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134
확실히 자신의 연기가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러웠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같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눈물을 흘리는데도 쉽사리 동요하지 않고 거짓을 간파해내는 냉철함과 통찰력은 그리 쉽게 갖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남자’라는 성별을 갖고 있으니 분명 자신이 고개까지 숙인 그 시점에서 거의 다 넘어왔어야 할 것이었거늘···.
강대용은 그러지 않았다.
“다음!”
“···가겠노라!”
비범한 녀석인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하나, 아무리 비범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녀석은 아직 필멸자의 육체와 감정을 갖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불완전한 녀석이 원초적인 욕구마저 능숙히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최성은에게 있어서 강대용에게 더욱 끌리는 계기를 하나 더 만든 것이었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그리하여 훗날 자신이 세울 ‘왕국’에서 중요한 요직에 앉히고 싶다.
‘···아니. 요직에 앉히는 정도가 아니지.’
최성은의 마음속에서 이 세계에 떨어질 때부터 갖고 있었던 ‘욕망’이 들끓는다.
그 욕망이란 바로···.
‘강대용이라는 존재를 근원부터 송두리째 정복해야지.’
정복욕.
모든 존재를 자신의 아래에 두고 싶다는 욕망.
모든 종(種) 위에 군림하는 꿈을 꾸게 하는 정복욕만이 그녀를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동력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엔 아직 본 황녀의 그릇이 너무나 작다.’
최성은은 생각했다.
그 정복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더더욱 성장해야 한다고.
이 우주에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너무나도 많고, 지금만 해도 자신보다 강한 자들이 지천에 널려있으니.
‘그래도 반드시,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릇의 크기를 키워서 그들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성은은 자신을 믿는다. 언젠간 조물주인 대마신도 쓰러뜨리고, 이 세계의 근원에 도달하여 그보다 더 강한 ‘신’도 몰락시킬 수 있을 터이다.
그 수준까지 성장하기 위해선, 굴욕적이지만 신세계교와 요한이라는 강력한 조력자와 협력해야 했다.
또한, 나중이지만 강대용이나 최유성도 그런 자신의 협력자로 만들어야만 한다.
‘반드시 곁에 두고야 말겠노라. [신염의 황녀]는 강자들의 힘을 흡수하니까···.’
강자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최성은이라는 존재는 성장하니까.
***
최성은과의 충돌이 있고나고부터 몇 분 뒤.
“허니!”
벤치에 앉아있던 나를 발견한 알리사가 강아지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둘 다 개인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2주 만에 보는 것이니, 알리사든 나든 피차 서로에게 반가울 터였다.
“···하하. 오늘은 허니야? 안 쓰던 애칭인데?”“흔한 애칭이라서 한 번 써보구 싶었지! 혹시 부담되거나 그래?”
“전혀.”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알리사는 꽃사슴 같은 눈웃음을 짓고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얼굴을 부비부비댔다.
“따뜻해···.”
알리사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한참을 내게 안겨서 몸을 찌르르 떨었다.
우리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에 주변에서 온갖 날카로운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나든 알리사든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사부와 사모님은 가면 갈수록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다.”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 한 명인 최성아는, 순수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알리사는 내 품에서 나와 최성아에게 활짝 미소 지었다.
“어머. 미안! 먼저 인사했어야 했는데···. 성아야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다 사모!”
최성아는 알리사가 유일하게 내게 접근을 허용하는 여자다.
허락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5월 달부터 7월 달, 내가 지독하게 훈련하던 그 시기일 것이다.
“성아는 휴교 기간 동안 잘 지냈어?”
“하루하루가 훈련의 연속이었지!”
알리사는 처음엔 내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최성아를 무척이나 싫어하였으나, 최성아가 ‘훈련!’만 외치는 것을 보고 서서히 경계를 풀어갔다.
“쉬엄쉬엄 해! 내 앞에 있는 누구누구씨처럼 훈련에 중독되면 몸이 성하지 않을 거야.”
“물론 휴식은 충분히 취하면서 하고 있다! 나는 사부와 달리 제때 음식을 섭취해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그녀가 나와 훈련을 할 때 설렁설렁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는 것을 유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알리사는, 언젠가 내가 ‘훈련을 최유성이나 최성아와 함께 하는 건 괜찮냐’라고 물어봤을 때, ‘둘 다 괜찮아!’라고 답해주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알리사는 최성아를 귀여운 동생 취급한다.
실제로 하는 짓도 좀 애 같긴 하니까 알리사가 더더욱 그런 취급을 하는 것 같고.
“앞으로도 사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주기 바란다! 나는 얼른 사부의 2세가 보고 싶으니!”
