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그대로 간다
다음날.
형민은 자신의 집무실에 널부러진 술병들을 발견하고 숙취에 괴로워하면서 머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내뱉었다.
지나가다가 들려오는 감독의 신음소리에 집무실에 고개를 들이민 마이크 갈릭은 방의 꼬락서니와 자신이 숨겨두었던 비장의 위스키가 두 병!이나 비워져 있는 모습에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자신의 집무실로 사라졌다.
“아니, 이건 내가 마신게 아니라고요···. 내가 가져온 것도 아니고···.”
졸지에 협박의 대상에서 공범을 거쳐서 이제는 주모자까지 승격된 형민이 중얼거렸지만, 이미 마이크 갈릭이라는 배는 출항한 다음.
“좋은 아침이에요!”
집무실 문 안에 고개를 들이민 헬레나가 맑고 높고 명랑하고 무엇보다 큰 소리로 인사한 다음에 사라졌다.
귀에 울리는 소음에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형민에게 누군가 물병을 내밀었다.
“물이라도 좀 마셔.”
“으으···.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나야 모르지. 난 숙취라는걸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옆에서 어깨를 으쓱하면서 타고난 신체능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에게 형민이 괴로움과 원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너지? 네가 나한테 술을 먹인거지?”
“뭔 소리야. 네가 알아서 다 마셨잖아. 그 이상한 페인트 시너 중심으로. 물론 마지막에 헬레나가 가져온 위스키 한 잔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헬레나도 왔었어?”
형민의 질문에 카롤리나가 피식 웃었다.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는구나.”
“아니야. 기억이 나는건 한가지 있어.”
형민이 어디선가 둔탁한 울림이 들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파울루 좀 불러봐봐.”
“…?”
번리의 퍼스트팀 감독과 코치진 일동이 조촐하게 퍼스트팀 회의실에 모였다.
감독인 형민.
수석코치인 카롤리나.
피트니스 코치인 파울루 모라오.
팀닥터인 사이먼 모리스도 원칙적으로는 퍼스트팀 소속이었지만, 부상을 입은 퍼스트팀이나 리저브팀, 심지어 유스팀 선수들까지도 총체적인 관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전술에 대한 논의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부르지 않는다.
다 모였다고 하기에는 자신 외에 두 사람 밖에 없었지만, 형민은 진지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동안 고민을 계속 했었어요.”
“…?”
카롤리나와 파울루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자, 형민이 설명을 부연했다.
“수비에 올인한 팀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에 대해서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잖아요.”
“아, 그거.”
이제야 맥락을 파악한 카롤리나와 파울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민이 두 사람을 번갈아서 바라본 다음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에요, 설마 저만 고민하고 있었던 거에요?”
“음···아무래도 저는 체력 훈련을 진행하느라 바빠서….”
형민의 시선을 은근슬쩍 회피하는 파울루 모라오.
“난 네가 좋은 생각을 해낼줄 알았어.”
감독에게 책임을 대놓고 넘기는 카롤리나.
“하아···.”
형민은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
카롤리나의 질문에 형민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작전판을 툭툭 쳤다.
“원래 하던대로 하려고요.”
“…응?”
***
“으아아아!!”
선제골을 넣은 번리의 우측 수비수 찰리 테일러가 미친듯이 원정팬들을 향해서 달려가서 포효했다.
리즈 유소년 출신으로 퍼스트팀에 데뷔한 후 맞는 12번째 시즌에 기록한 커리어 통산 5번째, 그리고 번리로 이적한 후 6시즌간 기록한 2번째 골이다.
수비수로서 평소에 골을 넣을 기회가 거의 없는 베테랑의 득점에 원정팬들과 선수단이 몰려가서 환호하며 축하해주었다.
“아하하하! 멋진 골이야!”
번리에서 보낸 기간이 거의 비슷한 주장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손바닥으로 등을 내리쳤고.
“멋졌엉! 공이 확확 휘더라공!”
