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153
그 창을 맞고, 부서지지 않는 벽처럼 버티던 녹색 기사가 무너져 내렸다.
“크흑···.”
녹색 기사는 가녀린 신음을 뱉으며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벨의 말대로 그녀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뚜벅. 뚜벅.
나는 [흑염룡의 그림자]를 검 형태로 바꾸어서 왼손에 쥐고, 녹색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그녀를 향해 퍼뜩 그림자를 내리치려고 했다.
녹색 기사는 죽음을 예감했는지 질끈 두 눈을 감고 고개를 휙 돌렸다.
[거기까지다 팬드래건.]그때, 목소리가 나를 말렸다.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천장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죽이지 말아다오. 그 아이는 호문쿨루스 같은 게 아니다. 네놈이 왕일 시절에 통치하던 나라의 국민이지.]“···시험은 통과인가?”
[통과다. 문을 열고 다음 시험을 진행하면 된다.]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를 거두고서 그대로 녹색 기사를 지나쳐갔다.
“잠깐!”
그때, 녹색 기사가 악을 쓰듯이 나를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녹색 기사는 살짝 두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검님을 어디다가 사용할 생각이죠?”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성검을 나쁜 일에 사용할까 우려되는 듯했다.
···그나저나, 목소리도 영락없는 부잣집 영애구먼.
어쩌다가 이런 아가씨가 그 시대에서 살아남아서 내 시험을 전담하는 감독 역까지 맡게 된 거야?
“네가 우려하는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
“쉬어라.”
뭐, 어떤 사정이 있긴 하겠지.
그렇게 내 생각을 일단락한 나는, 벨과 함께 다음 시험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콰앙!
그 찰나였다.
갑자기 우리가 들어왔던 철문이 크게 들썩이더니, 불길한 굉음이 울렸다.
쾅! 콰앙!
그 직후 문이 두 번 더 크게 흔들렸다.
상당히 튼튼한지 바로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문을 억지로 부수려는 것만 봐도 그 녀석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녀석들이 따라붙은 것 같은데요.”
“하아···. 아직 두 개나 남았는데···.”
아직까진 문이 버티고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부서질 것은 명백해보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벨 역시 살짝 곤란한 표정을 하고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시험을 치를 동안 이곳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괜찮겠어?”
벨이 말한 역할을 수행해 줄 사람은 당연히 벨,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벨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스즈키가 데리고 있는 괴물이 내뿜고 있는 마기가 가히 위력적이었으므로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아는 강대용 님이라면, 제가 버틸 수 있는 시간 안에 검을 쟁취하실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거참, 그거 아주 부담되네.”
“하하. 농담입니다.”
벨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흘리면서 흔들리는 철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다음 말했다.
“적어도 당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버티고 있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간에, 지금은 벨을 믿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같이 싸우고 성검의 시험을 보러 가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 몸 상태가 아주 완벽한 것도 아니고 [용의 분노]를 되도록 이런 곳에 사용하는 것은 다음에 있을 시험의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따 보자고.”
그렇기에 나는 혼자서 닫혀있는 철문으로 다가갔다.
“···나쁜 일에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겠죠?”
한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상처와 갑옷을 완벽히 수복한 녹색 기사가 벨의 곁에 나란히 선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을 방해하게 둘 순 없죠.”
그러곤 잘도 부잣집 아가씨 같은 목소리로 저런 말을 지껄인다. ···이왕 협조적으로 나올 거였으면 좀 쉽게 쓰러져주던가.
왜 쓰러뜨리고 나서야 날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건데?
“두 번째 시험으로 가세요.”
아니. 이제 와서 그런 목소리로 말하며 든든한 동료인 척하는 거 좀 이상하거든?
그냥 아무 말 없이 딱 묵묵하게 도와주면 안 되는 거냐?
쾅!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도중, 철문이 부서졌다.
“가세요!”
나도 모르게 문 쪽으로 시선이 가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개의 인영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언제나 무표정한 스즈키였고, 다른 하나는 아주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검은색 갑옷 차림의 기사였다.
『···ㄱㄷㅇ.』
철그럭.
검은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허공으로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익숙한 형상의 물체가 기사의 앞으로 떨어졌다.
