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rown prince of the Mexican Empire RAW novel - Chapter (160)
멕시코 제국 황태자가 되었다 160화(160/180)
< 즉위 (1) >
“여긴 언제 봐도 아름답군요.”
나는 대관식이 진행될 성당을 둘러봤다. 곧 있을 대관식 준비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도 하고, 아버지와 대화도 나눌 겸 온 것이었다.
“아름답지. 너무 많이 봐서 감흥이 덜 해지긴 했지만. 너는 교회를 빠지는 날도 많으니, 그럴 일도 없겠구나.”
“하하하···.”
멕시코 사회에서 가톨릭교회가 가지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주말마다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필수적이라고 여겨지지만, 나는 워낙 바쁜 일이 많아 빠지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자이기에 이에 대해 한마디씩 하긴 하셨지만 정말로 바빠서 그런 것임을 알기에 나무라진 않았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멕시코시티의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의 천상 승천 대성당(La Catedral Metropolitana de la Asunción de la Santísima Virgen María a los Cielos de la Ciudad de México)’ 라는 엄청나게 긴 이름이지만, 간단하게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혹은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원래도 아름다웠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행사를 위해 일 년 내내 보수를 진행했으며, 건물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깔끔하게 청소하여 완전히 새 건물 같아 보였다.
멕시코 건축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이 건물은 아버지, 아구스틴 1세의 대관식이 치러진 곳이며 황가가 주말마다 참석하는 성당이기도 하다.
‘1573년부터 1813년까지, 총 240년이 걸린 걸작이지.’
물론 그 시간이 걸린 주원인은 건축보다는 재정, 정치, 중간 디자인 변경, 약한 지반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었지만, 그 덕에 얻은 것도 있었다.
건축에 24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고딕, 바로크, 추리게레스크(바로크 시대에 발생한 스페인의 예술적 시대이자 건축 양식), 신고전주의 등 당시에 유행하던 다양한 건축 양식이 뒤섞일 수 있었다.
건축뿐만 아니라 화가나 조각가 등 각종 예술가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의 그림, 조각품, 가구, 각종 장식품도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양식으로 만들어져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뽐냈다.
나와 함께 성당을 둘러보던 아버지는 감상에 잠긴 듯,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여기서 대관식을 하던 때에는 보석을 살 돈도 없어서 빌려야 했었지.”
“25년 전 이야기군요.”
내가 이 몸에 들어오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래. 그 뒤로 정말 빠르게, 많은 것이 변했지. 황제인 나조차도 우리 멕시코 제국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으니.”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고맙다, 아들.”
어깨에서 느껴지는 손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 마음은 확실히 전해졌다.
“···다 아버지가 절 믿어주시고, 지원해주셔서 된 일이죠. 솔직히,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하하하, 믿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너는 하는 말과 행동하는 원리가 투명했거든. 그것보다는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네 삼촌, 외삼촌들을 쳐내는 게 더 힘들었지.”
“···친척들이요?”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그래. 나도 지주 집안 출신이었지만, 네 어머니의 집안과 비교하긴 어려웠지. 네 어머니는 멕시코 전체에서 손꼽히는 집안이었으니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사관학교 출신 젊은 중위였던 그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에는 부잣집인 처가의 도움도 있었다는 것이다.
독립 전쟁하던 시절은 물론, 그 전에 스페인군 장교로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시절에도 위에서 내려오는 지원은 터무니없이 적었고, 군대를 위해 사비를 쓰는 일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딸 가진 부잣집이 유능한 젊은이를 사위로 들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도 그렇고, 전생의 대한민국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다.
투자한 것이 있다면, 성공했을 때 대가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그랬으니, 내가 황제가 된 뒤에 청구서를 들이미려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하지 않겠느냐?”
“음, 그렇죠.”
“처가도 그 정도인데, 우리 집안은 어떻겠느냐. 집안에서 황제가 나왔다고 자기들도 왕이 된 줄 알더구나.”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내가 처리해놓긴 했지만, 너도 앞으로는 신경을 써야 할 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뒤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나폴레옹조차도 가족에게 휘둘려 왕위를 나눠주는 등 헛짓거리를 하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지 않았던가.
‘거기에 비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현명하시군.’
적당히 어르고 달래느라 돈이 좀 나가긴 했지만, 권력에 손댈 여지는 주지 않았다고 한다.
“예, 신경 쓰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아버지, 퇴위 후에는 뭘 하고 지낼 생각이세요?”
내 대관식 날이 곧 아버지가 퇴위하는 날이다. 그날,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왕관과 홀을 내게 넘겨줄 예정이었다.
유능한 군인, 그리고 황제로서 산 아버지가 제위에서 물러나면 뭘 할 건지 궁금했다. 강한 체력을 타고난 건지 아직 크게 아픈 곳도 없는 아버지가 아닌가.
“글쎄···. 아직 잘 모르겠구나. 네 엄마와 시간을 좀 더 보내는 것도 좋겠고, 손자, 손녀들이랑도 더 놀아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단다. 딱히 취미랄 것도 없으니.”
아버지는 대관식 준비만 1년을 하셨지만, 아직 퇴위 후에 뭘 할지는 결정하지 못하신 모양이다.
‘하긴, 그동안 너무 바쁘셨으니.’
마지막 1년이었지만, 원래 하던 업무에 인수인계와 대관식까지 준비하느라 평소보다도 훨씬 바빴다.
퇴위 자체도 엄청난 업무를 처리하다가 체력에 한계가 오는 것을 느껴서 결정하게 되었으니, 앞으로가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일수록 은퇴 후에 놀기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실 텐데···.’
나는 대성당을 걸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적당한 것을 떠올렸다.
“아버지, 저번에 카를로스와 함께 육사 대 해사 축구 경기를 보셨을 때 기억나시죠?”
