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임시 감독
임시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카라바오컵 2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날, 훈련을 위해서 출근한 형민은 헬레나의 호출을 받고 그녀의 집무실로 향했다.
션 다이쉬가 떠나면서 빈 공백들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다.
구단의 행정 실무와 경기장의 운영, 그리고 홍보 같은 영역들을 담당하는 일부 직원들을 제외하면, 코치진을 비롯한 스태프와 스카우트팀의 대부분과 분석팀의 거의 전원이 사임한 구단 사무실은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다.
자신의 것이었을 수도 있었던 빈 책상들을 지나 헬레나의 사무실에 도착한 형민이 그녀의 문에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형민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휴대폰을 귀에 대면서 통화를 하고 있던 헬레나는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하면서 열띤 통화를 계속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요. 우리가 일단 번리를 인수했으니까, 정상화를 위한 자금을 투입하는게 맞아요.”
“…네. 그건 그래요.”
뭔가 답변을 들은 헬레나가 팍 인상을 썼다.
“…수익률을 건드리자는게 아니잖아요! 0의 100%는 0이에요. 구단이 파산하면 우리가 투자한 2천만 파운드도 다 날라가는거 잘 아시잖아요. 지금 수익률을 따질 때가 아니에요.”
“…정상적으로 구단이 운영될만큼의 자금이 필요해요. 이 딜은 아빠가 검토한거잖아요! ALK 캐피털이 다 가져가서 정말 동전 하나도 안 남았다고요!”
“…그게 말처럼 쉬운줄 아세요? ALK 캐피털 때문에 은행들 사이에서 번리 평판은 최악이라고요. 어차피 저희가 100% 보증하지 않으면 1페니도 안 빌려줄거에요.”
애써 이성을 붙잡은채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던 헬레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다음 말에 이성을 깡그리 상실했다.
“…오빠, 제 정신이야? 터프 무어를 담보로 잡으라고? 안 돼! 번리 풋볼 클럽의 이사로서 구단을 구렁텅이에 쳐넣을 수 있는 그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 그리고 난 길 가다가 돌을 맞고 싶지 않다고! 더구나 터프 무어는 담보로 별로 가치가 없어.”
“…왜 없냐니?! 22,000석짜리 구장인데 티켓당 겨우 35파운드를 받는다고! 만석이어도 경기당 최대 77만 파운드 밖에 수입이 없는데, 실은 그중 절반 이상은 시즌 티켓이어서 결국 경기당 15파운드도 못 받아! 그리고 경기장의 유지보수 비용은? 그거 순수입이 아니라고!”
“…터프 무어는 팔다리가 아니라 머리라고! 의사가 니 팔다리를 살리려고 니 목을 절단해버리면 기분이 퍽이나 좋겠다!”
휴대폰 너머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오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놀란 형민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헬레나가 방만해졌던 자세에서 의자에 다시 반듯하게 앉았다.
“…네. 아니요. 아닙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네.”
“…네. 그래도 무이자로는 해주셔야 해요. 네. 네, 그럼요.”
“…1천만 파운드 콜이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마침내 통화를 끝낸 헬레나가 꺼진 휴대폰을 노려보면서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아니 그럼 본인이 직접 와서 살려보던가!”
소파에 앉아서 오가던 통화 내용의 한쪽을 듣고 있던 형민이 불편한듯 헛기침을 하자, 헬레나는 그런 형민을 바라보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김.”
“아닙니다. 제가 다른 때에 올걸 그랬나요?”
“아니 뭐, 그다지 부끄러운 내용도 아닌데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난 헬레나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형민의 앞 소파에 앉았다.
“투자라는게 이래요. 최대한 싸게 물건을 사고 싶어하지만, 막상 물건을 산 다음에는 싸게 산 그 물건을 살리기 위해서 계속 돈을 집어넣어야 하지요. 회사도, 구단도 다 마찬가지에요.”
“번리도 돈을 계속 집어넣어야 하는건가요?”
“원래대로라면 그렇지는 않아요. 사실 마이크랑 존이 그동안 운영을 꽤 잘 했거든요.”
“그럼 문제가 뭔가요?”
“음···첫번째로는, 번리를 인수하기 위해 ALK 캐피털이 꽤 큰 자금을 빌렸고, 그 자금을 갚기 위해서 번리 풋볼 클럽이 가진 현금을 싹싹 긁어갔다는 것. 두번째로는, 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제대로 터졌다는 것.”
“아···.”
헬레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사실 전부 ALK 캐피털의 잘못은 아니에요. 전세계에 코로나19가 퍼질지는 아무도 몰랐고, 그것 때문에 입장료 수입이 완전히 사라질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헬레나는 여기서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번리 같은 소형 구단은 마케팅이나 스폰서쉽으로 건질 수 있는 수입이 크지 않으니까, 연간 2천만 파운드 정도 되는 입장 수입이 갑자기 사라지면 그걸 메꿀 방법이 없다는거에요.”
