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149
그 모습이 알리사와 백설의 일상적인(?) 말싸움 현장을 똑 빼닮아서 조금 황당했다.
“···그만들 해.”
마냥 구경만 할 수 없었던 나는 살짝 목소리를 높여서 그녀들을 말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둘 다 무슨 일이야.”
그나저나, 둘 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것일까.
딱 보니까 중요한 일 때문에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뭔 일이긴! 그냥 보구 싶어서 왔지!”
“···나도 그냥 몸 괜찮은가 보려고 온 거야.”
역시 그냥 단순히 내 상태를 보려고 온 거였나.
대충 말하고 돌려보내야겠다.
“나 괜찮으니까 니들이나 몸조리 잘해.”
“흥. 말본새를 보니까 아주 멀쩡하시네. 괜히 걱정했어 아주.”
내 말에 그렇게 답한 백설은 꽤 오랜만에 새침한 척을 하며 떨어뜨린 봉투를 가져왔다.
“오, 오다 주웠다.”
“···언제적 대사냐.”
“머, 뭐! 유행 지났으면 하면 안 되냐? 기껏 네 생각해서 오빠한테 부탁한 건데 그냥 퍼뜩 받아!”
“네, 네···.”
백설은 내 품에 던지듯이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뭔가 해서 봤더니, 보라색 액체가 들어가 있는 플라스틱병 3개였다.
“포션?”
“그, 그래! 이제야 좀 내 성의가 보이지? 병당 10만 원짜리거든···? 그거 먹고 기운 차리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
백설은 그렇게 말한 뒤 팔짱을 끼곤 다시 한 번 “흥!”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백설이 준 포션을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수납장 위에 올려두었다.
“고맙다. 잘 마실게.”
“···고마우면 나중에 한턱 쏴.”
“그래.”
백설과의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살짝 귀찮은 어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좀 졸려서 그런데, 나 괜찮은 거 확인했으면 나가주라.”
“흐음~. 그냥 여기서 같이 자면 안 됑?”
“절교.”
“노, 농담이야! 아하하!”
그 이후로 잠시 동안 그녀들은 침묵했다.
아무래도 내가 아주 과묵하게 나오니까 그녀들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강대용.”
“···왜 또.”
그리 생각했는데,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백설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서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 줄곧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뭐.”
“그, 그으···. 알리사랑 결혼하기로 한 거 사실이야?”
···백설은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역시 결혼이라는 얘기가 나오니까 여러모로 피곤하네. 역시 이 녀석들에겐 확실하게 얘기해놔야겠어.
“졸업하고 당장은 아니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나 걔가 좋아?”
“당연히 좋으니까 사귀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지.”
“그, 그래?”
백설은 뭔가 불안한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그, 그럼 역시 난 별로인 거야?”
“알리사보단 별로지.”
“···그래? 싫은 건 아니고?”
“싫으면 이렇게 태연히 대화를 나누고 있지도 않겠지.”
나는 최대한 딱딱하게 말했지만 차마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하지 못했다.
미래의 백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 그러냐···?”
뭐, 그래도 알리사보다 별로라고 했으니 백설도 슬슬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알았으면, 이제 그만 가라.”
“아,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게 남았어.”
“아···, 또 뭔데.”
근데 아직도 내게 궁금한 게 있단다.
나는 최대한 귀찮아하는 어투로 되물었다.
“저번에 내가 준 나라들 중에서 이민 가고 싶은 나라 찾아봤어?”
“인도.”
인도를 택한 이유는, 그나마 살기 좋은 나라라서 그렇다.
이 세계의 인도는 미국, 한국 등과 함께 열강에 속하니까.
어마어마한 인구와 다른 강대국들에 버금가는 기술력, 자본력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저쪽 세계의 인도와 달리 상당히 살기 좋은 나라로 탈바꿈했다.
뭐, 당연히 그뿐이지 이민 가고 싶은 이유 따윈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질문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으니 깊게 생각해봤자 머리가 아플 뿐이었으니까.
“인도?”
“어.”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백설의 얼굴에서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왜 좋아하는 거지? 그래도 답을 얻었다는 게 기분이 좋았던 건가?
“···오늘부터 인도에 대해서 공부할게.”
“응?”
