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91)
91.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 잠깐만요.”
내내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브이가 내가 내민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을 가져가서 읽기 시작했다.
한가로운 코리아타운의 오후.
나는 사장님이 가져다준 커피를 홀짝이며 잠깐 기다렸다.
원래는 이쯤에서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싶었는데.
‘뭐, 조금 더 이야기해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느긋하게 있자니, 종이가 팔락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고 브이 작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로, 로드 두푸스가 살아있어요······?”
“네. 죽었다고는 안 했죠?”
“세상에······.”
이 아저씨.
자기는 분명 자각하고 있지 못할 것 같은데, 눈이 빛나고 있다.
나는 순간 어색하게 웃었다. 브이의 반응이 뭔가 이 ‘Princess quest’를 읽는 독자 대부분의 반응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브이는 로드 두푸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받고는 화색을 띠더니, 잡지에 코를 처박은 채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정체를 숨기고자 노력하는 비밀 요원처럼 느껴졌다. 약간은 허술한.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저랬었지.’
전생의 어린 시절, 디피스트 던전을 읽었을 때 말이다.
그 어둡고 잔혹한 세계의 묘사, 인간이 마른 갈대처럼 휙휙 죽어 나가는 전개가 얼마나 재밌던지.
그때를 회상하니 브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생겼다.
“다, 다 읽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허어. 으음. 후우.”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이내 검지와 엄지를 펴 손가락을 브이 자 모양으로 만들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그 인상적인 제스처를 보면서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서, 설마. 이래서 필명이 브이는 아니겠지?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뒤로한 채, 나는 슬쩍 물었다.
“······어떠셨나요?”
“괴, 굉장히 재밌었어요.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목숨만 겨우 부지한 로드 두푸스와 일행이 렝커스터 왕국으로 가 미지의 존재를 조사할 새로운 장비와 동료를 맞이한다. 로드 두푸스가 파티에서 빠진 대신 새로운 동료가 들어온다. 하지만 그가 마냥 호의적인 인물은 아니다. ······저는 솔직히 이후에 클레어와 제이나가 이번에 벌어진 사건을 두고 다툴 줄 알았거든요. 사실, 너무 로드 두푸스에게 맡기기만 한 감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낄 테고.”
“그 부분도 확실히 묘사해 주었죠.”
8화에서 클레어는 자신이 두푸스를 두고 시민들을 대피시킨 것이, 검은 점액질과 아공간 너머의 존재에 대해 느낀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함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린 로드 두푸스는 클레어와 제이나를 도리어 위로한다.
자신은 괜찮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렝커스터 왕국의 기사들이 나설 테지만,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함께 베르그의 마법을 직접 본 두 사람이라고.
새로운 장비와 주문도 얻고, 제이나는 이 모험이 끝나고 돌아오면 양녀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로드 두푸스로부터 듣는다.
클레어는 혼자 상념에 잠긴 채 정원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일말의 두려움을 날려버리고자 한다.
바로 그때 등장한 인물이, 수도사 스탠이었다.
그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신이 속한 사회에 굉장히 충직한 사람이었다.
스탠은 신분을 철저히 따졌으며, 그것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믿었다. 몬스터와 적성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가 일치단결해 각자가 신분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이 세계관의 일반적인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었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그걸 말씀드리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아, 2주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싶네요.”
약간 시무룩해지는 브이.
그 앞에서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드디어 얀센과 동료들이 던전 끝에 도달했잖아요. 겨우 아티팩트를 손에 넣나 했는데 궁수가 얀센을 배신했고. 저도 이다음 내용이 엄청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던데요?”
“그, 그런가요?”
“네, 그럼 우리,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 나눠볼까요. 작가님, 이 작품 언제쯤 완결 내실 생각이신가요?”
사실 다 알고 있음에도 물었다.
그리고 그게 의외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걸 느꼈다.
나는 똑같은 세계를 다시 한번 살아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도 많이 알았지만, 아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디피스트 던전의 향후 전개나, 완결이 언제쯤 나는지도 알았다. 그렇기에 사실, 궁금할 수가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변화로 인해, 전생에는 그저 원망밖에 할 수 없었던 브이 작가와 가까워지다니.
잃은 게 있는 동시에 얻은 것도 있는 셈이었다.
“그을쎄요.”
“저는 16화로 완결 낼 생각입니다.”
“······그, 그렇게나 빨리요?”
브이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재 순위가 낮다면 몰라도, 나처럼 이제 한창 치고 올라가는 소설이 이렇게 빨리 연재를 종료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책으로 따졌을 때 4권 분량. 연재 기간으로는 반년이 조금 넘는 정도. 하지만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했다. 리플레이 분량으로도 그 정도였고, 이야기를 봤을 때 그게 맞았다.
중간에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넣어서 이야기를 더 끌어갈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작품인 만큼 굳이 그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쓸 이야기를 다 썼는데도 인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무리해서 연재를 이어갔다가 무너진 작품을 나는 얼마든지 봐왔으니까.
