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215
“그러지.”
나는 프리드웬과 엑스칼리버를 해제한 뒤 바닥에 앉았다.
환영검을 계속 사용하고 여러 기술을 섞어 쓰다 보니까 살짝 피곤해진 탓이었다.
우우웅─.
갤러해드가 기사들에게 손을 대자,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멀쩡해졌다.
기절했던 그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갤러해드는 번갈아 보다가 무릎을 꿇었다.
“죽여주십시오 폐하!”
“…아, 아니다. 시험이었잖느냐.”
거참, 좀 부담스럽구먼.
물론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사과하는 건 좀 그렇다.
“그리고…. 앞으론 너희들은 할 일이 많으니 그런 소린 자제하여라.”
나는 아서왕(흑염룡)의 영혼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왕이 아니라, 그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
“알겠나?”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니 나는 일단 내 아랫사람이었던 이들도 똑같은 동료로 대할 것이다.
예전처럼 사용하고 버리는 부하들이 아닌,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로.
“페하가 많이 착해졌…. 아야!”
“예의를 갖춰라. 폐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내려주신 것이니.”
“으…. 폐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이제 우리와 수평적인 관계가 되고 싶으시다잖아!”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가레스와 퍼시벌이 투덕거리는 게 보인다.
뭐, 저 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이다 보니 저렇게 될 수밖에 없긴 해.
저러다가 금방 알아서 조용해지니까 그냥 둬도 된다.
“…일단 너희들이 날 도와서 무엇을 할 건지는 나중에 이야기하지, 우선 ‘열쇠’부터 받아볼 수 있겠나.”
“네 폐하아! 제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내가 열쇠 얘기를 하자마자 가레스와 퍼시벌이 서로를 노려보다 말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각각 허공에 손을 뻗더니, 내가 엑스칼리버를 해방할 때처럼 구멍을 뚫고 물건들을 꺼냈다.
“제게는 ‘투구’로 인도하는 룬석을 남기셨습니다.”
“저한테는 ‘망토’로 인도하는 양피지를 주셨어요!”
가레스는 주먹만 한 돌멩이를, 퍼시벌은 누더기인지 종이인지 구분조차 힘든 양피지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등 뒤에 매고 있던 빈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제게는 ‘단검’으로 인도하는 화살을 남기셨사옵니다.”
그들을 시작으로 내 무구로 가는 열쇠를 가진 이들이 하나둘씩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내게 처음으로 공격을 가해왔던 금발머리 사내였다.
“고맙다. 근데 너는 누구지?”
“트리스탄이옵니다 폐하.”
…어쩐지 좀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남자 주인공처럼 생겼다 했더니 트리스탄이었군.
뭔가 다른 녀석들이랑 달리 아주 어울리는 모습으로 환생했구나.
“그렇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네 폐하.”
과묵한 건 여전하구나.
뭐, 내게 이편이 마음에 드니 오히려 좋다.
“폐하! 제게는 이 물건을 남기셨습니다!”
“고맙다. 넌 누구지?”
트리스탄 다음으로 다가온 녀석은 아까 퍼시벌과 함께 내가 왔다고 다른 이들에게 광고를 했던, 금발곱슬머리의 소년이었다.
“케이입니다 폐하!”
“아….”
케이였군.
베디비어의 짝꿍 같은 녀석이자, 내가 타락할 때 베디비어와 더불어서 빠르게 충성을 맹세했던 기사.
“성격이 좀…. 변한 것 같군.”
“하하! 언제나 우중충할 순 없잖아요?”
이 녀석은 조금 뭐라 해야 할까, 가레스나 트리스탄만큼이나 조용하면서도 성격이 예민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의 베디비어 같은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조금 의외였다.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도록. 근데 네가 넘겨준 이 열쇠는 뭐지?”
“‘방패’로 가는 길을 여는 칼날 파편입니다!”
아무튼 그는, 얼핏 보면 단순히 손바닥 크기의 쇳조각처럼 보이는 물건을 내게 내밀었다.
