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한국에서 온 백전노장
“Wise Men say! (현자는 말하지!)”
“Only fools rush in! (바보만 뛰어든다고!)”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하지만 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어!)”
“With us ! Us! Us! (우리랑! 우리랑! 우리랑!)”
*서튼 유나이티드 공식 응원가 중
“후아···.”
이것보다 훨씬 더 큰 경기장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경기도 많이 치러봤다.
하지만 은퇴한 다음에 복귀해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에게 코치직과 이제 일시적이지만 선수로 다시 뛸 기회까지 준 친구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저 어처구니 없는 응원가 때문인지.
잉글랜드 4부 리그 소속인 서튼 유나이티드의 4,900석짜리 경기장 센터 스팟에 선 정태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되세요, 태진 코치님?”
그의 옆에 서 있던 조 겔하트가 물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19살짜리 유망주를 본 태진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에이, 긴장되면 긴장된다고 말하는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슈테판 코치님이요. 멘탈 관리 교육하실 때에 그렇게 말씀해주셨거든요. 너무 긴장되면 차라리 긴장을 인정해라. 그리고 그 긴장을 극복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아라.”
태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한국과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현역 프로 선수로서 10년 이상 활동.
거기에다가 대학생 때에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서 월드컵을 4번이나 출전했으며, 국가대표팀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센츄리 클럽의 일원이자 한국 국가대표팀의 최다 경기 출전과 최다 골 기록을 둘 다 보유.
월드컵은 8강까지 진출해봤고, 아시안컵은 우승을 몇번 했는데 솔직히 몇번이나 했는지 평소에 외우고 다니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 난다.
“하아···. 조.”
“네, 코치님!”
밝게 대답하는 싹싹한 유망주를 내려다보면서 태진은 애써 터져나오는 한숨을 참았다.
“너나 잘해라, 알겠지?”
“네···?”
“이런 젠장···!”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형민은 터져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참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뒤에서 그 대신 욕설을 퍼부어 주었다.
다만 욕설의 대상이 형민이랑 좀 달랐을 분.
“X발, 그냥 담궈버려!”
“해치워! 좋았어!”
“젠장! 방금 그거 괜찮았는데! 정신 제대로 차려, 이 X신들아!”
축구보다는 종합 격투기나 레슬링 경기장에 더 어울릴만한 함성이 관중석에서 터져나왔다.
사실 5천석짜리 소형 경기장이어서, 테크니컬 에어리어도 크지 않고 바로 뒤에 있는 벤치나 관중석과 사실상 붙어 있는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서튼 유나이티드의 홈팬들이 걸걸한 목소리로 응원과 욕설을 내뱉고 있는 가운데, 형민도 같이 욕설을 내뱉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확실히 손발이 잘 안 맞기는 하네.”
옆에서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는 카롤리나에게 형민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태진을 플레잉 코치로 삼는게 말이 안 된다고!”
“이건 태진의 문제가 아니잖아? 오히려 막스랑 조가 추태를 보이고 있는거지.”
“에잉···.”
형민은 애꿎은 잔디를 걷어찼다.
카롤리나의 냉정한 지적대로, 태진의 움직임은 전혀 문제가 없다.
월드컵 이후 한달 간의 은퇴생활이 거짓말이었던듯, 부드럽고 노련하게 페널티 박스 안밖을 오가면서 서튼 유나이티드의 수비수들을 끌어내고 수비 라인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적절히 공격 가담과 전방 압박을 하면서 서튼 유나이티드의 경기 흐름을 방해하는건 당연하고.
그래도 한때 프리메라 리가 중위권 팀 중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것으로 손꼽히던 최전방 공격수의 풍모를 제대로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좌우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조 겔하트와 막스 코넷이 자꾸 무리하게 공을 끌면서 상대팀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의 협력 수비에 차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태진이 차단된 공격을 전방 압박으로 막아내면서 역습을 끊어내고 있어서 일방적인 경기가 유지되고 있는거지, 아니면 벌써 몇번 정도는 역습을 허용했을 분위기였다.
“하프타임 때에 한번 제대로 갈궈줘야 겠는데···.”
이를 갈면서 벼르는 형민에 카롤리나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경기장을 향해서 손짓했다.
“하프타임까지 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봐봐.”
“아···.”
“둘 다 정신 차려! 뭐 하는거야?!”
