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227
“응?”
그러던 중, 백설은 침묵이 어색해진 모양인지 시선을 땅에다 두고서 말했다.
“나랑 있기 싫어?”
“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였는데 그녀는 내가 말하기 싫어서 안 한 걸로 보였나보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래?”
“어.”
내 대답을 듣자 백설은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뭐, 그녀의 저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나와 알리사 입장에서 보면, 백설은 자꾸만 우리 사이에 끼려고(?) 하는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백설은 바보가 아니다.
그녀 역시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럼 재밌는 얘기 좀 해봐.”
“재밌는 얘기?”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비단 내가 그날 그녀가 줄곧 듣고 싶었던 말을 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백설은 미래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미래의 백설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가진 힘은 물론, 나에 대한 애정도 날이 갈수록 더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어. 네 얘기를 좀 듣고 싶어서.”
“······.”
그나저나, 내 얘기를 듣고 싶다니.
저거 사람 꼬실 때 쓰는 단골 멘트 아니야?
사이비 신도들이 ‘와 인상 너무 좋으시네요!’와 함께 저 멘트를 치면서, 은근슬쩍 어디 햄버거 집에라도 가자고 하던데.
“딱히 알고 있는 재밌는 얘기는 없는데.”
“그럼 네가 겪었던 이야기 해 줘.”
“···음.”
물론 백설이야 당연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랑 말을 섞고 싶을 뿐일 테지만.
하지만 그녀에겐 조금 미안하게도, 나는 말주변이 있는 편은 아니다.
또한 그녀가 ‘나’라는 사람을 깊게 알도록 하고 싶지도 않다.
“네가 먼저 해주면.”
그렇기에 나는 선(先)을 넘긴다.
‘네가 안하면 나도 안하겠다.’라는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나, 나 먼저 하라고?”
“어. 네가 안 해주면 나도 안 할래.”
“아니! 왜 하필 내가 먼저 해야 해!?”
“너도 나한테 먼저 해보라고 시켰잖아.”
“그으, 그건 그런데···.”
옳지. 백설의 얼굴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없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면 번거롭게 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조, 좋아! 그럼 내가 꾼 꿈 얘기 해줄게.”
“응?”
그런 내 예상과 달리, 백설은 너무나도 쉽게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 수도 있는 꿈 얘기를 하려고 한다.
“조, 조금 황당하게 들릴 순 있는데···. 이건 내가 10월쯤부터 주기적으로, 계속 내용이 이어지는 꿈이거든?”
“어.”
나는 살짝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하필 많은 이야기 중에서 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백설은 눈을 게슴츠레 좁히고 나를 째려보았다.
“···으으! 알아! 안다고! 꿈이 이어지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거! 그래도 좀 진지하게 들엇!”
“···내가 뭐라고 했냐?”
“표정이 진지하지 않잖아!”
“도대체 어떤 표정으로 경청해야하는 거냐?”
“그냥 아무런 표정도 짓지 마! 부끄러우니까!”
“네네···.”
거참, 엄청 꿱꿱대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텐션이 높은 거야?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이대로는 그녀의 목이 쉴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잠자코 듣기로 했다.
“표정 관리할 테니까 얘기해봐.”
“조, 조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텐데···. 이 꿈에서 네가 나왔어.”
“······.”
하지만 차마 잠자코 들을 수 없는 말을 그녀가 한다.
내가 나오는 꿈.
그녀의 상태를 생각해보자면 평범한 꿈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근데 한 번이 아니고 계속 네가 나오더라고.”
“그래?”
“응. 근데 그게 마치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실감 나는 거 있지? 예를 들자면···.”
백설은 신나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이 겪은 놀라운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녀가 종종 얼굴이 붉히며 이야기를 끊긴 했지만, 그래도 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꿈속에서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최근에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됐어.”
“그래서 뭘 했는데?”
“그, 그···, 그냥 너랑 얘기 나누고 그랬지 뭐! 하하!”
“그랬냐.”
평범한 꿈이라면 백설이 자각할 수도 없을 거고, 이어서 꾸지도 않을 거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즉, 저 꿈은 아마도 이 백설에게 ‘미래의 백설’이 스며들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특이한 현상이라고 봐야 할 듯했다.
“자! 이제 내 얘기 많이 했지? 이제부터 네 얘기 해 줘.”
“···약속이니까 해야겠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꿈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 묻거나 하지 않았다.
괜히 내가 자세히 파고들었다가, 그녀가 미래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하게 되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나는 백설이 최대한 천천히 그 기억이 되찾길 바란다.
“추억은 많이 없으니까···. 알리사랑 탱글탱글 섬 갔을 때 이야기 해줄게.”
“···알리사 얘기는 안 하면 안 돼?”
그런 마음으로 화제를 전환하려고 했는데, 백설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요새 알리사랑 또 사이가 안 좋아졌으니, 알리사와 관련된 건 뭐든 싫다는 걸까.
“그럼 딱히 할 얘기가 없는데?”
“그럼 너도 나처럼 부끄러운 얘기라도 해. 너도 꿈 정도는 꿀 거 아냐.”
백설은 완고했다.
때문에 나는 끙끙대며 머릿속을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뭐야. 내 얘기 들으면서 생각도 안 해놨어?”
“그만큼 이야기에 집중하셨다는 거지~.”
“···흥. 그럼 빨리 생각해.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그녀의 재촉에 나는 두뇌를 풀가동했다.
그리고 결국, 힘겹게 이야기 하나를 뽑아냈다.
“내가 갑자기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줄게.”
“오. 그건 좀 궁금했어.”
나는 황투희와 수련하면서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말해줬다.
물론 황투희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우리 할머니가 알고 지내는 은둔고수로 그녀를 소개했다.
