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우승한 다음날
“끄아아악!”
젊은 남자의 비통하고 괴로운 비명이 방 안에 울려퍼졌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은건 아니다.
“야, 엄살 그만 피우고 빨리 빨리 해.”
“크라이오 테라피에서 빨리 빨리가 어딨어?!!”
크라이오 머신에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은채 나머지 전신이 영하 160도의 초저온도에 노출된 카림 아데예미가 자신을 독촉하는 친구를 노려보았다.
“이씨! 야, 이거 몇초나 더 남았어?!”
“음··· 아직 130초 정도 더 남은 것 같은데?”
중세시대의 고문 기계처럼 생긴 크라이오 머신 앞에서 붉은색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숫자들을 보면서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중얼거렸다.
카림 아데예미 좌우로 서너명의 선수들이 크라이오 머신 안에 들어가서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180초 간의 초저온도 치료를 견뎌내고 있는 가운데, 그 앞에 줄을 서서 자신들이 형벌을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번리 선수들의 표정도 니콜라스 세이왈드와는 다르게 별로 안 좋았다.
“다들 왜 그래? 그래도 이렇게 3분을 견디는게···.”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주변을 쓱 둘러봐서 듣고 있는 귀를 확인한 다음에 목소리를 낮췄다.
“…파울루 코치님이 직접 손으로 근육을 풀겠다고 하시는 것보다 낫잖아.”
“음··· 그건 그렇지.”
여기저기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들이 동의했다.
포르투갈 출신의 피트니스 코치는 구단 소속의 물리 치료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본인도 직접 물리 치료를 베풀겠다고 나서는데, 마사지를 할 때에는 정말 인정사정 없이 한다.
근육이 빨리 풀리는건 좋은데, 그 시간 동안 죽음 같은 고통 속에 시달린다는게 부작용이다.
모두 다 한번 이상 이 중년 남자의 부드럽고(?) 친절하며(?!) 무엇보다 짧은(?!!) 마사지를 받아봤기 때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였다.
크라이오 테라피는 180초를 버티고 나면 끝이지, 파울루 모라오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마사지를 계속한다.
그리고 대체 그 만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는 선수들 중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너는 내일 뭐할거야?”
카라바오컵을 우승했지만, 형민과 구단 측에서는 축하 행사를 우승 당일로만 제한했다.
근데 경기를 치루고 나서 정신과 육체가 모두 너덜너덜해진 선수들은 당일이나 심지어 다음날인 오늘도 딱히 뭔가를 할 정신이나 체력이 없었다.
아마 오늘도 오전에 회복 훈련과 테라피가 끝나면 다들 집에 돌아가서 죽은 듯이 쓰러져서 자겠지.
그래서인지, 팬들과의 행사나 번리 읍내에서 지난 시즌에 이은 두번째 퍼레이드 제안도 정중하게 사양한 형민이 선수들에게 내일도 특별 휴식일을 부여했다.
우승컵 하나에 휴일 하나였지만, 번리 선수들은 그것마저도 감지덕지 했다.
“음··· 난 그냥 숙소에서 쉬고 있을 것 같은데?”
파울루 모라오 코치에게 물어봤지만, 만약 휴식일에 혼자서 훈련해서 회복 중인 근육을 건드리면 친히 죽여버리시겠다는 답변을 들은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우리 맨체스터 시내에 나가보지 않을래?”
“맨체스터?”
아무 것도 없는 번리 읍내에 비해서 영국 북서부의 최대 도시인 맨체스터는 아무래도 할 것도 볼 것도 훨씬 더 많다.
“난 쇼핑이나 관광 같은건 별로 관심이 없는데···.”
바른생활 사나이가 말 끝을 흐렸지만, 유소년 시절부터 같이 지냈던 카림 아데예미는 그 속에 숨겨진 망설임을 눈치채고 니콜라스 세이왈드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루카 수키치에게 눈짓했다.
같은 RB 잘츠부르크 출신이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도 자주 어울려다녔던 젊은 크로아티아 국적의 미드필더가 니콜라스 세이왈드의 단단한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니키, 감독님이 내일 휴식일을 부여해주신건 우리가 푹 쉬라고 부여해주신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오늘 회복 훈련이 있는데도 내일 휴식일을 부여해주신건 왜일까?”
“어···.”
“오늘은 신체적인 회복! 내일은 정신적인 회복! 이런거 아닐까?”
