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
“아, 이 X끼. 여기서 궁상 떨고 있을줄 알았다.”
한 손에는 티비 리모콘을, 다른 손으로는 집무실 불을 켠 카롤리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소파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친구를 내려다보았다.
“야, 저런 X친 X끼들 말은 왜 듣고 있냐? 저런거 듣고 있다 보면 죽어. 지들은 평생 프리미어 리그 퍼스트팀을 지휘할 능력도 없는 주제들이 입만 살아서···.”
멍하게 그녀를 올려다보는 친구의 표정에 카롤리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이건 뭔데?”
요상한 개구리가 그려진 투명한 푸른색 병을 낮은 테이블 위에서 집어들은 카롤리나가 물어봤다.
“진-로? Since 1924년? 뭐, 역사는 좀 있는 술인가?”
수상쩍은 눈빛으로 병을 바라보던 카롤리나는 거의 비어 버린 술병을 기울여서 한 모금도 안 되는 술을 맛본 다음에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이 괴상망칙한 인공조미료가 잔뜩 합성된 페인트 시너 같은건 대체 뭐야?!!”
“…한국의 전통 술이야···.”
여전히 멍한 형민의 대답에 카롤리나가 온갖 인상을 다 찌푸렸다.
“이딴걸 대체 어디서 난 건데? 저번에 그 이상한 빨간 모자를 보내준 사람이 보내준거야?”
형민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집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형민, 설마 오늘도 혼자서 그 싸구려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건···.”
한 손에는 뭔가 고풍스러운 위스키 병을, 다른 손에는 위스키 잔을 들고 들어온 헬레나가 멈칫했다.
“…아니군요.”
뭔가 애매한 분위기.
정작 방주인은 패배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아니면 패널들의 평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신과 넋이 나가 있는 상황에서, 첫 인사와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단 둘이서 서로 마주한 헬레나와 카롤리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 들어오시지요.”
카롤리나의 말에 헬레나가 다시 멈칫했다.
“아··· 뭔가 개인적인 얘기를 하고 있었다면 피해드릴께요.”
“아니에요. 그냥 이 자식이 얼타고 있는걸 막 발견했을 뿐이니까.”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선 헬레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파 한쪽 끝으로 자리를 옮겨간 카롤리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서 감사를 표하면서 반대편 끝에 앉았다.
형민을 마주한채 삼각형을 형성한 세 사람 사이에 다시 한번 침묵이 흘렀다.
“…그건 마시려고 가져오신건가요?”
마침내 입을 열어서 헬레나의 손에 여전히 들려있는 위스키 병에 손짓하는 카롤리나의 질문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형민이랑 같이 마이크 갈릭의 캐비넷을 털은 적이 있거든요. 혹시나 해서 오늘도 뒤져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에도 한 병을 받은 모양이더라고요.”
“이 자식이 남의 캐비넷을 털어서 술을 가져왔다고요?”
어처구니 없다는 카롤리나의 질문에 헬레나가 턱을 들어올렸다.
“뭐, 같이 마셨으니까 공범인거지요.”
“공범이 아니라 협박을 받은 것 같은데···.”
“설마, 협박이라니요.”
의외로 진실을 쿡 찌르는 카롤리나의 지적에 헬레나가 움찔했지만, 꿋꿋히 밀고 나가기로 결심한듯 강하게 부인했다.
그런 헬레나의 모습에 카롤리나가 피식 웃었다.
“뭐, 나는 적극적으로 공범이 될테니까··· 한 잔, 콜?”
“…한 잔, 콜.”
한 잔, 그리고 한잔, 그리고 또 한 잔.
술 만으로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는 없다. 하지만 술은 모르는 사람이랑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다.
카트라이트 가문의 격언대로, 그동안 서로 데면데면 했던 두 여자는 바닥 없는 주량 속에 한 잔씩 끝없이 넘어가던 술을 매개체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헬레나가 가져온 마이크 갈릭의 최고급 위스키 한 병은 예전에 끝장났고, 형민의 지인이 보내온 정체불명의 페인트 시너도 6병이 들어있던 박스의 나머지 5병을 다 마셨다.