“그럼. 재미있었지.”
육군 사관학교와 해군 사관학교의 자존심을 건 전투적인 축구 경기에 카를로스도 잔뜩 빠져들었지만, 의외로 아버지도 손에 땀을 쥐며 재미있게 관람했었다.
아무나 이겨라라는 내 스탠스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육군 사관학교 팀을 응원했는데, 혈투 끝에 진땀승을 거뒀었다.
“앞으로 우리 멕시코에 프로 축구 리그를 만들 생각인데, 팀 하나를 운영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프로 축구 리그?”
아직 현대적인 개념의 프로 스포츠라는 것이 태동하지 않은 시기다. 돈을 주고 스포츠를 보는 것도, 다른 생산활동 없이 스포츠만 하면서 돈을 버는 프로 선수들에 대한 개념도 희박한 시기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경마 경기도 있고, 최근 영국에서는 크리켓이나 복싱 프로도 생겨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원 역사에서는 1863년에 현대 축구 규칙이 정립되고 1888년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출범했으니, 허황된 구상은 아니었다.
나는 프로 축구 리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겉보기엔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유희거리에 불과하지만, 사실 통치자 입장에서는 꽤 장점이 많은 것이 프로 스포츠다.
“음···. 재미있을 것 같다만, 과연 국민들이 돈을 내고 경기를 볼까?”
“처음부터 유료 관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상금을 걸 테니···.”
그 뒤로도 아버지와 나는 대성당을 거닐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1847년 12월.
대관식이 코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전 세계 수많은 국가의 귀빈들이 입국했다.
대영제국, 프랑스 공화국, 러시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스페인 왕국, 네덜란드 공화국, 포르투갈 왕국 등의 유럽 국가들, 그리고 남미의 여러 국가와 미국, 오스만 제국, 조선, 청,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보낸 사절단만 백 명이 넘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이미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둔 상태로, 이미 멕시코 제국 내에 외교관이 있었지만, 대관식인 만큼 왕족이나, 외무부 장관 등의 고위 인사가 직접 참석했다.
“남부 연합 쪽은 온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었으니 그렇다고 치고, 누에바그라나다에서도 오지 않았군?”
“예, 전하. 누에바그라나다 중앙 정부도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 가진 무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고, 사실상 지방 엘리트와 시민들 간의 대결로 흘러가는 양상입니다.”
“그렇군.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지시하게. 혹시라도 정말 여러 개의 독립국이 생겨버리면 곤란하니.”
“예, 전하.”
수많은 국가에서 귀빈들이 왔지만, 내가 그 많은 인원을 직접 만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대영제국, 러시아 제국과 같은 몇몇 열강에는 얼굴을 비춰 면을 세워줘야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빌헬름 1세.
내 사돈이 될 사람이자, 이후 독일 제국의 황제가 될 인물이다. 현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동생인 그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멕시코 제국을 방문했다.
“환영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빌헬름 1세와의 첫 만남은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이 자리의 주인공은 나와 그가 아니었다.
내 아들 카를로스, 그리고 루이 마리 엘리자베트(Luise Marie Elisabeth) 공주가 이 자리의 주인공이었다.
‘이거, 상견례를 하는 기분이군. 그것도 부모 입장에서.’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11살과 9살의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서로를 눈치챈 듯했다.
내가 먼저 인사해보라고 말하려고 할 때, 카를로스가 입을 열었다.
“안녕! 만나서 정말 반가워!”
통역가가 살짝 긴장한 듯 뻣뻣하게 말한 카를로스의 인사말을 통역해주자, 루이제 공주도 말했다.
“아, 안녕!”
그렇게 말하곤 부끄러운 듯 뒤로 숨는 루이 공주를 보자, 흐뭇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참으로 귀엽군요.”
“하하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색함이 좀 풀렸고, 나름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사돈과의 첫 만남이 끝나고, 12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동안 미국과 누에바그라나다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멕시코 제국 국민들의 모든 신경은 대관식에 쏠려 있었다.
12월 말이 되자 거의 모든 국가의 귀빈들이 무사히 도착했고 교황청에서 보낸 페루자 대주교, 조아키노 페치(Gioacchino Pecci)도 도착했다.
교황청에서도 사람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멕시코 제국은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 국가 중 가장 국력이 강한 국가가 되었다. 날이 갈수록 권위를 잃어가는 교황청 입장에선 멕시코 제국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사람을 보내야 했다.
대주교는 날 찾아와 대관식에서 내게 왕관을 씌워주고 싶다는 제안을 건넸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멕시코 대주교에게 말했듯이 제안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미 그 역할을 할 사람은 정해졌습니다.”
“···아쉽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전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멕시코 제국의 많은 신실한 신자들과 하느님의 축복을 함께 나눌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생각이 바뀌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거룩한 순간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직자가 왕관을 씌워주는 것은 예전에야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당장 아버지, 아구스틴 1세의 대관식 때도 성직자가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가 아닌 의회 의장이 그 역할을 맡았다.
‘나는 아버지께 직접 받아야지.’
전대 황제가 살아있고, 아들에게 평화적으로 양위하는 상황이다. 굳이 다른 이에게 왕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로마 가톨릭은 내 우호 세력이 될 수 없다. 개혁 대상이기 때문이다.
멕시코 제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문제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교회다.
‘교회야말로 멕시코 최고의 적폐 세력이지.’
거대한 아시엔다를 소유한 대지주나 그들이 행사하는 암묵적인 법인 페온제도의 문제도 교회에 비하면 뒷순위 문제에 불과하다. 교회는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에 더해 여러 가지 종교적 특권까지 누리고 있다.
원 역사에서는 멕시코 정부가 세속화 정책을 실행하려고 하자 2번이나 반란을 일으켰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