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90)
90.
『성직자는 울면서 소리쳤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
하지만 얀센은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뺨.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삐져나온 팔이 부러졌고, 압박에 의해 안구가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살인 식물, 맨 이터에게 먹힌 결과는 참혹했다. 얀센은 그 광경을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억.
성직자는 던전에 아무 음식도 가져오지 못한 자신에게 육포와 건빵을 나눠주었다. 얀센은 그의 호의에 도움을 받았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이 던전 끝에 있는 보물을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때, 누군가 얀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바로 궁수였다.
“이봐, 너무 보지 말라고. 꿈에 나온다.”
“······.”
“어쩔 수 없었어.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지.”
그리고 가장 희생할 만한 사람이, 사람들의 부상을 치료해 주느라 주문을 다 쓴 성직자였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제, 제발. 죽, 여······.”
검의 힐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궁수는 그것조차 막았다.
“저 괴물은 살아 있는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지금 죽여서는 안 돼.”
그 또한 합리적인 결정이다.
서서히 먹힌 성직자가 이내 괴물의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배를 채운 맨 이터의 잎이 추욱 늘어졌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전사인 얀센과 궁수, 마법사는 적당한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이 먹잇감을 서서히 소화하기 시작할 때가 적기였다.
“지금.”
노련한 궁수의 말에 각자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궁수가 들고 있던 기름통을 휘저어 식인 식물에게 기름을 끼얹었다. 소화에 들어가던 맨 이터가 갑작스러운 자극에 줄기를 뻗어왔다. 하지만 얀센은 들고 있던 방패와 검으로 그것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섰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뒤에서 던진 횃불에 거대한 불꽃이 일었다.
버둥거리며 타오르는 맨 이터는 마치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머니와 누이 같았다.
그들 역시 똑같이 타올랐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장작 삼아 불타오르는 맨 이터 속에서 빠져나온 일그러진 성직자의 머리통을 얀센은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디피스트 던전은 주인공 얀센의 복수가 주된 테마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가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경험을 가진 남자는 마을에서 쫓겨나 노예로서 살아갔고, 자신의 가족을 그렇게 만든 이단심문관을 향한 복수만을 생각하며 용병이 되었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온갖 위험한 던전을 탐험하며 조금씩 인간성을 잃어갔다.
그와 함께 던전을 탐험하는 이들 대부분이 끔찍하게 죽어갔다. 그렇기에 얀센도 딱히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각자의 특징에 따라 적당히 불렀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건, 어떤 사상을 가졌건, 이 작품에서는 단지 죽음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작가인 브이는 최근 들어 그런 전개에 매너리즘을 느꼈다.
‘이걸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라면 누구나 겪는 ‘이걸로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브이는 그저 자신이 쓰고 싶은 바를 타자기를 통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새겨넣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신 작가의 글을 보고는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 어떤 생각으로 ‘Mother’를 쓰고, 나아가 ‘Princess quest’라는 글까지 쓰게 된 걸까.
그러다 보니 흥미가 생겨 자연스레 코리아타운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신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브이는 책상 밑에 호랑이 깔개를 두었다.
집안의 귀신을 쫓아준다고 하는 카페트.
그걸 내려다보면서 희미한 웃음을 지은 브이는 검은 얼룩이 새겨지다 만 새하얀 종이를 바라보았다.
‘좋아.’
조금은 다른 생각이 떠올랐던 그는 천천히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팩스보다도 우편이 아직 편리했던 그는 한 화를 집필하고 나서 봉투에 담아 편집부로 보냈다. 그리고 오랜만에 ‘디피스트 던전’에 대한 담당 편집자의 반응이 기대된다는 감정을 느끼며 연락을 기다렸다.
며칠 뒤 혼자 남은 집으로 걸려 온 전화.
[작가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편집자는 다짜고짜 그런 말부터 내뱉었다.
브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딱히, 별일은 없는데요.”
[아니, 원고가······ 왜 이렇죠?]“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자연스레 말이 세게 나갔다.
작가에게 있어 원고는 노력의 산물인 동시에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원고를 부정당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았고, 평소에는 퀭한 눈으로 자신의 세계에 빠진 채 시간을 보내던 브이도 순간 정신이 확 들 정도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담당을 줄곧 맡아 오고 있는 라이언 맥플라이는 업계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편집자였다. 수많은 작가를 상대해 온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이번 디피스트 던전의 원고는 기존과 너무도 인상이 달라졌기에, 자연히 처음부터 피드백이 세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왜 이번 화에 각 캐릭터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셨죠?]“······그러면 안 되나요?”