-난 널 원망하지 않아. 어서 가.
동시에 미래의 백설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가벼운 두통과 이명이 일더니, 머릿속에서 내가 모르는 의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설마.”
“어서 가라고요!”
그 기억을 빠르게 되짚어 본 나는, 저 검은 기사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젠장···.”
그 때문에 이빨을 으득 갈며, 나는 다음 시험으로 가기 위해서 힘껏 문을 밀었다.
Episode.72 : 자격
강대용이 치열하게 싸운 후 두 번째 시험에 돌입한 그 시점, SHA 외곽.
‘큰일이야.’
최유성은 천천히 동서남북 순으로 맴돌며 거대한 마나 파동의 추이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세기가 계속 강해지다니. 이렇게 두면, 언제라도 도어가 열릴 수도 있겠어.’
한데, 그 마나의 위세가 영 불안했다.
최유성의 눈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였다.
‘강대용은 오늘 하루 약속 때문에 외출이고···.’
설상가상으로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강대용은 현재 학교에 없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오늘 아침 홀연히 어딘가로 떠났다.
아마도 자신처럼 숨겨진 아티팩트를 찾으러 떠났는지, 중요한 인물을 만나러 갔는지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최유성의 입장에선 왜 하필 학교에서 사건이 터질 듯 말 듯 한 지금 외출증을 끊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야겠는데···.’
어쨌거나 최유성은 학교에서 커다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인과율의 조정이 있을지라도, 항상 큰 사건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최유성이였기에 이번만큼은 움직여야 한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그 사람에게 검도 미리 받을 수 있으면···. 받아두는 게 좋겠지.’
물론 그 과정에선 자신의 성장이 수반됐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번 세계는 강대용이라는 이례적인 존재의 개입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그가 겪어온 세계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빠르게 전력을 갖춰놓을수록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
나는 기분 나쁜 상념에 휩싸인 채로 두 번째 시험이 진행되는 곳으로 들어왔다.
쿵.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처럼, 방에 완전히 발을 들이자마자 저절로 문이 닫혔다.
“······.”
나는 굳게 닫힌 문을 잠시 멍하니 보다가, 시험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했던 첫 번째 방과 달리 두 번째 시험이 진행되는 방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침대?”
그리고 방 중앙에는 하얀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침대는 어쩐지 눕고 싶다는 생각일 들 정도로 푹신해 보였다.
···하나, 내 눈에는 당연히 그 침대는 함정 아니면 시험의 과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첫 번째 방에서처럼 성격 고약한 여자의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듣기 싫었지만, 시험을 위해서라도 나는 조용히 여자가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부터 네 앞에 놓여있는 침대에 누워서 자면 된다.]그런데, 저 여자가 뚱딴지같이 저런 소리를 한다.
도대체 시험의 내용이 무엇이면 갑자기 침대에서 자라는 걸까.
[나는 너에게 자각몽을 꾸게 할 거다. 그 자각몽은 네놈에게 있어서 끔찍한 악몽이 될 테지.]···그런 거였나.
저번에 산신령의 무구를 얻을 때 통과했던 첫 번째 시험과 비슷한 건가 보다.
[시험의 목표는 꿈을 끝까지 보는 거야. 하지만 네 정신 상태가 한계에 몰리면 너는 잠에서 깨게 돼. 그 순간 실패다.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꿈을 꿔야 하지.]일단 나에겐 정신력이 강화되는 재능이 있으니까 별 걱정은 들지 않는다만···.
혹시 모른다.
꿈의 내용이 내가 참을 수 없는 부류의 내용일 수 도 있으니까.
[알아먹은 것 같으니까 설명은 이쯤 해둘게? 그럼···.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아무튼 쉐도우 복싱을 하다가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는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신기하게도, 몸의 컨디션이 꽤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
한편, 첫 번째 시험의 방.
‘아즈모데···. 도대체 무슨 괴물을 만들어놓으신 겁니까.’
벨은 스즈키가 데려온 검은 기사를 상대하면서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곁에서 같이 싸우고 있는 녹색 기사에겐 공격이라도 먹혔다. 하나, 지금 상대하고 있는 괴물에겐 그 어떤 공격도 먹혀들지 않는다.
