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168
까악. 까악.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우중충한 하늘.
갑옷을 입은 시체들이 널려있는 선혈의 지대.
그 중심에 쌓여있는 수많은 시체로 이루어진 드높은 언덕.
“여긴 ‘인간’으로서의 내가 최후를 맞이했던 곳을 구현한 [왕의 무덤]이다.”
강대용은 그 언덕 위에서 무정한 눈빛으로 요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았던 요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강대용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었으니까.
“오직 한 사람만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
초월적인 존재가 된 강대용.
그가 꽂았던 검을 다시 빼들었다.
그리고 그 검의 끝을 요한에게 향하도록 겨눴다.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내가 될 것이다.”
그 행동은 선고였다.
그간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목숨까지 앗아간 죄에 대한 선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평생 남을 상처를 안겨준 것에 대한 선고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쳐 죽여주마. 잡신의 똘마니.”
강대용은, 요한에게 ‘사형(死刑)’을 고했다.
Episode.79 : 처형
“지금 잡신이라고 했나···?”
내 말을 들은 요한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노려보며 물었다.
화아아─!
아까부터 내게 당하기만 하던 놈은, 잡신이라는 단어에 아주 큰 자극을 받은 모양이다.
요한의 등 뒤에서 빛나고 있던 6장의 날개가 홍련의 빛깔로 물들여졌고, 그의 머리 위에 천사의 링이 떠올랐다.
“그 망언!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리라!”
태양신으로 추앙받았던 그 잡신이 요한에게 더욱더 강한 힘을 빌려준 듯했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 전부 쓸데없는 발버둥일 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흑염의 폭룡이여! 나의 몸에 현신하여 그 힘을 떨쳐라!”
[폭식의 마신(魔神) 흑염룡이 저 시건방진 녀석을 빠르게 정리하자 말하며 당신을 재촉합니다!]나는 최종형태의 흑염룡을 발동시켰다.
내 앞에 붉은 메시지창이 떠오르더니, 내 심장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힘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왕이여.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동시에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엑스칼리버의 비비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7월 달에 한 번 들었던, 내가 착각이라고 치부할 뻔했던 그 목소리였으니까.
우웅! 우웅!
내 활동복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가 검은 광채를 내뿜었다.
광원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니, 최유성이 여름방학 때 내게 건네주었던 용의 비늘이었다.
[자, 나를 손에 쥐어라. 그리고 진정한 왕의 자태를 적에게 보이는 거다.]아까부터 머릿속에 울리는 이 목소리의 근원도 이 비늘인 듯했다.
혹시라도 특정 상황에서 반응하지 않을까 해서 항상 부적처럼 들고 다니던 게,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야 그 능력을 드러내는 건가.
“좋다.”
···아무튼, 좋다.
거부하는 것 따위 없이 요긴하게 사용해주지.
비늘이 말한 대로, 나는 오른손에 비늘을 꽉 쥔 채 머리 위로 치켜 올렸다.
촤라라락!
그러자 검은 비늘로부터 각각 다른 크기의 검은 비늘들이 무수히 튀어나오며 허공으로 산개하더니, 내 온몸 여기저기에 빠르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건!”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은 엑스칼리버는 예상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눈치였다.
뭐, 나조차도 이 비늘이 이렇게 작용할 줄은 몰랐으니 요한이 모르는 게 정상이다.
촥! 촤작!
금방, 머리를 제외한 내 온몸을 뒤덮은 비늘은 여기저기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는 기사의 검은 갑옷을 형성해냈다.
약점인 부위를 대부분 보호하되, 움직임에는 불편함이 없는 이상적인 갑옷이었다.
펄럭!
마지막으로 내 등 뒤에서, 발목까지 덮는 기다란 붉은 망토가 튀어나왔다.
나는 이제야 비늘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이군.”
수많은 전장을 나와 함께한 갑옷 프리드웬.
최유성이 가져다준 비늘은 황당하게도, 그 프리드웬이었다.
