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1st Prince of the Dead RAW novel - Chapter 348
외전 9편. 그리고 그 후
빈센트 발러하드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철없는 외종사촌이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궁을 떠나고 난 뒤부터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제 몸 아낄 줄 모르는 외종사촌이 혹시라도 강대한 괴수와의 전투에서 크게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제국의 최정예 기사단과 군단들을 남부로 보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딱 며칠 전까지의 일이었다.
“화룡이 쓰러졌습니다!”
“폐하와 은사자들 역시 무사하시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전보에 그는 체면조차 잊고 함성을 질렀다.
“그러면 그렇지! 어디 불에 구운 도마뱀 따위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솔직히 말해서 우리 폐하야말로 대륙 최강이 아니던가! 그런 폐하를 어찌할 수 있는 괴물이 있다고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 우리 폐하가 어떤 분인데!”
대원수와 재상이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외종사촌의 무사함에 그저 환희하였다.
내내 그를 괴롭혔던 불면증도 거짓말처럼 나았다.
외종사촌이 홀연히 사라졌다는 급보가 날아들기 전까지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금방 돌아오실 거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던가.”
또 못된 습성이 도져 잠시 사라진 것일 뿐이라고, 기다리면 다시 나타날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착각이었다.
외종사촌의 외유는 단순한 변덕에서 기인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남부에 집결한 원정대의 병력과 인근 영주들의 병력이 화룡의 존재감에 이끌려 모여들었던 몬스터들의 토벌을 완전히 마치도록 외종사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남부로 떠났던 원정대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황도에 귀환했지만, 그중에 외종사촌의 모습은 없었다.
그저 제 몸의 일부처럼 끼고 다니던 검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불같이 분노하는 그에게 원정대의 기사들은 편지 한 통을 주었다.
『안녕. 빈센트.』
편지의 시작은 마치 안부라도 전하듯 여상스럽게 시작하였다.
정작 편지를 읽는 사람은 속이 뒤집히는데.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통을 애써 삼키며 편지를 마저 읽어 내렸다.
『먼저 제멋대로 떠났다고 욕하지 말아 줘. 그래도 욕할 거 뻔히 알지만, 그래도 어차피 난 안 들리니까.』
이게 대체 약 올리기 위해 쓴 편지인지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남긴 편지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라, 그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을 뿐이다.
장난스럽던 편지의 서두와는 달리 남은 내용들은 제법 진중했다.
제국에 드리운 자신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크며,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제국과 기사들은 오직 자신의 등만 보고 따르게 될 거라고.
『그래서는 안 돼. 앞으로는 스스로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해. 그래야 곧 다가올 환란을 이겨낼 수 있어.』
빈센트 발러하드는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뭘 새삼스레!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직접 해결해 주면 되잖아!”
편지는 그런 그의 내심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환란은 오직 한 명의 뛰어난 기사가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시답잖은 게 아니라고.
『그래도 다행이야. 서로 공명하고, 협력하고, 힘을 모으다 보면 반드시 크나큰 영광을 맞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대비해. 큰 환란이 닥쳐왔을 때, 허둥지둥 대지 않도록. 같잖은 것들이 감히 레온베르크를 넘보지 못하도록.』
『믿는다. 레온베르크는, 인간은 나 같은 놈보다 훨씬 더 위대해질 거야.』
거기까지 읽고 나자 더는 처음처럼 외종사촌의 행동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가 없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외종사촌의 눈은 항상 평범한 이들이 보지 못하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멍청이! 멍청이! 이 천하의 바보 천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까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뒷일을 부탁할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빈센트는 약하니까 무리하다 보면 금방 죽어 버릴 수도 있거든. 그리고 나 찾지 마.』
『안녕. 빈센트.』
그러거나 말거나 편지는 끝이 났다.
빈센트 발러하드는 조카가 생기면 보러 갈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문장만을 보고 또 읽었다.
“하.”
그러다 조심스레 편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경들도 편지를 받았소?”
그의 질문에 칼스 율리히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게는 황궁과 레온베르거 황가의 안위를 부탁하셨고, 아델리아 경에게는 제국의 기사단을, 아르웬 경에게는 고리를 엮은 기사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빈센트 발러하드가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베르나르도 일라이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그의 시선에 쭈뼛대던 베르나르도 일라이가 변명하듯 말했다.
“제, 제게는 검을 맡기셨습니다!”
