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rown prince of the Mexican Empire RAW novel - Chapter (150)
멕시코 제국 황태자가 되었다 150화(150/180)
남과 북 (4)
“당장 응징해야 합니다! 점점 더 많은 주들이 저 남부 놈들의 반국가단체에 가입하고 있어요!”
기어코 나라를 둘로 쪼개버린 남부에 대한 응징. 북부인들은 그것을 원하면서도, 실행하기는 싫은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미끄러진 헨리 클레이 같은 휘그당 인사들은 즉각 보복을 주장했지만, 대통령 지위를 승계받아 미국의 12대 대통령이 된 조지 M. 댈러스와 민주당의 생각은 달랐다.
“전쟁이 막 끝난 지금, 또다시 징집해서 남부와 전쟁을 하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이제는 남부의 정규군이 된 ‘남부의 군대’와는 다르게 북부의 민병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해체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서부 전선의 군대도 징집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자, 그리고 정신에 문제가 생긴 자들이 10만 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들도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고, 정부도 그 정도 군대를 유지할 돈이 없었다. 심지어 해군까지 전부 몰수당했으니, 군사력이라고 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남부 연합이 성장하는 것을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하시겠다는 겁니까?”
헨리 클레이는 얼마 남지 않은 민주당 당원들을 맹렬하게 압박했다. 남부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민주당은 많은 의원이 남부로 떠나버렸다. 그렇지만, 전국구 정당이었던 만큼 북부에도 펜실베이니아의 제임스 뷰캐넌, 뉴햄프셔의 프랭클린 피어스, 일리노이의 스티븐 더글러스 같은 이름 있는 인사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커리어는 한순간에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었다. 제임스 포크 전 대통령은 사퇴하고 암살당했지만, 그가 지명한 인사들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고만 보자는 게 아닙니다. 일단 전쟁의 후유증을 수습한 뒤에 남부의 배신자들을 응징하자는 겁니다. 어차피 무기 공장과 공업 지대는 우리 북부에 있습니다. 충분히 회복하고, 충분히 준비해서 싸우면 적은 피해로도 승리할 수 있는데,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제임스 뷰캐넌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고, 헨리 클레이도 더 이상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가 응징을 주장한 것은 응징하자는 의견이 ‘표면적’으로는 대중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아니겠지만.’
남부에서는 북부인들을 ‘겁쟁이’, ‘패배자’ 등의 멸칭으로 조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응징하지 말자는 주장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북부인은 이미 전쟁 피로감에 찌들어 있는 상태였다.
“맞습니다! 파괴된 워싱턴, 손상된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를 복구해야 합니다. 거기에 당장 올해부터 내야 하는 전쟁 배상금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연체했다간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야 합니다. 다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공격적으로 주장하던 헨리 클레이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민주당 의원들이 제임스 뷰캐넌의 주장을 옹호했다.
“제길. 멕시코 놈들, 전쟁 배상금에 복리이자라니. 사채업자도 아니고 이게 무슨 행패인지···.”
헨리 클레이는 분한 표정을 연기하며 중얼거렸다. 민주당과 휘그당의 인사들도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멕시코를 욕했다.
사실 그 이자는 이전에 미국이 멕시코 독립 전쟁 당시 요구한 이자와 동일한 수치였지만, 어찌 되었든 무거운 복리 이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멕시코 제국이 요구한 금액과 이자는 가혹했다. 미국의 경제적 체급이 멕시코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이번 전쟁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막대한 전비를 지출했으며,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거기다 미합중국 연방 정부는 멕시코 제국 중앙 정부와는 다르게 매우 가난했다.
거기다 남부가 독립하면서 7천만 페소라는 엄청난 금액을 북부가 혼자 감당하게 되어버렸고, 올해분의 배상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더욱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날 것이다.
북부로서는 상당히 암울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피해를 복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겁니까?”
제임스 뷰캐넌이나 민주당에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증인으로서 동석한 경제학자에게 묻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나 군사전문가 등의 지식인들은 당장은 응징이 어렵다는 민주당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그는 갑작스럽게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당황했지만, 소신 있게 발언했다.
“제 계산으로는···배상금 문제까지 감안할 경우, 이번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전부 복구하려면 5년은 피해복구에 전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도 상황이 좋은 경우를 가정한, 최소치입니다.”
“5년! 지금 최소가 5년이라고 했습니까?”’
헨리 클레이의 경악스러운 심정이 담긴 외침과 함께, 실내가 소란스러워졌다.
“5년이라니. 그 정도면 남부에서 자체적으로 무기 공장을 짓고도 남겠군.”
“맞아. 5년을 기다릴 수는 없지.”
휘그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도 5년은 과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간을 기다렸다간 선거에서 분노한 북부인들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분열된 상태를 5년이나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겁니다.”
5년이면 남부 사람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것은 경제적, 군사적 문제보다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얼마간의 의견조율이 더 진행된 후, 양 당이 합의했다.
1년 6개월 뒤, 남부 놈들을 응징하기로.
그것이 성급한 일이 될지, 아니면 뒤늦은 일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중산층.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멕시코 제국에도 드디어 중산층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자영농, 혹은 일반 노동자임에도 저축을 열심히 해서 각종 정부 채권과 주식 투자에 투자를 잘한 케이스이거나, 대학을 나온 고급 기술자 혹은 과학자였다.
한편, 상류층으로 합류하는 사업가들도 많이 있었는데, 최근 전쟁으로 시중에 자금이 경색되자 그 수는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전하, 말씀하신 대로 치와와 국립 대학(Universidad Nacional de Chihuahua)에 참전 용사, 혹은 유가족을 우선으로 입학시켰는데, 주변 지역 지주들의 불만이 크다고 합니다.”
디에고의 보고였다.