왼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서 상대 수비진의 시선을 잘 끌어당겨 주었던 막스 코넷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축하해줬고.
“제 어시스트니까 밥 사주세요!”
중앙 미드필드에서 어시스트를 보낸 루카 수치키는 벌써부터 보답을 하라고 난리를 쳤다.
“흐흐흐. 그럼그럼! 번리로 돌아가면 내가 모두에게 거하게 한턱 쏜다! 아니, 아예 기념 티셔츠를 만들어서 배포할께!”
“아, 그건 좀···.”
선수들은 시시덕거리면서 베테랑 수비수의 득점과 팀의 우위를 자축했다.
반대쪽에서는 홈경기에서 번리에게 선제골을 내준 레드스타의 데얀 스탄코비치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혀를 차는 모습을 본 형민은 자신의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거야!”
“후아, 이런 무식한 방법도 먹히기는 먹히네.”
옆에서 어처구니 없다와 감탄스럽다 사이의 어디쯤인가 위치한 어투로 중얼거리는 카롤리나를 형민이 돌아보았다.
“역시 이럴 때는 묻고 더블로 가는거야!”
“뭐래는거니···.”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카롤리나의 표정을 보고 형민이 표현을 정정해주었다.
“Double or nothing! 두 배를 얻거나 집에 가거나!”
“아···. 그런 뜻으로···.”
여전히 어처구니 없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카롤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는 애매하게 비기는 것보다 화끈하게 지는걸 더 선호했으니까.”
“기왕이면 화끈하게 이기는게 제일 좋거든?”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초를 친다는 표정으로 형민이 카롤리나에게 반박했다.
“어쨌든, 양 손에 망치를 들고 후려치는게 먹히기는 먹히네.”
신기하다는 어투의 카롤리나의 지적에 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전날.
웨스트햄 전의 대패와 최근에 부진한 프리미어 리그 성적 때문에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번리 선수단을 상대로 형민은 자신이 생각한 타개책을 전달했다.
“어··· 그러니까, 그냥 무조건 두들겨 패자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당혹스럽다는 표정으로 선수들을 대표해서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반문하자, 형민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그동안 저희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전방 압박과 빠르고 간결한 패스를 기반으로 여기까지 온거잖아요?”
형민의 질문에 선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한 체력이라는 말에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살짝 속이 뒤집혀서 메스껍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형민은 그들의 반응은 상큼하게 무시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텐백이니 버스를 주차하느니 하는 상대팀이 나온다면 무조건 최대한 라인을 올려서 상대 진영에 가둔 다음에 공격을 전개하는 겁니다.”
형민은 회의실 정면에 위치한 작전판에 표시된 번리의 4-3-3 포메이션을 조정했다.
“일단 중앙 수비수 두 명과 수비형 미드필더는 하프라인 위에 이렇게 나란히 섭니다.”
3개의 마커가 하프라인을 표시하는 흰 선 위에 나란히 놓여졌다.
“그리고 나머지 7명은 ‘AAA’처럼 위에는 3명, 아래에는 4명이 엇갈려서 서는 형태로 가는 거예요. 하지만 외형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7명이 모두 최대한 라인을 전진해서 상대팀 페널티 박스와 그 옆 공간까지 통으로 점유해서 찍어누르는 겁니다.”
평소에 번리가 서는 선발진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중앙 공격수 벤야민 셰슈코와 좌우측 측면 공격수인 드와이트 맥닐과 카림 아데예미가 위에 서는 ‘3’.
그 밑에 중앙 미드필더인 세반스챤 셰만스키와 토마소 포베가 또는 니코 곤잘레스 양 옆으로 좌우측 수비수인 자말 루이스와 구가가 밑에 서는 ‘4’.
그런데 실제로는 그 7명이 모두 라인을 최대한 전진해서 상대팀을 압박하는 동시에 공격에 가담한다.
상대팀이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9명을 페널티 박스 안에 집어넣었는데, 거의 1대 1에 가까운 9대 7로 상대편을 거꾸로 압박하겠다는 감독의 생각.