그 녀석이 비늘의 진가를 알아본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엑스트라 아티팩트 중 하나였던 것이 얼떨결에 내 손으로 되돌아왔다.
“어, 어떻게 네가 그걸···.”
“글쎄다. 이 세계의 축복이라도 받고 있나 보지?”
나는 입아귀를 올렸다.
요한은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쿠쿡,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최대한 사악하게 웃었다.
요한은 날 올려다보며 표정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처형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입으로 하는 대화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피융!
나는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사용하여 요한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요한은 등을 돌리고, 내게 광선을 쏘았다.
캉!!!
나는 그 광선을 엑스칼리버로 베어버렸다.
동시에 [사기안]으로 녀석을 쳐다보며 외쳤다.
“느려!”
요한의 얼굴에서 미세한 떨림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히죽 웃으며 이어서 외쳤다.
“날뛰어라! 흑염룡!”
[흑염룡의 그림자]가 엑스칼리버를 휘감는다.엑스칼리버는 그것에 맞춰 칠흑의 검기를 강하게 내뿜었다.
콰아아아─!
파괴의 권능에 영향을 받은 검기는 요한이 내뿜는 창조의 힘을 계속 잠식했다.
그걸 감지했는지, 텔레포트로 나와의 거리를 확 벌렸다.
“신이시여···.”
녀석은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회색이었던 하늘에서 찬연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역시 신은 신이라고, 내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공간까지 침투한 모양이다.
화르륵─!
요한의 앞에서 홍련의 화염이 피어올랐다.
녀석은 맨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챙!
그러자, 황금빛을 머금은 검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태양신 본인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콰아아아─!
요한이 창조의 힘을 어김없이 내뿜는다.
어느새 하늘은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뜨거운 햇빛이 왕의 무덤에 내려앉았다.
“신성한 심판을 내려주마.”
요한은 검으로 나를 겨누었다.
그에게서 피어오르는 붉은 화염이 거대한 비수의 형상을 여럿 이루더니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쏘아졌다.
스으으···.
하나, 그 비수는 내게 도달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
요한은 눈을 부라리며 혀를 찼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화염으로 비수의 형상을 만들어 내게 쏘아 보냈다.
스으으···.
결과는 계속 같았다.
요한의 힘이 내게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파괴]의 권능은 [창조]를 완벽히 상쇄하는 힘이기에, 제아무리 태양신이 신성력의 세기를 높인다고 해도 내겐 아무런 소용이 없다.타닷!
나는 요한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요한은 나를 피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콰앙─!
곧, 나와 요한의 검이 충돌했다.
왕의 상징이자 나를 승리로 이끌어줄 엑스칼리버.
태양의 상징이자 요한에게 신의 힘을 부여해줄 솔(Sol).
두 무기의 충돌은 일대를 요동치게 했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한스는 어떤 사람이 될 거야?』
내 머릿속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재생된다.
해맑은 표정으로 요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묻는 은발머리의 소녀.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쑥스러운 미소를 흘리는 요한.
『나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자가 되고 싶어.』
카앙─!
녀석과 검을 맞대고 튕겨낼 때마다, 녀석의 과거가 나를 잠식한다.
『흐음···? 자원봉사자? 그거 재미없는 거 아니야?』
『재밌어서 하는 건 아니지. 단지,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
『그렇구나···. 한스는 역시 특이하네! 나는 나중에 카페나 차릴려구!』
수도원에서 길러져, 길가에 버려졌던 자신을 구원해 준 신을 굳게 믿으며 살아온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의 꿈은 신의 이로운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는 전도사이자 자원봉사자였다.
캉─!
『···나, 나의 아버지시여. 이 악귀로부터 저를 구원하소서···.』
『아쉽구나. 너의 아버지는 너를 구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그러나 그런 소년의 꿈은 한순간에 부서지게 된다.
아지트를 습격한 한 반마에 의해 친구들이 찢어죽는 걸 똑똑히 바라보면서.
키앙─!
『신은 이미 이 세상을 버렸다.』
반마가 유일하게 건들지 않은 것은 은발머리 소녀뿐이었다.
