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9)
9.
[······작가님?]“네, 기자님.”
[원고를 다 쓰셨다고요? 1화부터 25화까지 전부?]“그렇습니다.”
[미리 써두신 건 아니겠죠?]“아닙니다. 요 며칠 학교 수업 시간에 공부 대신 글을 쓰긴 했습니다만.”
나는 뻐근한 손을 매만지며 쓰게 웃었다.
1화부터 25화까지 화당 1,000자씩 총 25화 분량. 25,000자.
이틀 만에 썼다기에는 꽤 많은 분량이었지만, 기획했던 대로 막힘 없이 원고가 나와준 덕분이었다.
게다가 열여섯의 나이로 돌아오면서 새삼 느낀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역시 나이는 젊고 어린 게 최고였다. 가만히 앉아서 브로콜리만 먹어도 뇌가 쌩쌩 돌아갔다.
[호, 혹시 바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팩스 번호를 가르쳐주시면 내일 바로 보내겠습니다.”
[네네,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흐아,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시네요.]“그런가요?”
[그럼요! 이렇게 빨리 완결까지 쓰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도움 같은 것도 드리고 그랬어야 했는데 괜히 송구스럽네요. 혹시 쓰시면서 고민 같은 건 없으셨나요?]“고민할 게 있나요. 계획한 대로 쓰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쓰다 보면 뭔가 더 나은 방향성이 떠오르신다거나······.]“딱히 그러지는 않더군요.”
그야 당연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며 글을 썼으니까.
젊은 뇌(?)와 더불어 하나의 간결한 목표, 그리고 분량 자체도 내가 작가로서 살던 미래와 비교하면 딱히 많지 않다. 막히지 않을 이유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먼으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실까요?”
[아, 그러시죠. 작가님께서 마침 원고도 다 쓰셨다고 하니 이걸 여쭙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필명은 어떻게 가실 생각이신가요?]“그거라면 미리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싱긋 웃은 나는 사이먼에게 스펠링까지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에스, 이, 이, 엔.
SEEN.
[‘신’이군요.]“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그건, 제가 나중에 조금 더 유명한 작가가 되면 말씀드리는 걸로 하죠.”
[하하! 좋습니다! 작가님이라면 분명 되실 수 있을 겁니다!]사이먼이 웃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소설 연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작가님, 혹시 지금 저희 신문 보실 수 있으신가요?]“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가판대에서 신문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날로그한 가정용 전화기라 전화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는 점은 살짝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문화 섹션에 소설이 실리는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지금 소설 페이지 보고 있습니다.”
[거기 보시면 저희 작품 있잖습니까?]“네네.”
격일로 연재가 이루어지는 토런스 뉴 미디어의 소설.
오늘 연재된 작품은 공포 장르인 ‘죽음의 손아귀’, 미스테리 장르인 ‘더 램프’, 추리 장르인 ‘마지막에 나간 자’, 마지막으로 모험 장르인 ‘골든 퀘스트’였다.
당연히 전부 다 읽어봤고, 막바지에 들어선 골든 퀘스트와 죽음의 손아귀는 꽤 흥미진진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목 옆에 로고 보이시죠.]“네, 보입니다.”
죽음의 손아귀 옆에는 손톱이 길고 마른 손아귀가, 더 램프 옆에는 소형 가스등이, 마지막에 나간 자 옆에는 반쯤 열린 문이, 골든 퀘스트 옆에는 금화로 가득 찬 상자가 보였다.
[‘Mother’에도 저런 로고가 하나 필요합니다.]“그렇군요.”
“그거라면 하나 생각해둔 게 있긴 합니다.”
[벌써요?]“아, 넵.”
[작가님······ 정말 연재 처음이신 것 맞죠?]“그럼요. 이제 고등학생인데 제가 어디서 연재를 해봤겠습니까?”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자고로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크게 쳐야 하는 법이다.
연재 시 이렇게 소설의 ‘외적인’ 부분까지 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미리 알았던 나는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다 생각해둔 상태였다. 장르 소설가로서 그래도 꽤 잔뼈가 굵은 덕에 괜히 이래저래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느꼈다.
