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Premier League's youngest manager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최악의 스타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푸스카스 아레나.
헝가리가 낳은 축구 영웅 페린치 푸스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던 페린치 푸스카스 스타디움이 허물어진 자리에 다시 세워져서 2019년에 완공된 최첨단 경기장은 무려 67,215석을 자랑하는 초대형 경기장이다.
유로파 리그 결승전을 맞아서, 경기장의 절반은 토트넘의 흰색으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번리의 암적색으로 물들인채 팬들의 거친 함성과 응원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암적색으로 물들인 쪽의 관중석 정중앙에 앉아 있던 번리 풋볼 클럽의 공식 서포터즈 회장 헨리 스마이스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 이거 함정이었구나.
번리 구단 측에서 공식 서포터즈의 임원진에게 유로파 리그 결승전 경기 티켓을 구해주겠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에 덥썩 물었던게 실수였다.
심지어 번리 구단 측에서 티켓값까지 내주겠다고 제안했을 때에 뭔가 꼼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번리 풋볼 클럽의 전설적인 존재 중 하나이자, 지난 시즌에 동화 같은 진격을 이끌었던 번리 퍼스트팀의 코치진의 멤버 중 한 명이 자신들에게 배정된 좌석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냉큼 그 옆에 앉은 자신이 바보였다.
어쩐지 헨리 타일러 저 꼬맹이 자식은 누가 앉아 있는지 확인하자마자 바로 배정된 좌석 중 반대쪽 끝에 가서 자리를 잡더라.
“…래서 말이야, 내가 김한테 말했지! 자네, 내 말 듣고 있나?”
“네, 듣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역시 지난 시즌에 브림로우 수석코치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헨리 스마이스는 마치 연극처럼 오버하는 톤으로 대답했지만, 그의 옆에 앉아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던 번리 퍼스트팀의 전 수석코치 아서 브림로우는 그게 오히려 만족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전면 압박으로 가자고!”
“아, 그렇군요!”
자신의 대사는 좀 반복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번리쪽에 배당된 관중석의 정중앙에 마련된 가장 좋은 자리에 앉은 헨리 스마이스는 등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빨리 경기가 시작해야 영국인 꼰대 할아범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벗어날텐데, 경기는 대체 언제 시작하려는건지 축하 공연만 주구장창 이어지고 있다.
필사적으로 구원 요청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의 왼편에 앉은 오랜 친구 밋치 타일러도 절대로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15도 이상 고개를 틀지 않는 기묘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온 심혈을 다해서 경기장만 지켜보고 있다.
“…저 친구가 경기를 지켜보는 자세가 참 마음에 드는군. 내가 1984년에 말이야··· 자네, 듣고 있는거야?”
“그럼요! 듣고 있습니다! 어··· 그러니까, 1984년에···?”
“그렇지! 1984년에 말이야, 1978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더라고···.”
지난 1년간 병원과 집 만을 오가면서 제대로 된 대화를 별로 못 했던 아서 브림로우가 신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헬레나의 연락을 받았을 때에 클라리사 브림로우가 쾌재를 부르면서 남편의 짐을 챙겨서 바로 부다페스트로 부쳐버리고 본인은 포르투갈로 휴양을 떠났다는 것을 알리 없는 헨리 스마이스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번리 풋볼 클럽의 지난 50년간의 역사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경험담을 샅샅이 훑어내는 여정 속으로 끌려갔다.
***
관중석 저 밑에 위치한 양 팀의 테크니컬 에어리어 사이의 공간.
평소에 대기심과 경기 진행 관련된 인력만 움직이는 그 중립 지대에서 오늘 결승전을 치르게 된 두 감독이 마주하고 있었다.
“하아, 자네가 아니기를 바랬는데 말이야.”
“뭐, 그건 저도 그래요. 하지만 막상 이렇게 된 이상···.”
토트넘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 따뜻하게 악수를 나누면서 형민이 아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표현하자, 다혈질의 이탈리아 출신 감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내가 오늘 이번 시즌의 2패를 만회하지!”