[네, 이러면 안 돼요.]라이언 맥플라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이럴 수도 있다. 이런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있어 이런 구성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 화가 디피스트 던전만이 가진 장점에 칼을 가져다 대고 있어요.]“제 작품의 장점이 뭐죠?”
[막막한 공허함. 차가운 치열함. 주인공이 투기장의 목줄 채워진 들개가 된 것 같은 감각.]라이언은 브이의 질문에 곧바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만큼 그가 이 소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그가 왜 이런 식으로 작품을 써왔는지도 대강 알 것 같았다.
[신 작가의 작품 때문인가요?]“······음.”
[작가님, 고작 한 주, 한 주 밀렸을 뿐이에요. 작가님 작품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고요! 앞으로의 전개도 많이 남았잖아요! 주인공이 악의 마법사와 이단심문관을 조지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직 제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지만! 어쨌든 죽여주는 결말을 맞이하겠죠!]“조금 다른 방향을 넣어보고 싶어서요.”
[그러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천천히 키를 돌리셔야죠. 이건 ‘Deepest dungeon’인데 왜 ‘Princess quest’처럼 가려고 하시죠? 그 작품이 좋아서? 만약 그렇다면 새로운 작품을 쓰시는 게 맞죠!]“왜죠?”
[왜냐면 그게 장르 작가니까. 장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따라오는 독자를 만족시킬 의무가 있으니까.]라이언은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의무는, 당신을 믿고 이 작품을 읽어준 독자들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비롯되니까. 갑자기 작품 마지막에, ‘이 모든 게 주인공의 꿈이었습니다! 짜잔!’ 하는 작품도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독자들이 그걸 보고 뭘 느낄까요?]“허무, 함?”
[그렇죠! 허무하죠! 주인공의 여정을 보고 싶어서 따라왔는데 그 모든 게 사실 ‘가짜’였던 거잖아요! 주인공이 죽어도 돼요! 주인공이 패배해도 돼요!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부정하는 건, 그 소설을 꾸준히 읽어 준 독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전개일 겁니다!]“······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이번 원고에서 그러려고 하고 있었죠. ‘기대를 배신’하잖아요. 아, 물론 독자의 니즈를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합니다. 현재 다시 1위에 올라선 로난 더 바바리안도, 취향이 맞지 않는 독자에게서 이제 좀 끝내라는 편지가 오거든요. 한 가지 슬픈 사실은, 일반적으로 뭔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독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낼 때가 많다는 점이죠. 만족하면 그냥 괜찮다고 대충 넘어가거든요.]“······.”
[작가님, 작가님 작품에 자신을 가지세요. 이 작품은 잘 쓴 작품이에요.]“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아, 주변 인물의 서사를 넣는다는 게 나쁘다고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방향성의 문제에요. 구구절절하지 않게, 조금 더 영리하게 전개했으면 좋겠어요.]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편집부.
자리에 앉아 있던 라이언은 힐끔 주변을 넘겨다보며 이야기했다.
흥분해서 너무 크게 말했는지, 다들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손짓으로 별일 아니니 할 거 하라고 전한 뒤, 라이언은 마지막으로 브이 작가에게 전하고 싶은 바를 말했다.
“저는 그저, 이 작품에 맞게 넣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네, 명심하겠습니다.]그리고 전화는 뚝 끊어졌다.
브이 작가의 오랜 스타일이었다. 제 할 말만 하고 끊는.
거기에 익숙했던 라이언은 씁쓸하게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비축분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조금 더 고민하게 놔둬도 되겠지.
한순간에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고,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그는 옆에 편집장인 아서 레이놀즈가 와있음을 알아차렸다.
“아, 편집장님.”
“라이언. 열정 넘치는 건 좋은데. 좀 적당히.”
“네, 네. 다들 일하는 중인데 좀 흥분했네요.”
“그게 아니라. 작가란 게 원체 섬세한 생물이잖아. ······브이 작가는 더더욱 그렇고.”
“그렇, 죠. 그래도 두드릴 때라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두드릴 때?”
“세계가 깊고 단단한 작가일수록 그 세계를 열고 나왔을 때, 더 좋은 게 나오더군요. 지금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약간의 기대감을 담아서 한 말.
그의 들뜬 목소리를 들은 아서가 피식 웃었다.
“‘Princess quest’ 때문인가?”
“아마도요?”
“처음에는 예상 못 했는데, 그거 참 물건이야.”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엄청 즐겁게 읽었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왜 이런 게 인기가 좋은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작가까지.
잔잔했던 호수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할까.