빈센트 발러하드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베르나르도 일라이는 편지를 받지 못한 모양이라고.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이드리안 레온베르거가 편지 몇 장을 남겨 두고 떠난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그 사이 빈센트 발러하드는 몇 번이나 레인저들로 추적대를 조직해 사라진 외종사촌의 행방을 쫓게 했다.
자신을 찾지 말라는 당부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고분고분 따를 그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르도록 흔적은 나오지 않았고, 사라진 이의 행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그로서는 갑갑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건 비단 사라진 외종사촌의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아르웬 키르가옌.
그녀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봉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기고서.
딸이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재상이 그를 찾아와 한바탕 하소연을 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의 책임은 아니었다. 게다가 변명 거리도 있었다.
사실 은사자들의 이탈 정도는 그도 예상한 바였다.
은사자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제 상전을 생각하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렇게 은사자가 사라진다면, 처음은 아델리아 바이에른일 거라 예상했을 뿐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설마 아르웬 키르가옌이 사라질 줄이야.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델리아 바이에른을 찾아 물었다.
혹시라도 떠날 거라면 미리 말해달라고.
이에 아델리아 바이에른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분께서는 제게 기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 다시는 그분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맹세했지요. 대답이 되었습니까?”
빈센트 발러하드는 괜스레 미안해지고 말았다.
그녀 역시 억지로 참고 있을 텐데, 괜히 마음을 들쑤신 것 같아서.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습니다. 이렇게 남아서 그분이 쌓은 탑, 그분이 이룩한 모든 영광을 지키는 게, 제가 마냥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니랍니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아델리아 바이에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단단한 음성이었다.
“경이 있어서 다행이오.”
물론 그녀에게 매일 같이 깨지는 통에, 제국제일검가의 업을 이루기는커녕 만년 이인자 소리를 듣는 베르나르도 일라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다시 시간이 흘러, 아르웬 키르가옌이 황도에서 사라지고도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제국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제 형의 귀환을 기다리며 즉위를 미루고 있던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가 제국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 외에도 끔찍이 여기던 딸이 사라지고 하루하루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시오린 키르가옌이 끝내 재상의 자리를 내놓고 낙향하며 그 후임자로 바이에른가의 장남을 지목하는 일이 있었다.
한 나라의 재상직을 맡기에는 지나치게 젊다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지만,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는 단 한마디로 일축하였다.
“형님은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나라를 구하셨다.”
새로운 황제가 입만 열면 제 형을 찾는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에 토를 달면 불같이 노한다는 사실 역시 비밀 아닌 비밀이었던지라 대소신료들은 더 이상 신임 재상의 임명을 두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뒤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는 아델리아 바이에른을 제국 총기사단장의 자리에 임명하였다.
한 가문에 지나치게 힘이 집중된다는 대소신료의 우려는 형님이 가장 친애하는 기사가 딴마음을 품을 리 없다는 말을 들어 일축했다.
그에 비해 베르나르도 일라이가 아델리아 바이에른을 보좌하는 부단장의 자리에 임명될 때는 비교적 반향이 적은 편에 속했다.
대소신료들이 새로운 황제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인지, 그도 아니면 제국의 세대교체가 시대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인지까지는 빈센트 발러하드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빌레펠트 후작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대원수부의 새로운 책임자로는 망국의 왕자였으나 대원수부의 참모가 된 말코이 드 마르세유가 임명되었다.
그렇게 제국이 세대교체를 거듭하는 가운데에도 칼스 율리히만이 굳건하게 궁정기사단장의 자리를 지켰다.
빈센트 발러하드는 이제는 완전히 체계가 잡힌 황도에서 자신이 할 일이 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슬슬 가문의 후계도 생각해야 할 시기지 않습니까.”
짐짓 너스레를 떠는 그를 보며 신임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이 후사를 보면 어쩌면 형님께서도 자신의 조카들을 보기 위해 돌아오실지도 모르니, 나쁜 일이 아니군.”
오히려 바라던 바라며 그의 귀향을 도왔다.
이를 두고 혹자는 신임 황제가 북방대공의 존재감이 거북스러워 그 귀향을 반긴 것이라 하기도 했다.
물론 아니었다.
신임 황제는 그리 떠드는 호사가들 보란 듯이 빈센트 발러하드에게 왕의 칭호를 허락한다 선포하였다.
발러하드 공왕가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형님께서는 발러하드 가문이 지난 헌신과 희생에 진정으로 보상받기를 원하셨으니, 그대는 나의 말을 거역하지 마시오.”