“그렇군요. 어, 그럼 왜 저를 갑자기 보자고 하신걸까요?”
“아, 맞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부른게 아니지요.”
살짝 헛기침을 한 헬레나는, 자신이 맞은 편에 앉은 형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구단 이사진 사이에서 논의를 했어요. 이미 언론에서도 예상이 담긴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형민에게 번리 풋볼 클럽의 정식 감독을 제안하고 싶어요.”
“….”
표정이 변하지 않는 형민의 모습에 헬레나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놀라지는 않네요?”
“저도 신문은 읽으니까요. 그리고 놀란거 맞습니다. 그냥 표정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에요.”
“아,그렇군요.”
“근데 왜 저인가요?”
“음···이것들이 저보다 설명을 더 잘 해줄 것 같네요.”
헬레나가 꺼낸 것은 영국 및 지역의 주요 일간지들의 스포츠란이었다.
원래도 축구라면 내용을 불문하고 광적인 면모를 보이는 영국 언론이었지만, 이번에 번리라는 새로운 화젯거리를 발견하면서 일제히 달려들어서 하루에도 몇개씩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초짜 동양인 임시 감독이 지휘한 첫 3경기에서 3연승.
선수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은채, 이전 감독의 스타일에서 과감히 탈피했는데 총 4골을 넣고 한 골조차도 먹히지 않은 공수가 완벽하게 조화된 모습.
상대편 페널티박스의 끝에서부터 하프라인까지 강렬하게 진행되는 전방 압박.
숏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좌우를 흔들어서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곳으로 순차적으로 공격 인원을 투입하면서 숫적 우위를 가져가는 섬세한 전술.
그리고 빠르고 과감한 교체 타이밍까지.
모든 언론사와 황색 언론, 찌라시들 모두 더 이상 새로운 감독의 선임에 대해서 논하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3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날 아침.
전국 단위의 일간지 스포츠란은 번리의 스타일을 180도 전환한 젊은 천재 감독의 전술을 분석하고 치켜세우는 기사들과, 그가 다음 경기인 아스톤 빌라 전의 결과에 따라서 정식 계약 체결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 뿐이에요.”
헬레나가 건내준 신문들을 슬쩍 본 형민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평가절하했다.
“에버튼은 감독이 사임할 생각이어서 어수선했고, 브렌트포드는 구단 역사상 프리미어 리그에 처음으로 진출했어요. 카라바오컵은 감독이 막 바뀐 시점에 그냥 운이 좋았던거고요.”
“그래도 경기 내용은 좋지 않았나요?”
헬레나의 질문에, 형민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상대팀들이 우리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 당황하고 있지만, 시즌이 흐르고 전술이 간파되면 점점 더 힘들어질거에요. 그렇다고 선수 교체로 큰 전술 변화를 주기에는 우리 선수층이 너무 얇아요. 프리미어 리그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라고요.”
“전술을 다시 변형하면요?”
“이미 지난 시즌에 비해서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션의 기존 전술을 크게 건드렸는데요? 여기서 전술을 더 건드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거예요.”
고개를 흔든 형민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전반기에 전력이 노출되지 않았을 때에 쌓을 수 있는 승점을 최대한 많이 쌓아서, 후반기에 흔들려도 프리미어 리그 잔류는 걱정하지 않을 수준에 도달하는 겁니다.”
말하다가 방금 전의 대화를 떠올린 형민이 씩 웃었다.
“아니면 새로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자금이라도 지원을 해주시는건가요?”
형민의 짖궂은 질문에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구단 운영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요. 영입까지는 손이 가지 않네요.”
“거봐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형민의 대답에 헬레나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감독에게 제대로 지원을 해줄 수도 없는 엉망진창인 구단이지만, 그래도 정식 감독을 맡아줄 수 있나요?”
“그래서, 왜 저인가요?”
형민의 질문에 헬레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음···저는 기본적으로 일을 맡겼는데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형민은 전혀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퍼스트팀의 지휘를 맡았고,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있어요.”
형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헬레나가 계속했다.
“제가 들어보니 승점 30점이면 잔류권에 아슬아슬하고, 40점이면 안정권이라고 하더군요. 김은 2경기에서 6점을 확보했어요. 남은 36경기에서 30점 정도만 더 건질 수 있다면 번리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에요.”
헬레나의 솔직한 대답에 형민은 한참이나 망설였고, 헬레나는 그런 형민을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렸다.
머리를 싸메고 한동안 고민하던 형민은 마침내 고개를 들고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한번 해보지요, 까짓거. 뭐, 잘 안 되면 해고당하는거 밖에 없잖아요?”
“훗.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요. 어쨌든,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김 감독.”
“저도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헬레나.”
두 사람은 굳건한 악수를 나눴다.
다른 감독이 다 거절해서, 내지는 형민의 연봉은 다른 감독들에 비해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어서, 라는 추가적인 진실들은 영원히 헬레나의 입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