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86)
86.
키 188센티미터. 체중 120킬로그램.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면 ‘휴먼 불도저’라는 링 네임을 가졌을 남자, 두푸스 재비어 킹스턴.
어린 시절, 심장 쪽에 문제가 있었던 그는 오랜 기간 침대 위에서 생활했고, 그 덕에 급격하게 살이 불었다. 몇 번의 수술을 거친 뒤, 심장은 거의 다 회복이 되었지만, 그때 문제가 되었던 식습관에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성장기 동안 식사량이 더 늘어나 그 풍채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앉은 자리에서 치즈버거 일곱 개와 버켓 오브 KFC를 다 해치울 수 있는 사나이. 두피 킹스턴.
그의 삶에서 먹는 일 이상으로 가장 중요한 행위라고 한다면 당연히 ‘너드질’이었다.
그는 온갖 종류의 너드질에 통달했고, 자신의 방에 작은 왕국을 건설했다. 그의 아버지 레지날드 킹스턴은 사랑하는 아들의 너드질을 이해해 주었고, 심지어는 태생부터 타고난 동심 덕분에 거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아내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원 한복판에 꿋꿋이 서 있는 ‘R2-D2’ 1대1 스케일 모형은, 레지날드가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면서 어디선가 슬쩍 얻어온 물건이었다.
그렇듯 두푸스 킹스턴의 삶은 코믹북, 장르 소설, 장난감, 보드게임, TRPG 등의 서브컬처와 굉장히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그걸 원했고, 그 결과 소년이라면 으레 갖기 마련인 꿈도 그쪽으로 이어졌다.
두푸스는 장난감 디자이너, 더 나아가 피규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랬던 두피의 삶에 친구들이 흘러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갑자기 학교의 유명인 알렉사가 아침마다 인사해 오고, 거기에 자연스레 신이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신과 죽이 맞는다는 것을 느끼고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알렉사와도 친해졌고, 거기에 지우도 들어왔다.
네 사람은 각자가 너무도 달랐지만, 그럼에도 죽이 잘 맞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두피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이외에는 굳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부도 적당히 할 만큼만 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식축구나 음악, 서핑 같은 일도 그저 그랬다.
그것은 어쩌면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몇 번의 수술을 거쳐 심장이 회복되었다고 한들, 어렸을 때의 색색대며 고통스러워하던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했다. 따라서 몸을 움직이는 일에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면 또다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몸은 회복이 되었어도, 마음에 남은 거부감은 쉽게 채워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피는 조금씩 그런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났다.
캠핑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톱질도 하고 텐트도 치고,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렸다. 심장 또한 세차게 뛰었다. 아주 건강하게.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피는 그 사실에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캘리포니아 해변을 내달리고, 메탈 밴드 공연을 보러 가서 신나게 방방 뛰고. 그날 ‘메탈리카’라는 밴드가 나왔을 때, 그 옆에서 자신처럼 감동한 듯한 얼굴을 한 신이 저 밴드가 나중에 대성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렇게 두피는 신나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코믹북 스토어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두피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위치한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를 반드시 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도매상과 연이 깊은 아버지에게 따로 부탁을 드려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과 맞닿아 있는 집 근처 가게의 매출을 띄워주면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키튼즈에 가서 사는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더블 스파이’의 장난감 개발에 디자이너로서 참여하고 관련 일을 공부하게 되면서 몇 달 정도 키튼즈를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두푸스의 행동은 생각보다 더 거대한 나비 효과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을 코믹북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두피맨은 자신의 두피-센스가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다.
두피-눈으로 주변을 살펴본 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다들 얼핏 보기에 코믹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두피맨은 자신의 두피(머리 가죽)를 매만지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코믹북 마스터, 빌.
사장은 아니었지만, 이 코믹북 스토어를 지배했다. 그것은 그의 슈퍼 파워였다.
그가 귀 뒤의 안경 칩을 툭 치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두피.”
“······아쿠아맨 뉴 이슈, 세 권.”
“호오, 세 권인가. 역시 두피, 너다운 선택이군. 아쿠아맨 ‘따위’에 그렇게 돈을 쓰다니.”
“아쿠아맨을 모욕하지 마라!”
