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66
나는 알리사가 먼저 끊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계속 끊지 않자, 결국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했다.
“알리사, 먼저 끊어도 돼. 더 할 얘기 있으면 해도 되고.”
– 아, 아냐! 그냥 끊기 아쉬워서 그랬지···. 이따 꼭 전화해!
“어~.”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가 뭔가 기분이 좋았다.
연애 초반에는 이런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문에 카드키를 꼽고 문을 열어젖혔다.
“미안. 기다렸···.”
우당탕!
문을 열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는 뭔가 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을 한 백설과 윤희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왜 그러냐 너희?”
“아하하! 아무것도 아냐! 이, 이제 가도 되는 거지?”
“어. 근데 어디로 갈 건데.”
내가 묻자, 그제야 윤희진은 표정을 풀고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을 킨 채로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화면에는 이 세계의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라 할 수 있는, 미사린 가이드 3스타를 받은 식당의 리뷰가 비춰지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갈 거지롱~ 미사린 3스타야!”
“···이런 데 비싸지 않냐.”
“하하! 걱정 마시라! 내가 전부 살 테니까~.”
윤희진은 갑자기 ‘우후후’라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지갑을 열어 카드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들린 시꺼먼 색의 카드가 윤택을 뽐냈다.
“이 언니 카드로!”
그것을 든 윤희진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참으로 그녀다웠다.
***
강남 S타워 30층에 위치한 고급 서양식 레스토랑 ‘엑스키(exquis)’.
딱 봐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압도된 나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커다랗고 둥근 식탁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진짜 여기서 먹는다고?”
“응! 부담 갖지 말고 아무거나 시켜!”
그것을 들고 있는 내 손이 절로 덜덜 떨린다.
메뉴판은 기본 12만원부터 시작해서 비싸면 30만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 부담스러워, 나는 가장 싼 12만원짜리 꽃등심 스테이크 세트를 선택했다.
“이, 이거.”
“에헤이!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허나 그것을 제지한 윤희진은 ‘1인 스페셜 디너 코스 요리’로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가격은 38만원.
이 세계에 오기 전부터 프리터족이었던 나에겐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
“이거 어때? 꽃등심도 나오고 A++급 안심이랑 캐비어 카나페랑 트러플 크림파스타도···.”
비싼 식재료들이 첨가된 요리들의 향연에 부담감이 가중된다.
하지만 메뉴를 설명해주는 윤희진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열정적이라서, 차마 마다하지 못하고 그냥 먹겠다고 말했다.
백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윤희진이 집어준 메뉴를 먹겠다고 했고, 윤희진은 역시 나와 같은 코스를 선택했다.
···금전감각이 마비되어 항상 용돈이 부족하다는 설정을 가진 그녀들다웠다.
“스테이크는 얼마나 익히시겠어요?”
“전 미디엄이요! 너희는 얼마나 익힐래?”
“웰던으로.”
“···나도 미디엄으로 할게.”
아무튼 그렇게 메뉴를 주문한 뒤, 윤희진은 두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내게 물었다.
“저기, 대용아. 너희 언제부터 말 놓게 된 거야?”
“알리사랑?”
“응응.”
“아, 어···. 좀 서먹해졌을 때부터? 그때부터 알리사가 자연스럽게 말 놨어.”
윤희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뭔가 오묘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저절로 시선을 다른 곳에 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눈빛보다 더 부담스러운 사람이 질문을 해왔다.
“야. 근데 걔랑 사귀냐?”
“왜?”
“···그냥 궁금해서. 뭐, 너 같이 간작은 애가 고백을 했을 리는 없겠지만.”
백설은 한껏 조소를 머금고 나를 무시하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저 괘씸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나는, 조소를 띤 채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내가 고백해서 월요일부터 사귀고 있는데.”
“···아?”
“아···.”
윤희진과 백설은 동시에 침음을 흘렸다.
백설은 순식간에 웃는 얼굴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꿨고, 윤희진 역시 백설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윤희진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추, 축하해 대용아. 그럼 오늘이 4일째구나! 하하!”
“어···.”
그 다음 옆에서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은 백설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내가 고백했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도대체 날 뭐로 본 거야 쟤는?
“설아···.”
“···뭐.”
“아, 아냐!”
그 뒤로는 우리 사이에서 대화가 오가는 것이 멈췄다.
윤희진은 조용히 핸드폰으로 딴청을 부렸고, 백설은 갑자기 사색에 잠겼다.
