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rown prince of the Mexican Empire RAW novel - Chapter (110)
멕시코 제국 황태자가 되었다 110화(110/180)
핵심 도시와 자본가들 (4)
1842년 12월 31일.
지주파 의원들은 이 사건에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음을 깨달았다.
하필 연말에 터진 사건에 지주파 의원들은 가족들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즐기지도 못하고 긴급하게 모였다.
지주파 의원들은 그 이름답게 모두가 지주다. 그것도 그냥 지주도 아니고 대지주.
페온을 가장 많이 데리고 있는 자들인 만큼, 노동법이 통과되면 가장 손해를 볼 자들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제야 좀 잠잠해지나 했더니, 황제파 놈들이 노동법을 발의하면서 다시 시위대의 기세가 살아났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독립 직후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제외하면 시위 자체가 거의 없었다. 이런 대규모 시위는 의원들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크흠. 여기가 프랑스인 줄 아나 봅니다.”
하하하-
어느 의원의 시위대를 향한 불평 섞인 발언에 웃음이 터져 나온 것도 잠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우리 지주파만 법안을 거부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참패할 겁니다.”
헌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재산이라는 것을 가진 자는 지주 외에는 극소수였지만, 언젠가부터 선거권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저 무지렁이 놈들이 뭘 안다고 선거권을 쥐여주는 것인지, 참···.”
지주파 의원들은 현 제국의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내뱉었지만, 그중에 제대로 된 대책은 없었다.
유권자들이 거세게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을 고치겠다는 법인데, 그걸 반대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니 예전이 좋았다, 애초에 입헌군주제도 반대했어야 한다는 말이나 하는 것이다.
“교회와 협조해서 여론을 좀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일할 권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고요.”
세속 대학 설립 사건을 기점으로 가톨릭교회와 지주파는 정치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교회에서도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황제파 측에서 발의한 노동법에 담긴 사항들이 너무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반대할 수 없다고요.”
“크흠. 그렇군요.”
“···조건을 조절하는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겠군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주파 의원들은 언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여론을 좀 더 신경 쓰기로 결론 내리고는 자리를 파했다.
***
1843년 1월.
멕시코 제국에서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황제파, 지주파, 공화파가 약 2주간 협상하여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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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제국 노동기본법
제1조 (근로 시간의 제한): 본 법에 따라, 성인 남성 근로자의 일일 최대 근로 시간은 14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성인 여성 근로자의 경우, 일일 최대 근로 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제2조 (어린이 노동의 금지): 만 9세 이하의 어린이에 대한 모든 형태의 노동은 본 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다.
제3조 (청소년의 근로 시간 제한): 만 10세에서 14세 사이의 청소년은 하루 최대 6시간까지만 근로를 할 수 있으며, 해당 근로는 그들의 건강, 복지 및 교육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제4조 (야간 근로의 추가 수당):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근로 시간은 수면권을 침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간주하며, 해당 시간에 근무하는 근로자에게는 정규 근로 시간에 대한 추가 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제5조 (안전 조치의 의무): 모든 고용주는 본 법에 따라 산업별로 정해진 최소한의 안전 및 보건 조치를 갖추고 유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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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5개 조항뿐인 노동기본법이었지만,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영국에서 제정된 ‘공장법’과 ‘광산법’보다 훨씬 넓었다.
“청소년 근무 시간 제한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그러게. 어차피 요즘은 14시간 이상 근무나, 새벽 근무 조건을 넣으면 고용하지도 못하지 않나.”
“그렇지. 5조에 있는 안전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이것도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고.”
“페온을 쓰는 자들만 크게 손해를 보겠구만.”
페온을 고용하지 않은 자본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내심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안도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불만을 터뜨리는 자들도 있었는데, 당연히 페온을 부리는 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지주들보다는 자본가들이 더 반발이 심했는데, 계절별로 노동시간이 유동적이고, 계속 일을 더 시킨다고 생산물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닌 농장의 특성상 매일 긴 시간 근무나 새벽 근무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여 과로사라는 사고까지 낸 자들은 오로지 페온을 사 온 자본가들이었다.