사악한 반마는 소년의 신앙을 송두리째 부정했고, 소년은 사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절망에 빠졌다.
쾅─!
『자, 호기롭게 앞에 나섰던 그 년도 어느새 도망갔다. 자기 혼자 살기 위해서.』
『···큭큭, 마음에 드는 눈빛이구나. 넌 좀 이용 가치가 있겠어.』
소년은 소녀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도 모르고, 악마의 말만 듣고 소녀를 증오하며 죽어갔다.
『안타깝구나. 굳게 믿던 신에게 버림받았다니.』
하지만 이 이후, 소년의 영혼과 육체는 반마가 섬기던 태양신에게 거둬진다.
소년은 처음엔 자신이 되살아난 것을 격렬히 부정했지만, 곧 고문과 세뇌로 인해 누구보다도 태양신을 믿게 된다.
그렇게 소년은, 태양신을 모시는 종교의 ‘최초의 12인’중 하나가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된다.
캉─!
[악마를 삼킨 회귀자]에서도 나왔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다.활자로 읽었을 때는 고문과 세뇌 장면이 워낙 적나라해서, 이 녀석을 아주 조금 동정했던 기억이 있다.
하나, 이 녀석을 직접 경험해 본 지금은 동정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카앙!
서로의 검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낸다.
불똥이 튀고, 땀방울이 튀며 칼부림은 가속한다.
우리는 지금 서로의 내면을 바라보며, 온 힘을 쏟고 있다.
캉! 카앙! 쾅!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부정하고 있다.
파괴와 창조가 공존할 수 없듯이 나와 요한 또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강대용! 그 사악한 힘으로 우리를 막는다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요한을 죽여야 하고, 요한은 날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갈망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네놈이 마신의 환생인 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리고 넌 지금도 마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지! 그런 네놈이 스스로를 영웅이고, 세계를 위한다고 생각하나!”
“······.”
요한의 검무가 승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내 무덤에 내리쬐는 햇빛도 그 위세를 키운다.
분명 파괴에 먹혀야 하는 창조의 힘이 도리어 내 힘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천만에! 네놈은 위선자다! 내가 행하는 일이 이 세계를 구원할 대업임에도, 내 행위는 무조건적으로 악(惡)으로 규정하고 무시하는 위선자이자 악인일 뿐이다!”
요한은 검을 휘두르며 열변을 토한다.
마치 내게 자신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그만 내 사악한 힘을 자신의 대업에 보태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콰앙─!
물론, 내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나는 성검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내뿜었고,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높였다.
“어째서냐! 네가 사용하는 힘은 우리와 협력해야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데 쓰일 수 있거늘!”
요한의 눈동자에서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친다.
나는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내 말을 들어라 강대용!!!”
이놈은 미친 신에게 세뇌당한 미친 사이비 교주일 뿐이다.
그 평가는 요한의 이런 설교에도 변함이 없다.
나는 순수한 힘으로 녀석을 몰아붙이며 입을 움직였다.
“네놈은 잘난 태양신의 힘으로 극명한 테러행위를 저질렀다. 나는 이 사악한 힘을 테러행위를 일삼는 네놈들을 쓰러뜨리는 데 사용했다.”
서서히, 우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요한을 축복하던 뜨거운 태양이 진다.
언제 화창했냐는 듯, 회색 구름이 다시금 하늘을 뒤덮는다.
“···위선자는 내가 아니라 너다.”
쩌적.
그것과 동시에 요한의 검에 금이 일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나는 곧장 녀석에게 달라붙어서 사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쨍강─!
엑스칼리버의 칼날은 솔의 칼날을 부러뜨렸다.
요한의 눈가가 거세게 떨린다.
내가 휘두른 검은, 요한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 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검상을 만들었다.
푸슉!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요한은 눈을 부릅뜨며 내게 손을 뻗었다.
“커, 커억! 가, 강대요오옹!!!”
녀석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창조의 힘으로 검상을 수복하며 여러 갈래의 태양 광선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