“······놀랍네요. 저는 음, 아마 1년 정도 뒤에? 작가님처럼 확실하게 잡고 있지는 않네요.”
“사실, 그게 일반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가님처럼 장기로 연재를 끌고 가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오는 차이라고도 생각해요. 누가 더 낫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연재를 계속해서 이어가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소설을 써왔는지, 그리고 그걸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내 경우는 간단했다.
“저는 연재가 끝나기 전까지 1위를 한 번쯤 차지해 보려고요.”
“······.”
내 포부를 듣고 약간 벙찐 표정이 된 브이.
하지만 뭐 거리낄 게 있겠냐 싶었던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아니, 솔직히 좀 긴장되긴 했다.
***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에 ‘SEEN’ 작가의 사인이 걸리기 시작한 이후로, 가게의 매출과 더불어 방문하는 손님의 숫자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CIA에서 텔레비전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조작해 미국인을 너드로 만들고 있다든가 하는 건······ 물론 아니었다.
그 모든 게 카운터 뒤쪽에 걸려 있는 ‘SEEN’ 작가의 사인 덕이었다.
이 근처 상권에는 코믹북 스토어가 하나 더 존재했다. 주로 그곳에 가던 이들이 가끔 자기가 가던 가게에 없는 물건을 찾으러 키튼즈에 오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카운터 뒤편에 있는 사인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걸어와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저거, 진짜 ‘SEEN’ 작가 사인이에요?”
“네, 진짜 신 작가 사인이에요. 가끔 우리 가게에 놀러 오고는 하거든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는 키튼.
그는 신 작가에게 당부받은 대로 그 이상의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공룡의 화석이라도 되는 듯이 사인을 흥미롭게 지켜본 너드들은, 혹시나 신 작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갖고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를 곧잘 드나들게 되었다.
빌은 그게 꽤나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작가’란 그 작품을 즐기는 너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건즈 앤 소드 매거진에 연재되고 있는 ‘Princess quest’는 현재 그 까다로운 너드 독자들에게 인정받았을 정도의 화제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인 하나만을 보고 다른 코믹북 스토어를 드나들 정도냐 하면, 그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빌도 작가 한 명의 사인을 받기 위해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참석하고 오랜 시간 줄을 서기는 했지만, 그건 사인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보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 온다고 해서 신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더군다나 사장인 키튼은 신의 당부를 생각해 확실하게 그를 소개해줄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렇기에 여기 온다고 해서 신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코믹북 스토어를 옮겼다.
얼핏 보기에 별거 아닌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다.
코믹북 스토어는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일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으로서 역할도 수행했다. 가던 곳을 꾸준히 가는 게 아는 사람도 많고, 너드들의 성향상 더 즐거울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앞선 여러 불편함을 감수해 가며 그들이 얕은 희망에 거는 이유가 무엇일까.
빌은 그것이 신 작가가 가진 ‘특별함’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데뷔작 두 개를 신문에서 히트시키고 잡지 연재로 넘어온 작가, 신.
각각의 작품이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소설이나 장르를 좋아하는 팬층뿐만 아니라 평소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다양한 계층까지 포괄해 자신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였다.
빌은 그것이 그가 만든 이야기 자체가 읽기 쉽고 재미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 신의 작품은 자극적인 독서 경험과는 별개로, 읽기에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심지어 ‘Princess quest’는 안 그런 척 인물과 사건의 클리셰를 비틀어서 작품을 내놓았으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게 한 이후로 철저하게 클리셰를 잘 따라갔다.
특히나 최근 연재 중인 ‘Princess quest’는 작품으로서 고점을 찍었다고 생각한 7화 뒤에도, 8화가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전개를 더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파티가 로드 두푸스의 영지에서 재정비를 거치면서 안정을 되찾는 한편, ‘수도사 스탠’이라고 하는 불안 요소를 자연스레 끼워 넣었다.
수도사 스탠은 로드 두푸스가 그렇게 된 원인을 클레어와 제이나, 두 사람으로부터 찾았다. 두푸스는 그런 게 아니라며 차분히 설명해도, 스탠은 그 앞에서는 납득하는 척하더니 뒤로 돌아서서는 발목 잡지 말라며 두 사람을 힐난할 정도였다.
그렇게 삐그덕거리는 가운데에서 그들은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빌은 이걸 읽고서 확실히 느꼈다.
‘신 작가는 글을 쓸 줄 안다.’
유쾌함도, 불안함도, 모든 장면이 잘 설계된 기계처럼 정교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니 다들 ‘SEEN’이라는 작가에게 특별한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우리 작가다워.’
······어느덧 신 작가를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된 빌은 두툼한 미소를 지으면서 팔짱을 꼈다.
***
이런 말이 있다.
서부에 캘리포니아, 동부에 뉴욕이 있다면, 중부에는 텍사스가 있다.
그처럼 텍사스는 굉장히 부유하고 발전한 주였다.