“정말 멍청한 법이야. 일반 노동자들과 다르게 페온들은 빚을 갚으면서 생활까지 하려면 일을 더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만들었지 않나.”
“뭐, 빚을 못 갚으면 대대손손 페온으로 살게 만들면 그만이지. 결혼만 시키면 좋다고 애를 낳지 않나.”
사실은 근무 시간이 길건 짧건 페온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턱없이 적었기에 페온 입장에서는 적어도 과로사 신세는 면하게 된 지금이 훨씬 좋았지만, 화가 난 자본가들에게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화파 위선자 놈들이 찬성하지만 않았어도 이딴 법이 통과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만큼이나 손해를 보았을 텐데, 의원들은 그렇다 쳐도 공화주의 신념이 강하지 않은 지지자들도 많을 텐데, 얼마나 더 버틸지 궁금하군.”
“내 말이 그 말이네. 그들을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유입시켜야 하네.”
“우리가 그걸 주도해서 지주파 내에서도 우리 자본가들의 목소리를 키워야 하네. 이번 법안도 지주들에겐 생각보다 큰 손해가 없으니 쉽사리 찬성해버린 것 아닌가.”
“그래. 아직 우리 자본가들을 대변해 줄 곳이 없어서 지주파에게 빌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엄연히 다른 존재니까 말이야. 지주파 내에서 세력을 키우든, 다른 세력을 만들곤 해야겠지.”
그런 고용주들의 반응과 다르게,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이 사건을 촉발한 페온들에 대한 가혹한 노동도 막을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헨리! 이것 보라고! 우리 멕시코 제국은 다르다니까!”
빅토르는 헨리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줬다. 헨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르긴 하군. 역시 이민을 오길 잘했어.”
“그럼! 믿고 있었다고!”
빅토르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
1843년 2월.
멕시코 제국의 첫 외국인 유학생들이 도착했다.
박규수는 같이 유학하러 온 이들을 살폈다. 항구에는 다른 국가의 유학생들도 와 있었기 때문이다. 인솔자가 모두 함께 데려가기로 되어 있었다.
‘일본인이 3명, 필리핀인이 5명, 청나라인이 2명인가.’
조선인은 3명이었다. 분명히 에스파냐어에 능숙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에스파냐어를 알던 필리핀은 그렇다고 쳐도 일본과 중국에서도 오다니.
뭔가를 배운다는 것에 자신이 있었던 박규수도 지난 7개월간 거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에스파냐어에 집중해야 했다.
같이 가자고 힘들게 설득한 후배들은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고, 실제로 포기한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도 조선과 동일하게 3명이라니.
박규수가 입을 열었다.
“에스파냐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일본의 유학생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살짝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에스파냐어로 답했다.
“우리들은 원래 네덜란드어와 영어 등을 익히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했습니다. 에스파냐어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이 꽤 있더군요.”
“아, 그랬었군요.”
박규수가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오히려 저들 입장에선 조선이 신기할 것이다.
‘일본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능숙하지.’
박규수는 역사를 떠올렸다. 저들에게 뒤처지는 순간 조선에 재앙이 일어나리라. 묵서가의 황태자도 편지에서 그런 암시를 하지 않았던가.
박규수는 자연스럽게 다른 국가의 인원들과 대화를 텄는데, 선교사들이 잘 가려서 보낸 것인지 다들 에스파냐어를 잘했다.
“청에서는 왜 혼자 오셨습니까? 대국인 만큼 유학을 오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을 텐데.”
“영어를 배우겠다는 자들이 더 많았소.”
그는 짧게 대답했다.
박규수는 바로 납득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대영제국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땅을 빼앗고, 막대한 배상금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멕시코보다는 영어를 배우려는 자들이 더 많을 터.
하루가 지나자, 인솔자가 도착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부터 철도를 타고 대학이 있는 모렐리아까지 갈 겁니다.”
