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47
“응.”
“휴….”
때문에 백설은, 냉정을 되찾고 다시 자기성찰을 시작했다.
윤희진은 침착을 되찾은 백설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정적이 흘렀다.
“설아.”
“어.”
그 정적을 윤희진이 먼저 깼다.
윤희진은 이번 일도 그렇고 언제부턴가 백설이 백설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꼭 묻고 싶었다.
“대용이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대용이가 싸울 때 특이한 건 맞는데… 평소에는 조용하고 착하잖아.”
그 질문에 백설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자신과 10년 넘게 절친인 윤희진에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싫어하는 거 아니야.”
“응?”
윤희진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싫어하는 게 아니면 그를 왜 깎아내렸고, 왜 굳이 알리사랑 싸운 거지?
그녀가 그런 의문을 품던 와중에, 백설은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나, 강대용이 계속 신경 쓰여.”
다음화에 계속
Episode.19 : 파란 (2)
윤희진은 백설의 진심을 듣자마자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설마, 그 백설이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그것도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동급생을?
윤희진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초, 중학교 때 백설이 걷어찬 남자들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절대로 말이 되지 않았다.
“어… 설아, 대용이가 왜 신경 쓰이는 건데?”
“…일단 내 얘기 좀 들어줄래?”
“그래그래. 시간도 많으니까 차분히 말해 줘.”
백설은 윤희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시에 암울한 기억들로 얼룩진, 기억의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보았다.
은랑(銀狼) 백은호.
자신의 오빠인 그가 천재성을 인정받고 중학교를 조기 졸업 후 SHA에 입학하자마자, 영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녀의 어머니는 백설을 비롯한 백은호의 형제자매들에게도 ‘최고’를 강요했다.
“엄마는 항상 나보고 뭐든 잘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어떤 방면에서든 완벽한 사람이 돼서 내가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고 했지. 그래야만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다면서.”
그녀는 혹독한 교육 방식을 고수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칭찬도 없었으며, 하루하루가 회초리와 꾸짖음의 연속이었다.
특히나 백은호 못지않은 천재성과 능력을 갖춘 백설에게는 그것이 몇 배로 심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딱 3시간만 잘 정도로 이 악물고 노력했다? 근데도 엄마라는 인간은 끝까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어.”
이런 교육 방식이 형성된 이유는, 세계 랭킹 100위 이내의 영웅들에게 주어지는 ‘S+ 등급’의 문턱을 넘지 못한 그녀의 망집(妄執)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명문가인 백(白)씨 가문과 결혼한 그녀는 안 그래도 내세울 만한 게 ‘뛰어난 영웅’이라는 것 밖에 없었는데, S+급의 문턱을 넘지 못한 나약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식들만큼은 반드시 S+급 이상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강행했다.
“아빠도 회사 일에 미친 인간이었어. 그래서 나를 위로해주는 일은 없었지.”
그렇다고 아버지가 백설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었다.
백씨 가문의 장남인 아버지는, 끔찍하게 성실했으며 자식들에게 관심을 주지 못했다.
때문에 어머니에게 항상 예쁨을 받고 자란 백은호와는 다르게, 백설에겐 정상적인 인격이 형성될 수 없었다.
“그런 인간들이 ‘마계대침식’ 때 나랑 오빠만 남겨놓고 다 뒤져버린 거야. 결국, 난 지금껏 아무한테도 위로를 받지 못했고.”
자신에게 목표를 강요했던 부모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자, 백설의 목표는 흔들렸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은 백설의 정서를 감정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 끝에서 그녀는 그나마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던 ‘나는 천재다’라는 자존심에 기대었고, 그것이 현재 그녀의 비정상적인 인격을 형성시킨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강대용은… 그때 나를 보내면서 이런 말을 해 줬어.”
회상을 마친 백설은 윤희진에게 강대용이 해준 말을 그대로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덧붙였다.
강대용은 자신에게 처음으로 ‘네가 전부 짊어질 필요는 없다’라고 말해준 사람이라고.
“바보 같지? 겨우 이런 말 몇 마디로 걔가 신경 쓰이기나 하고.”