“싫은데요?”
“와인 한 병 더 보내줄까?”
표정이 살짝 하얘지는 젊은 감독이 서둘러서 악수를 풀어내고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단단히 잡은 손을 풀어주지 않은채 오히려 형민을 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우리 다음에는 아주 찐~하게 마셔보자고!”
“아, 싫어요!”
관중석 저 위에 위치한 이사 박스석에 앉아 있던 헬레나는 테크니컬 에어리어 사이에서 두 감독 간에 벌어지는 실랑이를 보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양 팀 코치진이 실실 웃으면서 지켜만 보고 있으니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번리의 젊은 동양인 감독과 그의 손을 놔주지 않은채 뭐라고 손짓발짓을 하고 있는 토트넘의 이탈리아인 명장 사이에서 대충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도 알 것 같다.
“음··· 아무래도 카챠챠를 한 병 더 주문해야 겠는데?”
헬레나 카트라이트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건 그 탁월한 능력도, 무자비한 협상력도,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무시무시한 신진대사력도 아니다.
첫번째는 한 대만 툭 쳐도 뼈가 부러질 것 같은 그녀의 매서운 손길.
카트라이트 삼 남매에서 오빠와 남동생이 모두 헬레나의 주먹 사정거리 밖에서만 얘기를 하려는 것도 뼈져리게 학습된 이유가 있다.
복싱이나 격투기로 전향했다면 희대의 챔피언이 되었을거라는 평가 속에서 헬레나가 두번째로 유명한건 바로 주량이었다.
마셔도 마셔도 멀쩡한 정신과 다음날에 숙취조차 없는 엄청난 알코올 분해력.
신진대사력과 주량은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지만, 둘 다 초인간적인 실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음식물이나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간 다음에는 소화기관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보내진다는 소문을 믿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 무자비한 존재가 자신에게 술을 먹일 생각을 하면서 저 위에서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한참이나 신나게 얘기를 하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마침내 손을 풀어주자, 형민은 바로 자신의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도피했다.
여전히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헬레나 옆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가 웃음기가 섞인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두 사람이 참 친한 것 같아요. 안토니오도 평소에 저렇게 상대팀 감독이랑 반갑게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말이지요.”
유벤투스에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발탁했고, 토트넘에서 다시 다혈질의 감독과 합류하게 된 토트넘의 풋볼 디렉터가 된 파비오 파라티치의 말에 헬레나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나중에 한번 다 같이 식사자리라도 마련해보시지요. 저희가 런던으로 갈께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집에 실려가야 할테니, 말이다.
비릿한 웃음을 짓는 헬레나의 제안에 그녀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파비오 파라티치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안토니오도 평소에 번리의 김 감독에 대해서 극찬을 했답니다. 이번 시즌에 우리한테 2패나 안겨준건 좀 그렇지만···.”
“하하하, 뭐 어쩔 수 없지요.”
헬레나와 파비오 파라티치가 박스석에서 미소를 교환하는 가운데, 축하 공연의 끝과 함께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난 그른 것 같아.”
입장하고, 유로파 리그의 주제곡을 듣고, 서로 악수하고, 주장끼리 각 팀의 상징물까지 교환하고 각자의 진영에 서서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관중들의 함성이 더 거세지고, 선수들이 모든 신경을 경기장으로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 건너편에 서있는 토트넘의 새하얀 유니폼을 바라보면서 친구인 니콜라스 세이왈드에게 다가온 카림 아데예미가 푸념했다.
“그러게.”
“아, 왜 맷 도허티한테 걸었던거야! 당연히 루카스 모우라가 나올거라고 생각해야 되는건데!”
“괜찮아. 애들은 거의 다 맷 도허티한테 걸었으니까.”
토트넘이 초반에 선제골을 넣고 뒷문을 잠그는 전술로 나올거냐, 아니면 초반에 문을 걸어잠근 다음에 경기 내내 기회를 노릴거냐, 라는 질문.
