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231
타닥타닥.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캠프파이어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커다란 모닥불 근처에 생도들이 모여 저마다 웃고 떠들거나,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중이었다.
“자기야. 우리도 소원 빌래?”
“…그래.”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찰나, 알리사가 내게 제안했다.
알리사가 먼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고, 나도 그대로 따라 했다.
“…….”
잠시 후, 나와 알리사는 동시에 눈을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무슨 소원 빌었어?”
“너는?”
“너 먼저 말해줘.”
나는 타오르는 모닥불로 시선을 돌렸다.
잦아들 생각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마치 내 소원과 비슷했다.
“내가 목표한 바가 꼭 이뤄지게 해달라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3년 남짓.
나는 그 시간 동안 나를 불태워서라도, 그 기간 동안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대마신을 쓰러뜨릴 만큼 강해질 것이다.
Episode.103 : 주체할 수 없는 흐름 (2)
크리스마스이브에 꼭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바쁜 연말 일정을 소화하는 이들도 있고, 기분이 안 좋은 이들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하아…. 지루행.”
아즈모데는 그 중 후자였다.
그녀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동료인 마몬과 함께 신구로의 거리를 활보하며 애꿎은 돌멩이를 차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하면 항상 하던 인간 사냥이라도 하지 그래.”
“마몬~. 미래에서 온 녀석이 이제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말라잖아~.”
“네가 언제는 그 녀석의 말을 듣기나 했나.”
“그건 아니지만…. 이번 경고도 무시하면 정말 처분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아즈모데는 그간 자기 마음대로 잘 풀려가던 일들이 귀찮은 존재 때문에 턱 막혔다는 사실이 아주 불만스러웠다.
어째서 대마신은, 자신을 이 세계에 더 빨리 강림시키려는 계획을 스스로 막는 것인가.
아즈모데는 그게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 봤자 여전히 [교만]은 만마전에 봉인되어 있고, 미래의 [폭식]도 자신이 가진 힘을 전부 행사할 수는 없다.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 바깥]의 존재일 뿐이지.”
“후웅…. 근데 내가 겨우겨우 소환시킨 그라이펜이 폭식한테 죽었자나~.”
“그라이펜은 우리의 충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명을 다한 것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신과 ‘끝까지’ 함께할 동료인 마몬조차 재미없는 인간이다.
무뚝뚝한 편인데 어찌어찌 말문이 트이면 듣기 싫은 소리만 늘어놓는 녀석.
아즈모데는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마신이 하필이면 그런 놈이라는 것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몬은 매정하네~. 그래도 우리랑 같이 SHA를 습격했던 동료였는데.”
“부하를 먹어치우는 네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진 않군.”
“…역시 싫어.”
“뭐가.”
“너 싫다구!!!”
끝내 아즈모데는 대화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러곤 산책도 지겨워졌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본거지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들어가려는 건가.”
“어. 재미없으니까 그냥 하던 실험이나 계속할래.”
“…그 끔찍한 실험 말이군.”
“아! 그냥 입 닫아 마몬! 너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미안하군.”
“하! 씨! 짜증나 죽겠어 진짜….”
아즈모데의 발걸음이 흡사 성난 황소처럼 변했다.
마몬은 피식 웃으며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쿨럭! 커억!”
“어이. 괜찮냐.”
“…….”
그때, 아즈모데가 크게 기침을 했다.
기침에는 침과 함께 검붉은 피가 잔뜩 섞여져 나왔다.
“하하…. 확실히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있네.”
아즈모데는 쓰게 웃었다.
근래 권능을 너무 남용한 나머지, 벌써부터 ‘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걸 위해서 많은 남자들을 잡아먹었거늘….
역시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육체 문제가 아니다. 네 영혼 자체가 망가진 거지.”
“우우! 그걸 왜 굳이 말하는 건데! 안 그래도 힘들단 말양!”
육체의 붕괴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어도, 영혼의 붕괴는 막기 힘들다.
그런데 아즈모데에게는 두 가지 붕괴가 모두 일어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수명이 대폭 줄어버린 것이다.
“내가 볼 땐 종말이 시작될 때까지가 한계다만, 정말로 폭식에게 제지를 당했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인가.”
“아니? 놀긴 놀아야지.”
그렇기에 아즈모데는 이민희의 육체는 물론이고 신세계교의 신도들을 이용해서 여러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럼 슬슬 네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계획을 말해다오. 여전히 강대용의 육체에 [폭식]과 [교만]을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게 목적인가?”