“어··· 저러면 역습을 많이 당할 것 같은데요?”
“그건 너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사람이 중앙 수비수들이랑 같이 알아서 차단해야지.”
수비형 미드필더인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질문에 형민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공격 전개는요? 저렇게 양 팀 선수들이 페널티 박스 안에 집결되어 있으면 실제로 공이 움직일 공간도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카림 아데예미의 질문에 공격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형민이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형민의 시선을 따라간 선수들의 눈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수석코치 카롤리나 슈테판이 들어왔다.
“자, 그건 이제부터 카롤리나가 설명을 해줄거야.”
어렵고 복잡한 공격 세부전술을 자신에게 떠넘긴 상사를 잠깐 째려본 카롤리나는 작전판 앞에 서서 선수단을 바라보았다.
“일단 공격은 그냥 잘 하면 되는거야, 알겠지? 패스를 잘 해서 슛을 잘 날리면 얍! 하고 골이 들어가는거지.”
선수들 앞에 선 카롤리나의 설명에 벙찐 표정을 짓는 선수단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간단히 축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 방금 그건 농담··· 은 아니지만, 너네들을 위해서는 좀 더 풀어서 설명해줄께.”
모여있는 선수들 중 아무도 아직 그녀 수준의 커리어를 쌓아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너희들에게 지혜를 하사해주겠다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거들먹거림에 반발하지 못했다.
“자, 우선 패턴 플레이를 가져갈 거야. 패턴 플레이 1번부터 설명을 할게. 여기서는···.”
카롤리나의 설명을 듣던 선수들의 표정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그러다가 나중에는 선수단의 거의 전원이 앞에 놓여있던 노트를 펼치고 필기하기 시작했다.
적어야 할 분량도 장난이 아니고 외워야 할 분량도 장난이 아니다.
필사적으로 카롤리나의 설명과 작전판 위에서 움직이는 마커들과 공의 움직임을 필기하기 시작한 나머지 선수단을 바라보면서 붙박이로 수비만 하면 되는 중앙 수비수들과 수비형 미드필더인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지만 니코 곤잘레스나 토마소 포베가는 수비형 미드필드와 중앙 미드필드를 오가니까 저 내용을 다 숙지해야 한다.
“거기서 뭐해?”
머리 뒤로 깍지 낀 손을 올리면서 긴 다리를 쭉 뻗어서 느긋한 자세를 취하려는 제임스 타코우스키를 형민이 지적했다.
“어, 아니··· 저 내용은 저희가 굳이 숙지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불길한 느낌이 들고 있었지만, 이를 애써 부인하면서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대답했다.
그의 주변에 앉아서 느긋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중앙 수비수 패거리들, 즉 압두 디알로, 네이선 콜린스, 그리고 아넬 아메드호지치까지 고개를 일제히 끄덕였다.
“그야 너네들은 당연히 저 내용을 알 필요가 없지.”
“하하, 그렇지요? 설마 저희도 저걸 외워야 하나···.”
“너네는 파울루랑 체력 훈련을 해야지.”
“네?!”
문 옆에 서서 팔짱을 낀채 고개를 끄덕이는 파울루 모라오 코치의 웅장한 자태에서 제임스 타코우스키 이하 중앙 수비수들과 거기에 곁다리로 낀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지금이요?”
“당연하지. 너네들은 공격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 그 시간에 체력 훈련을 해야 세명이서 수비 라인을 구축하고 공간을 다 통제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옆에서 필사적으로 필기하면서 느긋했던 수비수들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나머지 선수단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표했다.
우리만 당할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밖에서 파울루 모라오 코치한테 직접 체력 훈련을 받느니, 회의실에서 카롤리나 슈테판 수석코치의 공격 전술 및 패턴 플레이를 통째로 외우는게 훨씬 낫다.
둘 다 고통스럽지만, 적어도 회의실에서는 앉아 있을 수 있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머지 선수단의 배웅을 받으면서 수비조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