아, 뭔가 말리고 있는게 느껴지는데 앞에서 논리정연하게 들어오니까 꼭 찝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함정인걸 알지만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야생동물처럼 니콜라스 세이왈드가 망설이면서 대답을 이어갔다.
“그, 그렇겠지.”
“정신적인 회복을 위해서는 가끔씩 기분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어?”
“어···.”
“그리고 가끔씩은 새로운 풍경을 보고, 새로운 것을 맛 보고, 견문을 넓히는게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거잖아!”
그냥 네가 보고 싶은건 예쁜 여자애들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던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차마 그걸 그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뭐, 그래.”
“그럼, 우리 내일 같이 맨체스터 시내로 가는거야!”
“어···.”
마지막 순간까지 도대체 왜 자신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된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젊은 부주장의 모습에 뒤에 서있던 베테랑들은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손짓 발짓으로 닥치고 있으라는 젊은 유망주들이 자신들에게 보내는 날카로운 눈빛이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
과정은 달랐지만, 젊은 선수들과 같은 결론에 하루 일찍 도달한 두 사람이 있었다.
“하아··· 여기가 그래도 번리 읍내보다는 훨씬 낫네.”
오전과 오후를 걸친 관광 겸 쇼핑 끝에 카페에 짐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던 헬레나가 말했다.
2월의 맨체스터는 여전히 춥다.
밖에서는 무려 영상 3도로 강추위에 가까운 날씨였지만, 그녀 옆에서 맨체스터의 거리를 쏘다니면서 만만치 않은 체력과 방한력을 과시했던 카롤리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주문한 커피를 마셨다.
“뭐, 번리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맨체스터 정도면 번리랑 충분히 가깝지 뭐.”
“그건 그래.”
에밀이 온 다음에도 단순히 위치만 고려해서 선정한 번리 한복판의 비즈니스 호텔에 아직도 투숙하고 있는 헬레나와는 다르게, 카롤리나가 맨체스터 외곽에 위치한 저택을 임대한 이유가 있었다.
주문한 늦은 점심이 나오고,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두 여자가 한동안 차려진 음식을 흡입하던 와중에 카롤리나가 헬레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두 사람, 진도는 제대로 나가고 있는거야?”
카롤리나의 질문에 헬레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무슨 의미지?”
“아, 다른게 아니라···.”
양 손을 들어올리면서 다른 의도가 없다는 시늉을 했지만, 피식피식 웃으면서 카롤리나가 대답했다.
“카라바오컵 결승전 때에 보니까 아직도 어색한 사이인 것 같아서.”
쌍심지를 켜고 친구를 노려본 헬레나는 입술 사이로 쉬익 소리를 냈다.
“조용히 해라.”
“네넵.”
카롤리나는 입술을 지퍼로 닫는 시늉을 했다.
잠시 자신의 악우를 쳐다보면 헬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뭔가 신호는 계속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영 반응이 없네.”
친구의 침울한 반응에 방금 전에 한 침묵의 맹세 따위는 금방 잊어버린 카롤리나가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냥 질러버리는건 어때?”
“질러? 뭘 질러?”
“아니··· 그냥 확 입술 도장이라도 찍던가. 아니면 밤에 숙소에 쳐들어가서 아예 그냥 덮쳐버리는거야!”
“어머나! 그런 말을!”
얼굴이 붉어지는 시늉을 하면서 헬레나는 친구의 팔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퍽!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카롤리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입만 벌렸다.
에밀이 헬레나 얘기만 나오면 벌벌 떨길래 엄살인줄 알았는데···.
리그앙과 유럽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까지 우승했었는데, 그 어떤 경기나 훈련에서도 이 정도 강도로 타격을 입은 적이 없었다.
아니, 몸싸움을 좀 더 잘 해보겠다고 단기간 복싱 특훈을 받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팔은 최소한 금이 갔거나, 아마 더 가능성이 높은건 골절···.
“뭐 그 정도를 갖고. 엄살 피우지 마.”
헬레나는 팔을 부여잡은채 고통에 파르르 떨고 있는 친구를 만족스럽게 내려보았다.
카트라이트 삼 남매를 주먹으로 평정한건 바로 나야.
“이, 이런 폭력적인···.”
“아, 왠지 너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각별히 안 좋다.”
번리의 선수들에게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카롤리나의 실체를 아는 헬레나의 말에 카롤리나는 팔을 붙잡은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참지 않고 말했다.