감독이 내기라는 형태로 던져준 질문지에 오답을 체크하고는 머리를 움켜쥐던 카림 아데예미를 혀를 차면서 잔디를 걷어차다가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는?”
“난 루카스 모우라한테 걸었지.”
친구의 담담한 대답에 카림 아데예미는 충격어린 표정으로 니콜라스 세이왈드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건 감독님의 감이 코치님들보다 더 좋거든.”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바라보자, 희희낙락하고 있는 감독의 뒤로 잔뜩 인상을 찌푸린 코치진들이 일제히 팔짱을 끼고 벤치에 앉아서 경기장을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넌 얼마나 걸었는데?”
“100 파운드.”
카림 아데예미는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 배당률이 1.5배였으니까···.”
“150 파운드 정도 벌겠지.”
“야, 그거 나오면 네가 저녁 쏴라.”
니콜라스 세이왈드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면서 하고 싶은 말들의 우선순위를 머릿속에 정리한 다음에, 제일 위에 있는 말을 해주기로 했다.
“야, 경기 시작하거든. 빨리 위치로 돌아가라?”
“아, 맞다!”
***
“아자! 아자아자아자!”
“아오!”
상대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화려한 세레모니를 벌이고 있는 상대팀 감독을 보면서 형민은 잔디를 걷어찼다.
토트넘의 킥오프로 시작된 경기.
토트넘의 중앙 공격수 해리 케인이 주심의 휘슬과 함께 뒤로 내준 공을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받았다.
그리고 토트넘에 와서 기량이 활짝 만개한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의 미드필더는 한시의 지체도 없이 바로 오른쪽 측면으로 파고드는 토트넘의 오른쪽 윙백 루카스 모우라에게 연결했다.
경기 시작부터 빠르게 공격을 시도할거라고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탐색전도 없이 결승전에서 킥오프와 함께 바로 첫 공격을 가할줄 몰랐던 번리의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선수단이 모두 방심한 순간.
루카스 모우라는 공을 몰고 전진하다가 다급하게 접근하는 번리의 왼쪽 수비수 압두 디알로를 쉽게 따돌리면서 코너 플래그 근처까지 빠르게 파고들었다.
“쏘니!”
“어.”
코너 플래그에 도달한 루카스 모우라가 동료를 부르는 외침과 함께 패널티 박스 안으로 낮은 크로스를 날렸다.
그리고 토트넘의 중앙 공격수들을 막기 위해서 우왕좌왕하던 번리의 중앙 수비수들을 가볍게 따돌린 손흥민이 그 크로스의 도착지로 재빨리 다가서면서 페널티 마크 인근에서 완벽한 슈팅 기회를 잡았다.
“제임스!!”
골키퍼 닉 포프의 다급한 외침에 번리의 주장 제임스 타코우스키가 온 몸을 날리면서 손흥민의 슈팅 각도를 막기 위해서 덤벼들었지만, 토트넘의 노련한 공격수는 자신과 골문 사이를 가로막는 육탄 수비를 뚫고 슈팅을 날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피식 웃은 한국 국가대표팀 에이스가 왼발 바깥쪽으로 슬쩍 왼쪽으로 밀어준 공이 도착한 곳은 이미 대기하고 있던 또다른 중앙 공격수 해리 케인.
이미 수년째 호흡을 맞추면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매서운 공격력을 자랑하는 콤비인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서로 한 마디의 말도 교환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한 명이 더 좋은 기회를 잡은 다른 한 명에게 공을 내어줄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듯 심지어 오른발까지 살짝 들고 기다리고 있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는 그대로 호쾌한 슈팅을 날렸다.
철썩!
매서운 슈팅이 번리의 골문 왼쪽 상단 코너를 총알처럼 꿰뚫고는 미친듯이 출렁이는 골네트에 간신히 멈춰졌다.
“으아아아!!!”
코너 플래그로 몰려가서 일제히 축하하는 토트넘의 선수들을 향해서 관중석의 절반에서는 환호가, 나머지 절반에서는 절망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2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번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유럽 대항전의 결승전.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