“그 계획은 요한이 죽은 시점에서 사장됐자나~. 그리고~. 지금 대마신이 우리한테 종말의 사자를 내준 거 보면 ‘자기는 건들지 말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그런가. 그럼 네 계획은 뭐지?”
아즈모데는 우뚝 멈춰서 마몬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곤 어김없이 사악한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좀 ‘많이’ 납치하려고.”
“…역시 넌 한결같군.”
“너야말로. 그래서 나랑 함께하는 거 아냐?”
“인정한다.”
마몬 역시 이제야 마신다운 흉측한 미소를 짓고서 아즈모데를 바라보았다.
그의 원동력은 탐욕.
그리고 지금껏 아즈모데와 함께했던 이유는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줄 인류의 절망을 모조리 자신의 손에 넣고 싶다는 ‘탐욕’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납치하려는 이유는 역시 ‘폭탄’의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서인가?”
“응응! 당연하지. 조금이라도 빨리 발명품을 완성해야 강대용 씨의 좋은 표정을 많이 볼 수 있잖아?”
아즈모데는 그런 마몬을 유일하다시피 이해하고 있는 마신이었고, 마몬 역시 아즈모데의 변태적인 성향을 존중했다.
뜻이 일치한 두 마신은 이 세계의 끝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온 세상에 악(惡)을 흩뿌리며 자신들의 욕구를 끝없이 채울 것이다.
“무리하진 마라. 네가 벌써 쓰러지면 모든 게 무산되니까.”
“응응. 알아. 그래서 최근에 영양제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간만에 마몬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기분이 좋아진 아즈모데는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그 찰나, 그녀는 어떤 울림을 느꼈다.
“오! 마몬! 이거 살짝 움직이는 것 같아!”
“…실험이 성공한 건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 그래도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조금 부풀어 올라있는 그녀의 배에선 ‘악마’인지 ‘인간’인지 모를 존재가 성장하고 있었다.
***
눈꽃 축제가 끝난 뒤 온 크리스마스의 새벽.
나는 전화를 통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현재 오하와의 카페에 와 있다.
“…미래의 내가 이 세계에 와 있다고?”
“응.”
그녀가 하는 말은 거짓말같이 보이진 않았다.
베디비어를 비롯한 미국에 살고 있던 기사들이 호출된 것은 물론, 황투희와 벨, 그리고 미래의 윤희진과 샤를까지 이곳에 와있었으니까.
“사실이옵니다 폐하. 저희는 폐하와 연결되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빨리 느낄 수 있었지요.”
“…….”
차라리 크리스마스 깜짝 파티였으면 좋겠건만, 갤러해드가 단언까지 한다.
다른 기사들의 침통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베일.”
[…예 폐하.]“나와라.”
나는 우선 베일을 소환한 다음 그 녀석과 베디비어를 번갈아 보았다.
둘 다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랑 가장 가까이 있었던 너희가, 왜 내게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거지?”
“…죽여주십시오 폐하.”
“하아…. 권능 발동.”
지잉─!
나는 [가장 위대했던 용의 왕]을 사용해 녀석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난 두 기사가 내 멘탈과 컨디션을 아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쁜 뜻이 아니면 됐어. 나는 또 너희들이 미래의 나한테 붙은 줄 알았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
“저희는 폐하께서 마신이 된 이후에도 폐하만을 따른 몸입니다!”
나는 안심했다는 듯 말했지만, 녀석들은 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듯하다.
두 녀석은 급기야 넙죽 엎드리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죽여주십시오 폐하! 저희가 페하의 상태를 멋대로 판단하고, 사실은 은폐했사옵니다!”
“…진짜 괜찮으니까 그만들 해. 나 요새 예민하잖아. 나랑 정신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알지?”
“예! 물론입니다!”
그래도 내가 말하니까 퍼뜩 몸을 일으켰다.
내게 곤란한 상황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미래의 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 된다.
나는 오하와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미래의 내가 이 세계에서 뭐라도 했나?”
“이미 이 세계에 커다란 간섭을 했고 어제는 SHA에 침입했더라.”
“…….”
어째서인지 나는, 어제 이상한 갑옷을 목격한 다음 기절했던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 갑옷, 조금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내 프리드웬과 비슷한 형태였다.
뜬금없이 나한테 경고를 했던 이유도 ‘미래의 나’라서 그런 거라면 설명이 된다.
“어제 만난 것 같아.”
