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178
“아니라니깐!”
“…지금 여기 너희만 있는 거 아니잖아.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부러 모였는데 여기까지만 해. 길드 건은 시간이 좀 남았고, 나중에 따로 얘기해도 되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이유를 대며 그녀들의 말싸움을 말렸고, 알리사와 백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미안 얘들아….”
“나도 미안….”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다른 애들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왜? 난 재미 있…. 켁!”
“재빈쓰?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황재빈과 이상은은 딱히 상관없는 듯 말했고, 윤희진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최유성과 최성아 역시 딱히 불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자자! 어쨌든 대용쓰가 잘 말려줬으니까 다른 얘기나 하자구! 혹시 휴교 기간에 다 같이 할 만한 거 있어?”
“노래방이나 갈래?”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이어지다가, 결국 다 같이 노래방에 가는 걸로 하고 추후에 여행을 생각해보자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곧장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얘들아 잠깐만!”
그때, 갑자기 윤희진이 큰 목소리로 우리를 멈춰 세웠다.
“나 대용이랑 얘기 좀 하고 갈 테니까 먼저 가고 있을래? 어디로 갈 건지만 톡으로 보내주면 대용이 데리고 갈게!”
“아, 아까 대용쓰랑 단 둘이 얘기하고 싶다 했지?”
일행들은 그걸 지금 굳이 해야 하나 싶었는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조금 의아했지만, 윤희진의 표정은 확고해 보였다.
“내, 내가 한 짓이 한 짓이다 보니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음…. 정 그렇다면 뭐! 얘들아 괜찮지?”
어느새 대장 비슷한 게 되어버린 이상은이 모두에게 물었고, 모두들 딱히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 알리사조차, 아직까진 윤희진의 진심을 간파하지 못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가자 대용아!”
“어….”
나와 윤희진은 단둘이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왔다.
우리는 적당히 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서 서로를 보지 않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그냥, 이것저것.”
윤희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설이는 모르고 있더라.”
백설이 모르는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윤희진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뭔지 알고 있다.
윤희진은 뒷짐을 쥔 채 내 앞에서 서성였다.
“왜…. 다른 애들한테는 말 안 해줬어? 내가 널 좋아해서 현혹에 걸린 거라고?”
“…….”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나는 트러블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하지만 윤희진이 내게 질문하는 걸 보면, 내 행동이 정답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가 싸우지 않길 바라서.”
“…….”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강대용이라는 인간은,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이 녀석들의 친구로서, 누구보다도 [악마를 삼킨 회귀자]를 재밌게 읽었던 독자로서.
나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잘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들이 내 선택에 불만을 가질 지라도, 나는 이런 선택밖에 못하는 사람이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그런 거 아냐.”
그런 답답한 나를 앞에 두고, 윤희진은 양옆으로 고개를 젓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고마워서 그래. 이기적인 나를 숨겨줘서.”
윤희진은 마음씨가 무척 여린 여자다.
그건 소설을 정독한 나라서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녀석이 지금 자신을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하고 있다.
“역시…. 착하네…. 대용이는….”
“…….”
윤희진은 나를 칭찬하면서 울고 있었다.
“나같이 나쁜 얘랑 다르게.”
자신과 비교하면서.
말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조금 당황해서일까,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휴교한 날부터 생각해봤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내가 어떻게 고쳐져야 할지.”
나는 조용히 윤희진이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그녀가 괜히 지금 빠져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녀는 큰 결심을 했을 터다.
“난, 지금부터라도 이 마음을 천천히 접어갈까 해. 지금 당장은 완전히 접긴 힘들겠지만, 너를 차차 포기해나갈 생각이야.”
“…….”
“사실 현혹이 풀린 당시엔 여러 생각을 했다? 그냥 너한테 경멸당해도 마냥 좋다고 생각했고, 거칠게 말하는 너라도 좋다고 생각했어. 근데, 결국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건 진짜 잘못된 생각들이더라고.”
포기하지 않는 백설과 정반대의 선택을 하겠다고 말하는 윤희진.
“그러니까…. 대용아. 내가 널 포기할 수 있게, 너도 날 도와줘.”
그녀는, 아주 괴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Episode.84 : 정리 (2)
윤희진은 내게 부탁을 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들어 해.”
“…….”
“그냥…. 짝사랑을 포기하는 거뿐인데.”
그녀에겐 그다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짝사랑이라는 알딸딸한 감정이, 가슴을 후벼 파는 송곳으로 일변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하나, 내가 윤희진을 이 정도로 힘들어 하게 할 사람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르겠어….”
“…….”
우리는 알게 된 지 약 7개월쯤 되어가는 친구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작은 호의를 몇 번 베풀었을 뿐이다.
“그냥…, 네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것 같아.”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내 호의와 태도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의 전개와 그녀의 성장을 생각해서 행했던 일들이, 그녀에게 ‘강대용을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버렸고, 나는 이 곤란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받아줄 수 없다고 해도?”
“…응.”
어쩌면 미래의 백설처럼, 미래의 윤희진 또한 이곳에 와있으니 그 영향을 받은 걸 수도 있을 거다.
미래의 백설이 나에게 범상치 않은 감정을 가진 것처럼, 미래의 윤희진 또한 내게 품은 호의가 상당했으니까.
“지금은…, 너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아.”
