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81)
81.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편집 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전한 이야기는 간단했 지만, 많은 함의가 담겨 있었다.
2화가 실린 이번 호 ‘Princess quest’의 앙케트 순위가 현재까 지 3위이며, 편집부에서는 다음 호부터 이 작품을 첫 번째로 싣 기로 정했다.
의례적인 안부 인사와 다음 원고는 언제쯤 주실지 하는 대 화를 거쳐 전화를 끊은 뒤, 줄 리아는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 순위가 계속 유지될 리 없을 텐데.’
신 작가와 이 작품의 순위에 대해 예상하면서 나누었던 내 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마니 악’했다. 소드 앤 소서리 장르에 깊이 빠진 독자일수록 좋아할 만한 컨셉이었고, 그만큼 취향 에 맞는 소수에게 보다 강력하 게 어필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 고 그러한 독자층은 대체적으 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자신의 팬심이 담긴 작품에 대한 평가 를 최대한 빠르게 편집부로 보 내려고 하는 것이다.
초반에 그런 식으로 ‘Princess quest’에 호의적인 감정을 지닌 독자층이 앙케트를 보내니 높 은 순위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 다. 격주로 발간하는 잡지인 만 큼 앙케트 엽서는 상당한 시일 을 두고 보내졌기 때문이다. 심 지어 다음 호가 나온 뒤에도 오 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연재될수록 순위는 꾸준히 상승하는 것과 별개로, 앙케트 초반의 순위에는 어느 정도 허수가 있을 것이라고 두 사람은 결론을 내렸다.
‘지금이 3위라면 최종적으로 5위쯤 될까.’
물론 이 분야의 프로페셔널 인 편집부도 이 사실을 모르지 는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들 이 ‘Princess quest’를 첫 번째 작품으로 싣겠다는 의도는 자 명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편집부 차원에서 밀 어주겠다는 의미였다. 오래된 독자들이라면 첫 번째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인기가 높다는 사실쯤은 잘 알았으니까.
실제로도 단 2화만을 연재하 고 12개의 작품 중 상위권에 위 치한다는 것부터가 이 작품의 가능성을 반증했다.
‘한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 데.’
신 작가가 편집장 앞에서 아 치발트와 직접 담판(?)을 지을 때만 해도 연재하면서 혹시라 도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편집부는 외부 담당 과 함께 작업하고 있음에도 ‘좋 은 작품’이라면 편견을 두지 않 고 차별 없이 대해주려 하는 편 이었다. 특히 좋은 성적을 내는 작품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한 점 때문에 비즈니스 적인 시각을 중요시하는 줄리 아에게 있어서도 가장 신뢰하 는 잡지사 중 하나였다. 그게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힘이었 다. 어쩌면 그런 힘이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이라는 잡지사를 이만큼 성장시킨 걸지도 몰랐 다.
‘앞으로 연재하면서 문제는 없겠어.’
작품이 계속될수록 순위는 꾸준히 상승할 테니까.
그것은 앞서 읽어 봤던 엔딩 직전까지의 충격적인 전개와, 그동안 신이 보여준 글솜씨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생각이었 다.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마음 이 한결 편안해진 줄리아는 시 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아직 신문 인쇄 전이었지만, 오늘 업무는 이미 여러 번 확인 해 확실하게 끝내두었다. 그녀 는 의자에 걸어둔 재킷을 챙겨 입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차 를 몰아 토런스로 이동했다.
오늘 저녁은 사이먼과 업무 관련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였다.
토런스에 도착하자 시간은 8 시를 조금 넘겼다. 회사에서 나 오는 사이먼을 픽업한──그러 면서 엿 같은 옛 회사 전경도 확인한──그녀는 곧바로 근처 의 식당까지 차를 몰았다.
체중 관리 문제나 회사에서 의 이미지 때문에 로스앤젤레 스 쪽에서는 자주 들르지 않는 트러커 다이닝. 예전에 사이먼 과 함께 일할 때는 퇴근하고 종 종 들리곤 하던 곳이었다.
정크 푸드에 가까운 기름진 음식을 잔뜩 시킨 뒤에야 겨우 두 사람 사이에 제대로 된 이야 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배 많이 고팠어요?”
“응, 오늘 점심에 샐러드 한 접시 먹었더니 죽겠어.”
“왜요? 점심은 좀 든든하게 드시지.”
“다이어트하잖아.”
“지금 우리 튀긴 감자 메뉴만 세 종류 시켰잖아요.”
“괜찮아. 감자는 야채니까.”