“···오.”
“야, 최성아. 지금 뭔···.”
근데 줄곧 애 같이 말하고 행동하던 최성아는 갑자기 진지한 어른(?)의 이야기를 꺼냈다.
최성아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주변에 있던 생도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네. 2세. 2세···. 계획을 제대로 세워놔야겠어.”
“···아니 리사야. 뭐, 뭘 벌써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내 말에 알리사는 살짝 죽은 눈으로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생각해봐 허니. 허니랑 내가 맺어졌다는 결실을 만들면 다른 여자들이 허니를 건들지 않을 거 아냐? 아, 올해 당장 할까? 결혼을 안 해도 애 정도는···.”
젠장, 최성아가 생각 없이 툭 던진 한 마디에 알리사의 집착 스위치가 ON 됐다.
심지어 나를 몇 주 안 봐서 그런지 눈빛이 아주 맛탱이가 갔는데?
이거 위험한 거 아냐?
“몇 명 정도가 좋을까? 2명? 아니면 3명? 독일은 적응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 역시 집은 제주도에···.”
알리사는 진지하게 계획을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최성아는 신나서 옆에서 거들었다.
···그걸 곁에서 듣고 있는 나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대용아아아!!!!”
그런 와중에 곤란한 인물의 목소리까지 들린다.
집착의 기운에 휩싸인 알리사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저런 여자 말이야. 콱 죽여···.”
“어허, 사모! 나쁜 생각은 안 된다!”
나 역시 싫은 표정을 하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았다.
흡사 황소처럼 먼지를 휘날리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윤희진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다른 곳으로 피하자.”
나는 재빨리 다리를 움직여서 그녀를 피하려고 했으나, 초능력이 봉인된 지금 엄청 빨리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팍!
윤희진은 금방 내게 다다랐고, 두 팔로 나를 휘감으며 강하게 백허그를 했다.
“히히, 잡았다!”
“···떨어져 인마.”
나는 당연히 최대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지만, 그럴수록 윤희진은 입술을 샐쭉 내밀면서 더욱 강하게 안을 뿐이었다.
“흥! 알리사는 맨날 안아주면서 두 번째 여친인 나는 못 해주냐?”
···미친. 게다가 자기가 지어낸 ‘두 번째 여친’ 설정을 여기서 말해버린다고?
당연하지만, 윤희진의 그 말도 안 되는 선언에 좌중의 술렁거림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Episode.62 : 나의 심정 (2)
-와, 저 새끼 양다린가봐.
-대박.
-진짜 개쓰레기 색히네.
안 그래도 중증 중2병 캐릭터로 박혀있는 내 이미지에 ‘바람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속성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두 여자, 아니, 세 여자에게 동시에 사랑받는 건 최태훈일 시절에는 생각도 못한 호사긴 하다만, 그렇다고 카사노바로 몰리고 싶진 않았다···.
“···희진아. 대용이 좀 그만 놓아주지?”
“시룬데! 대용이는 너만의 것이 아니거둔!”
그리고 여자들이 날 두고 싸우는 것도 역시 원치 않았다.
···피곤하다 정말.
어서 윤희진의 현혹을 풀 방법을 찾아야겠다.
“좀 떨어져 윤희진.”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윤희진보다 부담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아! 너도 대용이한테 안겨!”
“···헛소리 말고. 강대용이 부담스러워 하잖아.”
윤희진을 뒤따라온 백설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나를 보며 눈인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애정이 스쳐지나갔다.
그 표정을 본 나는 미래의 백설이 생각나서, 가슴 한 편이 쓰라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이네 강대용.”
“···어.”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백설은 내 반응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수록 나는 크나큰 죄책감을 느낄 뿐이었다.
“···나머지 셋은?”
“걔네? 우리랑 같이 안 왔어.”
“그러냐.”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차차 나에 대한 마음을 접어갈 수 있도록 최대한 차갑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좀 놓지 그러냐 윤희진.”
“시른···.”
“···좋은 말로 할 때 놔.”
그리고 그것은 윤희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두 사람에게 책임을 지되, 선을 확실히 긋는 모순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만이, 사각 관계인 우리 네 사람이 올바른 미래로 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치, 알았어~.”
윤희진은 꼬리를 말고 나를 놔주었다.
그 행동에 맞춰서 알리사가 강하게 내게 팔짱을 끼더니 윤희진을 노려보았다.
“리사야, 너도 그만해.”
“···아, 미안.”
나는 누구도 불행해지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 사각관계에서 두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단톡 온 거 없냐? 차례 더 밀리기 전에 검사받으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확인해볼게 대용아!”