이유가 어쨌건 간에 최유성을 좋아하던 윤희진은 저렇게 말할 정도로 날 각별하게 여긴다.
그런 그녀가, 나를 포기하는 것에 도움을 주라면서 오열하고 있다.
“…그렇지만, 넌 나를 포기하고 싶은 거고.”
“응….”
나는 윤희진이 어떤 인물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도와주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걸로 괜찮아?”
한동안 많이 아파할 것이다.
바보같이 착하고 감정적인 그녀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최유성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도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워하던 그녀다.
“…괜찮다니?”
“잘 버텨낼 수 있겠냐고.”
벌어진 상처는 마음속에 흉터를 남길 거고 그 흉터는 몹시 쓰라릴 것이다.
윤희진이라는 인물을 다른 성향의 인물로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 과몰입 하는 것 같지만 윤희진은 정말로 그런 사람이다.
너무 부드러워서, 형태 변화가 자유로운 점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그렇기에 부서지고 굳어지는 것도 너무나 쉬운 사람.
소설을 읽은 나는 그런 그녀의 내면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내린 결정에 선뜻 도와주겠다고 할 수 없었다.
“네가 내린 결정은 올바르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나는 또 우유부단한 결정을 내릴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천하의 못된 놈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녀에겐 어쩌면 한 줄기의 희망이라는 못된 고문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또다시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난 널 도와줄 수 없어.”
나는 윤희진을 도와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진짜일지도 가짜일지도 모르는 잔인한 결정을 행하려는 사람을 선뜻 도와줄 수 없다.
“내가 도움을 주는데, 오히려 힘들어할 너를 볼 것 같아서 싫어.”
선택은 윤희진의 몫이지만, 그냥 싫다.
나로 인해 아파할 그녀를 생각하면, 그냥 싫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소설의 히로인이 나라는 인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싫다.
“그러니까….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결국 난 백설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선을 긋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녀를 포용하는 것도 아닌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관계.
“미안하다.”
나는, 윤희진과도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을 택했다.
***
윤희진이 보는 강대용은 무척이나 괴로워 보였다.
“미안하다.”
끝내 그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힘들다 했다.
‘…결국 또 이기적인 행동을 했어.’
그래도, 윤희진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또, 내 감정 때문에 강대용을 힘들게 했구나.
그냥 굳이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두면 되는 쓰레기 같은 감정을 강대용에게 버렸구나.
‘왜, 왜 난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
그렇게 생각하자니 윤희진은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고 말았다.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자신이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고뇌하면서 살아온 그녀였기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드물었다.
그러나 강대용에겐, 그 실수를 몇 번이나 범하고 있다.
“아냐,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윤희진은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강대용에게 사과했다.
바보 같은 나 때문에 강대용이 아파한다.
나쁜 건 이기적인 나인데, 강대용이 그런 내가 아파할까 봐 같이 아파해주고 있다.
“내가 이기적이라서 미안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서 좋아하는 남자를 사용해버렸다.
윤희진은 그 사실에 짙은 자기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강대용에게 피해를 주는 건 그만둬야 하는데 슬픔을 토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좀 이기적이면 어때.”
그때, 강대용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윤희진을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원래 사람은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야 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
너무나도 선한 이 남자는 그런 자신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의 미소는 무척이나 환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환했다.
최유성을 처음 본 순간, 그 순간보다도 훨씬 환했다.
“으흑, 으흑흑….”
윤희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감정이 들지 않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강대용의 환한 미소를 보자니 그런 감정이 또다시 샘솟는다.
“그만 울어. 눈 다 붓는다.”
“끄윽…. 으흐흑….”
자신을 걱정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꼼꼼히 싸매서 마음속 한구석에 버려두었던,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주웠다.
그리고 윤희진은 이내 깨닫게 된다.
“일어나. 세수하고 애들한테 가자.”
지금의 자신은 강대용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는 슬픈 추억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절대로 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응.”
그렇게 윤희진은 줄곧 외면해왔던,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반듯하게 펼쳤다.
***
공원 화장실에서 윤희진이 세수하고 화장을 고친 뒤, 우리는 곧장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큼….”
분위기는 좀 미묘했다.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걷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그 침묵이 조금 불편했던 나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응…?”
“요새 왜 그렇게 울보가 됐냐?”
“우, 울보…?”
“그래. 이 울보야.”
편하게 대화를 트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어차피 그녀하고도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조금이라도 편안한 친구로서 지낼 수밖에 없을 것 같으니.
“너 때문에?”
“…….”
그리고 돌아오는 그녀의 말에 도리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히힛. 넝담~.”
“…뭔데.”
윤희진은 살짝 혀를 내밀며 나를 놀리는 것 같은 표정을 만들었다.
그 표정을 보자니, 뭔가 좀 빠르게 평소의 그녀로 돌아온 것 같아서 얄밉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층 분위기가 편해져서, 나는 평소처럼 그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너 아직도 눈 빨간 거 아냐? 애들한텐 뭐라고 말할래?”
“음…. 글쎄?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남자가 울렸다고 말해야 하나?”
“…장난 좀 작작 해.”
“헤헷. 사실인 걸 어떡해!”
윤희진은 아주 많이 솔직해진 것 같다.
현혹되었을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내게 막 달라붙거나 애정행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