[일반적인 법정 수위를 지켜주셔야 하고요, 너무 복잡한 패턴도 인쇄 시 어려움이 있어서 되도록 심플하고 작아도 알아보기 쉬운 이미지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저도 떠오르는 콘셉트가 있군요. Mother의 작품 로고는 십자가로 가심이 어떨까요?]“저는 베일로 얼굴을 감추고 있는 여인의 옆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제목과 종교적인 광신이라고 하는 테마, 주인공인 수지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 콘셉트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크기가 애매할 것 같은데요. 로고 사이즈가 10X10인데, 디자인 팀에서 작가님이 말씀하신 콘셉트로 다들 척하면 알아볼 만한 좋은 그림을 뽑아줄 수 있을까가 약간 걱정이네요. 그래도 부탁은 한번 해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
이야기는 척척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재 일자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죽음의 손아귀’가 마침 10월 말에 연재가 끝나니 그때부터 들어가면 어떨까 싶은데요.]“저는 좋습니다.”
딱 멋진 타이밍이었다.
대통령 선거도 비슷한 시기였고 그 이후로 토런스 뉴 미디어의 판매 부수가 치솟으니까.
“혹시 제가 정확한 일자를 지정해도 괜찮을까요?”
[가능은 합니다만, 제가 피드백 드리는 대로 수정을 맞춰주셨으면 합니다.]“그 부분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습니다. 꼭 연재를 시작하고 싶은 날짜가 있어서요.”
[그게 언제신가요?]“11월 6일입니다.”
[11월······?]“연재란을 공백으로 남겨두긴 어려우실까요?”
[그으건,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이럴 때를 대비해 엽편 소설도 몇 개 준비해두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역시 이번에도 이유를 여쭙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뭔가 제 소설을 독자들께 선보이기에 ‘좋은 날’이 될 것 같아서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레이건이 공화당의 깃발을 백악관에 꽂기 시작한 날.
딱 그때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게 베스트일 것 같았다.
***
통화를 끝내고 난 뒤.
‘왜 하필 11월 6일일까?’
뭔가 중요한 날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떠올리려고 하자 그게 잘 머릿속에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이먼은 일단 그날은 퇴근해 머릿속을 비우고 소설을 읽으며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비몽사몽 한 채 회사에 도착,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아침 발제를 보냈다. 곧 있을 대통령 선거의 영향으로 문화 섹션에서도 로널드 레이건이 출연한 영화가 얼마나 죽여줬는지에 대해 구독자들에게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했다.
‘싫단 말이야.’
소설과 문화가 정치적으로 쓰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이먼은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며 사장과 편집장이 함께하는 아침 회의에 참석했다.
사장은 사실상 회의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선거 때문인지 자주 나와 기자들을 독려하고는 했다.
이런 식으로.
“지미 카터 그 ●●끼가 가정부의 ●널에 자기 ●을 박아 넣었다는 소식 없어?!”
“······.”
“······.”
막상 지미 카터 앞에 가면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가 될 대머리 사장이 열변을 토했다.
“●이 아니면 ●가락이라도 좋아! 그런 각오로 뽑아 오란 말이야! 기사를! 우리가 이길 근거를 더 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은 애국심도 없어?! 골드러시를 생각하라고!!”
현업에는 전혀 조예가 없었던 사장은 이번에도 지미 카터를 조지고 공화당의 높으신 분들께 어필하자고 외쳤다. 사실, 지미 카터의 애●이건 뭐건 그런 기사는 쓰는 자체만으로도 신문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기자들은 이 고통을 그저 견디고만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이먼 카버는 계속해서 그 날짜를 생각했다.
11월 6일. 11월 6일.
그러다가 문득 연결해냈다. 앞서 생각한 애와 널을. 아니, 그게 아니라.
“카버엇-!!”
“네, 네?!”
“오늘도 뭘 그렇게 멍청히 있나?! 뭔가 죽여주는 아이디어를 내보란 말이야!”
휴고 어빙이 사장을 대신해 소리쳤다.
대충 멍청한 소리 하나 하고는 사장의 화를 잠재울, 정확히는 그 분노의 화살을 대신 맞을 대상으로 지목된 사이먼이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 그는 11월 6일과 대통령 선거를 연결해냈다. 신이라고 불리는 한 신인 소설가의 영향으로.
“어, 인쇄소를 추가 계약하죠?”
“이유는?!”
“레이건이 당선되면, 분명 우리 신문이 더 팔릴 테니까요?”
그 말은 지금 모두가 민주당을 조지는 데 혈안이 되어 미처 깨닫지 못한 어마어마한 핵심을 담아내고 있었다.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휴고 어빙도 차마 뭐라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 사장이 대머리를 빛내며 외쳤다.
“바로 그거야!! 그런 죽여주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고!”