번리가 얻어낸 코너킥을 차기 위해 잠시 경기가 지연되는 상황.
정태진은 공격에 가담하기 위해서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들어온 막스 코넷과 조 겔하트를 붙잡고 나직하지만 빠르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평소에 임시 코치라는 본인의 위치를 잘 자각하는듯, 태진은 질책을 하기보다는 격려하고 부드럽게 지적해주는 편이다.
아니, 본인 성격 자체가 경기장 밖에서는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한국에서 온 베테랑 공격수와 프로 경기를 뛰고 있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출신의 공격수들은 이 백전노장이 열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체감하고 있었다.
“감독이 요구한 전술적인 움직임이 그게 아니잖아! 도대체 왜 공을 그렇게 질질 끌고 있는거야?!”
“저, 아니··· 그게···.”
뭔가 불길함을 감지하고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막스 코넷과는 달리 어린 조 겔하트가 반박을 하려다가 바로 차단당했다.
“훈련에서는 그렇게 안 움직이잖아! 서튼 유나이티드가 4부라고 무시하는거야? 여기도 다 프로라고! 너네들이 공을 몰고 들어가면 위대한 번리 출신 선수들이니까 아 네, 하고 뒤로 물러설 것 같아?!”
자세히 들리지는 않지만 오가는 대화의 내용을 어렴풋이 들은 서튼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간다.
도끼눈을 뜨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상대팀 선수들의 눈빛에 막스 코넷과 조 겔하트는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잉글랜드는 하위 리그로 내려갈수록 몸싸움도 거칠고 전투적이 된다.
카라바오컵이나 FA컵에서 하위 리그팀 선수한테 잘못 걸려서 팔다리 하나 부러진 프리미어 리그 선수 명단은 상당히 길고 역사도 깊다.
당연히 그 명단에 이름을 추가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막스 코넷과 조 겔하트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뒤에서 루카랑 크리스가 받쳐주고 있고, 니코도 있잖아! 앞이 막히면 공은 뒤로 돌리고 본인들은 몸만 침투하란 말이야! 지금 수비수들을 계속 끌어내고 있는데 정작 너네들이 안 들어오니까 중앙이 텅텅 비어서 공격이 이어지지 않고 있잖아!”
거의 30분 동안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공간을 만들어낸 노력이 허무하게 날아간 베테랑 공격수의 질책에 두 선수를 고개를 숙였다.
“정신 똑바로 차려! 하프타임 때에 둘 다 교체당하기 싫으면!”
마지막 지적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고개를 돌려서 원정팀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바라보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감독의 얼굴에 먹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게 여기서도 잘 보인다.
“흐익!”
번리 선수단의 기강 확립에 한 획을 그었던 물병킥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막스 코넷이 기겁했다.
“잘 보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잘 해라!”
“넵!”
“넹!”
막스 코넷과 조 겔하트 모두 대답하고 각자의 위치로 향해서 달려갔다.
어차피 코너킥 상황이니까 멀리 갈 것도 없기는 하지만.
멀어지는 자신의 공격 파트너들을 보면서 태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자칫하면 나도 교체 당한단 말이야, 이 자식들아···.”
4부 리그 팀을 상대로 하는 FA컵 경기인데 이것 밖에 안 되네?
앞으로 몇 주 동안 자신을 볼 때마다 그런 얄미운 표정을 지을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을 생각하면서 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는건 허용할 수 없다.
나, 정태진의 자존심을 걸고!
***
“에잉···.”
형민은 못 마땅한듯 경기 기록지를 내려다보았다.
FA컵에서는 물론 4부 리그인 서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것이지만, 그리고 그 중에 한 골은 페널티였지만, 그래도 태진은 2골을 넣었다.
그 다음에 진행된 프리미어 리그 22라운드에서는 승격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을 상대로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서 세바스챤 셰만스키가 넣은 쇄기골에 대한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2대 0 승리에 기여.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 23라운드에서는 노리치 원정경기에서 후반전에 투입되어서 전방 압박과 시간 지연을 통해서 영패를 면하려는 노리치의 필사적인 역습을 분쇄시켰다.
젊은 번리 선수들이 가진 엄청난 활동량과 패기는 없었지만, 그 대신 경기의 흐름을 간파하고 이를 교묘하게 유리한 쪽으로 끌어당기는 데에는 정말 백전노장의 풍모가 따로 없었다.