“불만? 참전도 안 한 놈들이 불만을 품는다고?”
이전에 제정한 대규모 징집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하여 징집을 실시한 것이지만, 징집관들이 각 도시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징집을 해올 필요도 없었다. 전국의 징집소에 자원입대를 희망한 애국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 자원입대로 구성된 군대엔 멕시코 제국의 최상위 계층이라고 여겨지는 백인은 소수였다. 원주민, 메스티소, 흑인들이 더 많았다. 심지어 코만치 부족을 비롯한 미국에서 쫓겨난 북부 원주민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거의 3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자원입대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직도 자기가 일종의 귀족 계층이라고 착각하는 머저리들이 있군. 불만을 제기한 자들은 앞으로도 절대 받아주지 말라고 전하게.”
“예, 전하.”
예전, 독립 전쟁 시절에는 백인은 대부분 장교, 혹은 최소 기병대로 입대했지만 지금 우리 멕시코 제국에서는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장교는 사관학교를 나오거나, 일부 우수한 부사관을 선별해 교육 시키는 방법으로만 충원하고 있었다. 기병대도 예전과 같이 집에서 말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병사들의 승마 능력을 테스트해서 배정했기에 기병대로만 입대할 방법은 없었다. 지주 계층의 자제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승마에 익숙했지만, 유목민이나 다름없던 북부 원주민만큼은 아니었다.
그 결과 제국 내 지주 계층의 백인들도 일반 병사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걸 거부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참전하지 않은 자는 참전한 자보다 뒷순위네. 황립 대학과 사관학교도 마찬가지야.”
“예, 전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애국심에도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간 이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기에, 나는 항상 참전용사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전후에 해야 할 일 중 최우선 순위에 뒀다.
“연금은 그렇다고 쳐도, 교육 혜택에 대한 공급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겠군.”
“예, 전하. 이전 전쟁들과는 다르게, 징집의 규모가 너무 커서 대학이나 사관학교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듯합니다.”
종합 대학은 이제야 2개, 사관학교도 육군과 해군 하나씩 있으니 총 4개 학교였다. 징집한 인원이 40만이 넘으니, 그 학교들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참전용사들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미국이 했던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연금, 교육, 저금리 대출, 토지 제공 등이 그것이었다.
미국이 정말 잘했던 것 중 하나가 2차 세계대전 후 참전용사들에게 교육 및 훈련, 저금리 주택담보 대출, 그리고 실업수당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 것이었다.
법안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대폭 확대하여 참전용사들이 대학 교육을 받고 전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는 참전용사들이 대규모로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현대까지도 매우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 이 법안은 1차 세계 대전 후 ‘보너스 아미’사건과 같은 최악의 실책을 저지른 후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니, 나는 그 교훈만 빼먹을 생각이다.
‘참전용사에 대한 대우는 군인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애국심과 국가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극과 극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전생의 미국과 대한민국을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직접 거수경례하고 국민에게 뜨거운 환영과 예우를 받지만, 대한민국의 참전용사들은···.’
멕시코에서는 그런 슬픈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마침 잘된 일이야. 우리도 공교육이라는 것을 실행할 때가 왔으니.”
“드디어 그 계획을 실행하는군요.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모두를 대학에 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대신 그 혜택을 그 자식들에게도 준다면 싫어할 부모는 없을 거야.”
현대와는 다르게 이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것을 기본으로 여기고 있으니 가능한 방법이었다.
공교육의 시도는 19세기 중반에는 진보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그리고 미국의 몇몇 주들은 공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물론 그 나라들도 현대만큼 보편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단번에 모든 인구를 교육할 만큼의 학교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다. 단계별로 늘려나갈 생각이다.
“공교육 법안은 공화파에서도 환영할만한 법안인데다, 전쟁 배상금도 있으니 전국에 학교를 지을 예산도 충분할 겁니다.”
“그렇지. 대신 연금 쪽은 조금 조정이 필요하겠어. 돈 나갈 곳이 많은데 학교까지 지으려면 전쟁 배상금까지 생각해도 빠듯하니.”
새 영토들에는 철도 건설비를 지원해줄 지주들이 없으니 정부 자금으로 철도를 부설해야 하고, 핵심 도시 건설도 본격적으로 여러 개를 진행할 예정에, 백 개가 넘는 학교도 지어야 한다. 쓸 곳이 많으니 7천만 페소라는 전쟁배상금도 빠듯한 것이다.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연금의 특성상, 혹시라도 정부 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했다.
“연금은 액수를 조정하는 대신, 주택 건설비 대출과 토지 보상을 좀 더 확대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겠군. 남는 것이 토지라고 할 수 있으니.”
안 그래도 소유한 토지가 많은 제국 정부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토지를 추가로 확보했다.
그곳에 사는 미국인들의 인구는 내가 보고받고 상당히 아쉬워했을 만큼 적었고, 그들에게는 가구당 64.7만 제곱미터(160에이커)의 소유권만 인정했기에, 나머지 빈 땅은 전부 멕시코 제국 정부의 소유였다.
명목상 국가의 모든 토지가 정부의 것이었던 전생의 중국을 제외하고, 이 정도의 규모의 토지를 가진 정부나 집단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멕시코-미국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상 방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지주파 의원들은 무슨 보상을 이 정도로 주냐고 불만을 표했지만, 황제파와 공화파 의원들의 집안보다 참전율이 저조한 그들에게는 민심도, 명분도 없었다.
“지들이 귀족은 무슨. 귀족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도 하던가.”
“그러니까 말이야.”
참전용사들은 물론 참전하지 않은 국민들도 지주파를 비난하는 가운데, 세부적인 조정을 거친 참전용사 보상 법안이 통과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와중에도, 참전용사 문제를 지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