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Academy's Black Flame Dragon RAW novel - chapter 80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시간이 나면 강대용의 외할머니도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 할머니도 아닌데 왜?”
이사장은 계속 이해가 잘 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 평범한 노파가 나한테는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걸까.
애초에 노파가 날 두고 시골에 내려간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거나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당신의 큰 조력자가 되어줄 겁니다. 마침 당신 ‘뒤’에 있네요?”
“뭐?”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사장의 말대로, 정말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봤던 노파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우리 손주.”
“하, 할머니?”
“···벨. 연기는 거기까지 해도 돼.”
그 노파는 이사장의 말을 듣자마자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물흐물─
그것도 잠시, 노파의 몸이 기이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멀대 같이 큰 서양인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 모습으로는 처음 뵙는군요. 강대용 씨. 저는 앞으로 종종 도와주게 될···.”
그 서양인은 쓰고 있던 하얀색 중절모를 벗으며 느닷없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의 뱀처럼 찢어진 실눈을 본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벨 인돌랜스’라고 합니다. 특기는 변신과 은신. 싸움도 웬만한 S급 영웅들만큼 하니까 앞으로 많이 찾아주시길.”
“…….”
“아, 그리고···.”
자기소개를 마친, 딱 봐도 악역처럼 생긴 사내는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사내의 오른손으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저 역시, ‘악마를 삼킨 회귀자’의 독자 중 한 명이지요.”
***
이사장과 강대용의 외할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이 한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조금 정리하다 보니 방학식 당일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금방 저녁이 되고, 금방 잘 시간이 돼서 나는 침대에 누워 계획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끝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8시.
나는 알리사를 배웅해주기 위해 SHA 워프 게이트 터미널에 왔다.
“독일 가서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연락할게! 그때 꼭 받아줘?”
“응. 기다리고 있을게.”
저번 길드실습 때 이상한 곳으로 전송된 것 때문에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이번엔 임모르탈리스 측에서 경호원도 여럿 보내주었고 장치와 직원 상태도 점검했다 했으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못 볼 거니까 안아주라.”
“그래.”
“헤헷.”
나는 그녀의 부탁대로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어느새 내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그녀 품에 쏙 들어와서 기분이 조금 좋았다.
“다음 주에 보자!”
“응. 조심히 다녀와.”
아무튼 그렇게 알리사의 배웅을 마친 후.
나는 여름 방학 시작 전부터 만들어놓은 스케줄을 이행하기로 하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한국에 숨겨진 아티팩트 하나를 얻으러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리산···.”
첫 목적지는 지리산이었다.
이 세계의 지리산은 A급 마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야생지대다.
그래서 지리산은 일명 ‘사냥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 허가증’을 받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허가증은 보통은 ‘한국영웅협회’를 통해 발급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SHA에서도 실력이 된다고 판단되는 생도들에 한해서 자체적으로 발급이 가능했다.
이 ‘출입 허가증’은 어제 방학식이 시작되기 전, 이만수에게 부탁해서 오늘 지급받기로 약속을 받았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붙었지만.
“베일이는 데리고 가야지.”
이만수의 조건은 그게 다였다.
베일을 대동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야생지대나 마경에 대한 출입증은 언제든 끊어주겠다고 내게 약속한 것이다.
타닷-!
그래서 나는 베일을 데리러 가기 위해 이만수의 자택이 있는 봉인의 수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굳이 달려가는 이유는, 당연히 걸음수를 채워야 하는 헤르메스의 전령 때문이었다.
“후우···.”
그렇게 전력질주를 하니 10분 만에 이만수의 자택에 도착했다.
나는 당연히 자택 정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그러고서 기다렸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앳된 목소리다.
확실한 건 교습을 받으러 온 백설이나 내가 맡겨둔 베일은 아니었다.
그 점이 조금 수상했지만, 나는 일단 내 신분을 확실하게 밝혔다.
“1학년 A반의 강대용입니다. 이만수 교관님을 뵈러 왔는데요.”
“아아~ 3월 달에 내 등에 탔던 걔구나~”
등에 탔던 걔?
···말도 안 돼. 설마 이 목소리의 주인이 그 녀석이라고?
끼익.