그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퇴장했고, 휴고 어빙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총알받이였던 기자가 뜻밖에도 최고의 아이디어를 낸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이먼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다음 생각을 떠올렸다.
‘어서 소설이 도착했으면.’
마지막까지 썼다고 하는 ‘Mother’가 보고 싶었다.
이후 점심까지, 그는 머릿속으로 기획서에 적혀 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Mother’는 동양적 공포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수지는 어머니의 학대와 방임 속에서 자라난다. 그녀는 개를 잃었고 자기 자신은 아예 가지지도 못했다. 그저 종교적인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살면서 친구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던 수지는 어느 날 밤부터 알 수 없는 환각을 보기 시작한다.
죽었던 개가 살아나는 환각.
그 환각은 현실과 융합된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사이먼.”
“아, 미스 브라운.”
“팩스 왔어요.”
사이먼은 미스 브라운이 툭 던져주고 간 종이 뭉치를 마치 성서라도 되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반쯤 자신이 수지가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정신없이 ‘Mother’를 읽어나갔다.
공포 소설은 세계와 심리의 묘사가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입문하기는 쉬워도 제대로 쓰기는 어려운 소설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사이먼은 이렇게 생각했다.
공포 소설은, 독자가 그 소설을 어디에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캠핑장에서 어둑어둑한 밤에 읽으면 분위기가 더 사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아도 정말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재밌었다.
기획서에서 신은 이 소설을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는 동양의 공포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수지라고 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장르 소설에서 그런 ‘거창한’ 요소는 편집자나 작가에 따라 ‘필요하다’와 ‘필요하지 않다’로 나뉜다. 사이먼은 그에 대한 특별한 의견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존중하는 편이었고, ‘Mother’에서 신인 작가의 포부를 고스란히 느꼈다.
일독을 이어가며 사이먼은 자연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천재 소년.’
한 시대를 이끌 만한 재목이 자신이 겪어온 차별과 울분을 이 글에 토해냈다.
그런 감상이 절로 샘솟았다.
수지의 어머니에 대해 정말로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한 진득한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광기는 단순히 이상하다 정도로 표현이 불가능했다. 기괴했다. 어떤 목적을 드러내는 듯하다가도 금방 그 목적을 바꾸었으며,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게 했다.
10화, 13화.
소설이 이어질수록 수지는 어머니와 같이 미쳐갔다.
하지만 그녀에게 희망이 생겨났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소년, 케빈이었다. 서로 결핍된 가정에서 자라난 두 사람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그와 함께 고난이 찾아왔지만, 소년 소녀는 그걸 이겨내며 상대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함께 마을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15화, 17화의 능선을 넘어 21화.
어머니는 수지에게 어떤 주술적 의미가 담긴 의식을 진행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으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수지는 거부했다.
가면 갈수록 전개는 파국을 향해 치달았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나가며 사이먼은 기획서에 적혀 있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제 케빈이 등장해 수지를 구출하고 두 사람은 어머니와 종교 시설로부터 도망칠 것이다.
‘그래, 그래야 하는데.’
23화.
케빈이 어머니의 칼에 찔려죽었다.
“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전개.
사이먼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24화. 수지는 그 일로 인해 완전히 미쳐버렸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마침내 마지막, 25화.
수지는 알 수 없는 의식에 휘말려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벌레가 몸을 기어 올라오는 듯했다. 이내 그건 현실이 되었다. 아냐, 이건 환각이야. 수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분명히 버켓을 들었고 그녀의 얼굴에 부었다. 수백 마리의 지네가 다리를 타고 올라와 허벅지 안쪽을 간질이고 배꼽을 긁어댔다. 이러다가 더 위로 올라오겠지. 뺨을 매만지고 입술 안쪽으로 들어와 눈알을 파먹으며 나가겠지. 아니, 아니. 하지만 어째서? 지네가? 이렇게 많은 지네라고? 어머니의 약재료인가? 왜?
문득 수지는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그런 거구나.”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모여드는 사람들, 불꽃이 일었다. 제단의 ‘Han-ja’가 번쩍였다.
수지는 자신의 손목에 피를 낸 단검을 들어 어머니의 목을 찔렀다.
“이제야 알겠어요. 어머니.”』
‘Mother’를 다 읽은 뒤, 사이먼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입을 열었다.
“왜 수지가······.”
케빈은 죽었고, 수지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변모했다.
기획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이먼은 충격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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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5)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