순간 두피맨이 흥분해 소리쳤다. 그것은 그의 두피-토나이트였다. 모두가 아쿠아맨은 구리다고 이야기해도 두피맨은 그런 편견과 맞서 싸웠다. 아쿠아맨은 슈퍼 멋진 슈퍼 히어로였다.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아쿠아맨에 대한 모욕을 철회해라. 빌.”
“철회하지. 아쿠아맨은 정말 멋져. 물고기와 대화도 하지. 그게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고.”
“······으음.”
두피맨의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때, 코믹북 마스터 빌이 말했다.
“네가 ‘Princess quest’의 로드 두푸스인가?”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알겠군. 두피맨. 신 작가를 만나고 싶다. 우리는 그것을 단호하게 요구하며, 받아들여질 때까지 너를 이 코믹북 스토어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월권이다! 당장 아쿠아맨 뉴 이슈를 내놔라!”
“아니, 너는 그럴 수 없다. 대신 이걸 주지.”
마스터 빌이 쿠폰을 내밀었다. 아쿠아맨 뉴 이슈를 얻을 수 있는 쿠폰. 유효 기간이 지난. 그것은 빌의 끔찍한 농담이었다. 그는 조커처럼 킬킬거리며 웃었고, 그 앞에서 두피맨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관조하던 키튼은 또다시 생각했다.
‘저 새끼, 대체 뭐라는 거야?’
이곳은 그의 가게였다.
하지만 두피맨은 군말 없이 돌아섰다.
너드에게는 너드의 방식이 있으니까.
‘후회하게 해주지. 빌.’
물론 마음속 독백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딱히 뾰족한 수단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두피맨은 두무룩(두피-시무룩)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
‘Princess quest’ 7화가 발매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
앙케트 집계는 계속 이루어졌고, 줄리아로부터 중간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연락이 몇 번인가 왔다. 그리고 들어오는 팬레터와 순위의 기미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디피스트 던전’을 꺾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아무래도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내가 확실히 좀 변했다고, 아니, 정확히는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브이 작가의 작품을 부정하지 않았다. 조금 더 명확하게 심정을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였다. 내가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건 작품의 일부일 뿐, ‘디피스트 던전’은 확실히 재밌고 좋은 작품이었다.
‘그래도 이기고 싶기는 한데.’
왜냐면 이 7화는 정말 최선을 다해 썼으니까.
슬슬 윤곽이 잡히는 건 지금으로부터 이틀 뒤, 다시 말해 8화가 실릴 다음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발매 5일 전쯤.
그때 줄리아로부터 올 연락을 기다리면서 나는 열심히 일상에 매진했다.
여름 학기가 되고 루틴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중에는 학교에 갔고, 끝나면 가게를 봤다. 가게에 와서도 집이 같은 방향인 지우가 자주 함께했고, 두피도 종종 놀러 왔다. 마지막으로 밤에 알렉사가 가끔 와서 스니커즈를 하나씩 서비스로 달라며 장난도 쳤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원고를 쓴 뒤, 잠이 들었다.
토요일에는 애들하고 만나서 놀고 글 쓰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나갔다가 글 쓰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음에도 즐겁고 편한 이유는,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이 인정받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씻은 뒤, 밖으로 나가자 지우가 문밖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응, 잘 잤어?”
아무래도 옆집이다보니 자주 학교를 함께 가는 우리.
대부분은 지우가 옆에서 벌새처럼 조잘거렸고 나는 들어줄 뿐이었다.
어제 베이스로 뭘 쳤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지우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교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던 알렉사를 발견했다.
“신! 지우!”
아침 치어리더 클럽 연습을 끝마치고 씻고 나온 그녀는 아직 머리가 덜 마른 채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헤어 캡을 가끔 깜빡해서 그렇단다. 나는 그걸 통해 오늘의 운세를 점치면서 알렉사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오늘 연습 잘했어?”
“응응, 더블 트라이앵글 점핑 포지션에 성공했어!”
진짜 하나도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나는 빙긋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응, 어제 잘 잤어?”
“네, 알렉사도요?”
“응응, 이따가 같이 점심 먹을까?”
“······좋아요.”
세션 이후로 전보다 훨씬 친해진 두 사람.