다들 대답이 없었다.
“···으음? 다들 에스파냐어에 능숙하다고 들었는데···. 내가 너무 빨리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철도라는 것이 뭡니까?”
“아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죠.”
인솔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멕시코 제국 태평양 방면의 항구, 푸에르토 파시피코(Puerto Pacífico)의 기차역.
이미 이 항구에서 거대한 규모의 항구와 조선소,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배를 보며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감탄했던 박규수와 일행들이었다.
“이, 이게 철도라는 겁니까?”
“정확히는 이 ‘기차’의 아래에 깔린, 철로 된 길을 말합니다. 기차는 이 철도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지요. 어서 타시지요.”
“예.”
푸우우우-
뿌뿌-
기차에서 뭔가 소리가 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덜컹-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까 분명히 이 기차라는 것을 끄는 말도 없었는데···.”
“이 사람아, 말이 있다고 해서 이 속도가 말이 되나? 이건 정말 이 기차 자체가 움직이는 걸세.”
경악한 표정인 후배에게는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속으로는 그도 상당히 놀랐다.
다행히도 박규수와 그 후배들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일본인들도, 필리핀인들도, 청나라인도 상당히 놀란 듯했다. 다들 표정에 뻔히 보였다.
박규수는 자기도 그런 표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표정을 관리하다가, 웃고 있는 인솔자와 눈이 마주쳤다.
“···”
“···허허.”
***
치와와 건설을 지휘하는 와중, 재미있는 일이 생겨 잠깐 모렐리아로 내려왔다.
모렐리아는 주말마다 가족을 보러 멕시코시티로 내려가는 경로의 중간 지점이기도 했다.
“기대되는군.”
“유학생들이 기대되시는 겁니까, 아니면 그들이 이 대학 건축물을 보고 놀랄 것이 기대되시는 겁니까.”
“둘 다라네.”
멕시코 제국과 교역하는 아시아 4개국에서 유학생들이 도착했다. 선교사를 보낸 지 7개월 만이었다.
과연 얼마나 에스파냐어를 잘 배웠을지, 조선인은 누가 왔을지, 그들이 우리 멕시코 제국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 내 궁금증은 곧 채워졌다.
기다린 지 거의 1시간도 안 돼서 유학생들이 타이밍 좋게 도착한 것이다.
“전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다니···. 더 서둘렀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인솔자는 내가 온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며 사죄를 청했다.
“아니네. 어차피 가는 길이라 들린 것이니.”
나는 그를 적당히 달래고는 유학생들의 면면을 살폈는데, 대부분 20대 혹은 30대 초반이지만, 조선인 한 명만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전하, 저는 조선의 박규수라고 하옵니다.”
유학생들은 이 나라의 황태자인 내가 그들 앞에 나타나자 동요했지만, 내가 말을 건 자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래. 철도를 타보니 어땠나?”
“···대단했습니다.”
“하하하. 그럼 자네들이 공부할 대학으로 가도록 하지.”
나는 박규수 말고도 여러 유학생에게 말을 걸며 이동했는데, 그들은 불편해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아는지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편이었다.
‘박규수라···.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한국사보단 세계사에 더 흥미 있어 했던 나였기에 정말 유명한 이름이 아니면 잘 몰랐다.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실학자 중 한 명이었나 보군.’
그런 자가 이 멕시코에 유학을 옴으로써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로웠다.
“도착했습니다.”
다들 마차에서 내렸다.
멕시코 제국 황립 대학의 정문 앞이었다.
정문은 높고 웅장한 두 개의 석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석탑 사이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아치가 놓여 있었다.
완성된 모습을 보고 내가 ‘한편의 예술 작품 같다’고 평한 그 정문이었다.
“허어!.”
“호오···.”
소감이 어떤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건축가로서 만족감을 느끼며, 그들을 적당히 격려하고는 멕시코시티로 떠났다.
예쁜 세실리아와 귀여운 아들, 딸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치열한 삶 속 가끔 있는 즐거운 날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