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33
이것으로 벌써 세 번째,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멈춘 시간 속에서 달리던 나는 힘이 빠져서 발을 헛딛었고, 그대로 땅을 굴렀다.
“역시, 내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구나.”
그걸 본 최유성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일단 저 괴물부터 어떻게 해 줘.”
내 해명이 필요할 테지만, 일단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 먼저다.
최유성 역시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팔을 앞으로 뻗었다.
사아아아-
최유성의 손아귀에서 빙 속성의 마나가 감돌았다.
그 마나는 빠르게 검의 형태를 엮어냈다.
최유성의 주력 기술 중 하나인 환영검(幻影劒).
그것이 만들어지는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대용아. 알리사 옆으로 가있어.”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환영검은, 혹한의 냉기를 머금고 있어 맞닿은 대상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강력한 기술 중 하나였다.
“가라.”
그 환영검이, 머맨킹에게 날카롭게 쏘아졌다.
푸욱!
날카로운 기세로 날아간 검은 놈의 미간에 박혔다.
환영검은 녹아내리듯이 사라지며, 머맨킹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꽈드드득.
이윽고, 머맨킹은 환영검의 냉기로 인해 얼음동상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다음화에 계속
Episode.13 : 새로운 국면
최유성은 머맨킹이 얼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곤, 싸늘하게 말했다.
“갈라져라.”
칭-
머맨킹을 세로로 양단하는 간극의 균열이 반짝였다.
놈의 숨통을 끊는 일련의 과정을 마친 뒤, 최유성은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앞으로 5분 더 시간을 멈출 수 있어.”
“…꼭 지금 들어야겠냐? 죽을 것 같이 아픈데.”
최유성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눈동자 때문에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틈새의 패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들어야하는 것일까.
하긴. 최유성은 원래 저런 성격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변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어떻게든 변명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뤄야한다.
“다음에 시간 날 때 꼭 말할 테니까, 이번만 좀 넘어가 줘.”
“…알았어.”
뭐야. 생각보다 너무 쉽게 넘어가 주는데?
그는 불안 요소를 완벽히 제거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영혼을 소모해서 사용하는 ‘찰나의 틈새’의 지속시간을 늘리면서까지 나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캐내려 했던 것일 터.
하지만 내가 지금껏 형성해 둔 이미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최유성은 순순히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수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긴 한 걸까.
탁.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최유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멈췄던 소금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용님!”
알리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엎드려있는 내게 달려왔다.
그녀는 내 왼팔을 조심스럽게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린 뒤, 천천히 나를 일으켰다.
“최유성 님, 마물을 부탁드려요! 저는 대용님을 안전한 곳에….”
“괜찮아. 이미 끝났으니까.”
최유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머맨킹을 가리켰다.
놈은 주먹으로 내려찍는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푸스으으….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머맨킹이었던 것은 반으로 갈라졌고, 빠르게 그 형체가 스러져갔다.
내가 넘지 못했던 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재능 : 모조리 씹어 먹어주지! 가 씨큐컴벌 머맨킹의 기술 중 하나를 맛있게 뜯어먹습니다!] [기술 : 왕의 주먹을 획득했습니다!]***
걷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져버린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가고 있었다.
“많이 아프죠? 조금만 참아요.”
그 누군가는 최유성이 아닌 알리사였다.
처음에는 최유성이 업겠다고 했지만, 알리사가 꼭 나를 업고 싶다고 해서 결국 그녀의 등에 업히게 된 것이었다.
“참을 만 해.”
그녀는 피범벅이 된 나를 등에 업고 놀라운 속도로 해변을 질주하고 있다.
내가 흘린 피가 그녀의 등을 흠뻑 적시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달리기만 했다.
여자의 등에 업혔다는 사실이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은 살았다는 점에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숙제가 하나 생겼다는 게 좀 걸리기도 했다.
최유성에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 그가 납득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든다.
“나 좀 자도 되냐?”
“…자면 안 돼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실전 전투 동아리의 인원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서, 나는 사건 하나가 일단락되었다는 생각에 저절로 한숨을 내쉬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대용님은 무사해요!”
“하아… 다행이네요. 강대용 생도는 기절한 건가요?”
“무슨 말씀이세요? 멀쩡히 눈 뜨고 있는… 대용님? 대용님! 정신 좀 차려 봐요!”