아니, 어쩌면 네 사람 모두 불행해질 수도 있다.
이 세계는 결국 대마신이라는 거대한 악이 조작하고 있는 세계고, 그 조작은 놈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계속되니까.
거대한 이야기를 관망하는 전능한 존재를 쓰러뜨려야 끝나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결말은, 과연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대용아.”
“왜.”
그런 생각은 윤희진이 날 건들면서 잠시 끝났다.
날 부른 윤희진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재빈이 시비 붙었다는데···?”
“···뭐?”
이게 뭔 개소리지.
설마 오는 길에 신세계교라도 마주쳤나?
나는 그런 의아함을 느끼며 윤희진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을 꼼꼼히 살폈다.
[황재빈]– 지금 양X새끼들이랑 시비 붙었어
– 끝나면 톡함 너희 먼저 검사 받으러 가셈
나는 황재빈의 톡을 보고서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그놈들인가 보네.”
아무래도, 2학기 말에나 일어나야할 이벤트가 조기에 벌어진 듯하다.
···오태식이 축제 때 죽어버린 여파인 듯했다.
***
인천 워프게이트 터미널.
“우리 학교 가야한다니까?”
황재빈은 시건방진 표정을 하곤 자신과 이상은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떤 무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너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먼저 가도 돼. 우리가 볼일이 있는 건 프레이뿐이야.”
“···말이 안 통하네. 이상은은 너희한테 못 넘겨준다고.”
그들은 황재빈과 또래 나이 정도로 보이는,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남자 셋, 여자 셋의 6인조.
그들은 이상은과 아주 긴밀한 사이였고, 이상은과 어떤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재, 재빈쓰···. 나쁜 애들 아니야. 아마도 그냥 나랑 얘기하고 싶은 걸 거야.”
“···야, 그럼 왜 널 만나자마자 대뜸 마나를 방출하고 시비를 거는데?”
그 6인조 무리와 황재빈과 이상은이 맞닥뜨리게 된 건 몇 분 전의 일이었다.
황재빈과 이상은은 여느 때처럼 황제의 길드원들에게 워프 게이트 터미널 앞까지 배웅을 받고 곧장 SHA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터미널 입구로 다가가던 그 순간.
과묵한 인상의 금발머리 남자가 마나를 방출하며 다짜고짜 이상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끄는 기행을 벌였다.
황재빈은 당연히 그 남자에게 화를 냈고 가벼운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자, 곧 남자와 한 패로 보이는 녀석들이 우르르 황재빈과 이상은에게 달라붙었다.
“버릇이 나와서 그랬다.”
“버릇? 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마나를 방출하는 게 버릇인가 봐?”
“나는 힘 조절이 상당히 서투르다.”
···그리하여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거다.
지금 6인조는 프레이를 두고 가라고 했고, 황재빈은 당연히 그걸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너희가 누군데 이상은한테 지랄이야?”
“우리?”
황재빈이 잔뜩 독이 오른 목소리로 묻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의 둘도 없는 친구들이다.”
“···사실이야 이상은?”
이상은에게 질문한 황재빈은 사실 예상하고 있긴 했다.
저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분명 미국의 영웅고등학교인 UHH(USA Hero Highschool)의 교복이었으니까.
“응. 너희만큼이나 친한 애들이야.”
국가의 이름을 학교명에 붙일 만큼, 미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학교이자 SHA와 맞먹는 명문고.
이상은이 미국에 있을 때 재학했던 UHH의 교복을 입고 있는 녀석들이니, 황재빈은 이상은과 아는 사이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놈들 치고는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인사가 거친데.”
다만, 황재빈은 그들의 이상은을 대하는 태도가 영 미심쩍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마나까지 방출해가며 어깨를 잡아끌고, 심지어 지금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고서 이상은을 노려보고 있다.
“꼭 앙심 품은 것 같은 눈빛을 너한테 보내고 말이야.”
“그게···.”
마치···, 이상은이 죽을죄를 지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자고로 정말 친한 친구들이라면 오랜만에 보는 이상은에게 저런 눈빛을 보내선 안 된다.
“롱타임노씨~.” 이러면서 반가워하는 게 정상이지, 저런 태도를 보여선 안 되는 거다.
“야! 이 양X 새끼들아!”
“···What?”
황재빈은 그렇게 단정 짓곤 6인조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자신들을 비하하는 단어가 나오자, 6인조는 한 명이라도 예외랄 것 없이 모두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상은을 데려가고 싶으면 나 먼저 쓰러뜨려봐! 너희 미국 짱이잖아? 나 정돈 쓰러뜨릴 수 있지?”
“재, 재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