그 이유로 백설은 머맨킹 사건 이후, 계속 강대용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강대용이 갑자기 다른 여자랑, 그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알리사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유일하게 남은 친족인 오빠마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 말이다.
아까 오빠에게 강대용의 험담을 한 것과 알리사와 싸웠던 이유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저 자신의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에 부린, 유치한 억지이자 심술이었다.
“아니야, 설아.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겠다.”
“…고마워.”
그래도 윤희진은 그런 백설의 억지와 심술을 나름대로 이해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던 윤희진은, 어릴 때부터 백설을 계속 칭찬했던 자신이 이제야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 자신의 친구를 옆에서 치켜세워주고 부러운 눈빛을 보내주면 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작 말해주지. 그동안 네가 칭찬받는 거 좋아하는 줄 알고 계속 칭찬만 했네~.”
“내 개인사니까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잊고 살았던 그 인간들이 떠오르니까 굳이 말 안 했어.”
백설에겐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그녀의 부담감을 덜어줄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윤희진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윤희진은 지금이라도 백설의 진심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뒤,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래도 설아. 알리사랑 대용이한테는 제대로 사과하고, 은호 오빠한테도 오해하지 말라고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응. 그럴게.”
지금부턴 자신이 백설에게 ‘칭찬’이 아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자고.
“그리고…”
“응?”
동시에 백설을 응원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되자고.
그렇게 마음먹은 윤희진은 살짝 미소를 띤 채로 백설에게 말했다.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힘내!”
“…야! 그런 거 아니라고!”
윤희진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그리며 발끈하는 백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것에 백설은 그저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그제야 윤희진은, 백설이 조금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었다.
***
“아야야···.”
나는 긴급 상황을 대비해 설치되어 있는 무인보건실에서 알리사의 상처에 소독약과 해마문어 연고를 바른 다음 밴드를 붙여주고 있었다.
알리사는 따가운 모양인지 신음을 흘렸고, 그녀의 눈가에는 물기가 살짝 맺혔다.
“예쁜 얼굴에 흉 지면 안 되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정말, 나도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예, 예뻐요…?”
알리사는 그런 내 말이 갑작스러웠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뭔가 실수했다고 느낀 나는, 그 뒤론 묵묵히 알리사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에 전념했다.
“…다 됐다. 아팠을 텐데 잘 참았어.”
“고마워요 대용님.”
다행히 빠르게 조치한 덕분에 알리사의 상처는 아마도 며칠 이내에 나을 것이었다.
육체계 초능력자라도 심한 상처는 알아서 아무는 건 아니었고, 이런 식으로 조치를 취해줘야 잘 회복되는 만큼 치료는 꼭 필요했다.
“조금 이따가 황제병원도 가자. 어쨌거나 내가 해 준 건 응급처치고,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야 더 빨리 아물 테니까. 그쪽은 담임한테 전화도 못 하니까 괜찮을 거야.”
“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치료가 끝난 뒤 우리 둘은 구급물품을 정리한 다음 보건실의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왔다.
알리사는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어떤 방향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했다.
“저기서 잠시 쉴까요?”
“그러자.”
알리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자(亭子)가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 가서 앉았다.
“대용님.”
“어?”
앉자마자,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저 한 번만 더 안아주실 수 있어요?”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나는 당연히 조금 당혹스러웠고, 그 부탁을 거절하려고 했다.
“아, 아까 그건 네가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게 안아준 거고,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또 그러는 건 좀 너무….”
말하던 중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려 버렸다.
그러자, 알리사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 사귀자.”
…잘못 들은 건가?
알리사가 나한테 반말로 저런 말을 한다고? 그 알리사가?
“가, 갑자기 왜 그래.”
“불안해. 이러다가 널 누구한테 뺏길 것 같아서.”
그녀의 표정에서 기대감과 불안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 귀여운 표정을 보곤, 그동안 선을 넘지 않게 날 잡아줬던 내 이성의 실이 끊어졌다.
“…좀 안는다.”
나는 그녀를 살며시 품에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나는 향긋한 향기가 내 감정을 고조시켰고, 나는 이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뭔 소리를 들었으면 그런 걱정을 하셨을까?”
“그 여자가 네 다정한 성격 가지고 이상한 말을 하잖아…”
“그러냐.”