그리고 이 대화가 눈을 감기 전에 들었던 마지막 대화였다.
***
3월 셋째 주도 어느새 토요일.
나는 또다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머맨킹의 꼬리에 맞은 것으로 갈비뼈와 허리에 금이 갔고, 오른쪽 어깨와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 외에도 찰과상, 혈관 파열 등 안 좋은 부상들이 뒤따랐고, 따라서 나는 병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이 상태로 치료만 열심히 받으신다면, 3일 정도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육체계 초능력자다보니, 3일 정도만 입원 치료를 하면 빠르게 아물 수 있다고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흑염룡이 없으면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시라도 빨리 흑염룡이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을 갖춰둬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잘 움직이지도 않는 오른손으로 마나가 축적된 마깃붕을 풀고 묶는 것을 반복하고 내 상태를 점검했다.
[힘 156/ 체력 156/ 마력 47/ 민첩 98] [기술 진화까지 : 핵 매콤주먹을 사용해서 적을 타격 98/300] [기술 진화까지 : 폭염/흑염 – 90/100번 사용하기] [특성 강화까지 : 흑염룡 해방 시간 18/60분] [마운틴 스트라이크] (기술)─────
* 자신의 마나를 상당량 소모하여,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는다.
* 주먹을 내리찍은 곳을 중심으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이 충격파는 반경 100m까지 퍼져나가, 10초 동안 지속된다. 자신의 마력이 강해질수록 이 기술의 위력도 상승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3분)
* 이 기술에 타격을 입은 적은 지속적으로 체력과 마나가 감소한다.
* 자신은 이 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능력치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기술의 숙련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폭염/흑염은 진화에 임박했다.
[왕의 주먹] (기술)─────
* 공기 중에 떠도는 마나를 흡수해 주먹을 내지른다. 자신의 힘이 강해질수록 이 기술의 위력도 상승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5초)
* 이 기술은 속성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마나를 소모하지 않는다.
* 이 기술은 적의 내구를 일부분 무시한다. 무시하는 비율은 자신의 힘에 비례한다. (현재 20%)
─────
뿐만 아니라 마력이 아닌 힘에 영향을 받는 공격기, ‘왕의 주먹’을 획득했다.
이 기술은 주먹을 사용하는 마물들에게서 발견되는 ‘스킬석’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인데, 권사들 사이에선 꿈의 기술로 손꼽히는 희귀한 기술이었다.
[용의 투지] (기술)─────
* 당신의 정신 침식률로는 이 기술의 정보를 열람하실 수 없습니다. (정신 침식률 : 14/20%)
─────
다만, 흑염룡 상태에서만 발동되는 이 기술에 대한 정보를 볼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저번에 정신을 뭔가에 빼앗긴 느낌이 들어서 흑염룡을 무리해서 해방하는 짓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내 기술은 반대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혹시… 정신 침식률을 올리는 것이 결말로 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수치를 올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정신 침식률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나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를 알아내기 전까진 열심히 힘이나 키우는 게 맞다.
그렇게 상념 속에 잠겨, 마깃붕이나 만지작거리던 그때였다.
내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고, 최유성 무리가 들이닥쳤다.
“어이, 강대용.”
“…황재빈 어서오고.”
“오. 오늘은 받아줬네? 새끼. 사실은 너도 하고 싶었지?”
황재빈이 가장 먼저 들어와 요즘 유행하는 인사를 했고, 그 뒤로 최유성과 알리사, 윤희진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대용아, 몸은 좀 괜찮아?”
“나쁘진 않아.”
“다행이네… 아! 오늘은 우리 말고 다른 친구도 같이 왔어.”
그리고 윤희진을 뒤따라서 백설이 쭈뼛쭈뼛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기민한 몸놀림으로 의자 하나를 가져왔고, 빠르게 내 병상 옆에 앉았다.
“…괘, 괜찮냐?”
“어.”
백설은 크게 한숨을 내쉬곤, 앙칼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떻게 권사가 그리 몸이 약하니? 큰소리는 다해놓고 아주….”
“상대가 너무 강했을 뿐이야.”
“변신은? 네 잘난 변신은 또 어디에 팔아먹었는데?”
“쿨타임이라는 말 알아? 그거 때문에 변신 못 했다.”
“그럼 미끼 역할을 하지 말았어야지. 너는 애가 왜 이렇게 무모하니?”