반응은 다양했으나, 한 가지 사실은 명확했다. 이 특이한 작품이 어찌 되었든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면서, 개척시대가 한창인 이 업계에 그로 인한 여파가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대가 되는군.’
솔직히 말하면, 높게 책정한 계약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방과 후, 코리아타운.
학교를 끝마치고 가게로 향하고 있던 나는 또다시 ‘그 남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브이였다.
‘······또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로군.’
주변을 힐끔거리며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그.
누군지는 말할 것도 없었던 나는 슬쩍 그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작가님.”
“아,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네, 오늘도 코리아타운 투어가 필요하신가요?”
나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래도 이전보다 브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해서일까. 이제는 친근하게 여기면서 상대할 정도는 됐다.
“작가님한테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시 괜찮으실까요?”
“밥 사면요.”
“무, 물론이죠.”
호의적인 내 대답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브이.
오늘도 가게를 보면서 신문과 잡지를 탐독하려 했지만, 이런 날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순순히 브이와 함께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직은 밥때가 아니었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에게 흥미를 가진 것처럼 나 역시도 브이라는 작가를 더 알고 싶었다.
내 작품이 어떻게 해서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가가 궁금했으니까.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으니 브이가 다짜고짜 이런 말을 꺼냈다.
“제 작품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 글쎄요. 일단 다크한 맛이 있죠. 불완전한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는 한없이 어두워지고 주인공이 그 안에서 투쟁하는 가운데, 결국에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어딘가 반쪽짜리 승리만 거두는 그런 느낌이요.”
“네, 그게 제가 추구하던 글이었어요. 그리고 ‘Mother’도 비슷하죠.”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서 ‘Mother’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요.”
“가, 감사합니다.”
아, 듣기 싫다. 듣기 싫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람.
칭찬을 회피(?)하고 싶었던 나는 말을 돌렸다.
“그, ‘Mother’는 소드 앤 소서리가 아니라 공포 소설이잖아요. 애초에 그런 맛을 추구하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소설을 쓰신 작가님이 어떻게 ‘Princess quest’도 쓰셨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심지어 그 소설에서도 저와 같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시니까요.”
“······별거 있겠습니까.”
나는 알렉사로부터 들은 말을 떠올렸다.
“작가님, 너무 고민하시지 않아도 좋을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예?”
“지금 ‘디피스트 던전’를 쓰는 것에 어떤 매너리즘을 느끼고 계신 거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작품을 읽고서 괜히 시선이 더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야구?”
“야구 모릅니다.”
“소드 앤 소서리로 가죠.”
나는 ‘동류’를 만났다는 기쁨에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 캐릭터가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파티를 꾸리는 거고. 문제는, 각 작가의 작품 역시 그럴 수 없음에도 홀로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이죠. 독자들의 호평은 귓가를 스치고 악평만이 가슴에 짙게 드리우며, 내가 뭘 잘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환상이 뇌리에 심어지죠. 하지만 아니거든요. 제가 한 주 꺾었다고는 하지만, 작가님 작품에는 분명히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저는 그 매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셨으면 하네요.”
“그러면······ 있잖아요.”
“네, 네.”
“앞으로도 저는 계속 이런 작품을 써야만 하는 걸까요?”
“그게 싫으신가요?”
“아마,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작가님의 작품 같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
그 말을 들은 나는 길게 침묵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브이보다 결코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글이란 것은 기술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쉽게 우열을 나눌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에고를 내려놓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동시에 기분이 좋았다.
전생에는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서 지냈던 남자.
은연중에 인종차별적인 글을 썼던 작가.
내가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디피스트 던전’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신 작가님, 우세요?”
“어, 아, 아뇨. 에헤이. 나이 먹으니까 감수성만 짙어져서.”
“네? 아직, 학생이신 게······.”
“아차차.”
나는 설정 붕괴를 막고자 가볍게 헛기침했다.
그 와중에도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솔직한 속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 당장 이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브이 작가님.”
“네, 신 작가님.”
“저 역시 그래요.”
“무슨······.”
“저도 언젠가는 디피스트 던전 같은 깊은 세계관을 가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브이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남자와 하나의 생을 지나 화해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 속 어딘가에 잠겨 있던 족쇄가 하나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죠. 지금 저희는 각자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에 대한 평가는 오직 ‘독자’만이 할 수 있었다.
나는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을 꺼내 브이의 앞에 내밀었다.
오늘 발간된, ‘Princess quest’의 8화가 실린 잡지.
이걸로 우리는 또다시 2주에 한 번 돌아오는 승부를 할 예정이었다.
[ Deepest dungeon (3) > 끝(90)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