형민도 와우트 웨그호스트를 정태진으로 대체하는게 결코 전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거라는 조너선 랜드리스의 호언장담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처음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뭐?!”
형민의 짜증스러운 질문에 그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던 태진이 양 손을 들어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카롤리나와 다른 코치진들과 어울리더니 남유럽식 손동작과 표현들을 따라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난 아무 말 안 했다.”
“뭔가 말 하고 싶어했잖아! 얼굴에 써 있었다고!”
“아니 뭐···.”
태진은 고개를 돌려서 먼 산을 쳐다보는 시늉을 했다.
“…훌륭하게 전력의 공백을 메꾼 베테랑 공격수에게 감사하다던가. 팀을 위기에서 구원해줘서 고맙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역시 너가 없었으면 안 됐어 라고 인정을 한다던가. 좋은 감독이라면 그런 말을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태진은 자신 앞에 펼쳐져 있던 코치 라이선스 교재를 들어올리면서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자, 여기 적혀 있다고.”
“알거든?! 난 UEFA 프로 라이선스 보유자이거든!”
“오, 그럼 잘 됐네. 자, 난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빨리 칭찬을 떠먹여 달라고. 흐흐흐.”
태진의 자랑스러운 표정에 형민은 한숨을 내쉬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고맙다. 이 자식아.”
“뭐, 엎드려서 절 받기지만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웃으면서 친구를 놀리는 것을 마무리한 태진이 조금 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PSG 때문에 긴장되냐?”
“그래.”
형민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음바페. 네이마르. 메시. 그것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미드필더랑 수비수랑 골키퍼까지 다 월드클래스야. 거기에다가 갈티에 감독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그 모래알 같은 조직력을 개선했다고.”
크리스토프 갈티에 감독은 프랑스 리그앙에서만 감독직을 무려 13년간 수행한 베테랑 감독이다.
2020/21 시즌에는 LOSC 릴을 이끌고 PSG와 올림피크 리옹, AS 모나코 그리고 올림피크 마르세이유와 같은 리그앙의 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리그앙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세계적인 스타들을 잔뜩 보유하고 유럽 무대에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PSG에는 어울리는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LOSC 릴에서 갈티에 감독과 함께 우승을 견인하고 지난 여름에 PSG에 신임 풋볼 어드바이저로 부임한 후이 캄포스의 신뢰는 확고했다.
그리고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갈티에 감독은 빼어난 공격력에 비해서 선수들 간에 비협조와 불협화음, 그리고 모래알 같은 조직력과 형편없는 수비 체제로 악명이 높았던 PSG의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비록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같은 조에서 리버풀과 인터 밀란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감독 수명이 하루살이보다 짧다는 PSG에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임될 정도였다.
그런 PSG를 상대로 유로파 리그 16강의 1차전이 4일도 채 남지 않았다.
2월에 치른 3경기에서 모두 완승을 거뒀지만, 감독이 긴장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
“괜찮아. 여기까지 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잘한거야.”
“…그래?”
의외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태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임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주먹으로 여기까지 온거잖아. 번리, 번리 라고 해서 얼마나 시골구석인가 했더니, 이건 뭐 아무 것도 없는 동네잖아. 이런데서 급하게 조립된 팀을 이끌고 이런 성적을 낸다는건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고.”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삼척시의 시립 축구단을 이끌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컵도 들고 아시안컵에서 경쟁하는 수준이다.
그것도 같은 강원도에 조금만 큰 도시라면 하나 같이 대형 구단들이 득실득실거리는 틈을 뚫고.
“그리고 PSG도 무패는 아니잖아? 이번 시즌에도 리그앙에서 한두 경기는 지거나 비기기도 했고.”
그렇지.
리그앙 20경기에서 18승 1무 1패를 기록했고, 그 1패는 땅을 파면 지하에서 유망주가 솟아오른다는 AS 모나코를 상대로 당한거였지.
무승부는 더비 라이벌인 올림피크 마르세이유 원정경기였고.
말을 한 태진도, 말을 들은 형민도 둘이서 뻔히 아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그래. PSG도 무적은 아니지.”
스스로를 다독이는 형민의 말에 태진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언제나 위급한 상황에는 내가 있잖아! 크하하하!!”
“…아오.”
저 킬킬거리는 거구한테 덤벼봤자 본전도 못 뽑을걸 아는 젊은 명장은 그냥 한숨만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