이쯤 되니 빈센트 발러하드도 어쩌면 외종사촌이 사라진 이유가 자신을 끔찍하게 여기는 아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터였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리라는 건 확실했다.
어쨌건 간에 빈센트 발러하드는 황도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바라던 귀향길에 올랐다.
아니, 오르려 했다.
“국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황도를 떠나려는 찰나, 갑작스레 전쟁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국경 어디가, 누구에게 공격받고 있다는 말인가. 서부의 왕국들이 동맹을 파기하고 선전 포고라도 했다는 말이더냐.”
배웅을 위해 성문 앞까지 나와 있던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가 묻자, 전령이 다급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동맹국들 역시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중 제대로 공격에 대응하는 건, 도트린과 튜튼! 두 나라뿐입니다!”
전령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가 문득 빈센트 발러하드를 보았다.
“도와주시겠소?”
그 정중한 말에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기꺼이.”
그리고는 곧장 전령을 향해 물었다.
“제국의 영토 중 공격받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전령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 그게 서쪽 국경의 요새 세 곳과…… 옛 왕국령, 북쪽, 라인펄 이북의 영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받고 있습니다.”
흠칫 굳은 막시밀리안 레온베르거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겠소? 도움이 필요해 잡았지만, 영지의 일이 염려되어 떠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소.”
아무래도 몇 번의 전쟁으로 고참병들이 상당수 전사한 북부의 사정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 염려 어린 시선에 빈센트 발러하드가 부드럽지만. 힘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예전, 그분께서는 제게 곧 다가올 환란에 대비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그리고 저는, 제국은 한시도 그분의 당부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자신은, 레온베르크는 완벽하게 대비가 되었다고.
그리 대답한 그가 자신을 따라 귀향길에 오르려던 북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보며 외쳤다.
“자! 펜타의 기사가 있는 곳을 넘본 잡것들은 그대로 두고, 우리는 감히 제국을 넘보는 놈들을 잡아 쓸어내자꾸나!”
이에 삭풍 속에서 나고 자란 북부의 전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 * *
펄펄 끓어오르는 용암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날렸다.
착.
그때마다 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힘들어?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화산의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하프 엘프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괜스레 그녀를 타박했다.
“그러게 왜 여기까지 따라와 가지고 고생이야.”
『혼자는 너무 쓸쓸.』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뭐가 쓸쓸해.”
『표정. 말과 다름.』
그녀의 말에 무심코 얼굴을 쓸어 만졌다.
하지만 내 얼굴이 어떤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의미 없는 대화를 중단하고 다시 앞을 보았다.
매캐한 유황 냄새로 가득한 산등성이, 저 위쪽에 내가 찾는 게 있을 터였다.
“조심해서 와. 괜히 다치지 말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달아오른 대지 사이를 건너뛰었다.
“다 와 간다.”
잠시 지친 군느를 위해 발을 멈추고 있자니, 그녀가 내게 물었다.
『용의 둥지는 왜? 전승 거짓말. 용 보물 모으지 않음.』
아무래도 내가 용의 둥지를 찾는 게 보물을 찾기 위해서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보물 찾는 거 아닌데?”
『그럼 왜?』
“화룡 말이야. 좀 이상했거든. 분명 강하기는 했지만 그 힘도 어쩐지 예전만 못하고. 늙어서는 아니야. 용이 늙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어.”
『힘, 상대적인 것. 당신. 힘. 전설 그 자체.』
“내가 확실히 엄청 강하긴 하지.”
그녀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거들먹거리던 나는 곧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음을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몽펠리에 놈이 그랬잖아. 화룡이 수시로 영역 밖으로 나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군느에게 설명하며 적당한 바위를 찾아 몸을 날렸다.
“그게 조금 이상해서. 용들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거든.”
그때 저 멀리 바위 뒤로 뻘건 머리통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고 바위를 뛰어넘었다.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달아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무언가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내가 알기로 그런 경우는 단 하나.”
그리고는 뒤늦게 내 뒤를 따라 도착한 군느에게 내가 포획한 무언가를 내보였다.
“새끼를 낳았을 때뿐이거든.”
캬아아아악.
내 손에 잡힌 시뻘건 덩어리, 그러니까 화룡이 짧은 사지를 버둥거리며 날카롭게 울었다.
급기야 입을 쩍 벌리고 화염을 토해냈다.
폽.
하지만 다 자라지도 못한 새끼 화룡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앙증맞은 불꽃 한 덩이에 불과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새끼 화룡은 그게 언짢았는지 내 손을 콱, 하고 깨물었다.