실제로, 우리 할머니(벨)랑 알고 지내는 고수가 맞기도 하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다리 찢기 할 때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나 정도면 꽤 유연한 줄 알았는데···.”
나는 역시나 그 이야기를 재밌게 풀진 못했다.
하지만 백설은 싱긋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중에 그 사부님 소개시켜줄 수 있어?”
“응?”
“아, 별 뜻은 없고. 그냥 훈련 중에 재밌는 과정이 많은 것 같아서.”
그런데 재밌는 훈련이 많다는 건 뭔 개소리지?
황투희의 훈련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이 뭔지 내게 친히 알려준, 악마가 짠 것 같은 과정이었는데.
내가 얘기를 좀 잘 못했나?
“혹시 내가 좀 이해 안 되게 얘기했냐?”
“아니? 너 말 잘하던데?”
“근데 어떻게 그 얘기를 듣고도 재밌을 것 같다 할 수 있어?”
“진짜로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런데? 생각해봐. 난 마법사라서 네가 겪었던 교육 코스를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잖아. 그럼 신선하게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저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구먼.
하긴. 직접 겪어보지 않아선 그냥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
“그렇겠네.”
“그래. 그러니까 혹시 또 그 사부님 뵐 일 있으면 나 한 번만 소개시켜줘. 알았지?”
“···워낙 낯을 가리시는 분이라. 노력은 해볼게.”
아무튼 백설은 그 얘기만 듣고도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부담스러워 눈을 다른 곳에 뒀다.
여전히 그녀가 죽던 그 순간의 모습과 백설이 웃는 모습이 겹쳐보였다.
“아, 강대용. 잠깐 멈춰 봐.”
“왜?”
그 찰나, 백설이 내 오른쪽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딘가로 손짓했다.
그녀가 손짓한 곳에는 외부에서 온 사격 부스가 있었고, 많은 생도들이 사격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저거!”
백설은 조금 더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사격 부스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떤 물건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한정판 미야옹 인형!”
그녀는 손가락을 세운 채로 몇 번 흔들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백설의 낯선 모습에 조금 놀란 채로, 백설이 가리킨 것을 보았다.
회색 고양이 인형이 ‘10점! 따보려면 따보시지!’ 라는 작은 팻말 뒤에 우뚝 서 있었다.
“···저게 뭐.”
“한정판이잖아!”
“그런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도 백설은 고양이 같은 눈을 반짝이다가, 이내 자신이 한 행동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곤 소리를 빽 지르곤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련이 남는지 모양인지 걷다가 휙, 또 다시 걷다가 휙, 미야옹 인형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그 모습이 왠지 좀 어린아이 같아서 귀여웠다.
“하아···.”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한 이상,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남을 듯했다.
결국 나는 사격 부스에 다가가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얼마에요?”
“야, 야! 강대용!”
백설은 하지 말라는 듯 다급한 움직임으로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당연하지만 그녀보다 월등히 힘이 센 내가 그녀에게 끌려가는 일은 없었다.
“세 발에 3000원, 여섯 발에 5000원, 10발에 8000원.”
“10발 주세요.”
“그려.”
주인장은 내게 총과 총알을 넘겨주며 털털한 미소를 지었다.
“여친 인형 따주려고?”
“여, 여, 여자 친···.”
주인장의 말에 백설이 ‘어버버···.’거리자, 나는 단호히 부정했다.
“여자 친구 아니에요.”
“허허. 그렇게들 많이 말하지!”
“······.”
나는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자세를 잡았다.
주인장은 그런 나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허···. 사수인가보네? 자세가 꽤 나오는디?”
“사수 아닌데요.”
나는 피식 조소를 흘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자세가 꽤 나온다고? 당연하지.
저쪽 세계에서의 나는, 사격으로 포상휴가 밥 먹듯이 받았던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의 사나이거든.
Episode.102 : 1000년 전의 너에게 (6)
사격 부스 주변에 있던 생도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강대용의 사격을 구경하고 있었다.
탕─! 탕─!
공기총의 총성이 울릴 때마다 과녁이 하나씩 뒤로 넘어간다.
과녁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데도, 강대용은 기어코 과녁을 넘어뜨린다.
그야말로 백발백중이라고 할 만한 사격실력.
생도들은 그가 당연히 사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30점이네요. 저거 세 개 다 주세요.”
30발을 쏘아 30발을 전부 과녁에 맞추는 기염을 토한 강대용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사격 부스 주인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강대용을 바라보았다.
“정말 사수 지망이 아니라고?”
“예.”
생도들의 수준을 생각해서 과녁이 움직이는 속도를 올렸는데도, 모든 탄환을 명중시켰다.
그것도 완벽한 사격자세로 말이다.
강대용과 같은 자세가 나오려면 사격을 배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
사격 부스 주인은 은퇴한 군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총 쏘는 법을 어디서 따로 배웠나?”
“아는 분께 배웠습니다.”
“허허….”
역시나, 배운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굳이 사격술을 배웠으면서, 왜 사수로 지망하지 않으려는 걸까. 재능도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사격 부스 주인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어서 강대용에게 물었다.
“재능이 출중한 것 가튼디…. 사수가 아니라면 혹시 궁사 지망인가?”
“권사 지망이요.”
“허….”
그리고 권사 지망이라는 대답을 듣고, 하마터면 뒷목 잡고 쓰러질 뻔했다.
어째서 이런 빛나는 재능을 갖고도 가장 힘든 길을 택하려 하는가….
사격 부스 주인은 강대용이 안타까워져서,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지금이라도 사수로 지망을 바꿔보는 게 으뜨냐.”
“네?”
“내는 총 쏘는 사람을 볼 줄 안다. 근디 네한텐 분명 그 총 쏘는 재능이 있다.”
조언으로써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조언을 들은 강대용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