“튀긴······.”
“야채.”
줄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고, 사이먼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 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음 료가 나왔고, 그것을 윤활유 삼 아 목을 축인 뒤 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일은 좀 어떠니?”
“언제나 똑같죠. 줄리아는요.”
“나도. ······아니, 내 말은 더블 스파이 완구 사업 말이야.”
“아, 그쪽이요? 이번에 신규 상품 출시 예정이에요. 드디어 칼의 바이크가 나오죠.”
“애들이 좋아하겠네.”
“애들뿐이겠어요? 어른들도 요즘 ‘사운드 이터’ 들고 다니는 데.”
“아, 그거. 다 좋은데 묘하게 소니 워크맨이랑 닮았지. 저작 권 소송 안 들어오려나 몰라.”
“푸흐흐, 그거 레지앤베이에 서 은근히 노린 모양이더라고 요. 가방 안에서 살짝만 튀어나 오게 하면 워크맨하고 구분되 지 않게. 그 덕분에 어른들한테 도 잘 팔리고 있는 거 아닐까 요?”
“그러니까 말이야. 워크맨은 지금 아예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잖아?”
“일종의 ‘대용품’인 셈인데, 이래저래 기막히게 파고든 거 겠죠. 코믹스는 어때요?”
“얼마 전에 애리조나와 네바 다 쪽으로 이슈가 풀렸어. 둘 다 캘리포니아랑 인접한 주잖 아. 거기서 인기가 하도 좋다 보니까, 도매하는 사람들이 그 런다던데. ‘없어서 못 팔 지경’ 이라고. 헤븐즈 코믹스에서도 그림 작가 추가로 더 붙여서 계 속 그리고 있고······. 거기다 신 작가가 이번에 나가는 코믹스 단행본를 위해 추가 작업도 해 주셨거든. 사이드 스토리 한 편 첨부해서 나갈 예정이야.”
“오호, 저도 그거 읽고 싶어 서 따로 사고 싶은데요? 코믹스 단행본 나오면 완구도 더 잘 팔 리겠어요.”
“그렇지. 레지앤베이는 헤븐 즈 코믹스보다 훨씬 더 큰 회사 니까 유통망은 진즉에 확보해 두었을 테고, 코믹스를 통해 그 쪽 주에서도 수요가 더 커지면 당연히 판매량이 상승하겠지.”
“이거 참. 어떻게 보면 운이 좋네요. 물론, 작품이 가진 힘이 좋아서겠지만, 서로 시너지가 나는 두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함께하면서 계속 수익이 나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그야······. 줄리아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나는 이 모든 게 신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닌가 싶어. 같이 일하면서 느낀 건데, 소설과 업 계의 일을 ‘비즈니스’적인 관점 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더 라고. 뭔가 하이스쿨 학생의 발 상이라고 볼 수 없는 생각을 하 고 실천에 옮기고는 한단 말이 지.”
줄리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야기했다.
사이먼도 어느 정도 동의하 는 부분이었다.
신 작가에게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10대 소년, 혹은 신인 작가답지 않은 노련함이 존재 했다. 마치 굶주림을 감춘 늑대 같아 보였다고 해야 하나. 나긋 나긋하게 굴다가도 확실히 짚 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철저하 게 확인했고, 그 끝에서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모조리 거머쥐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맞아. 레미 마틴을 구워삶는 솜씨만 보더라도······.”
바로 그때, 식사가 나왔다.
튀긴 고기와 튀긴 감자, 모조 리 다 땅콩기름을 써서 잔뜩 튀 긴 음식들. 하지만 육수에 푹 담가서 끓인 콜라드 그린 한 입 이면 싹 다 내려간다.
줄리아는 곧바로 큼직하게 어슷 썰린 감자를 푹 찍어 입에 집어 넣었고, 사이먼도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서 씹었다. 그러 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쵸, 그때 그 일은 저도 놀 랐네요.”
“요즘은 어때? 내 옛날 사장 님.”
“뭐, 신 작가님이 잡지 연재 시작했다는 말 듣고 어떻게든 다시 빼내오라면서 난리죠. 아 무래도 유능한 사람은 계속 자 기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분이라 서 그런가.”
“훗, 그럼 나는 유능한 사람 이 아니었던 모양이네.”
“그, 그건 아니죠. 사장님은 유능하면서 돈으로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건데······.”
“그래, 나는 그러지 않지. 사 실, 신 작가도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맞아요. 제가 봤을 때는 두 분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바가 분명히 있는 쪽이잖아요?”