“나는 이런 폭력적인 사람을 친구로 둘 수 없어!”
헬레나는 카롤리나의 말에 코웃음 쳤다.
“야, 에밀이랑 잘 되면 내가 네 시누이가 되거든? 시누이 텃세 좀 맛볼래?”
“아니, 그런 중세적인 발언을···.”
여전히 고통스럽게 팔을 부여잡은채 카롤리나가 반박했다.
“에밀 말로는 너네 가족은 그런 고리타분한 성격이 아니라던데···?”
어라?
순간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카롤리나가 눈을 크게 떴지만, 유도심문으로 제대로 월척을 낚아올린 헬레나는 의기양양한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딱 걸렸어! 너 에밀이랑 사귀는거 맞지!”
“야!”
***
[…어, 그럼. 그럼. 나도 보고 싶지.] […그래, 그럼 그때 애들이랑 같이 오는거다! 어, 알겠어. 내가 다 준비해놓을께.] […그럼, 그럼. 나도 안부를 전할께. 그럼 들어가요. 사랑해!]전화가 끊어지고,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친구의 닭살돋는 멘트를 듣고 있던 형민이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그럼 3월말에 오는거야?”
“응응. 애들은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1주일 정도 오기로 했어! 더 와 있을 수도 있고!”
“신기하네.”
신나게 웃던 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아니. 나는 잘 모르지만, 보통 유부남들은 와이프랑 애들이랑 떨어져 있으면 좋아하지 않나?”
형민의 질문에 태진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몇 개월씩 떨어져 있으면 정말 힘들다고. 더구나 이제 애들이 내가 떠나 있다는 것을 인지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민감해지거든.”
“스페인에서도 그랬던거야?”
한때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중위권 팀들이 일제히 탐냈던 최전방 공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둘째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아무래도 프로 선수라는게 집에 자주 있지 않잖아? 원정 경기도 많고. 그래서 결국 와이프는 애들을 데리고 한국에 있었고, 나만 스페인에 가 있었는데···. 힘들더라고.”
두 시즌 연속으로 10골 이상을 성공시켰고, 그것보다 더 호평을 받았던 것은 최전방에서 상대팀 수비를 눌러주는 압박과 동시에 공격을 이어주는 연계 플레이.
조금만 더 어렸고 기량을 가다듬을 시간이 있었다면 상위권 팀들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거라는 평가를 받았던 베테랑의 말에 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수들의 심리에 가족이 영향을 많이 미치기는 하지.”
지금 번리가 다수 보유하고 있는 젊은 유망주들은 배우자나 여자친구가 따라온 경우가 거의 없지만, 서양에서 드물게도 한 숙소를 쓰고 그 생활을 즐기는 것도 이유가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번리에서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동료들을 통해서 달래는 것.
“돈도 좋고 명예도 좋고, 스페인처럼 한국보다 발전된 리그에서 뛰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런 것도 다 마음이 편해야지 즐길 수 있는거더라고. 감독이나 구단에서 만류하기는 했는데···.”
결국 한국으로 복귀했고, 한동안 빅리그에 진출했다가 실패했다고 팬들이나 언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마음 고생을 했던 시간이 기억나는듯 잠시 얼굴이 어두워졌던 베테랑 공격수는 곧바로 얼굴을 활짝 폈다.
“어쨌든! 번리에서는 여름까지만 있는거고, 3월말에 와이프가 애들이랑 오니까 그때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야지.”
어, 그 여름까지만 있는거 말인데···.
말을 꺼내려던 형민은 이게 적합하지 않은 시점이라는 느낌에 말을 돌렸다.
“근데 어디에 묵을거야? 번리에는 별로 마땅한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처음에 번리에 도착했을 때에 숙소를 구하기 전까지 번리 근처의 호텔을 전전했던 형민의 질문에 태진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맨체스터쪽 호텔을 잡아야지. 나도 그동안에는 거기에 가 있고. 물론 번리에도 한번 구경을 올 건데, 여기는 알다시피···.”
“…볼게 아무 것도 없지.”
사실 경기장과 훈련장을 둘러보면 끝이고, 일반인인 태진의 가족이 굳이 반필드 트레이닝 센터를 본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그나저나, 너는 어쩔거야?”
“나? 나 뭐? 휴가 때 뭐 할거냐고?”
“아니. 그거 말고. 대표랑 어떻게 할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