그렇게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고 있는데, 백설은 갑자기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 미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일단 들어봐? 내가 너한테 준 리스트는 ‘일부다처제’가 되는 나라야.”
“···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내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나···. 네 두 번째 배우자가 되길 원해.”
Episode.70 : 가속하는 세계
나는 당연히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니, 말문이 막힌 수준이 아니라 얼음이 되어버렸다.
“···저, 강대용?”
혹시 백설도 요한에게 현혹을 당한 걸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내가 분명히 요한은 최대한 피해고, 다른 사람이랑 같이 다니라고 경고까지 줬는데 백설이 바보같이 그랬을 리가 없다.
“강대용.”
그렇다면 지금 내 두 번째 아내가 되겠다는 저 개소리는 백설이 스스로 생각해낸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무섭게···.”
어째서 이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미래의 백설에게 힘과 기억의 일부를 넘겨받는 중이라서 감정이 폭발하기라도 한 걸까.
“아, 어···. 방금 뭐라고 말했냐?”
“두 번째 배우···.”
“그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이상으로 그녀의 애정이 강해지게 되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거다.
“너. 그 말 하면 우리 친구 관계···. 여기서 끝날 수도 있어.”
“······.”
“잘 생각해. 나 진지하다? 너도 날 좋아하는 마음은 진지하겠지만, 이건 진짜 아니야.”
비단 백설뿐만이 아니다.
윤희진 역시 내가 너무 봐주고 있던 것 같다.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 우유부단함이 그녀가 계속 내게 달라붙는 계기를 제공했다.
“미안 강대용···.”
“···알면 됐어. 너 그거 진짜 위험한 발언인 거 알지?”
“응···, 알지.”
이제부터라도 확실하게 내 의사를 피력하자.
그러지 않으면 정말 아주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나 때문에 알리사와 백설이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도 있고, 윤희진까지 끼면 세 사람이 모두 다칠 수도 있는 거다.
“근데 강대용···.”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데, 백설은 이야기가 안 끝났다는 듯 뭔가 차가워 보이는 표정을 만들었다.
“넌 운명을 믿어?”
“···뭐?”
“운명적 만남이라는 말이 있대.”
아니. 근데 이 여자가 진짜···.
뭔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라도 보고 온 건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나는 지금껏 널 만나기 위해서 살아온 것 같아.”
“야, 너 무슨 드라마라도···.”
나는 당연히 한 소리 해주려고 했다.
그 순간, 백설이 내 앞으로 훌쩍 다가와서 내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쉿. 들어봐. 여, 여기가 클라이맥스니까···.”
그러곤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미디어 매체가 이 차가운 도시여자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걸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틀렸어 이거.
“그러니까 강대용. 어쩌면 네가 아내를 한 명만 두는 것도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아, 아니···.”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 인간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야. 너 역시 그런 존재고. ‘아내는 무조건 한 명만 둬야 한다’라는 상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거야!”
백설은 아무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그녀답지 않게 이야기에 하나도 두서가 없었다. 어디 양산형 로맨스나 만화에서 본 듯한 대사들이 내 병실 내에서 마구 난무하기 시작한다.
“그, 그 내가 한 말의 결론이 뭐냐며언! ‘일부다처제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여자 앞에서는 진지하게 반응해주지 말고 그냥 아 그래! 라고 말해주는 오픈마인드를···!”
백설의 얼굴은 갈수록 빨개지고, 입이 움직이는 것도 빨라진다.
이젠 뭐라 화낼 기력도 없던 나는, 그냥 잠자코 그녀의 개소리를 들어주었다.
“난 뭐든지 ‘가능’이야 강대용! 너도 그러니까 ‘가능’을 실천하면 좋겠어! 하하하!”
그리고 나는 그녀가 ‘가능충’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착이 강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창술사.
두 번째 아내라도 ‘가능’한 대마법사.
여친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이 폭주하는 방패 성기사.
문득, 내 미래가 아주아주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
결국 나는 살짝 언성을 높이는 것으로 미쳐 날뛰는 백설과, 재밌는 걸 보는 듯 백설을 보고 있던 윤희진을 돌려보낸 다음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진(眞) 흑염룡이 역시 왕의 운명을 타고난 자라면 아름다운 꽃들을 거두는 편이···.]“닥쳐.”