“······사이먼, 이럴 때는 또 눈 치가 빠르네.”
“하, 하하, 그런가요?”
눈이 휘둥그레진 줄리아 앞 에서 사이먼이 어색하게 웃었 다.
단순히 돈만 벌 생각이었다 면 대우를 잘해주는 신문사에 서 계속 소설을 쓰는 게 맞았다.
‘신’이라고 하는 작가는 두 작 품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캘리 포니아주의 신문 연재’라는 환 경 안에서만큼은 그럭저럭 신 뢰받는 카우보이가 되었으니까.
대중의 입맛을 적당히 겨눈 작품을 연재한다면 신문 구독 자들은 분명 그의 작품을 꾸준 히 즐겨줄 가능성이 컸다. 그리 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토 런스 뉴 미디어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하면서 더 잘 대우해 주 는 곳에서 연재를 이어 나가면, 분명 안정적으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을 테지. 과거의 카우 보이가 소를 몰아다 팔아서 돈 을 벌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하지 않 았다.
그는 정제되지 않은 시장을 자유롭게 떠도는 길을 택했다.
“Outlaw, 혹은 Bounty hunter 같은 거려나.”
현재 장르 시장은 소위 말하 는 ‘과도기’였다.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대두로 자본이 크게 유입되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모든 걸 집어삼키 고자 하는 악의 제국 ‘느와르 퍼블리싱’에 맞서서 각지의 회 사가 고군분투하는 상황이라고 나 해야 할까.
그 누구도 함부로 이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으며, 작 가들은 그 가운데에서 각자 황 금을 발견하고자 고군분투했다.
회사도, 작가도, 그들 모두가 형태는 달랐지만, 새로운 서부 개척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 또다시 그런 시대가 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줄리아는 왠지 모르 게 이런 예감이 드는 걸 느꼈다.
“신 작가라면 분명, 황금과 함께 자신만의 무언가를 쫓고 있을 거야.”
문득 신이 말을 타고 장르라 고 하는 황야를 달리는 광경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담당 기자가 해야 할 일은, 무언인가.
사실 간단했다. 지금까지처럼 그가 자신의 여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어째, 1년쯤 뒤에는 신문 기 자 그만두고 출판사 직접 차릴 것 같긴 한데.”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선배가 사장하고 저는 팀장 시 켜주세요.”
“나 돈 없어. 사이먼.”
피식 웃은 줄리아는 다 먹은 음식을 옆으로 치우고 가방 안 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자, ‘Double spy’의 종이책 화에 최종적으로 좋은 조건을 제시한 출판사의 목록이야.”
이게 사실, 오늘의 본제였다.
코믹북 출간과 완구 판매로 잔뜩 몸값을 불린 뒤에야 비로 소 이루어지는 ‘Double spy’의 종이책 출간.
‘Mother’보다 더 좋은 조건으 로 계약을 따내리라 다짐하는 두 사람이었다.
***
토요일에 이루어진 마지막 세션이 끝나고 다음 날.
나는 일요일에는 항상 어머 니와 교회를 다녀왔고, 이후에 는 종종 주변 이웃사촌과의 바 비큐 파티에 참석해 즐거운 굿 선(Good son)으로서 시간을 보 냈다.
그리고 오늘은 그 파티가 우 리 집 정원에서 벌어졌다.
다들 이전과는 달리 우리 모 자를 불쌍하며 챙겨줘야 한다 는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어머니는 주변에서 이어지는 아들에 대한 칭찬을 낯부끄러 워하면서도 은근히 잡지 연재 까지도 자랑했다. 어찌 보면 반 쯤 웃자고 하는 소리였지만, 바 비큐 파티에 참석한 인원들은 나를 꼬박꼬박 ‘아이고, 작가님, 우리 작가님.’ 하면서 나름대로 치켜세워 줬다.
그러다가 자기 자식이 밥만 축내고 공부는 안 한다면서 푸 념을 늘어놓으면, 나는 때 되면 알아서 길 찾아서 간다며 위로 와 거리 두기를 시전했다.
만약 내가 회귀 전에 이처럼 성공을 거뒀다면, 작가 뽕(?)에 취해서 나 잘났다며 콧대를 세 운 채 철없는 망아지처럼 날뛰 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의 나는 닳고 닳은 아저씨(속 만). 아무리 이웃사촌 사이라고 하더라도 적당히 흠이 잡히지 않을 정도의 겸손을 떠는 것쯤 은 인제 와서 어려운 일이 아니 었다.
