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75)
75.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대충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며 그 공포 중에서도 가장 큰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라고. 공포가 한 문장에 무려 네 번이나 들어갔다.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세션에서는 바로 그러한 공포가 펼쳐졌다.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플레이어들에게 턴마다 주사위 판정을 시켰다. 물론, 세밀하게 설정해 놓은 나름의 이유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서 클레어와 제이나, 스탠이 불안을 느끼도록 했다.
그렇게 두 번의 턴이 지났고 제이나, 스탠이 각각 주사위 판정에 실패했다.
스탠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제이나 때는 헬베로스가 도주했다. 그것을 클레어가 쫓아가려다가 주사위 판정에 처음으로 실패하면서 파티가 느끼는 불안은 순간적으로 크게 증폭되었다.
이 부분만은 다이스 갓이 내게 가호를 내려줬다고 볼 수 있었다.
다들 혼란스러워 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클레어가 주사위 판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예상과는 달리, 또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감은 더 커졌고, 개중에서도 특히 민감한 성격의 클레어로서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없었다.
주사위 판정에 성공하면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을 소설로 어떻게 묘사할까 즐거운 고민이 되는 것을 느꼈다.
이 주사위 판정 파트의 좋은 점은, 각 플레이어가 지닌 성격과 갈등, 결합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 주사위 판정을 킹 오셀롯의 무덤에 접근하면서 느끼는 어떠한 형이상학적인 단계의 불안이라고 쳐보자.
신을 섬기는 수도사인 스탠은 자신의 신앙을 근거로 무시할 테고, 타고난 파괴자(Natural born destroyer)인 클레어는 손과 발로 때려 잡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불안에 고스란히 휩쓸릴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의 영역에 접근하면서 제이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침착하게 클레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서로를 의지하듯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이나, 흑마법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당신의 감각은 더욱 민감해져 있습니다. 그동안 치러온 수많은 모험에서 싸움을 거듭하며 쌓아온 경험은 당신이 이 영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은 헬베로스를 찾습니다. 눈을 서서히 감고 정신을 집중합니다. 당신을 절대 떠날 리 없는 그 아이가 어디로 간 것일까. 알겠습니까?”
“네, 알 것 같아요.”
제이나는······ 아니, 장지우는 여기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뼈멍이는 저희에게 들어오는 어떤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갔어요.”
순간 알렉사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지우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걸 보았다.
“용맹하게 달리고 있어요. 불꽃으로 된 털을 휘날리면서 그래도 조금은 신이 났어요. 충성스러운 아이지만, 그럼에도 천진난만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아이는······.”
“헬베로스가 당신을 부릅니다.”
“가, 가보겠어요. 같이 가줄래요?”
“응, 바로 가자! 스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군.”
일행은 제이나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소환사와 소환수는 감각과 의식을 서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급한 부름을 듣고 달려간 제이나는 어떤 남자의 팔을 물고 바닥에 쓰러뜨린 헬베로스를 발견했다. 뼈로 이루어진 흉흉한 개 밑에 깔려서 고통스러운 듯이 신음하는 사내.
일행이 각각 행동에 들어갔다.
“수상하군. 바로 포박하겠다. 제이나?”
“아, 네. 스탠의 움직임에 맞춰 뼈멍이를 물러나게 할게요.”
판정 성공.
“스탠, 어떻게 남자를 포박했죠?”
“가지고 있는 밧줄 장비를 이용했다.”
“스탠은 남자를 성공적으로 포박합니다. 남자가 외칩니다. ‘다, 다들 왜 이러세요?!’ 클레어?”
“너, 누구야. 왜 이런 곳에 있어?”
“‘저, 저는 그냥 평범한 무덤지기예요!’”
“거짓말 판정, 해 볼게.”
클레어에게는 모험을 거쳐 오며 상대의 거짓말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겼다. 물론, 백 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최상의 주사위를 뽑아내는 만큼 일행은 클레어의 스킬을 신뢰했다. 그리고 나는 소설에서 그것을 본능에 의한 감각이라고 설명했다.
또르르.
“성공,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짜라고? 왜 이런 곳에서 무덤지기를 하고 있어?”
