로 느꼈거든.”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제이나’에게 다음 세션을 위한 전언을 남겼다.
“‘이제 슬슬, 돌아올 때다. ‘공주’.’”
“······예?”
“여기까지야. 좋은 밤 되렴.”
“자, 잠깐만요, 오빠?!”
“오빠가 아니라 베르그라고 해야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제이나를 남겨 두고 곧바로 방을 빠져 나왔다.
뭐,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요는 간단했다.
‘프린세스 퀘스트’의 ‘프린세스’는 클레어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제목을 정할 때 ‘더블 프린세스’도 후보에 있었다는 건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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