“에피타이저 먼저 세팅해드리겠습···.”
그리고 에피터이저가 나오자마자, 백설은 그것을 마구마구 입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걸 본 윤희진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불편한 표정으로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고,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황송한 캐비어 카나페를 하나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오랜만에 먹으니까 아주 맛있네!”
“설아···. 천천히 먹어···.”
음식 자체는 맛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불편한 식사 시간이 쭉 이어졌다.
백설은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고, 먹성이 좋은 윤희진은 그 맛있는 음식들을 절반도 채 삼키지 못했다.
***
식사가 끝난 뒤, 윤희진은 사고 싶은 게 있다면서 우리에게 백화점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백설은, 뭔가 어두운 표정으로 윤희진의 권유를 거절했다.
“···먼저 갈래.”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나오자마자 등을 획 돌려선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항상 도도하고 당당했던 걸음걸이와는 거리가 먼, 어깨를 축 늘어뜨린 힘없는 걸음걸이였다.
“우, 우리도 돌아가자···. 단 둘이서는 좀 그러니까.”
“…….”
갑자기 왜 저러는지 도통 모르겠다.
아까 나 데리고 올 때까진 기분이 괜찮아 보였는데.
자신이 깔보고 있던 강대용이라는 사람이 고백을 한 게 정말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사정으로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 것일까.
나로서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웅- 우웅-.
그런 의문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질 때 쯤, 윤희진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윤희진은 멍을 때리고 있는지 그것을 받지 않고 백설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야. 전화 온 것 같은데.”
“···아! 고마워 대용아.”
윤희진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한 움직임으로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에는 [언니]라고 되어 있는 거 보니, 아무래도 윤세라로부터의 전화인 것 같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희진아 저녁은 맛있게 먹었어?
“응 언니. 카드 잘 썼어.
윤희진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윤세라와 통화를 이어갔다.
그녀도 백설과 마찬가지로 힘이 좀 빠진 듯 보였는데, 아마도 백설의 기분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 걱정되어서 그녀도 조금 지친 듯싶었다.
– 아, 그럼 옆에 강대용 생도 있니?
“응. 옆에 있어.”
– 좀 바꿔줄래?
그렇게 윤희진에게 측은지심을 느끼고 있던 참에 윤세라가 갑자기 날 찾았다.
윤희진은 자신의 손목을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침이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아! 강대용 생도! 오랜만이에요. 희진이랑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 다행이네요. 제가 강대용 생도를 찾은 건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펜리르에 오면 희진이랑 같이 ‘길드장실’로 올라와주실 수 있나요? 이상한 얘기는 아니니까 안심하시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 네!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윤세라와의 통화를 마치고, 우리는 바로 백설에게 따라붙었다.
엘리베이터로 같이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걸어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초여름치고는 시원하고 선선한 도시의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마치 학기 초 어색했던 사이로 돌아간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설아. 은호 오빠가 너도 같이 오래.”
“응.”
침묵을 유지한 채 펜리르 본사로 돌아오니 오후 7시 10분.
나는 윤세라의 호출을 수락했기에 윤희진, 백설과 같이 40층 꼭대기에 있는 ‘길드장실’로 올라갔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유리창으로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게 빛나는 게 보였고, 은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오! 강대용 생도!”
그리고 아침까진 지네주에 꼴아있던 윤세라가 어른다운 모습을 되찾고는 나를 환영했다.
나는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한데···. 실례지만 무슨 용무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자세한 얘기는 우리 길드장한테서 들으세요.”
윤세라는 길드장실 정중앙에 놓인 커다란 책상 쪽으로 손짓했다.
그 책상 앞에는 위압적인 풍채를 가진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는 유리창 쪽으로 의자를 돌려서 앉아 있었는데, 앉은키만 봐도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본 그 어떤 남자보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듯 보였다.
“이야! 강대용 생도! 이거 처음 뵙겠습니다!”
그 거한이 의자를 우리 쪽으로 돌리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순히 신장만 큰 것이 아니라 온 몸이 근육덩어리이며, 얼굴은 백설의 오빠답게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손은 내 손보다 두 배 이상은 큰 것 같다.
이 사람이 바로 세계 1위 영웅 황재은도 인정한 변신계 영웅의 정점.
언젠간 내가 뛰어넘어야 할 벽.