“‘어, 그게······ 기억이, 없어요. 이상하게도 줄곧 여기에서 무덤지기를 했던 것 같아요.’”
“뭔가 너무 수상한데? 베르그의 부하 아니야?”
“······.”
클레어의 말을 들은 제이나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기억이 없다’라고 말하는 무덤지기를 수상하게 여기는 클레어.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제이나로서는 의도치 않았음에도 클레어의 말에 상처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이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침묵했고, 클레어와 스탠은 무덤지기의 처우를 놓고 계속해서 논쟁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부정적인 대우를 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제이나가 입을 열었다.
“그냥, 놓아주죠.”
“······제이나?”
“그럴 수는 없다. 만에 하나 킹 오셀롯의 무덤에 있을 베르그의 부하일 수도 있으니까 확실하게 처리하거나 아니면 속박 주문이라도 걸어놔야 안심이 되겠어.”
“본인이 평범한 무덤지기라고 하잖아요.”
“기억이 없다는데? 좀 수상하지 않아?”
“······.”
“무덤지기 아저씨. 정말 킹 오셀롯의 무덤 안에 있는 베르그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
“‘그, 그럼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 드나드는 사람이 없나 계속 감시해왔을 뿐입니다요. 그런데 킹 오셀롯의 무덤에 누가 먼저 들어갔다고요?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말이야?”
“‘킹 오셀롯의 무덤은 온갖 함정이 가득 찬 미로로 설계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곳을 지키는 이유도 킹 오셀롯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괜히 목숨을 버리려는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죠. 여러분도 혹시 킹 오셀롯의 무덤에 들어가실 생각이면······ 그만두십쇼.’”
“안 된다. 그 안에서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사제님, 목숨을 귀중히 여기십쇼! 농담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번에 한 도굴꾼 무리가 저 몰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가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다들 안에서 죽었을 게 분명합니다요!”
“그 시체가 베르그의 병사로서 쓰이지만 않으면 다행이겠군.”
거기에서 일행의 의견이 갈렸다.
스탠은 무덤지기를 계속 의심했고 이곳에 묶어두거나 ‘처리’하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베르그라고 하는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클레어는 무덤지기를 찝찝하지만 그냥 풀어주자고 했다. 의심은 가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굴지 않는 생명을 멋대로 휘두르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마지막으로 제이나는 이렇게 말했다.
“안내를 부탁하죠.”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의아해했다.
무덤지기는 무덤으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 이에게 내부의 안내를 부탁하자고?
사람들의 의문에 제이나는 그래도 아예 내부의 상황을 모르는 자신들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덤지기와 제이나 간의 대화가 오갔다.
“무덤지기 아저씨.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나, 나한테? 싫어! 나는 그 안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저희를 믿어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저도 아저씨를 믿고 싶거든요. 아저씨는 지금껏 무덤 앞을 지키면서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경고해 오셨잖아요? 지금 무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막지 않으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하거나 죽을 수 있어요.”
“‘어, 음······.’”
“부탁드려요.”
“‘······제기랄.’”
무덤지기는 걸쭉한 욕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이 무덤 앞에 있었어. 내가 무덤지기인 사실만을 기억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을 지켜온 거야. 그리고 그 평화가 깨지면 누구보다 불편한 사람은 바로 나겠지. 편하게 지낼 장소가 사라지니까 말이야.’”
“도와주시는 건가요?”
“‘그래, 까짓거 해보자고. 이봐, 거기 두 사람도 잘 들어. 날 믿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내가 말한 건 진짜야. 내가 기억하는 사실은 오직 이 무덤을 지켜야만 한다는 사실뿐이라고.’”
“감사합니다!”
“······동의할 수 없군.”
“난 동의해. 2대1이니까 무덤지기와 함께 가는 것으로 하자.”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제이나 앞에서 클레어도 맞장구 쳐 주었다.
그렇게 일행은 무덤지기의 안내를 받아 킹 오셀롯의 무덤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좁고 어두운 통로 곳곳에 가득한 검은 점액질.
이 안으로 들어와 스탠이 일으키고 있는 작은 빛은 오히려 그 점액질에 먹힐 듯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이 그들을 덮쳐왔고, 이유도 모른 채 여러 번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모험을 통해 얻은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상황을 헤쳐 나갔다.