과거의 난 왜 이런 물건들을 열쇠로 지정했을까.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기억이 완벽한 것도 아니기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접니다 폐하.”
마지막으로는 갤러해드가 주는, 이제야 좀 열쇠처럼 생긴 물건을 받았다.
이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창’에게로 가는 길을 여는 열쇠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걸로 저희가 가진 열쇠는 전부 폐하에게 전했습니다.”
“고맙군. 죽는 순간까지 잘 지켜줘서.”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조금 번거롭지만, 대용위키로 무구들이 봉인된 곳에 찾아가서 봉인을 풀고 취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 작업은 내일부터 할 생각이다.
오늘은 알리사가 우리 할머니 집에 찾아오기로 했으므로 가봐야 하니까.
“신하로서의 도리를 지킨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고맙다. 이걸로 그 녀석과 싸울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용무가 끝난 나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사들은 너무 금방 헤어져서 조금 아쉽다고 했지만, 그들과 달리 나는 딱히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여유 있게 알리사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면 지금 출발하는 게 좋을 것이고, 벨이 그림자를 이곳에 저장해놓으면 언제든지 들릴 수 있을 테니까.
“조심히 가십시오, 폐하.”
“폐하! 오고 싶을 때 와요!”
“…그래. 또 보지.”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곧장 집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벨과 베일을 호출하고, 스마트폰으로 또 무슨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지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형님!”
“폐하!”
안심하던 와중에 벨과 베일이 도착했고, 나는 베일을 아공간 둥지로 회수한 다음 벨에게 그림자 텔레포트를 부탁했다.
[폐하. 오랜만에 기사들을 마주하니 어떠셨습니까?]벨이 그림자 텔레포트를 사용하기 직전.
아공간 둥지로 들어간 베일이 내게 물었다.
“좋았다.”
사실 좋기는커녕 격렬하게 싸웠지만, 화도 조금 났지만 결론적으로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
대한민국 시간으로 오전 11시경.
나와 벨은 무사히 시골집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형님.”
“그러게.”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집에 들어가서 집을 좀 정리한 다음 벨이 강대용의 할머니로 변신하기만 하면 모든 준비는 완벽히 끝날 터였다.
“자기야!” “……!”
그때, 온몸에 일순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가, 우측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 기~ 야~.”
나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1시에 만나기로 한 그녀가, 어째서인지 벌써 이곳에 있었다.
“…리사야.”
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왼쪽 어깨에 창 케이스를 매고 있었다.
Episode.99 : 망상 (5)
알리사는 싱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전혀 웃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뚜벅, 뚜벅.
그녀는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주 천천히, 계속 입을 벙긋대면서.
“옆에 그분은 누구야?” “아, 아! 내 친구. 베디비어가 소개시켜준 친군데….”
큰일이다. 벨은 아직 우리 할머니로 변신하기 전이다.
어떻게든 내가 시선을 끌어서 벨을 다른 곳으로 보낸 다음에 집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너희 할머니가 아니고?”
“…….”
하지만 나는 이어지는 알리사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그냥 던져본 말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하하! 제가 어떻게 대용이 할머니에요? 친구 맞….”
“닥쳐, 나태의 마신.”
“…네?”
그런 내 불안감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
알리사는, 알리사가 알 수 없는 사실까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자기는 폭식의 마신이지.”
“…….”
…어째서, 그걸 다 알고 있는 건데.
어떤 방법으로 갑자기 저 사실을 알아낸 걸까.
혼란스러운 생각을 최대한 침착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다 말해줄 테니까.”
알리사는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 능청스럽게 웃어보였다.
“우선 서서 이야기하기도 뭐하니까 집에 들어갈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벨에게 시선을 보냈다.
벨도 딱히 방법이 없다 생각했는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끼익─.
우리는 마당을 거쳐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다지 넓지 않은 단독주택이라 거실이 딱히 넓지 않았다.
그래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거실 탁자밖에 없었기에, 나와 벨, 그리고 알리사는 탁자 앞에 앉았다.
“후후, 협조적이라 좋네.”
“…리사야.”
“그렇게 부르지 마. 설마 아직도 눈치 못 챈 건가요?”