석유, 가스 산업을 기반으로 다져진 탄탄한 인프라와 그로 인해 갖춰진 많은 인구. 미래에는 많은 기업이 미국의 동부와 서부, 어디로든 쉽게 뻗어나갈 수 있는 텍사스에 본사를 둘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텍사스는 그런 영광의 쇠퇴기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동안 주 경제를 지탱해 오던 석유와 가스의 가격이 하락할 조짐이 보이면서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텍사스는 현재 새로운 타입의 산업을 찾느니 마느니 하는 기로에 선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기, 그 유명한 TRPG 시스템, ‘킹덤즈 오브 더 글로리’를 만든 ‘나이츠 오브 더 위즈덤’ 컴퍼니는 그런 세상과 반쯤 동떨어진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석유니 가스니 하는 일과는 관계가 없었고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상상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들의 관심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독자들에게 더 재미있는 규칙서를 발간해 줄까.
어떻게 해야 ‘던전스 앤 드래곤스’를 만든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 컴퍼니를 꺾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회사의 이름까지도 비슷한 두 기업.
연말 발매를 생각하고 ‘킹덤즈 오브 더 글로리’의 시스템 확장판 기획이 한참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요즘 들어서 시스템 디자인 팀의 총괄 디렉터 잭 댄포스는 여러모로 크고 굉장히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손에는 그 원흉, 얼마 전 발매된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이 들린 채였다.
TRPG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입장인 만큼, 그는 온갖 장르 소설, 특히나 소드 앤 소서리의 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냥 즐겁게 읽던 소드 앤 소서리로 인해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후 업무도 내팽개치고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그.
옆에 있던 텍스트 디자이너, 크리스 다나카가 보다 못한 동료들의 부추김을 받고 말을 걸어왔다.
“저, 디렉터님.”
“아, 크리스. 무슨 일이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지······.”
“······푸후우, 미안. 다들 일하느라 바쁠 텐데.”
“아닙니다. 그냥 다들 조금 걱정하는 것뿐인걸요.”
슬쩍 돌아본 크리스는 엄지를 치켜세우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말했다.
“그냥, 요즘 왜 그러시는지 설명이라도 좀 해주세요. 저희는 같이 일하는 동료 아닙니까. 팀장님이 그렇게 고민하고 계시면 저희도 괜히 걱정이 된다고요.”
물론 그 말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관계를 생각해 순화한 말일 따름이었다.
디렉터인 잭 댄포스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남자였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걸 할까. 말까.’ 그리고 그 결과가 ‘한다.’로 나오는 날에는, 이미 윤곽이 잡히고 진행 중인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훗날의 일보다는 ‘규칙’ 자체만을 신경 쓰고 있던 잭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 ‘Princess quest’는 봤나?”
“아, 예. 봤습니다.”
“그거 굉장히 재미있던데요.”
“이번 화는?”
8화.
정비가 끝나고 약간의 불안과 그 불안을 이겨낼 용기를 가진 채 모험을 떠나는 클레어와 제이나, 그리고 불안 요소 중 하나로 작용되는 수도사 스탠.
어떻게 보면 쉬어가는 화였던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되었다.
『로드 두푸스는 성치 않은 몸에도 두 사람을 영지 밖까지 마중 나왔다.
“클레어, 그리고 제이나.”
그는 스탠보다 앞서서 두 사람을 독려했다. 자신을 망가뜨린 이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자비로울 수 있는가.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수도사 스탠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허허 웃고 만 두푸스.
두푸스는 가볍게 눈짓을 보냈고,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제이나의 뺨을 매만졌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걱정 마시고 몸의 회복에만 전념해 주세요.”
서로 아직 부를 수 없는 호칭을 목뒤로 삼키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저, 두푸스.”
클레어가 툴툴대고 있는 스탠을 슬쩍 돌아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말 저 친구 괜찮은 거겠죠?”
“······아직 부족한 구석이 있어도 심성 자체는 모난 녀석이 아니다. 너희를 도와줄 거다. 그래도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주렴.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건 그렇게 고쳐야 하거든.”
“하하, 꼭 그렇게 할게요!”
능청스럽게 웃는 클레어였지만, 목소리는 어딘가 좀 쓸쓸하게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저 즐겁기만 했던 ‘모험’은 끝이 나고 운명의 톱니바퀴는 두 사람을 여정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로드 두푸스와 함께했던 즐거운 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로드 두푸스가 스탠에게도 무어라 말을 전하고, 세 사람이 다시 여정을 떠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8화가 마무리되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잭은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작품, 정말 죽이지 않아?”
“맞아요. 단순히 저희 세계관 안에서 이행되는 TRPG 리플레이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리지널 설정을 하나 추가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었죠. 그러면서도 아예 원래의 배경이나 설정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하,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크리스의 칭찬에 마음을 정한 잭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우리 설정에 추가하면 정말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그 말을 들은 나이츠 오브 더 위즈덤 사의 시스템 디자인 직원들은 허튼소리를 건넨 크리스를 맹렬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 Knights of the wisdom company > 끝(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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