혼란스러운 기억을 되짚고 있던 중,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문을 연 것은 1학년 생도들의 또래나이로 보이는, 기다란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하얀색 원피스 차림의 미소녀였다.
“안뇽안뇽! 주인님은 지금 뒷마당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계셔!”
“···청이?”
“웅웅! 기억하고 있네? 너 기억력 짱 조타!”
이 소녀는 바로 이만수의 주력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S+급 사파이어 드래곤, 청이였다.
그 무시무시한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모습이 이런 여자애라는 것에 커다란 괴리감이 느껴졌다.
“일단 드루와! 이번 수업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때문에 나는 살짝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서 이만수의 집으로 들어갔다.
헌데, 그 안으로 들어가니 청이의 모습보다 더 가관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하하! 죽어라 우매한 것!”
“네놈이야 말로 죽어라! 하등한 것!”
편안한 검은색 민소매와 빨간색 스포츠 반바지를 입은 아글로베일과, 그것과 비슷한 복장을 한 기다란 금발을 늘어뜨린 여자가 TV 화면을 보면서 한참 격투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목청이 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면서 잔뜩 몰입하는 중이었는데, 덕분에 내 머릿속에서 아글로베일의 침착해보였던 첫 인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베이라! 네 주인님 와써!”
청이가 조금 큰 목소리로 베일을 불렀다.
그러나 너무 몰입한 듯, 베일은 그녀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청이는 “헤으···.”라고 특이한 한숨을 내쉬며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아닛!”
“아잇 씨팔!”
그러자 베일은 당황한 목소리를, 금발의 여자는 욕을 뱉으면서 허망한 표정을 만들었다.
“선 넘네···.”
두 사람(?)은 바로 청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녀들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청이를 한 대 때릴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아, 폐하!”
하지만 베일은 나를 보더니 그 눈빛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뭐하냐 너.”
“아, 이, 이건…!”
베일은 얼굴을 붉히며, 차렷 자세를 한 채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송구하옵니다! 제가 감히 하찮은 인간이 만든 오락거리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그러다가, 그녀는 바닥으로 넙죽 엎드리더니 이마를 바닥으로 붙이면서까지 나에게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
한편, 경호원들과 함께 워프게이트를 반복해서 갈아타고 고향인 독일에 돌아온 알리사는 언니가 보내준 차를 타고 임모르탈리스의 본사가 있는 베를린의 슈프레 강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
“아가씨, 학교생활은 어떠십니까?”
“아주 좋아요.”
“오! 아가씨께서 아주 좋다고 하시다니···”
차를 타고 가면서, 알리사는 무덤덤한 말투로 운전기사의 말에 대답한 다음 오랜만에 돌아온 베를린의 거리를 구경했다.
‘대용이는 이 거리를 좋아하려나. 겨울 방학에는 내가 대용이를 데리고 올까?’
그녀는 겉으로는 아주 차갑고 냉랭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속으로는 강대용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강대용이랑 걷는 고향의 거리.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에에엥!
···그런 상상을 하고 있던 순간.
창밖에서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특수처리를 한 시꺼먼 차체를 커다란 차량이, 재빠른 속도로 알리사가 타고 있던 차 옆으로 지나갔다.
그 차량은 출동이 매우 드문 ‘베를린 특수경찰차’였다.
“···특수경찰이네요? 요새 무슨 일 있나요?”
“아, 그게···.”
운전기사는 말하는 것을 머뭇거렸다.
알리사는 당연히 그런 운전기사의 태도를 보며 의문을 가졌다.
“왜 말씀을 안 하시죠?”
“그게···. 아! 이번 기말고사는 잘 보셨습니까?”
알리사는 성실한 운전기사가 자신의 질문에 말하는 것에 답하지 않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길한 결론이 떠올라서 기사에게 재차 물었다.
“···놈이 돌아온 거군요.”
“아, 아가씨. 그런 게 아닙니다.”
“똑바로 말해요.”
기사가 또 잡아떼자, 알리사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암 속성 마나를 방출했다.
그녀는 확신이 든 것이다.
자신의 철천지원수이자.
자신을 영웅의 길로 가게 만든 장본인이 돌아왔다는 것을.