“역시 그렇구나…. 혹시 뭐 문제 생기고 그런 거 없었어?”
“기절한 거 말고는 딱히.”
“…….”
미래의 백설을 버리고 사라진 미래의 내가 어째서 갑자기 이 세계에 나타난 것일까.
그리고 어제 나를 기절시켰던 녀석이 정말 미래의 나라면, 어째서 나를 기절시키면서까지 그런 경고를 남긴 걸까.
“혹시 몸에서 뭐가 느껴진다거나 그런 건 없어?”
“전혀.”
“그럼 다행이긴 한데….”
당혹스러운 기색의 오하와 덕분에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래도 미래의 백설 덕분에 멘탈이 강해진 덕분인지 가까스로 정신줄은 붙잡았다.
“아, 근데 녀석이 나한테 꾸게 한 꿈이 신경 쓰여.”
“꿈?”
“어. 기절한 다음에 꾼 꿈.”
나는 평정을 유지하며 오하와에게 내가 겪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럴수록 오하와와 다른 이들의 표정이 모두 심각해지고 있었다.
“당장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지만…. 미래의 너는 네가 대마신에게 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네.”
“…그런 것 같아. 혹시 [플롯]으로 미래의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은 없나?”
“예전에 말했잖아. 나는 함부로 플롯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발설할 수 없을뿐더러, 네가 계속 플롯과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
결국, 지금 이 상황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모두 침묵만을 지키며 조용히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이럴 거면 왜 이렇게 불러 모은 건데.”
“사실을 알리고 대책을 짜기 위해서지.”
“그럼 뭐라도 좀 말해봐….”
“고민하고 있어. 혹시 누구 좋은 생각 떠오르면 말해줘도 돼.”
뭐, 그녀가 도움을 많이 준 건 사실이지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했던 적이 드물긴 했지.
일말의 기대조차 품지 말자.
그냥 내가 다 한다는 생각으로 싸움에 임하면 되는 거니까.
“대화로 풀어보는 건 어떨까요!”
“뭐?”
그렇게 각오를 다지던 중, 멍청한 퍼시벌이 손을 들고 해맑게 말했다.
“미래의 폐하가 아직까지 권능을 사용하시지 않는 걸 보면,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닐 거야.”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의견은 오하와가 단번에 잘랐다.
그녀는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미래의 강대용이 너희를 건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존재를 유지하기도 버겁기 때문이거든.”
“존재를 유지하기 버거워?”
“응. 엄연히 넌 폭식의 마신이니까. 마신 급의 존재가 미래에서 넘어오기 위해선 아마 어마어마한 힘을 소모했을 거야. 육체가 같이 넘어오는 것도 당연히 무리였을 테고.”
아무래도 그녀가 설명충에 빙의하려는 듯 보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일단 의자에 앉아서 귀를 쫑긋 세웠다.
“미래의 너는 영체 상태야. 다만 저번에 한 일을 생각해보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기술이나 권능도 잠깐은 발동할 수 있는 걸로 보여.”
“저번에 한 일?”
“응. 런던에서 있었던 검은색 도어 사태. 기억해?”
“……!”
조금 놀란 채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하와는 미간을 찡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 도어 사태를 막은 건 알프레드도 아니고, 아리아도 아닌…. 바로 미래의 너야.”
“…그렇게 된 거야?”
“응. 이렇게 된 거 그 검은색 게이트를 연 존재도 알려줄게.”
그녀는 묘하게 상기된 목소리로 그날의 진상에 관한 걸 모두 알려주었다.
덕분에 그 날 알프레드가 유독 지쳐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이 갑자기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돌아왔는데, 몇 분 만에 눈앞에서 모가지가 따이면 정신이 온전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근데 너는 현장에 없었는데도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어?”
“…아직도 기억이 다 안 돌아온 거야? 내 능력 알잖아.”
“지금은 인간이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지.”
어쨌거나 오하와 덕에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좋다.
확실히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은 능력을 잃어버리긴 했어도,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를 염탐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엔 특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 부하들을 대부분 찾아내서 살려내는 것도 못했을 거고, 검은색 게이트 사태에 관한 걸 자세히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래도 [분노]의 권능은 이제 사용 못하잖아.”
“…그건 맞아.”
만일 그녀가 지금까지도 [분노의 마신]이었다면 대마신 원정이 훨씬 수월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오하와가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게 인류에게 아주 큰 행운이라는 것이다.
마신 시절의 그녀는, 마신 중에서 가장 인간을 증오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인 [사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