물론 그 정체불명의 인공조미료가 결합된 페인트 시너를 맛볼 때마다 두 명 모두 괴로움에 가득찬 비명을 질렀지만.
다시 쳐들어간 마이크 갈릭의 집무실에서 이번에는 개인 캐비넷의 비밀 서랍을 발견한 카롤리나의 기지 덕분에 획득한 그 이상야릇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위스키를 또 한 병 열면서 카롤리나와 한껏 친해진 헬레나가 물었다.
“그럼 선수랑 사귈 생각 같은건 없겠네?”
테이블 위에 놓여진 병들의 숲 사이로 마이크 갈릭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는 인사불성이 되서 소파에 널부러진 형민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가 소파 반대쪽 끝에 앉아 있는 멀쩡한 얼굴의 젊은 구단 대표이사를 바라본 역시 멀쩡한 얼굴의 카롤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첫번째. 나는 코치고 그들은 선수니까, 엄연히 내가 지시하고 그들이 따라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 그런데 여기서 연애 감정이나 다른 관계가 들어가니까 복잡해져.”
헬레나가 납득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카롤리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사실 이건 좀 더 중요한건데···.”
살짝 낮아지는 카롤리나의 목소리에 헬레나가 덩달아서 상체를 숙여서 귀를 기울였다.
“…하루 종일 냄새나는 남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운동하는 남자 따위는 정말 징그러워. 난 좀 향기도 나고, 피부도 부드럽고, 저녁 때 퇴근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 해놓고 날 기다리고 있는 그런 귀엽고 통통한 남자가 좋거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헬레나가 눈을 깜빡거리는 가운데, 카롤리나가 자신의 위스키 잔을 든 손가락으로 반대쪽 소파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형민을 가르켰다.
“그래서 쟤 같은 인간은 탈락. 직장에서도 축구 생각, 집에서도 축구 생각, 밥 먹을 때에도, 아마 꿈을 꿀 때도 축구 생각 밖에 안 하는 저런 인간은 하등 도움이 안 돼. 결정적으로 외모도 내 스타일이 아니야.”
“아, 귀엽거나 통통한 스타일이 취향이라고 했지.”
저 정도면 귀여운건 둘째치고 전혀 통통하지도 않지, 라고 헬레나도 힐끗 형민을 보면서 생각했다.
키는 180센티에 비쩍 말라 있는데다가 시즌이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쪄왔던 살이 증발해서 뼈가 양상한게 눈에 보일 정도다.
물론 제대로 된 맞춤형 정장을 입혀 놓으면 옷태 자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니까 조금 무리하면 나름 핸섬하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사비로 감독에게 아주 제대로 된 런던 양장점의 값비싼 최고급 맞춤형 정장을 입혀 보았던 장본인이 생각했다.
“이건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말이야.”
헬레나의 눈빛이 형민에게 향했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본 카롤리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죽을 때까지 진도가 안 나갈걸?”
“이런 식? 진행? 무슨 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듯 눈을 깜빡거리는 젊은 구단 대표이사에게 카롤리나가 다시 피식 웃었다.
“뭐, 본인이 부인을 하겠다면 뭐라고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옛날에 잘츠부르크에서도 저딴 인간이 뭐가 좋은지 시도해본 여자들이 몇몇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데?”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궁금은 한지 헬레나가 물었다.
“…그냥 혼자서 삽질하다가 끝났어. 거기에 결정적인게 뭔지 알아?”
유도심문인게 분명한걸 알면서도 헬레나는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말려들었다.
“…결정적인게 뭔데?”
“정작 저 자식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몰랐다는거야!”
킬킬대면서 위스키를 한 모금 삼키는 카롤리나에게 헬레나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무슨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남자애도 아니고 지를 좋다고 여자가 표현하는데 몰라? 이건 뭐지?
“뭔가 기능적으로 문제가···?”
“푸흡!”
생각도 못해봤다는듯, 입에 머금고 있던 위스키를 기도로 내려보낼 뻔한 카롤리나가 한참이나 쿨럭거리다가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케헥··· 뭐, 농담치고는 나쁘지 않았어. 암살시도였다면 더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고.”
“암살시도라니···.”