“아.”
덜 자란 몸에 비해 이는 제법 날카로웠는지 순식간에 손등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더 버텼다가는 손이 너덜너덜해질 참이라 그대로 새끼 화룡을 놓아주었다.
『새끼도 사냥?』
뒤뚱거리는 뒤태를 보며 군느가 내게 물었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 기사들은 큰 실수를 했어.”
『실수?』
“후손들에게 적을 남겨 두지 않았거든.”
신비와 마주하지 못한 기사들의 검은 오직 눈에 닿는 것만을 쫓기 시작했고, 끝내 드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을 잊고 말았다.
그리하여 빛나는 업적은 진창에 처박혔고, 영광스러운 노래는 싸구려 노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실수를 범할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 온 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일 뿐.
“그리고 뭐. 저렇게 쪼끄만 놈을 죽이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멀리 바위 뒤에 숨어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칵칵거리는 화룡의 모습은 겁에 질린 여느 짐승의 새끼와 다를 게 없었다.
만약 저런 놈을 죽였다가는 꿈자리가 사나워질 터였다.
나는 손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내고는 군느에게 손을 내밀었다.
군느는 당연하다는 듯이 제 옷을 찢어 내 손의 상처를 정성스레 싸매기 시작했다.
“아니. 치료해달라는 게 아니고.”
『……?』
“칼 빌려달라고.”
군느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한 가운데에도 순순히 제 검을 건네주었다.
나는 건네받은 검으로 저 위를 겨누었다.
“조금 아플 거다.”
그리고는 새끼 화룡의 가슴께에 검광 한 조각을 쏘아 보냈다.
캭!
검광에 얻어맞은 화룡이 비명을 지르며 저 산등성이 위로 올라갔다.
“이제 앞으로는 인간들 앞에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
나는 다시 군느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입 모양만으로 물었다.
새끼 화룡이 이번 일로 자신을 상처 입힌 인간을 적대하면 어찌하냐는 질문이었다.
“지금은 저렇게 작고 약하지만 조금 더 자라면 짐승이 아닌 용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될 터. 그때가 되면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것들은 하찮게 여기게 될 거야. 용이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나는 새끼 화룡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놈은 내가 후손들을 위해 남기는 선물.
아니. 선물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 이건 차라리.
“저놈은 내가 후손들을 위해 남기는 시련이야.”
그들이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시련에 가까우리라.
“갔네.”
새끼 화룡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돌렸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금의 내 행동을 본다면 제 멋대로이며 이기적인 것이라 비난할 수도 있었다. 혹은 후환을 남겨두는 멍청한 짓이라 욕할 수도 있었고.
어느 쪽이 됐건 간에 지금의 내 행동을 칭찬할 이는 없을 터였다.
군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군요.』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와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 고정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다시 당신이 짐을 짊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군느는 몇 번이고 나를 욕할 사람은 없다고 말해 주었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거북스러움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부드럽게 웃어 보인 그녀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흠.”
화산의 열기와는 선명하게 구분되는 부드러운 온기에 괜스레 이마를 쓱쓱 어루만지고 있는데, 군느가 다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런데 진짜 이렇게 떠나실 건가요?』
“말했잖아. 내가 있어서 득이 될 게 없다고. 그리고 솔직히 그걸 떠나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기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삶이 살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전생의 기억, 이곳에 오기 전의 소년처럼.
산 아래로 향했다.
내딛는 걸음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더없이 가벼웠다.
그건 단순히 갑옷을 벗어 던졌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어깨를 내리누르던 묵직한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기분.
산을 내려가며 즐거운 상상들을 떠올렸다.
어떤 걸 해 볼까.
해 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다.
농부, 장사꾼, 음유시인, 대장장이, 사냥꾼 그리고 또…….
아니.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같이 여행이나 가자꾸나.’
아주 오래전, 기나긴 전쟁을 함께 했던 그녀와의 약속.
비록 지금은 그때 약속을 했던 그녀도 내 곁에 없었지만, 혼자서라도 세상을 둘러볼 참이었다.
그리고 언제고 기회가 온다면 그녀 앞에서 말하리라.
내가 둘러본 세상은 그토록이나 아름다웠다고.
갑작스레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경쾌한 바람이 뺨과 이마를 때렸다.
괜스레 신바람이 났다.
퓌유. 퓌유.
잘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이 절로 흘러나왔다.
퍽,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