그리고 앉자마자 이어지는 알리사의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저 말투, 어쩐지 그녀와 비슷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어떻게 마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지 않은 ‘그녀’가 알리사의 육체에서 되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알리사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서 입아귀를 올렸다.
두 눈으로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당신의 아내, 인생의 동반자, 유일한 반려…. 기네비어 팬드래건이라고요.”
“…어떻게.”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숨이 턱 막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천 년 전, 내가 직접 목숨을 거둔 그녀가 알리사의 육체로 되살아났다.
“어떻게냐면요~.”
알리사가, 아니, 기네비어가 탁자에 올리고 있던 내 왼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당신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니까. 그 감정 하나만 의지해서 끔찍한 지옥불을 헤치고 돌아온 거죠.”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았다.”
기네비어는 날 사랑한다는 되도 안 되는 변명을 지껄였다.
저건 거짓말이다.
그녀는 내게 실망했고, 랜슬롯에게 빠져 불륜을 저질렀다.
그러니 그와 자신을 죽인 날 원망하면 원망했지, 사랑할 수는 없는 거다.
“…정녕, 당신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무슨….”
하지만 어째서인지, 기네비어의 표정이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그게…. 제 진의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
“…그렇다면, 이 기네비어가 잘못한 거겠지요. 예. 제가 잘못했네요.”
기네비어는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그녀로부터 짙은 암 속성의 마나가 느껴졌다.
“저는…. 당신이 저만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연기를 했어요.”
“뭐?”
“그러나 전쟁과 힘에 눈이 먼 당신은…. 아직까지도 제가 그 목석같은 병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한 거군요.”
쿠구구구….
지진이 난 것처럼,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알리사의 힘이 아니다. 아마도 기네비어가 가지고 있는 힘일 것이다.
“그냥 좀 더, 좀 더 당신 곁에서 당신을 사랑으로 보담아 줬어야 했던 건데…. 되도 안 되는 싸구려 연극을 꾸며서 죽임을 당한 거군요….”
그것보다도, 나는 기네비어가 내뱉는 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랜슬롯과 불륜 관계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래요…. 그럼 앞으로는 당신 곁에만 붙어있을 게요. 제가 괜한 오해를 샀으니, 이제부터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죽는 거 말고는 무엇이든 할게요.”
기네비어는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내 손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팍 들어갔다.
“하지만 당신도, 당신도 아직 저를 사랑한다면 어떤 것이든 해주세요.”
그녀의 눈은 이미 죽어있었다.
자수정처럼 빛나던 보라색 눈동자는, 선혈로 가득 차있는 것만 같은 붉은 눈동자로 일변했다.
“싸우지 마세요.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말고 저만 보세요. 어디에도 가지 마세요. 침대에 누워만 계세요. 늙지 마세요. 당신한테 말을 거는 사람들은 다 죽이세요.”
쉴 새 움직이는 입술과 혀.
기네비어의 불안과 망집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기네비어….”
기네비어가 앞서 한 말은 모두 진실인 듯했다.
강대용의 인격이 그렇게 느끼기 이전에, 기네비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흑염룡이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전쟁과 힘에 눈이 멀어서 기네비어와 랜슬롯을 죽이고 그 중 랜슬롯을 ‘4기사’로 만들어버린 거구나.
“미안하다.”
강대용이 저지른 실수는 아니다.
하나, 나도 폭식의 마신 흑염룡도 모두 아서의 영혼을 이어받은 존재이기에 내가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만으로, 그녀가 지금 보이는 불안 상태에서 벗어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돌발 사태에 대비해 미리 몸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사과…. 왜 사과를 하시죠? 제가 잘못한 거잖아요?”
“아니다. 내가 다 잘못했다.”
대화로 안 되면 기네비어를 무력으로라도 제압해야한다.
그리고 알리사의 인격을 되찾을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어디엔가 구속시켜둬야 한다.
“용서해달라는 말은 안 하겠다. 하지만 나는 네 말대로 가만히만 있을 수 없다. 내겐 아직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