내가 보내버리고 싶었다면 훨씬 더 깔끔하게 해치웠을거야, 라는 표정으로 잘 다듬어진 금발 눈썹 하나를 우아하게 들어올리는 미모의 대표이사에게 카롤리나가 키득거렸다.
“아마도 아닐걸? 그냥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거야.”
“…경험?”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에 카롤리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 저 자식이 어떻게 하다가 유럽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알아?”
“…뭐, 대충은.”
“호오. 그 얘기를 들었다니···. 상당히 신뢰를 많이 받고 있구나?”
의외라는듯, 카롤리나는 눈썹을 들어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얘기가 쉽겠지. 자, 낮에 학교를 다니고 저녁이랑 주말에 아마추어 팀들을 감독하고 코치질하고 그 사이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인간에게 여유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 전혀 없었겠구나.”
“그렇지. 얘기를 들어보니까 한국은 중고등학교 때에 선수가 연애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더라고. 저 자식은 재능도 없으니까 아마 더 시간이 없었겠지.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을테니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축구로만 형민의 삶이 채워진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라는 얘기다.
“어, 이건 전혀 다른 얘기인데 말이야···.”
카롤리나의 말을 듣던 헬레나가 갑자기 떠올랐다는듯 물었다.
“형민 본인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다 형민한테 재능이 없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재능이 없는거야? 그건 어떻게 아는거야?”
“음··· 재능과 노력의 상관관계를 물어보는건가?”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롤리나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언제나 논란이 되기는 하지. 과연 재능이 있어야 하는가.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는가.”
“스포츠나 예술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건 알아.”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어머니나 남동생에 비해서 그런 것에 젬병인 자신이나 오빠를 떠올리면서 헬레나가 말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극복이 가능한지 궁금한거지.”
“음···.”
카롤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나름 선수 생활도 잘 했고 코치짓도 이제 좀 했단 말이지? 적어도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노력 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아.”
“아···.”
카롤리나는 부연하려는듯,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손을 펼쳤다.
“물론 모든 영역이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아는게 없으니까···. 스포츠, 그리고 축구에 한정지어서 말해볼께.”
먼저 한 손이 눈 높이로 올라가서 수평을 이뤘다.
“프로 선수로 최소한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이 정도의 총체적인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 ‘실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노력’과 ‘재능’이 있어야 하고.”
다른 손이 수평을 이루고 있는 첫번째 손 밑으로 내려갔다.
“‘재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은 양의 ‘노력’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실력’을 채울 수 있겠지. 반대로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최소한의 ‘실력’을 채울 수도 있을거야. 적어도 내가 주변에 둘러본 바로는 그랬어.”
갑자기 첫번째 손이 확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프로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력’은 이렇게 높아. 다시 말해서,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10년이나 20년의 ‘노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거지.”
조금은 아쉽다는듯, 본인도 화려했던 선수 생활 말미에 부상으로 꽤나 고생했던 카롤리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더욱이 인간이라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어느 시점부터는 신체적인 능력이 저하되니까. 하다못해 젊은 선수들도 큰 부상을 당하면 복귀한 다음에 영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인간의 회복력은 무한한게 아니니까, 라고 카롤리나가 설명을 덧붙였다.
“뭐, ‘재능’이 있다고 ‘노력’을 아예 안 해도 되는건 아니지. 더구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옆에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상위 몇 퍼센트에 들어야 하는거지, 절대적인 실력을 보는 것도 아니거든. 여튼, 형민은 뭐가 됐던 재능이 부족했던거야.”
“그럼 형민의 재능은 얼마나 부족했던거야?”
헬레나의 질문에 카롤리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형민을 부상당한 다음에 만나봐서 그 이전은 모르는데···. 본인의 말이나 부상당한 다음에 하는걸 봐서는···.”
“…?”
카롤리나는 혀를 찼다.
“…죽었다 깨어나도 프로 선수는 되지 못했을거야.”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형민을 바라보는 헬레나에게 카롤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눈빛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어.”
“하지만···.”
“너도 잘 알텐데? 잃어버렸거나 얻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건 현재에 대한 모독이야. 물론 형민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 형민이 도달한 위치를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적어도 불쌍하다는 눈빛을 받을만한 위치는 아니라는거지.”
나도 부러움과 존경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 중 하나이고, 라고 카롤리나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