그리고 나는 시선을 느꼈다.
내가 하이스쿨을 다니던 때는 왠지 모르게 친한 무리끼리 교문에 모여 있다 들어가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무리를 이루려는 행위의 일종이었다. 혼자 먼저 들어갔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일이 빈번하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누군가 그렇게 시작하자 다들 따라 하면서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이 된 거겠지.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굉장히 특이한 무리였다.
인종으로도 묶이지 않았고, 클럽이나 관심사로도 묶이지 않았다. 알렉사 플레어는 모두의 인기인이었지만 원래부터 특정한 무리에 속하지 않았으며, 나나 두피, 지우 역시 학교에서 지낼 때는 주로 loner로 지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인제 와서는 뭐 어떠랴 싶지만.’
시선을 느끼며 피식 웃고 있자니 이내 거대한 무언가가 우리를 지나쳤다.
“응?”
내가 먼저 알아차렸다.
두피 킹스턴.
이빨에 낀 대나무 줄기를 벗겨내려다 지친 판다처럼 추욱 어깨를 늘어뜨린 채였다. 알렉사와 지우, 둘 다 고개를 갸웃거렸고, 내가 대표로 두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두피······?”
“아, 신······. 포스가 그대와 함께하길.”
“포스가 그대와 함께하길.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었다.”
눈 밑에 그늘이 드리워진 두피를 보고 나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내가 아는 두피는 이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2 더하기 2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였다. ······사실,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이미지는 절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 눈에는 그런 모습이 보였다. 두피는 특별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는 피어오르는 당황을 감추며 물었다.
“그래 보이지 않는데? 이봐, 두피. 뭘 그렇게 축 처져 있어? 좋은 아침이잖아! 자, 친구.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려봐. 응?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두피 킹스턴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미안,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군.”
“나한테도 말하지 못할 일이야?”
“······그래, 미안하다.”
두피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맑고 깊은 눈망울을 본 나는 그가 나를 배려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즐거움만을 나누고 힘듦은 나누지 않다면, 그게 친구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두피의 눈을 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건 웃는 얼굴의 두피 킹스턴이야.”
“······어, 얘들아. 주변에서 다 보고 있거든?”
알렉사가 이야기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이 교문 앞이라는 사실도, 다들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곧, 수업 시작한다고?”
수업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친구의 고민뿐.
내 결연한 눈빛에 두피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실, 코믹북 스토어에서 문제가 생겼다.”
“무슨 문제?”
그리고 나는 두피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약간 물러서 있던 지우와 알렉사도 다가와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코믹북 스토어에서 마스터 빌과의 만남. 사지 못한 아쿠아맨 이슈 세 권.
나는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는 걸 느꼈다.
코믹북은 뉴 이슈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 나쁜 자식들!”
“너, 너무해요.”
“고맙다. 지우, 신.”
“······어, 심하긴 한데, 그 정도까지 화낼 일은 아니지 않아······? 아니, 애초에 빌이 사장도 아니면서 그렇게 코믹북을 마음대로 안 팔아도 되는 거니?”
“넌 아무것도 몰라. 존 스노우.”
“존 스노우?”
아차차, 나도 모르게 그만 미래의 지식을 이야기해 버리고 말았다. 존 ‘유노낫씽’ 스노우는 미래에 나올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이로 인해 지금 시대에는 분명 살아 있어야 할 존 코너가 죽어버리는 역사 개변이 일어나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코믹북 너드 가이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비겁한 자식들!”
“······신, 내 안의 네 이미지가 박살 나고 있어.”
약간의 경멸이 담긴 알렉사의 시선.
그걸 무시하면서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알렉사. 두피는 지금 우리를 지켜주려고 이런 거야.”
“그건 나도 아는데. 그냥 가서 사면 안 됨?”
“끝나고 다 교문 앞으로 모여. 오늘 전쟁이다.”
“······저기, 나 치어리더 클럽은.”
“저, 저도. 오늘은 베이스 레슨이.”
피치 못할 사정을 이야기하며 한발 물러서는 알렉사와 지우.
어쩔 수 없군.
“두피, 둘이서 가자.”
그 말을 들은 두피가 감동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툼한 볼살이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 Kingdom of nerd’s > 끝(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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