······그 과정이 지금이 TRPG 게임에서는 각종 스킬과 의논, 주사위 판정으로 이어졌다.
나아가는 동안 죽은 자들이 연달아 되살아났고, 그 가운데에서 마족이라 불리는 존재도 나타났다.
클레어의 배틀 부츠가 피를 머금었다. 이미 10회가 넘는 격전을 거쳐 온 부츠는 이제 마족의 피를 머금어 더 이상 통상적인 병기라 볼 수 없게 되었다. 스탠은 차분하게 자신이 가진 빛의 마법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런 클레어를 옆에서 보조했고 공포를 이겨내고자 노력했다.
무덤지기는 그래도 킹 오셀롯의 무덤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헤쳐 나가는 파티원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용기를 얻었고, 어느새 그들에게 동화되어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 제이나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나는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퍼즐 조각이 조금씩 맞춰져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단한데.’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로 시나리오에 대해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터라 흥미로웠다.
제이나는 지금 킹 오셀롯의 무덤에서 마족을 보면서, 자신의 흑마법이 실패할 때마다 나타난 임프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이 상황이 설명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꿈속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돌아올 때가 되었다. 공주.]나는 마치 자신이 록밴드의 리드 기타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파티원들이 자아내는 행동의 양상을 자세히 관찰했다.
“가자. 제이나!”
힘차게 손을 뻗는 클레어.
“뭔가 불길하군. 안쪽에서 뭔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황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스탠.
“······응.”
마지막으로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제이나.
마침내, 그들은 킹 오셀롯의 관이 안치된 드넓은 회랑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있던 한 남자가 음산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 드디어 왔군.’”
“네가 베르그인가······!”
“‘프린세스 클레어, 수도사 스탠’.”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는 경계하는 두 사람의 뒤쪽에 있던 제이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프린세스 제이나.’”
“······뭐?”
“무슨······?”
“‘머나먼 시간을 거쳐, 이곳에 잘 돌아오셨습니다. 공주님.’”
“아······.”
순간 놀라 뒤를 돌아보는 클레어와 스탠.
“‘이제 즉위식을 진행하죠.’ ······미소를 지은 베르그가 손가락을 튕깁니다. 순간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무덤지기의 머리통이 터져 나갑니다. 그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집니다.”
그들의 반응을 음미하면서, 나는 무덤덤하게 이 세션의 마지막을 충격적인 광경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설명에 들어갔다.
“아, 아아······!”
순간 비명을 내지르는 제이나.
“What the······?!”
“Noooooooooo-?!”
스탠은 물론, 클레어까지 놀라 소리쳤다.
다들 충격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일부러 그러도록 유도했으니까.
나는 스스로가 참 악당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멋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파티원들을 더 큰 절망과 분노에 몰입하게 했다.
제이나는 자신과 똑같이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무덤지기를 믿었지만, 그건 사실 모두 베르그가 계획한 바였다.
하지만 그건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르그의 말이 클레어와 스탠을 혼란에 빠뜨렸고, 이 순간 이곳까지 서로 협력하며 싸워 온 그들의 우정에 의심이 파고들었다.
“베르그의 등 뒤에 떠올라 있던 킹 오셀롯과 전사들의 용맹한 모습을 그린 그림 틈으로, 검은 점액질이 새어 나옵니다. 여러분이 있는 회랑의 천장과 바닥, 모든 벽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향해 기어오듯 서서히 다가옵니다.”
그렇게 마지막 선언을 내뱉으며 이번 세션을 마무리했다.
“······자, 오늘 세션은 여기서 끝.”
그 말을 끝으로 천장에 매달린 줄을 당기자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실의 불이 들어왔다. 그로써 충격에 빠진 세 사람의 얼굴이 조금 더 자세하게 보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파티원들을 바라보았다.
“······Shin, How dare you······.”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중얼거리는 클레어, 아니, 알렉사.
지우는 아예 아무 말도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고, 그 옆에서는 두피가 떨리는 손으로 안경의 브릿지를 밀어 올렸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 좋은 반응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땠어?”
“······신.”
“응, 두피.”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군.”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두피를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