마치 저 기사에게 도달하기 전에 마법이 전부 소멸하는 듯했다.
“···제 마법은 통하지 않는군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에요.”
더군다나 벨은 녹색 기사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그녀의 공격 능력은 아까 싸우면서 아주 잘 봤기 때문에, 당연히 저 괴물을 쓰러뜨리는데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쾅!
그렇기에 벨은, 이어지는 기사의 맹공을 피하며 실낱같은 가능성에 걸어보기로 했다.
‘···별 수 없지. 그냥 무조건 살아남아보자.’
무기로 사용하는 건 오직 ‘방패’ 뿐인 저 미증유의 코뿔소 같은 적을 상대로, ‘강대용이 검을 얻고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버틴다.’라는 가능성에.
***
눈을 붙이자마자, 나는 꿈속에서 눈을 떴다.
“이게 자각몽인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다. 사실상 그냥 또 다른 현실에 내가 내던져졌다고 봐도 무방해보였다.
[진(眞) 흑염룡이 주변의 풍경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불만을 늘어놓습니다!]···그나저나, 자각몽이 구현한 이곳은 어디일까.
지금 내가 서 있으니 분명 바닥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내 주변에 보이는 건, 무지개와 그림자가 뒤엉키고 엮여서 빛을 내뿜고 있는 것만 같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공간이었다.
바닥과 벽, 천장의 경계가 없었고 공간의 넓이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는, 혹시 내가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왔나? 라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까지 했다.
[첫 번째 질문. 너는 현재 차원의 지평선에서 떠돌고 있다.]그때, 중후하고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너는 현재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한쪽은 네가 최태훈일 시절, 너를 돌봐주던 부모들.]“···뭐?”
그런데 뜬금없이 남자의 목소리는 최태훈의 부모, 사실상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부모님을 말하고 있었다.
“후~.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
“아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그가 말함과 동시에 마치 처음부터 왼쪽에 서 있던 것처럼, 부모님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다른 한쪽은 네가 원래 속한 세계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최유성이다.]그리고 내 오른쪽에는 세계의 주인공, 최유성이 나타났다.
녀석은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게요. 차원의 지평선 여행도 이걸로 끝이네요.”
최유성이 그렇게 말하자, 내 발이 저절로 앞으로 움직였다.
그 발에 맞춰 최태훈의 부모님과 최유성도 같이 걷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나는 말없이 걸으며 왼쪽을 곁눈질했다.
정확히는,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영락없는 최태훈의 부모님이었다.
외모도, 복장도, 목소리도 전부 내가 원래 세계인 이곳에 돌아오기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좀 젊어지시긴 했다.
하지만 분명 내가 문득문득 그리워하던 모습이었다.
“아~. 보인다!”
그렇게 추억에 잠겨있던 걷고 있던 그때, 우리는 어떤 곳에 도달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입구!”
내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하얀빛을 내뿜는 구멍이 뚫려있었고, 오른쪽에는 검은빛을 내뿜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너는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그걸 확인하자마자 남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의 설명을 들었다.
[너는 어느 한쪽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네 부모든 최유성이든 네가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자택일에서 아주 당연한 것이니까.
“아들.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살짝 쓴웃음을 짓고서 부모님 쪽을 바라보았다.
해맑은 어머니의 웃음.
가슴 속에서 뭔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저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가자 대용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당연히 최유성이 들어가려는 쪽이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최유성을 뒤따라가려고 했다.
[그리고 양쪽 모두 너를 끈질기게 끌고 가려하고 있다. 때문에, 너는 어느 한 쪽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그 순간, 갑자기 두 귀를 의심케 하는 질문이 내 귓전을 때렸다.
[네가 왕의 책무를 다한다고 했을 때, 너는 어느 쪽을 죽일 것인가?]···죽인다고?
무슨 문제가 그래.
이거 설마 내가 답을 내리면 곧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저절로 죽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정답, 최태훈의 부모를 죽인다.]“뭐···?”
그렇게 생각한 그때, 내 왼손에서 명령을 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흑염룡의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그림자는 날카로운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정답, 최태훈의 부모를 죽인다.]남자의 목소리가 반복되고, 검을 들고 있는 내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