알리사는 부끄러워하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 등을 더욱 꽉 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줘.”
그렇게 말하자 알리사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나는 금방 부끄러워졌기에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리면서 말했다.
“이, 이제 병원 갈까?”
“잠시만 이렇게 있고 싶어요. 아니, 사실은 내일도, 모래도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요.”
알리사는 다시 존댓말로 말투를 바꾸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문지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 애교부리는 모습 같아서 웃음을 자아냈다.
“야, 기껏 밴드 붙였는데 그렇게 문대면 어떡해.”
“…대용님이 좋은 걸 어떡해요.”
“그렇게 내가 좋아?”
“응… 너무 좋아.”
알리사는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다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내게 반말을 했다.
“대용아.”
“어?”
“우리 첫째 이름은 뭐로 할래?”
“버, 벌써 거기까지 가냐…”
그녀는 내게 활짝 미소 짓고는 낯간지러운 농담을 했다.
나는 그 농담에 내심 기분은 좋았지만, 동시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만일 내가 정체가 극악무도한 악의 주축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알리사는 그때도 변함없이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을까.
***
혼란스러운 하루가 저물고 16강과 8강이 진행되는 화요일.
오늘부터는 내가 먼저 알리사를 마중 나가게 되었다.
어제 이후로 나와 그녀의 간격은 확 좁혀져버렸고, 이젠 나도 나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대용님!”
오전 7시, 알리사는 약속대로 기숙사 입구에 나왔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어제 병원에 가서 마저 치료를 받았고, 얼굴에 있던 상처는 이제 거의 다 사라진 모습이었다.
알리사는 금방 내게 다가와서 두 손을 비볐다.
“후우… 아직 좀 춥네요.”
“손 줘.”
이젠 거의 연인 사이라고 봐도 좋을 우리는 거리낌 없이 손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는 발그레 볼을 붉히며 말했다.
“…대용이 손 너무 따뜻해.”
알리사는 어제부터 내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그녀가 반말하는 경우는 상대방이 존댓말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아주 친숙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뿐인데 아마도 나는 후자여서 그런 듯 했다.
아무튼 가까운 사이가 된 우리는 단 둘이 아침을 먹은 다음, 남자 기숙사 쪽에 있는 제 2 공원에서 어제 있던 대련의 리플레이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8시 20분… 슬슬 집합 시간이네요.”
“이제 가볼까?”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난 뒤 8시 20분.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고, 20분 뒤 본선이 시작되는 제 1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야, 저기 커플이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뒤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그 목소리는 이상은이었고, 곧 최유성 일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녀석들을 보자마자 슬며시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하하, 뭘 놓고 그래. 어차피 다 봤는데.”
최유성을 필두로 한 무리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황재빈과 이상은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백설과 윤희진은 살짝 어색한 표정이었다.
최유성은 그냥 슬퍼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아….”
그때, 옆에서 노골적인 한숨소리가 들렸다.
“이젠 같이 못 다닐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알리사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최유성 무리에 껴있는 백설을 보곤 갑자기 굳었다.
최유성 일행과 같이 있던 백설 역시 우리의 시선을 피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그것을 곧바로 눈치 챈 황재빈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알리사와 백설을 번갈아 보았다.
어제의 일은 아직 당사자들을 제외하곤 따로 말해 두진 않았기 때문에,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곧 최유성과 이상은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 챘는지, 황재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야. 너희는 바로 들어가냐?”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일부러 물었다.
그냥, 최대한 빨리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뭔 소리야. 지금 40분인데 당연히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
“아직 20분이나 남았는데 뭘. 나랑 알리사는 얘기 좀 하다 들어갈게.”
어쨌든, 알리사가 싫어한다면 그녀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알리사와 함께 어제 앉았던 정자로 걸어가려고 했다.
“저, 저기!”
그 때, 다급한 몸짓과 표정을 한 백설이 우리 앞을 막아섰다.
“왜.”
“그….”
“할 말 없으면 간다.”
백설은 뭔가를 머뭇거리는 듯 했지만,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걸어가려 했다.
꽈악.
하지만 백설은 바로 내 생도복 소매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