그러다가 흑염룡이 백설과 윤희진도 아내로 만들라고 부추기는 메시지를 보내서 음소거 기능을 실행시켜버렸다.
“후우.”
그 후, 나는 새벽 1시까지 할 것도 없어서 그냥 누워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는 중이었다.
드륵.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오후 11시.
이번에는 최유성이 날 찾아왔다.
“···넌 이제야 오냐.”
“하하 미안. 다른 애들하고도 좀 같이 있어주느라. ···급한 일도 있었고.”
“급한 일?”
녀석은 스마트폰, 워치, 베일의 아공간 둥지 등이 들어있는 종이가방을 내 곁에 두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 외곽에서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됐어.”
“···뭐?”
“심지어 하나가 아니야. 동서남북, 학교 입구 주변에서 총 4개의 파동이 감지됐어. 여러 기관에서 출동해서 그 파동을 조사하고 있는데, 아직은 진척이 나지 않는다봐.”
4개의 거대한 에너지 파동.
나는 저것과 비슷한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도어잖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조치를 취하는 중이야. SHA 외곽의 마나방벽의 세기를 최고수준으로 높인다던가···. 그렇게 말이지.”
수많은 SHA 생도 사상자들이 발생하게 되는 ‘SHA 강습(强襲)’ 에피소드.
기억을 되짚어보자면, 수많은 사상자를 낳게 되는 것은 물론···.
원작의 강대용이 사망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파동이 사라지기 전까지 기관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그 주변을 감시하고 있고, 대마물용 병기들도 설치했다더라.”
만일 3학년에나 일어나야할 그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것이라면, 고작 병기 몇 개와 영웅들만으론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거다.
“···강습사건일수도 있겠는데.”
“······.”
나는 그래서 최유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아직 그 강습사건이 앞당겨졌는지도 확실치는 않다.
다만, 거대한 에너지 파동 4개가 발생할 일은 강습사건의 전조와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에 아니라고도 할 수도 없다.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
“나도 사실 너랑 비슷한 생각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교관님으로부터 따로 내려온 지시 상황은 없고, 마나 파동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도 않아. 그래도 나는··· 일단 너처럼 강습사건이 앞당겨진 게 아닐까 하고 예상하고 있어.”
···불안하다.
이거 빠른 시일 내에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만일 정말로 강습사건이 발생한다면, 마나 파동 주변에서 뭣도 모르고 진을 치고 있던 기관의 영웅들이 몰살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로 밀고 들어오는 마수들 때문에 추가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오태식 사건도 그렇고 너무 많은 사건들이 앞당겨진 느낌이네.”
“동감이야. 인과율이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태연히 있을 때가 아니잖아.”
나는 아까 백설이 두고 갔던 포션들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그것들 중 하나를 잡고 뚜껑을 땄다.
뽕~.
나는 그것을 바로 벌컥벌컥 마시고, 나머지 두 개도 따서 들이켰다.
그 다음 최유성이 가져온 [헤르메스의 전령]을 발목에 차고 최유성에게 말했다.
“너는 계속 학교 외곽의 동향을 조사해 줘. 나는 나름대로 내일 오전부터 대책을 강구해볼게. 물론 아직 강습사건이라는 게 확정 난 것도 아니지만,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알았어. 혹시라도 좀 터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서 이만수 교관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볼게.”
최유성은 내게 침착해보이는 얼굴로 그렇게 답했고, 그 외에도 몇 마디하고는 병실에서 나갔다.
“후우···.”
그나저나, 벌써부터 그 사건이 터져버리면 진짜 어쩌지.
설마하니 요한 그 놈이 기대하라고 한 게 강습사건이었다면, 이건 외부의 적만 생각할 게 아니고 내부의 적도 생각해야 한다.
요한을 비롯한 살아남은 신세계교 세력과 타락한 생도들.
그 소수의 스파이들이 마물들과 싸우는 SHA의 생도들을 분명 뒤통수를 치려고 들 것이다.
[진(眞) 흑염룡이 아무래도 그 음흉한 사이비 교주 녀석과의 결판이 날 것 같다고 당신에게 말합니다.]그 중에서도 요한이 젤 문제다.
그는 사이비 집단인 신세계교의 수장이자, 고대 성신(聖神)을 모시던 ‘12사도’ 중 하나.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나게 강하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