“내 친구들을 죽였던 그 놈이 돌아온 거잖아요!”
그렇기에 알리사는, 오랜만에 사용하는 독일어로 분노를 어김없이 표출했다.
다음화에 계속
Episode.35 : 과거의 그림자
“제, 제자 분? 아메리카노랑 녹차 중 뭐로 하시겠어요?”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이만수를 기다렸다.
그 시간동안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옷을 바꾸고 머리도 승무원처럼 묶은 금발황안 드래곤은 나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베이라! 왜 계속 수기고 있어?”
“···폐하께서 노여움을 푸실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베일은 소파에 앉은 나를 향해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신이 아니라 광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 그··· 그만해도 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용서고 자시고 화난 적도 없어.”
그 한마디에 베일은 고개를 들면서 노란색 눈동자를 빛냈다.
“너, 너그러우신 왕이시여! 영원히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한 베일은 내가 앉은 소파 옆에 마치 기사(騎士)와 같은 자세로 섰다.
그래봤자 저 편안한 복장 때문에 진지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끼익.
베일이 그런 자세로 선 그때, 자택의 문이 열리며 이만수와 백설이 들어왔다.
백설은 나를 보자마자 활짝 미소를 띠었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는 것으로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교관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이만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주민등록증 같이 생긴 물건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당연히 ‘출입 허가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베일의 ‘교화 마물 허가증’이었다.
“베일에겐 별 문제는 없었다. 마치 어디에서 이미 관리를 받은 것 같더구나. 덕분에 허가증도 1등급 허가증으로 나왔어.”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예쁜··· 큼! 활용도가 높은 용종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나는 그 허가증들을 지갑에 챙긴 다음 바로 베일에게 말했다.
“베일. 이제 나갈 거니까 활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바꿔.”
“어떤 옷이 좋겠습니까? 보여주시기만 하면 똑같은 옷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폴리모프를 한 용종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비늘을 변형시켜 만든 것이다.
그들은 어떤 옷을 보기만 하면, 그 옷과 똑같은 형태로 복장을 편하게 변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으로 검은색 트레이닝 복 하나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거로.”
“넵!”
화르륵!
그걸 본 베일의 옷에서 새하얀 불꽃이 일더니, 순식간에 내가 보여준 것과 똑같은 트레이닝 복으로 변경되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만수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베일이는 이따가 또 맡기러 올게요.”
“알았다. 위험한 곳으로 갈 땐 항상 조심하고. 구호 물품은 꼼꼼히 챙겼겠지?”
“예. 이 배낭 안에 전부 준비해뒀습니다.”
이만수는 “잘했다”라고 말하며 내게 그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바로 등을 돌려 집을 나서려고 했다.
“강대용!”
그 순간, 백설이 등을 돌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백설은 검지로 옆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내 시선을 피했다.
“왜.”
“자, 잠깐 나랑 얘기 좀.”
“어. 나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짧게 해 줘.”
“···안 그래도 짧게 할 거야. 나가서 얘기하자.”
나는 백설, 베일과 함께 정문으로 나갔다.
백설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혹시 이번 주에 시간 나냐?”
“···아마 토요일 정도엔 날 것 같은데. 왜.”
“이, 이번에 교관님이랑 새로 연습하기 시작한 마법이 있는데, 그걸 좀 시험해보고 싶어서.”
백설은 새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뭐··· 꼭 네가 아니라도 윤희진이나 최유성한테 부탁해도 되긴 하는데, 기왕이면 근접 대응 기술이니까 권사인 너한테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았지···.”
“음···.”
백설이 이 시기에 얻게 되는 근접 대응 기술은 아마도 [아이언 프리즌]일 거다.
수많은 강철 조각과 자기력의 힘을 이용해 대상의 움직임을 완벽히 정지시킬 수 있는, 철 속성 마법기술 중 가장 성가신 기술로 손에 꼽힌다는 방해 기술이었다.
꼭 백설이 아니더라도 수준이 높은 철 속성 마법사라면, 특히 앞으로 싸우게 될 신세계교의 마법사 중에서도 저 기술을 지독하게 구사하는 마법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미리 체험해보는 것도 분명 좋은 경험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