그러던 중, 파티에 참석한 지 우의 어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신 학생.”
“아,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제는 무슨 일 있었어? 다 들 왜 눈물을······.”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우의 어머니 앞에서 나는 미소를 지 었다.
“모험을 했습니다.”
“모험?”
“음,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놀 았다는 거죠.”
“근데 왜 다들 펑펑 울었어?”
“······그건 말하자면 복잡한데 요.”
“어른에게 말하기 어려운 그 런 사정이 있는 모양이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설 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사정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 그런 거면 괜찮아. 사 실 지우가 안 좋은 일도 겪고, 또 갑자기 이사를 해서 많이 걱 정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강 아지를 한 마리 들일까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닌데 지우도, 아 줌마도 내키지 않았거든. 그렇 잖아? 생명은 대체할 수 없으니 까. 하지만 여기에 와서 신 학 생이 계속 옆에서 챙겨줘서 이 아줌마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 라.”
“아니에요. 오히려 지우가 저 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죠.”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
“······네.”
적당히 너스레를 떨려던 나 는 진지한 지우 어머니의 눈빛 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 다.
지우 어머니도 잦은 이사와 전학이 딸에게 좋은 환경이 아 님을 알고 있겠지.
거기다가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에 겪은 토미의 죽음과 그로 인한 딸아이의 상처로 인해 여 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덕에 지 우는 요즘 들어 잘 웃게 되었다 는 모양이었다.
‘그게 내 덕인가 싶기는 하지 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지 우 어머니의 입장을 너무 부정 하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는다 싶었기에, 나는 앞으로도 사이 좋게 잘 지내겠다는 말을 끝으 로 대화를 끝냈다.
그렇게 밤까지 이어진 바비 큐 파티는 몇몇 어른이 술에 거 나하게 취하면서 막을 내렸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고, 어머 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밀린 집안일을 시작했다.
빨래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 기를 버리러 뒤뜰로 나가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던 그 때, 나는 막 집으로 들어오던 누군가와 마주치고 말았다.
트라우마(아님)가 떠올랐다.
“······지우야?”
“아, 신 오빠······.”
지우는 집으로 막 돌아오는 와중인 듯했다.
그런데 그 등에는 체구에 맞 지 않은 뭔가 커다란 게 걸린 채였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머리 위로 길쭉하게 튀어 나온 가방을 멘 지우. 대체 갑 자기 무슨 일인가, 이걸 내가 물어봐도 되나.
약간 고민하고 있자니, 지우 가 총총 걸어 내게 다가왔다.
“오늘 파티 잘했어요?”
“응, 재밌었지. 오늘 왜 안 왔 어?”
“아, 죄송해요. 두피하고 약속 이 있어서.”
“두피? 왜?”
“어, 음······.”
말을 살짝 아끼는 지우.
나는 어둠 속에서 위협하듯 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가방으 로 다시금 눈길을 보냈다. 아직 흑마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지우가 두피와 함께 어 딘가의 흑마술 스토어(?)에 가 서 물품을 사 온 걸까. 저기 들 어있는 건 마녀의 빗자루일까.
······당연히, 아닌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파악한 지우 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 을 확인했다.
“기타 샀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게 삐쭉 나왔는데.”
“어, 네. 정확히는 베이스예요. ······별로 눈에 안 띄는 포지션이 라고 해서.”
“그 말 들으면 전 세계의 베 이시스트들이 화를 낼 텐데.”
“그, 그래요?”
“아무튼, 베이스 배우려고?”
“뭐랄까······ 세션을 진행하다 보니까 이대로 가만히 틀어박 혀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요. 오빠가 소설을 쓰고, 두피가 뭔가를 만들고, 알렉사가 치어 리딩을 하듯이······ 저도 제가 누 구인지를 표현할 만한 뭔가를 찾고 싶었어요.”
지우는 먼 곳을 바라보듯이 도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 다.
희미해져 가는 토미를 바라 보고 있는 걸까.
“조금 두렵지만, 시작해 보려 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환한 웃음을 보 여주는 지우.
그 모습이 귀엽고 참으로 대 견했으나, 나는 사고형 인간답 게 이것부터 물었다.
“좋은 일인데, 값은 잘 치르 고 샀나 궁금하네. 좋은 건 제 법 비쌀 텐데.”
“아, 두피가 전에 샀던 건데 뱃살 때문에 못 친다면서 줬어 요. 비싼 건지는 모르겠는데, 돌 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더 라고요.”
“······.”
순진무구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우 앞에 서, 나는 차디찬 현실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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