그녀는 내 옆에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서, 손수 사과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
“그래도 뭐… 고마워.”
“응?”
“…고맙다고. 빨리 퇴원하기나 해. 이제 곧 시험기간이니까.”
그녀는 언제나처럼 새침한 어투로 말하곤, 내 앞에 사과가 올려져있는 접시를 내밀었다.
헌데, 그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쑥날쑥한 모양새다.
오빠를 닮아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선 처참할 정도로 재능이 없는 걸까.
“잘 먹을게.”
“대용님. 팔도 불편하신대 제가 먹여드릴게요!”
그것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괜히 그녀의 심기를 건들까봐 잠자코 먹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알 리가 없는 황재빈이,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백설에게 말해버렸다.
“야. 내가 발로 깎아도 너보단 잘 깎겠다.”
“아… 그러세요? 그럼 지금 당장 발로 깎아보던가.”
“얘들아… 대용이 병실까지 와서 싸우지 마…”
나는 알리사가 먹여주는 사과를 받아먹으며 티격태격하는 황재빈과 백설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보니 저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녀석들은 한참동안 내 병실에서 수다를 떨었고, 중간에 윤희진이 나가서 피자와 치킨도 사왔다.
그걸 먹고 나니 벌써 오후 8시.
최유성 무리의 녀석들은 하나둘씩 의자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헌데, 그 무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최유성. 들어갈 시간 다 됐는데 안 일어나냐?”
“대용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먼저들 가.”
황재빈과 다른 녀석들은 잠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알겠다’라고 말한 뒤 내게 손을 흔들곤 병실에서 나갔다.
탁.
그걸 확인한 최유성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마도 저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기술의 발동 조건일 것이다.
…우려하던 상황이 오고 말았다.
지금부터 나는, 회귀자 녀석에게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제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 해줄 수 있어?”
“…내가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유 말이지.”
최유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찰나의 틈새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의 ■혼이 최유성의 능력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걸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허나, 그렇다고 어벌쩡 넘어가려는 대답은 최유성의 의심을 심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나는 최유성을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지만, 상당한 리스크를 부담해야하는 대답을 준비해두었다.
“권능 소유자는 네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 알고 있겠지?
“대용아. 그게 무슨 말….”
“벌써 12번째네.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하니 무슨 느낌이 들어?”
내가 그 대답을 마치자마자 최유성이 환영검을 생성시켰다.
그는 환영검의 손잡이를 붙잡고, 내 이마로 서늘한 칼날을 들이밀었다.
“이번엔 또 어떤 훼방을 놓으려고 내 주위에서 맴도는 거지?”
“…진정해. 나는 네가 지금껏 만난 권능 소유자 녀석들과는 다르니까.”
최유성은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표정을 보였다.
평소에 항상 짓고 있는 온화한 표정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그러진 얼굴.
최유성과 다른 권능 소유자들의 관계는 매우 나쁘다.
전능한 힘을 가진 최유성이 회귀를 반복해야만 했던 원인이 바로, 최유성과 다른 종류의 권능을 가진 녀석들의 방해 때문이었으니까.
“훼방이 아니야. 도움이지. 나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 이 이야기 속에 들어왔어.”
“너희는 항상 비슷한 수법으로 나를 속이려 드는 건가?”
“알아. 다른 녀석들이 네 뒤통수 친 거. 근데… 나는 그놈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 있어.”
그러니 권능 소유자라는 거짓말로 설득을 시작한 이상, 침착하게 이야기를 진행해야 한다.
이야기에 빈틈이 생기는 순간 저 환영검이 내 대가리에 박힐 수도 있으니까.
“난 네가 지난 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있다. 회귀자 최유성.”
“뭐?”
“다른 놈들은 네가 회귀의 권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그래서 네가 그들에 대비할 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난 달라. 네가 지난 생에서 어떻게 사건을 해쳐나갔는지, 어떤 능력들을 얻었는지, 누구를 지키지 못했는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녀석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최유성도 역시, 아직까진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권능 소유자들에겐 이야기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는 건 알지? 회귀를 가진 너에게는 생을 반복해서 ‘이야기의 완벽한 결말’을 만드는 사명이 주어졌고.”
“…너. 도대체 뭐야. 어떻게 그런 것까지 전부 알고 있는 거지?”
“진리를 꿰뚫는 자로는 나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