“제가 이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마신을 삼킨 늑대─ ‘펜리르’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펜리르의 길드장 백은호였다.
***
윤세라, 그리고 길드장인 백은호와 미팅을 마친 나는 ‘이게 진짠가’라는 심정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다.
내 손에는 아까 백은호로부터 받은, 고대문자가 새겨진 초록색 발목 보호대가 들려있다.
– 아무거나 고르라고요?
– 크하하! 그렇다니까요! 강대용 생도가 혼자서 스물다섯 마리나 쓰러뜨려준 덕분에, 우리 길드가 이득을 많이 봤거든요! 사양 말고 하나 골라요!
그가 나를 부른 이유는, 나에게 그에 대한 보상금을 분배해주는 것은 물론 ‘아티팩트’를 하나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백은호는 아침에 열린 A급 게이트가 사실은 ‘색깔만 주황색인 A+급’ 게이트였고, 길드가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수익은 세금이나 성과금 등의 금액을 전부 지불하고도 138억.
쓰러뜨린 코뿔소들은 변종이었는지 시체에서 A+ 등급의 마석이 잔뜩 쏟아냈고, 나머지 부분에서도 가죽과 힘줄, 고기 등 가치가 높은 자원들을 많이 획득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내게 고르라고 보여준 아티팩트 중에서 지금 나에게 무척이나 필요한 물건을 얻어올 수 있었다.
‘헤르메스의 전령 정보.’
[헤르메스의 전령] (유니크)─────
*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힘이 아주 조금 담긴 한 쌍의 띠. 발목에 착용하는 것으로 그 효과를 받을 수 있다.
* 30,000보 걸을 때마다 민첩이 영구적으로 1 증가한다. 이 효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치는 365일 당 200으로 한정된다. (해당 효과는 착용자의 민첩이 1000 이상일 시, 발동되지 않는다.)
* 이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전투 돌입 시, 민첩이 100 증가한다.
* 이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3,000,000보를 걷게 되면, [기술 :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획득한다.
─────
최유성이 5회차 회귀 때 던전에서 어렵게 구했다는 설정이 있는, [헤르메스의 전령].
아무런 조건 없이 걷기만 해도 민첩이 증가되는 것도 좋지만, 이 아티팩트의 진가는 [헤르메스의 발걸음]이라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 기술로 높게 날아오른 나를 추적한 거겠지.’
아무튼 부족한 민첩도 조금씩 보충하고, 전투 시엔 민첩을 100 뻥튀기 하고, 헤르메스의 발걸음까지 얻을 수 있는 이 아티팩트는 마깃붕 급으로 사기 아티팩트다.
그래서 나는 싱글벙글한 채로 침대에서 뒹굴고 있던 참이었다.
띵동-.
그때, 갑자기 내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나는 부른 사람이 없었다.
“누구세요!”
그래서 나는 문 앞으로 다가가서 큰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마나를 살짝 두른 채로, 조금씩 문을 열었다.
“백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길드장실에서조차도 똥씹은 표정을 하고 있던 백설이었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실실 웃으면서 내가 잡고 있던 문을 발칵 열고 내 방으로 들어와 꽈당 넘어졌다.
“···뭐하냐.”
“강대요옹···.”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얼굴은 토마토처럼 벌겋게 익어있었고, 벌리고 있던 입에선 조금씩 침을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로부터 뭔가 코를 찌르는 특유의 독한 냄새도 풍겨왔다.
“···너 마물주(기분을 알딸딸하게 해주는 초능력자 전용 음료) 마셨지.”
“왜에! 나는 미성년자니까 마물주 마시면 안 돼에?!”
백설은 내 얼굴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했다.
그러고는 계속 일어나려고 시도하는 듯 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해서 계속 다시 넘어졌다.
“야, 일단 일어나.”
그래서 나는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백설은 손등으로 매몰차게 쳐버렸다.
내 손을 치면서, 그녀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너어, 진짜 걔랑 사귄다고?”
“뭔 소리야 갑자기.”
내가 대답하지 않자 백설은 소리를 지르듯 내게 말했다.
“사귀냐고오!”
“씨발. 귀 떨어지겠네. 어. 사귄다. 왜!”
“하, 하하! 그거 잘 됐네에! 바보들끼리 잘 어울려어!”
그 말을 듣자 백설은 바보처럼 ‘흐헤헤’ 소리를 내며 중얼거리듯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강제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얼른 일어나.”
“싫은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